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조(曹操)의 야망(野望), 강동(江東)의 노숙(魯肅) -
장강(長江) 앞에서 유비(劉備)를 놓친 조조(曹操)는 형주(刑誅)로 돌아온 뒤 강동(江東)의 손권(孫權)을 쳐부술 계책(計策) 마련에 들어갔다. 그래야만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휘하(麾下)의 모든 문무(文武) 관리(官吏)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모두가 대청(臺廳)으로 입장하여 조조를 중심으로 좌우로 도열(堵列)하자 조조가 입을 열어 말한다.
"유비(劉備)가 강하(江夏)로 도주(逃走)한 뒤 유기(劉琦)와 합세(合勢)해서 수성(守城)에 나섰소. 그러나 패잔병(敗殘兵)쯤이야 문제가 안 되나 단 하나 유비(劉備)가 손권(孫權과 손을 잡고 조정(朝廷)에 대항(對抗)할 까 우려(憂慮)되오. 해서 숙고(熟考)한 끝에 앞으로 세 달간 군(軍)을 정비(整備)해서 봄꽃이 피고 계곡(溪谷)물이 녹으면 백만 대군(百万大軍)으로 일거(一擧)에 장강(長江 : 양쯔강)을 넘어 손권(孫權)을 멸(滅)하겠소."
그러자 자리한 문무(文武) 대신(大臣)들은,
"알겠습니다!" 하고 일거에 복명하였다.
조조(曹操)의 말이 이어진다.
"이는 우리가 천하를 통일하는 마지막 일전이자, 꿈에 그리던 대업(大業)을 완수(完遂)해 역사(歷史)에 남길 일전이 될 것이오. 또한 승리가 확실시(確實視)되는 일전(一戰)이오. 또 전쟁(戰爭)이 끝나면 나도 여유를 갖고 조용히 살고 싶소. 그리고 여러분들도 막대한 황금(黃金)과 더불어 두둑한 봉토(封土)와 작위(爵位)를 하사(下賜)받고 집에 아름다운 처첩(妻妾)들을 거느리며 복(福)을 누리게 될 것이오! 하하 하하~ ..."
조조(曹操)의 이 같은 기분 좋은 말을 듣게 된 대신(大臣)들은 하나같이 두 손을 올려 경의(敬意)를 표하며 함께 웃었다.
"하하 하하... 감사하옵니다!"
조조(曹操)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 두둑한 재(財物)물이건 아름다운 처첩(妻妾)이건 지금 당장(當場)은 그림의 떡일 뿐이오. 그 모든 것을 눈앞에 두고, 다 잡았다 보이는 그 순간 놓칠 수도 있는 것이지! 강진(江津) 나루터를 기억하시오? 유비(劉備)는 다 잡은 오리고기에 차려진 밥상이었지만 우린 마지막 순간에 다 익은 오리를 놓쳐버렸어!. 때문에 이번에는 여러분이 필히 대비(對備)를 해야 하오. 기필코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을 섬멸해서 강진(江津)에서의 그 뼈아팠던 수모(受侮)를 갚을 거요."
조조(曹操)의 마지막 말은 모두를 긴장(緊張)시키기에 충분(緊張)하였다. 이 같은 조조의 어르고 뺨치는 평소(平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대신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그의 말에 토를 달거나 심지어는 기침조차 하지 못하고 모두가 굳은 표정이 되었다. 조조가 근엄(謹嚴)한 표정으로, 채모를 불렀다.
"채모(蔡瑁)!"
"예, 승상!" 채모(蔡瑁)가 대열에서 빠져나와 두 손을 공손히 올리고 예를 표하며 조조의 명을 기다렸다.
"자네한테 석 달을 주겠네, 동정호(洞庭湖)에서 사십만(四十万) 수군(水軍)을 조련(調鍊)하고, 전함(戰艦) 팔천(八千) 척(隻)을 건조(建造)하여 석달 후에는 자네가 전함(戰艦)을 인수(引受)해 동정호(洞庭湖)를 떠나 적진(敵陣)으로 떠나게"
"알겠습니다!"
"정욱(程昱)!"
"네, 승상(丞相)!"
"받아 적으시오. 강동(江東)의 손권(孫權)에게 조서(詔書)를 내리겠소."
조조(曹操)의 명(命)이 떨어지자, 정욱(程昱)이 자리에 앉아 지필묵(紙筆墨)을 손에 잡았다.
