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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묵상글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근처에 최신식 시립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몰랐고 또한 꼭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 할까 싶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을 다녀온 친구들이 너무 좋다는 말을 듣고 얼마 뒤에 저 역시 친구들과 가 보았습니다.
너무나 깨끗한 실내 환경, 그리고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많은 학생들의 연학 분위기는
그냥 도서관에만 있어도 공부가 저절로 될 것만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 막 나온 컵라면과 새로운 맛의 세계를 열어준 햄버거를 파는 이 도서관의 매점은 정말로 큰 인기였습니다.
이 도서관을 이용하던 저는 과연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학교 성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의 매일 빠짐없이 도서관을 다녔지만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이 도서관에 엄청난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 책을 보느라 공부를 게을리 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책이냐면 영화를 소개하는 잡지였습니다)
분명히 도서관은 책을 보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저는 학교 성적을 높일 수 있는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재미만을 가져다주는 책만을 보았으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이면 무엇 합니까?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하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 창조를 모두 마치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입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셨는데 우리들은 이 안에서 과연 어떤가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나만 원하는 모습을 따르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 씨가 어디에 뿌려졌습니까?
길에, 바위에, 가시덤불 속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자라나서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하시지요.
주님의 말씀이 바로 씨앗입니다.
그리고 씨앗은 너무나도 좋은 것으로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땅이냐는 것이지요.
좋은 땅이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길이나 바위 그리고 가시덤불 같은 마음이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을 바르고 착한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좋은 씨 그 자체이신 주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들이 문제 아닐까요?
도서관이 문제가 아니라, 공부하지 않았던 제가 문제인 것처럼 말이지요.
- 인천교구 갑곶성지
♣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묵상글
<좋은 땅을 방치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땅은 다 좋은 땅입니다.
모래땅에서는 땅콩이 잘 자라고 진흙땅에선 미나리가 자라고 습한 땅에서는 버섯이 잘 자랍니다.
기름진 땅에는 콩이나 고추가 잘 자랍니다.
각기 주어진 땅에서 알맞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땅도 관리하지 않을 때 못 쓰는 땅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밭을 갈아엎고 거름을 주는 수고와 땀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준비된 씨앗도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의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마음의 밭은 선합니다.
선하신 분께서 당신의 숨, 얼을 불어넣어주셨으니 당연히 선합니다.
좋은 밭입니다.
이 좋은 땅이 어느새 길바닥으로, 바위로, 가시덤불로, 방치되지는 않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고,
그 땅을 결코 못쓸 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땅은 다 좋은 땅이 분명한데
관리를 하지 못해 폐허가 된다면 그 책임은 관리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씨의 운명은 그 씨가 떨어진 땅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씨앗이 싹트지 못하고, 자라지 못할 땅이라면 지금 갈아엎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큰 은총을 주더라도
받는 사람이 잘 관리하지 않으면 곧 잃어버리게 됩니다.
많은 경우 자기가 잃어버리고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거두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은총을 은총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주가 주어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 (루가8,15)을 두고 하는 말이니만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함으로써 우리 마음의 밭을 잘 가꾸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길바닥이라는, 바위라는, 가시덤불이라는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두려워말고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한 발 내 딛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 하느님의 숨을 받은 우리는 모두가 좋은 밭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분께서 책임져 주시는데 왜 주저하고 좋은 밭을 묵혀 두려하십니까?
풍성한 열매를 기대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 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겸 청주상당노인복지관장
♣ 송영진 모세 신부님의 묵상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첫 번째로 받은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악마에게 그 말씀을 빼앗긴 사람들 가운데에서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 2,16-17)
그런데 사탄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 3,4-5)
이 말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다면
사탄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사탄의 말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사탄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습니다.
(사탄의 말이 진실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은 거짓이 되어버립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일은,
악마가 와서 사람의 마음에서 ‘말씀’을 앗아 가 버린 일 가운데에서 첫 번째 일이고 가장 대표적인 일입니다.
