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은 친구네 아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 그맘때 아이답게 맑고 영리하다. 아기일 때부터 봐와서인지 파랑은 스스럼없이 나를 대한다. 파랑이 종알종알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나보다 아는 게 많은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파랑은 요즘 트럼펫에 빠져 있다. 지난 연말 서점에 와서는 트럼펫에 대한 온갖 상식을 알려주는 거였다. 덕분에 나는 트럼펫의 종류라든가, 트럼펫 회사들의 이름, 유명 트럼페터 등등에 대해 듣게 됐다. 신이 나서 재잘대는 파랑의 귀여운 머리꼭지 너머로 복잡한 기색이 역력한 파랑이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파랑은 무언가에 빠지면 그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운 한편 걱정도 되는 모양이다. 잘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인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 파랑은 조금도 괘념치 않고 트럼펫을 마스터해 군악대에 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까지 했다. 이런 사랑이라니. 얼마나 끼끗한가. 어른에게는 사랑과 좋음에도 계산속이 필요하다.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랑이 영영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바람도 몰래 가져보았다.
아이가 우리의 미래인 만큼 어른 또한 아이의 미래겠지. 아이의 사랑을 지켜줄 의무가 어른에겐 있다. 파랑의 부모도 결국 연습용 트럼펫을 구해준 모양이다. 아빠와 함께 트럼펫을 배우러 다니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나의 마음도 무얼 해주고 싶어 두근두근 자꾸 조바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