[퍼온 글] TV를 끄고 싶다, 연예인 출연료를 보며 (성우 장정진씨 사건을 연상하면서...)

[영원한 제왕]

TV를 끄고 싶다, 연예인 출연료를 보며



선배와의 대화

TV들 많이 보십니까? 얼마전 문화부에 있는 한(one)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너는 TV를 많이 보냐? 지금까지 너의 기억에 남아 있는 소중한 추억 가운데 TV와 관련된 것들이 있어?”
“아뇨, 소중한 추억은 주로 가족이나 친구와 얽힌 기억들 아닌가요?”
“그런데 TV앞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쩐지 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우리 나라 사람들 말이야.”

이 말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귓전을 뱅뱅 맴돌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의식적으로 TV를 보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꼭 봐야 할 프로그램만 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이나 잡지를 보고,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물론 미디어팀 소속 기자가 TV를 안 볼 수는 없으니까, 보도교양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는 버릇은 버리기가 힘듭니다.



나는 TV 중독?


사실 저는 평소에 TV를 볼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늦은 밤 퇴근해서 아내가 침실에 잠들어 있는 사이, 저는 샤워를 하고 나와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의 ‘파워 온’ 버튼을 누르곤 합니다. 주로 마감뉴스나 확인해야 할 시사투나잇 류의 심야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틀어놓는데,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간혹 이종격투기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케이블에서 재전송하는 오락프로그램을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1~2시간은 후딱 그냥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회... . ‘아 내가 뭘 하고 있었지? 빨리 자야지.’ 주말 저녁 외출을 하지 않은 날이면, 저녁 프라임시간대에 방송되는 오락프로그램을 보기도 합니다. 소파에 앉아 책이나 신문을 보다가도 부지불식간에 빨려들어가버리는 것이죠.

요즘 저는 의식적으로 ‘TV 끄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에게 그날 이것 저것 TV에 관해 물어보던 선배 역시 ‘의식적으로’ TV를 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 저는 즉석에서 ‘테돌이’(텔리비젼을 많이 본다고 해서)라는 별명까지 붙어 버렸습니다.



연예인은 수백만원, 소속 아나운서는 2만원

저보다는 TV를 볼 시간이 많은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KBS2TV에서 방송하는 ‘여걸파이브’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조혜련, 이경실, 옥주현, 정선희, 강수정 5명의 여성이 여학교 교복 차림(왜? 굳이 교복 차림인지 궁금합니다)으로 나와서 남자 연예인 한명을 불러다 놓고 까부는 전형적인 웃고 떠드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에서 강수정 아나운서가 한번 출연할 때 받는 수당이 2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프로그램 도중에 했다고 하더군요. 반면, 나머지 가수와 코메디언 여성들은 모르긴 몰라도 회당 수백만원을 받고 있겠죠. 강 아나운서는 KBS에 소속된 '직원'이다 보니 고작 2만원이라는 것이죠.


<강수정 아나운서 사진=KBS홈페이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참 재미있었습니다. 늘 보면서도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 마지 않았던(사실 연예계 내부 취재는 쉽지가 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연예계의 이면을 한번 제대로 취재해볼 생각입니다) 그 세계의 내부 사정에 관해 스스로 이렇게 고백하는 말을 듣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지나치면서 몇번인가 본 적은 있었는데 어떤 프로그램인지 보려고 이번엔 인터넷으로 ‘작정하고’ 한번 봤습니다. 재미가 있던군요.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고 남는 것은 공허한 웃음 뿐이고... . 일요일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걸맞는 전형적인 중독성 오락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연예인 몸값에 관해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남자 탤런트 S씨가 모기업체 외부 행사에 반나절간 자리를 ‘빛내주고’ 받은 출연료 = 1500만원

남자 MC인 K씨가 한 기업체의 외부 행사에서 2시간 사회를 봐주고 받은 대가 = 800만원
모기업체의 연예인 패션쇼 행사에 연예인 30분 출연료 = 200만원
모 방송국 주말 토론 프로그램 외부 사회자 1회당 출연료 = 400만원
방송국 소속 여자MC의 일요일 오락프로그램 출연 수당 = 2만원