조조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몸을 끄덕이며 따라 적을 문구(文句)를 말한다.
"<황명(皇命)을 받들어 역적(逆賊)을 토벌(討伐)하고 기치를 높이 들어 유표(劉表) 를 제압하여 형양(荊襄 : 형주(荊州) 양주(襄州) 구군(九郡)을 모두 귀속(歸屬)시켰고 이제 백만 대군(百万大軍)과 천(千)여 장수(將帥)로 손권(孫權), 그대와 함께 사냥에 나서려 하니, 함께 유비(劉備)를 잡고자, 결맹(結盟)을 하고자 한다. 바라건대, 천리(天吏)에 순응(順應)하되 오판(誤判)은 하지 마라.>
이 조서(詔書)를 삼천 부(三千部)를 더 써서 죽통(竹筒)에 넣어 장강(長江)에 띄워 보내시오. 난 이제 드넓은 장강(長江)을 손권(孫權)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서(宣戰布告書)로 메우고 그걸 본 강변(江邊)의 백성(百姓)들이 전쟁(戰爭)을 두려워하며 다시 그걸 본 강동(江東)의 관리(官吏)들이 놀라게 만들 것이오! 으 하하하!..."
조조(曹操)의 명(命)으로 만들어진 포고문(布告文)은 그 즉시(卽時) 죽통(竹筒) 삼천개(三千個)에 담겨, 장강(長江)을 가득 메우고 흘러갔다.
이때, 손권(孫權)은 조조(曹操)가 형양(荊襄) 구군(九郡)을 취하고, 조조에게 대항(對抗)하던 유비(劉備)가 수세(守勢)에 몰리면서 강하(江夏)로 피신(避身)했다는 소식(消息)을 듣자, 머지않아 조조가 강동(江東)을 침공(侵攻)해 오리라고 예상(豫想)하고 대책(對策) 마련에 부심腐心)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事情)을 알고 있는 모사(謀士) 노숙(魯肅)이 손권(孫權)에게 아뢴다.
"형주(荊州)의 유표(劉表)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았으니 제가 조상(弔喪)을 명목(名目)으로 유표의 장공자(張公子)가 있는 강하(江夏)로 가서 정세(政勢)를 한번 알아보고 오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만약(萬若) 유비(劉備)가 우리와 힘을 합해 조조에게 대항할 뜻이 있다면 우리가 조조(曹操)를 두려워할 것이 없겠습니다. 유비는 비록 군세(軍勢)는 작지만 조조와 최근(最近)에 전투(戰鬪)를 벌인 경험(經驗)이 있고 그의 수하(手下)에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등(等)의 맹장(猛將)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는 현인(賢人)도 있어 어느 누구도 만만히 볼 상대(相對)는 아니니 그들의 형편과 조조의 군정(軍情)을 알아본다면 앞으로 조조에게 대항(對抗)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손권(孫權)은 노숙(魯肅)의 말을 타당(妥當)하게 여겨 곧 예물(禮物)을 갖추어 그를 강하(江夏)로 떠나게 하였다.
그 무렵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은 강하(江夏)의 성중(城中)에서 유비(劉備)를 비롯해 강하 태수(江夏太守)유기(劉琦)와 함께 날마다 천하대사(天下大事)를 논의(論議)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공명(孔明)이 두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주공(主公), 유태수(劉太守), 조조(曹操)의 기세(氣勢)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조만간(早晩間) 강하로 출병(出兵)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當場)은 조조군(曹操軍)의 수군(水軍)과 형주(荊州)의 수군을 통합(統合)하여 전함(戰艦과) 전술(戰術)을 정비(整備)하고 있겠지만 그런 준비(準備)가 끝나게 되면 틀림없이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을 치기보다는 먼저 강하(江夏)로 몰려올 것이 확실(確實)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조(曹操)가 먼저 손권과 싸우게 하여 그들의 힘과 전력(戰力)을 소진(消盡)하게 만들어 어중 취리(於中取利)를 취(取)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침울(沈鬱)한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와 손권(孫權)이 군사(軍師)의 말씀대로 그래준다면 우리가 이로운 것이 사실(事實)이겠으나 저들이 과연(果然)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여 주겠소?" 유비(劉備)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회의심(懷疑心)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자신만만(自信滿滿)하였다.