그 일에서, 유혹을 한 사탄의 책임이 크지만,
믿어야 할 말씀을 안 믿고, 믿으면 안 되는 말을 믿은 아담과 하와 자신의 책임도 큽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것처럼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하면서 신앙인들의 믿음을 흔들어놓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거짓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부터 신앙인들은 위험에 빠집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듣지 말아야 합니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뿌리’ 라는 말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자기의 ‘믿음’에 대한 강한 ‘확신’
2)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생활
확신 없이 그냥 막연히 믿기만 한 사람은,
종교박해가 닥쳤을 때 죽는 것이 무서워서 쉽게 신앙을 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박해가 없을 때에는 믿기만 하는 사람과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받게 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 종교박해를 받기 전에는 누가 순교자가 될지 누가 배교자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기가 어떻게 될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자만심에 빠지면 안 되고, 헛된 장담을 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실행’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루카 6,49)
믿음의 뿌리가 없어서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기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것도,
미사 참례만 열심히 하고 다른 신심 생활은 하지 않는 것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믿음이 바로 ‘뿌리 없는 믿음’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히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정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좀 더 잘 살고 싶어 하는 소망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은,
또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은,
그런 소망이 욕망으로 변질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숨이 막히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은,
또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은,
소망이 욕망으로, 또 집착으로 변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숨이 막히게 됩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복신앙에 빠져 있고, 그래서 기도할 때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만을 청하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거나 뒤로 미루기만 하는 경우...
그런 경우에 혹시라도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다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말씀의 열매를 맺은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사탄이 준 것입니다.)
- 전주교구 / 함열본당 상지원 공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묵상글
<말씀의 경청과 인내로 열매 맺는 주님의 밭>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8,4-8)를 들어 복음선포자들을 격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서기 27년경에 활약하셨으나 30년경 말기에는 인기가 떨어져 예루살렘 상경에는 열두제자와 여인들만 함께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분께서는 하느님께 온전히 희망을 두셨습니다.
온갖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씨뿌리는 사람은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둡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힘과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난관에도 풍성한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려고 오늘도 말씀의 씨앗을 뿌려주십니다.
따라서 가난하고 보잘것없어보이는 이들, 핍박받는 이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가
생명의 씨앗,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영원한 행복을 맛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인내하며 투신하여야 합니다.
인내하는 동안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겨운 나날일 수 있으나
바로 그 시간들 안에서 사랑의 씨앗은 자랍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그렇게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을 희망하며 견딤으로써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8,11-15)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초대교회의 우의적 해설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복음선포에 어려움을 있었고 실패를 겪었으며, 신자 생활에도 부실한 면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복음선포자들을 격려하고 신앙생활이 미흡한 이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이런 해설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생활태도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온 주님의 밭입니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은 주님께서 당신의 선과 사랑, 평화와 정의의 씨앗을 뿌리시는 밭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되어 공동의 선을 이루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시며 씨를 뿌리십니다.
그런데 길가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거나 되새김이 없는 이들,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건성으로 말씀을 듣기에 시련이 닥치면 즉시 꺾여버리는 이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믿음이 약해서 세속과 물질에 애착하고 결단이 부족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내 영혼에 뿌려주신 씨앗은
이처럼 악으로 기우는 경향, 변덕, 고집과 편견, 감각적이고 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애착,
미움과 마음의 상처, 근심걱정, 명예욕,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과 같은 수많은 위험에 직면합니다.
우리의 몫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잘 열매 맺도록 항구히 기도하며,
말씀을 경청하고 묵상하여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좋은 밭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악이 아닌 선을, 변덕이 아닌 항구함을, 근심걱정이 아닌 희망을,
소유와 애착이 아닌 가난함을, 냉정함이 아닌 따뜻한 애정과 관대함의 거름을 주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좋은 밭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씀을 경청하고 몸과 마음에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며,
주님께 희망을 두고 온갖 고난과 시련, 세상 유혹과 불의에 맞서 인내하는 복된 날이길 기도합니다.
- 작은형제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묵상글
<신망애(信望愛)의 참된 사람>
봄 꽃 향기도 좋지만 가을 열매 향기는 더욱 좋습니다.
깊고 그윽합니다.
마음 편안하고 넉넉하게 합니다.
요즘 배밭사이 오솔길을 거닐 때 배열매들의 은은한 향기가 그러합니다.
아마 주님 안에서 잘 산 이들의 가을 인생 신망애(信望愛) 열매들의 향기도 이러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설명’이 심오합니다.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예수님 평소 삶의 모습이 환히 드러납니다.
세 관점에서의 풀이가 우리 삶에 직접적 도움이 됩니다.
첫째, ‘씨뿌리는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말그대로 시종여일, 초지일관 한결같은 항구한 삶의 자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망애 삶의 표현입니다.
도대체 삶에 불신이나 의심이 없습니다.
아무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좌절이나 절망이 없습니다.
삶 깊이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믿음, 희망, 사랑의 사람입니다.
낙관적 긍정적 인생관의 사람입니다.
삶의 환경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환경을 겪기 마련입니다.