<일요일은 101% 중 여걸파이브의 한 장면. 사진=KBS홈페이지>

연예인 출연료는 내 주머니에서
연예인들의 몸값이 장난이 아닌 것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군요.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 입장에선 어디 상상이나 해봤겠습니까. 저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체질이라, 그냥은 못 넘어가겠더군요. 도대체 저들이 뭘 했길래 저런 엄청난 돈을 벌 자격이 있나. 뭐 이런 단순한 울분, 이런 생각이 들었죠. 생각은 결국 우리가 멍청하게 TV 앞에 앉아 그들의 울고 웃는 모습, 억지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내어주는 대가로 그들의 몸값이 지불되는 것 아니냐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방송사들은 물론 그 재원을 기업들의 광고비와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에서 충당하겠죠(공영방송 KBS는 수신료와 광고수입으로 운영됩니다). 수신료는 우리가 직접 내는 것이고, 광고도 결국 제품 가격에 다 반영이 되는 것이니까요.

문득 IMF때 KBS에서 외부 MC들 다 쫓아내고, 9시 뉴스를 하던 여자 앵커에게 토크쇼 MC를 맡기고 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있는 아나운서들이 어느 순간 소속 방송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이유도,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나도 '팍팍' 이해가 되더군요. 다른 분과 연예인 몸값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옛날에는 전속 탤런트, 전속 코메디언이 있어서 방송사들에게 파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 힘이 연예기획사쪽으로 많이 넘어간 것 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공공의 재산인 전파를 이용해서 돈 버는 연예기획사들

여걸 파이브에선, 최근 완전 신인인 ‘열혈남아’라고 하는 남성 5인조인지 6인조인지 하는 꽃미남들로 이뤄진 20대 초반의 남성 그룹이 출연을 하면서, “우리 사장님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려면 이 프로그램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방송이 장난입니까. 이런 수준의 말을 내뱉는 사람을 출연시키고... 그 사장님은 물론 KBS 정연주 사장이 아니라 그 신인들이 속해있는 기획사 사장이겠죠. 저로선, 이들이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신인인데 어떻게 해서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몇차례나 연속해서 출연할 수 있게 됐는 지 궁금했습니다.



<열혈남아 사진=KBS홈페이지>
신인을 띄워서 주말 오락 프로에 출연시키고, 이름을 ‘억지로라도’ 알리고, 나중에 음반이든 광고든 뭐든해서 돈을 회수하고, 대강 이런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그 와중에서 우리 시청자들은 철저히 들러리를 서줘야겠죠. 시청률을 올려서 그들의 몸값을 나중에 지불해줘야 겠죠.


우리가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TV 화면 속은 출연진 출연료만 합쳐도 수천만원이 넘는 비지니스의 세계입니다.우리는 그 앞에서 일요일 저녁 몇 시간을 멍청히 웃어주는 대가로,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몸값을 지불하는 것 입니다. KBS는 시청료이거나 광고 수익 둘 중에 하나로 그 연예인들의 회당 출연료를 지불하겠죠. 최소한 공영방송이라면 이런 짓은 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KBS가 그것 안해도 충분하지 않나요.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우리에게 공허한 웃음을 주는 대가로 결과적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상상도 못할 거액의 돈을 챙겨간다면, 그리고 그것을 공영방송이 버젓이 앉아서 하고 있다면, 이건 좀 아니다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그런 방송을 하려면 유료방송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제 케이블 TV 가입 가구 숫자가 1200만 가구를 넘었습니다. 외국에선 상업성 강한 오락프로그램은 돈을 따로 내고 보는 케이블이나 위성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 BBC나 일본 NHK에서 이런 오락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단지 카메라 앞에서 잘 까분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들에게 수백만원씩의 출연료를 챙기게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던 것 같습니다.



TV와 한판 승부!

다시 맨 처음에 선배가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TV가 각 가정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지만, 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사실 TV와 관련된 추억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떤 사람이 임종을 맞았다고 칩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주말 저녁에 여걸 파이브를 볼 때였어.” 아마, 이런 일은 없겠죠? 그보다는 가족과 함께 했던 저녁이나 여행지에서의 추억, 연애시절 이런 것 아닐까요.

TV(의 허접한 오락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시간, 우리 국민들의 인생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연예인 '그들만의 잔치'에 우리의 시간을, 인생을 도둑 맞지 않기 위해 TV의 저질 오락프로그램과 맞서 싸우는 시민단체라도 하나 만들어져야 되는 것 아닌가요?



출처 : 조선일보 블로그(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1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