"두고 보십시오. 머지않아 손권(孫權)이 사자(使者)를 보내올 겁니다. 그리하여 이곳의 준비사항(準備事項)을 비롯하여 우리가 먼저 조조와 결하게 하든지, 자기들과 합종연횡(合從連橫)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제가 오(吳)나라 손권孫權)을 찾아가서 조조(曹操와) 싸우도록 계책(計策)을 꾸며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손권(孫權)이 이기거든 우리도 조조(曹操)를 함께 공격(攻擊)하여 형주(荊州)를 취(取)하고 만약(萬若) 조조가 이기거든 그때의 형편(形便)을 보아서 강남(江南)을 취(取)하는 계책을 실행(實行)하면 좋겠습니다."
유비(劉備)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강동(江東)에서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온단 말씀이오?"
마침 그때 강하(江夏)의 군사(軍士)가 들어오더니 유기(劉琦)에게 강동(江東)의 손권(孫權)이 유표(劉表)의 문상사(問喪使)를 보내왔다고 알린다.
유비(劉備)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공명(孔明)을 바라보았다.
공명(孔明)은 웃으며 말한다.
"모든 계획(計劃)이 우리의 뜻대로 되어 가는가 봅니다."
그리고 유기(劉琦)를 돌아보며 묻는다.
"손권(孫權)이 문상사(問喪使)를 보내왔다고 하는데 전에 손책(孫策)이 세싱(世上)을 떠났을 때 형주(荊州)에서 문상사(問喪使)를 보낸 일이 있었소?"
유기(劉琦)가 잘 알고 있는 사안으로 대답한다.
"선친(先親)은 강동(江東)의 손책(孫策)과 원수지간(怨讎之間)이었으나 정작 그가 죽었을 때에는 후일(後日)을 생각하시어 문상사(問喪使)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공명(孔明)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劉備)에게 말한다.
"주공, 손권(孫權)은 주공(主公) 때문에 사자(使者)를 보낸 겁니다."
"이유(理由)가 뭐요?"
"보나 마나 사자는 문상(問喪)을 핑계로 조조의 군정(軍情)을 살피러 온 것입니다. 가장 최근(最近)에 교전(交戰))한 상대가 우리니까요. 제가 그를 설득(說得)하여 손권(孫權)을 만나서 우리와 연합(聯合)하여 조조(曹操)를 깨뜨릴 계책(計策)을 마련해 볼 테니 주공(主公)은 사자(使者)를 만나셨을 때 그가 조조의 군정(軍情)을 묻거든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재차(再次) 물어보거든 제가 대답(對答)하도록 미루십시오."
공명(孔明)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보고(報告)를 하는 병사(兵士)에게 물었다.
"사자(使者)로 누가 왔는가?"
"듣기론 장군부(將軍部)의 참모(參謀)인 노숙(魯肅)이라 합니다."
"노숙(魯肅)?" 공명(孔明)이 놀라며 병사(兵士) 앞으로 한발 다가선다.
그러자 유비(劉備)도 공명을 따라 단상(壇上)에서 내려오며 공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자로 온 사람을 공명(孔明)이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명이 유비(劉備)에게로 돌아서며 말한다.
"노자경(魯子敬 : 노숙의 성과 자)? 그 사람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지 아시오?" (※ 아래 청색 문자는 위키백과 링크입니다)
"아니오, 하나 그 이름은 저에 형님인 제갈근(諸葛瑾)에게서 들었습니다. 강동(江東)의 인물(人物)들 중 무장(武將) 중엔 주유(周瑜)가 으뜸이고, 문신(文臣) 중엔 노신(老臣)인 장소(張昭)가 최고(最高)이며 그 다음에 삼인자(三人者)가 바로 노숙(魯肅)입니다. 형님 말씀으론 장차(將次) 강동(江東)의 문신(文臣)을 이끌 사람은 바로 노자경(魯子敬)이라 했습니다."
"노자경(魯子敬)의 재능(才能)이 제갈근(諸葛瑾)보다 낫다는 말씀이시오?"