오늘 비유에서처럼 길바닥 같은, 바위같은, 가시덤불 같은, 좋은 땅 같은 환경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날씨의 변화와 비슷한 환경의 변화입니다.
늘 젊고 건강할 때만 있는 게 아니라 늙고 병약한 때도 있는 법입니다.
이런 환경에 개의치 않고 한결같이, 항구히 씨뿌리며 노력하는 삶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지요.
이런 이들이 바로 예수님을 닮은, 하느님을 닮은 신망애의 참된 사람,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런 이에게서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신망애의 삶은 영원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때와 장소의 환경에 개의치 않고 죽을 때까지 씨뿌리며 노력하는 충실한 삶입니다.
이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루하루의 과정에 충실한 삶이 성공적 삶이요,
결과는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배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둘째, 마음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토양이 상징하는 바 사람입니다.
사람은 마음입니다.
탓할 것은 말씀의 씨앗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밭입니다.
아무리 말씀의 씨앗이 좋아도 그 마음밭이 길바닥 같다면, 바위같다면, 가시덤불 같다면 별무소득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느님 책임이 아니라 사람의 책임입니다.
배밭의 비근한 예만 봐도 입증됩니다.
아무리 품종 좋은 ‘신고’도 거름 주지 않고 방치하면 병충해로 돌배가 되어 버립니다.
각고의 항구한 수행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좋은 마음에서 좋은 행동이지만, 반대로 좋은 행동이 좋은 마음을 만듭니다.
각고(刻苦)의 수행의 노력이 마음밭을 변화시킵니다.
언젠가 하느님의 때가 되면
길바닥, 바위, 가시덤불같은 마음밭도 좋은땅의 마음밭으로 변모될 것이며 마침내 백배의 수확을 낼 것입니다.
셋째, 말씀을 받아들이는 네 부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1. 길에 떨어진 것들
-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2. 바위에 떨어진 것들
-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3.가시덤불에 떨어진 것들
-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대부분이 이 셋 중 하나에 속할 것입니다.
탓할 것은 하느님도, 말씀도 아닌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탓이 아니라 사람 탓입니다.
변명도 핑계도 소용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다음 넷째 부류의 사람입니다.
4.좋은 땅에 떨어진 것들-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과연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영성생활에 요행이나 비약은 없습니다.
첩경의 지름길도 없습니다.
저절로 열매 풍성한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을 지니는 항구한 마음의 수행,
그리고 이런 옥토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간직하여 항구한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삶만이 있을뿐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선사되는 생생한 부활의 희망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전해 주는 부활의 신비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첫 인간(아담)인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둘째 인간(그리스도)인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
좋은 땅 우리 마음에 선사되는 이런 부활의 희망이요, 이런 부활의 희망이 지칠줄 모르는 수행의 원동력이 됩니다.
아니 지금 이미 우리는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을 지니고 부활의 삶을 살아 가게 됩니다.
결실(結實)의 계절, 열매의 계절 가을입니다.
봄, 여름 인생 헛되이 써버려 인생 가을이 되어도 하느님께 봉헌할 신망애의 인생 열매들이 빈약하다면 그 인생 얼마나 허무하고 허망하겠는지요.
오늘 비유가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도 되지만 회개를 위한 경고도 됩니다.
환경을 탓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항구한 신망애 수행의 노력으로 좋은 땅의 마음밭을 가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마음밭을 신망애 가득한 옥토(沃)土의 좋은 땅으로 변모시켜주십니다.
“행복하여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
(루카 8.15)
아멘.
- 성 베네딕토 수도회 성 요셉 수도원
♣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의 묵상글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좋은 땅’이 되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 말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뿌려질 때,
우리 마음이 말씀의 씨앗이 싹트지 못하는 굳은 땅이 되거나 싹이 돋아나도 곧 짓밟혀 버리는 길거리 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위나 가시덤불과 같이 싹이 자랄 수 없고 장애물이 많은 땅이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뿌리신 씨앗은 좋은 것이어서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선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그러우신 분이어서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열매 맺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잘 열매 맺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말씀의 밭이지만,
그 밭에는 미움과 세상 걱정, 타인의 공격으로 말미암은 상처들이 자라게 됩니다.
세상의 쾌락과 욕심으로 우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밭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왔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입니다.
모든 곡식이 땅에서 자라듯 우리 안에 심어진 주님의 말씀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서 만들어진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천상의 밭으로 자랍니다.
말씀을 마음 안에 품고 인내로 여러 난관을 극복하는 사람은 좋은 땅이 됩니다.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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