유비(劉備)는 군사(軍師) 공명(孔明)의 재능(才能)을 직접 감탄(感歎)하며 보아왔기에 제갈근(諸葛瑾)이 그의 형(兄)이라면 그의 재능은 공명의 재능과 막상막하(莫上莫下)를 이루지 않을까 여겼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제 형님의 재능(才能)은 강동(江東)의 현인(賢人)들 중에 스무 명 안에도 들지 못합니다. 더구나 주유(周瑜)가 얼마나 오만(傲慢)한 인물(人物)입니까, 주유 눈에 찰 사람은 얼마 없지요. 한데 주유(周瑜)가 유일하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노숙(魯肅)입니다. 손책(孫策)이 죽고 사흘 후 주유가 노숙을 손권(孫權)에게 추천(推薦)했고 그렇게 알게 된 이후 손권은 노숙과 한 달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아침저녁으로 붙어 다니면서 은사(恩師)로 대했답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이후부터 주공(主公) 자리에 갖 오른 손권(孫權)이 면모(面貌)를 일신(一新)해서 말과 행동(行動)에 있어 공자(公子)의 티를 벗고 제왕(帝王)의 풍모(風貌)를 갖추게 되었답니다."
유기(劉琦)가 여기까지 듣고,
"그런 자(者)를 사자(使者)로 보냈다니 보통(普通) 일이 아니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劉備)가 심각(深刻)한 표정(表情)으로 말한다.
"공명(孔明), 공자(公子), 가서 노숙(魯肅)을 맞읍시다." 하고 말하며 노숙이 기다리고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이윽고 노숙(魯肅)은 유비(劉備)를 만나자 예(禮)를 표하며,
조조(曹操)의 야망(野望), 강동(江東)의 노숙(魯肅)
"황숙(皇叔)의 대명(大名)을 듣자온지 오래이나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영광(榮光)이옵니다." 하고 극진(極盡)한 인사(人事)말을 한다.
그러자 유비(劉備)도 마주보며 예(禮)를 표하며,
"원로(遠路)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노정(路亭) 안으로 들어가 사각 탁자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노숙(魯肅)이 유기에게 인사말을 건넨다.
"유기(劉琦) 공자(公子), 우리 주공께서 부친(父親)의 별세(別世) 소식에 통탄(痛歎)해 하시며 저를 보내 애도(哀悼)의 뜻을 전(傳)하라 하셨습니다. 사소(些少)한 예물(禮物)도 가져왔으니 성의(誠意)로 받아 주십시오." 하고 말을 하며 밖에 쌓아놓은 예물을 가리켰다.
이에 유기(劉琦)가 예물(禮物)을 한번 보고 나서,
"선친(先親)께서는 귀국(貴國)과 사이가 좋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선생(先生)을 조문사(弔問使)로 보내신 거요? 아마도 강동(江東)에서는 선친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을 텐데 조문(弔問)을 온 것은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오?" 하고 탐탁하지 않은 대꾸를 하였다.
그러자 노숙(魯肅)은,
"부친(父親)께서 살아계셨다면 조조가 형주(荊州)를 감(敢)히 넘보지 못했겠지만 작고(作故)하시자 마자 형주(荊州)는 물론이고 강동(江東)까지 위기(危機)에 처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공(主公)께서는 부친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거지요. 그래서 저를 조문객(弔問客)으로 보내시며 조조군(曹操軍)의 허실(虛實)을 탐문(探問)하고 유황숙(劉皇叔) 진영(陣營이) 조조(曹操)와 대적(對敵)할 실력(實力)이 되는지 자세(仔細)히 살펴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솔직담백(率直淡白)하게 자신(自身)이 이곳에 온 이유(理由)를 설명(說明)하였다.
그러자 공명(孔明)이,
"대답(對答) 한 번 시원하시군요. 첫 마디에 속내를 터놓으시다니요." 하고 말하자,
노숙(魯肅)이 입가에 미소(微笑)를 머금고,
"공명 형(孔明 兄)? 말씀 많이 들었소. 이분이 제갈량(諸葛亮)이시군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禮)를 표(表)하며 절을 해 보인다.
공명(孔明)도 그에 응대(應對)하여 함께 마주 절해 보이자 노숙(魯肅)이 허리를 세우며,
"듣기론 지략(智略)이 풍부(豐富)하고 언변(言辯)이 뛰어나 세치 혀만 가지고도 사람을 죽인다 하니 언변에 서툰 제가 별도리(別道理) 없이 솔직(率直)하게 말할 수 밖에요. 진실(眞實)은 그 어떤 말보다 유용(有用)하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孔明)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허허 허허... 훌륭한 말씀입니다." 하고 대답(對答)하고, 서로 앉기를 권(勸)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노숙(魯肅)은,
"외람(猥濫)되지만 진실을 계속(繼續) 말하겠습니다." 하고 말을 하고 난 뒤 유비(劉備)에게로 시선(繼續)을 돌리며 묻는다.
"유황숙(劉皇叔), 현재 조조군(曹操軍) 병력(兵力)이 얼마나 되며 전투력(戰鬪力)은 어느 정도 됩니까?"
유비(劉備)가 잠시(暫時) 생각하는 듯이 멈칫 거리다가,
"정말 부끄럽소. 전력상(戰力相) 약자(弱者)가 조조군(曹操軍)이 온다기에 물러나기 급급해 조조(曹操) 병력(兵力)이 얼마나 되는지 저도 정확(精確)히 모르겠소." 하고 능청스럽게 <모르쇠>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노숙(魯肅)은 빙그레 웃으며,
"유황숙(劉皇叔)께서 저를 속이시려는 게로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劉備)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하 하하!... 자경(子敬)! 다 제 탓이오. 제가 질문(質問)에 회피하시라고 했소." 건너편에 앉은 공명(孔明)이 웃으며 노숙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노숙(魯肅)이 공명 쪽으로 시선(視線)을 돌리며 물었다.
"하! 그럼 그쪽에 묻겠소. 공명, 조조군(曹操軍) 병력(兵力)이 얼마나 되며 전투력(戰鬪力)은 어느 정도 되오?"
공명(孔明)이 대답한다.
"형주(荊州)를 취(取)하기 전(前) 조조(曹操)에게는 보군(步軍)이 이십만(二十萬), 마군(馬軍)이 육만(六萬), 수군(水軍)이 십팔만(十八萬) 이었는데, 형주(荊州)를 취(取)한 뒤 약(約) 삼십만(三十萬) 병력(兵力)이 늘어 모두 칠십만(七十万)을 상회(上廻)하지요. 그리고 전투력만(戰鬪力) 본다면 승기(勝機)를 잡은 군대(軍隊)는 예봉(銳鋒)이 날카롭소."
공명(孔明)의 대답(對答)을 듣자 노숙(魯肅)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그럼, 조조(曹操)의 다음 행보(行步)는 어떻게 보시오?" 하고 묻는다.
그러자 공명은 노숙(魯肅)을 똑바로 쳐다보며,
"강(江)을 건너서 강동(江東)을 취(取)해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하려 하겠지요." 하고 대답(對答한다.
그러자 노숙(魯肅)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유비(劉備)와 공명(孔明)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노숙(魯肅)의 말을 듣고 유비는 대답할 모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공명(孔明)이,
"창후 태수가 주공(主公)과는 교분(交分이 있으니 최후(最後)의 순간(瞬間)에는 창후에 의탁(依託)할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숙(魯肅)이 잠깐 뜸을 들인 뒤에,
"창후는 군사력이 약(弱)해 오래 못 버틸 거요. 그러나 우리 강동(江東) 육군(陸軍)은 천연(天然) 요충지(要衝地)에 군사력(軍事力도 막강(莫强)하고 주공(主公)께서는 현인(賢人)을 아끼시는데 왜 강동(江東)에 의탁(依託)하지 않소? 우리 주공과 연합(聯合)해 조조(曹操)에 대항(對抗)합시다!" 하고 말한 뒤에 노숙(魯肅)은 말의 말미(末尾)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기(自己)의 말에 결단력(決斷力)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공명(孔明)도 벌떡 일어나며,
"자경(子敬), 지금 뭐라 하셨소?"
"공명(孔明), 지금 상황(狀況)에서 귀측(貴側) 이 손권(孫權)과 손잡는 것 외에 다른 활로(活路)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노숙(魯肅)은 진지(眞摯)한 어조(語調)로 말하며 공명(孔明)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유비(劉備)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노숙(魯肅)을 향하여 극도(極度)의 예(禮)를 표해 보인다.
그리고,
"자경(子敬)의 말씀이 마치 가뭄 속에 단비를 만난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숙(魯肅)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느 분이 나와 함께 강동(江東)에 가서 우리 주공(主公)을 만나 보시겠소?" 하고 묻는다.
그러자 공명(孔明)이 빙그레 미소(微笑)를 지으면서,
"접니다. 제가 함께 가겠소!" 하고 손까지 들어 보이며 대답(對答)하였다.
"좋소! 잘 생각하셨소." 노숙(魯肅)도 미소(微笑)를 지으며 대답(對答)하였다.
삼국지 - 172회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