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감독와 선수, 구단, 연맹, 서포터스에 드리는 글
K리그가 12일 전국 7개 경기장에서 킥오프됩니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K리그가 월드컵 해에 열리는 만큼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을 보입니다. 우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거둘 성적에 따라 K리그의 희비가 갈리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단기간 내에 바뀔 수 없는 것인 만큼 일단 월드컵 프리미엄을 잘 이용하는 것이 올 K리그의 가장 큰 숙제라고 봅니다.
잠시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당시 우리대표팀의 월드컵 성적은 4강이었습니다. 사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적같은 승리였죠. 자랑스런 태극전사들이 일궈낸 월드컵 프리미엄은 프로축구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월드컵 직후 7월 K리그 게임당 평균관중이 2만5천여명이었고 8월에는 2만명선을 유지했습니다. 축구 르네상스 시기가 온 것 같았죠. 그런데 9월, 10월 관중은 급감했습니다. 9월은 8월의 절반인 1만명대로 뚝 떨어졌고 10월은 5천6백명에 그쳤습니다..
관중이 갑자기 줄어든 이유는 너무도 안타깝게도 선수들, 코칭스태프, 구단, 연맹, 심판 등 프로축구의 중흥을 위해서 온힘을 모아야하는 사람들에게 있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선수들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거친 몸싸움을 했습니다. 어느 경기에서는 2명의 선수의 몸싸움이 양팀 선수들간 승강이로 비화되기도 했죠. 몇몇 선수는 거친 항의로 출전정지처분까지 받았습니다. 관중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서포터스들이 욕을 하면서 경기장에 난입해 심판과 싸웠습니다. 어떤 경기에서는 홈팀 서포터스가 심판을 감금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습니다. 당시 싸웠던 선수들, 선수들의 단체승강이를 막지 못한 코칭스태프, 홈팀의 패배에 열받은 서포터스 모두 할말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명분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수, 감독, 서포터스의 명분과 입장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K리그의 흥행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월드컵의 희열을 기대하며 경기장을 찾아주신 일반 팬들입니다.
제가 당시 어떤 경기를 취재하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선수들이 쌍욕을 하면서 승강이를 벌일 때, 서포터스가 큰 목소리로 욕설 응원을 할 때 옆에 있는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신사적으로 경기를 해야하는 프로축구장에서 욕을 하고 난리야. 다시는 애들 데리고 경기장에 오지 못하겠네." 이런 말을 하면서 그 부모는 경기도 끝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더라구요. 이것이 비단 그 가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을까요. 단언컨대 재밌는 축구경기를 보러온 대부분의 일반관중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박진감 넘치는 수준높은 경기가 아니라 욕을 주고받고 폭력이 난무하는 경기장에 어떤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오겠습니까.
구단과 프로축구연맹의 준비상황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밀려드는 관중에 표를 팔기에 바빴을 뿐 이런 월드컵 효과를 어떻게 장기적으로 이어갈지는 아무도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월드컵 이후 이렇게 많은 구름관중이 밀려들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죠. 이런 가운데 관중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 표를 파는데도 인력이 부족할 지경이었으니 관중을 위한 수준높은 팬서비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죠. 단언컨대 이런 일은 몇몇구단이 아니라 당시 모든 구단에서 발생했습니다. 연맹도 여기저기 터지는 판정시비, 폭력사태를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했지만 어떻게 월드컵 효과를 장지적으로 지속시킬지 진진한 연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2002년 월드컵 4강의 효과는 반짝인기에 그친 채 썰렁하게 식어갔죠.
올해 프로축구가 월드컵에 열리지만 구단 관계자, 코칭스태프 등이 대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K리그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모든 구단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구단과 연맹 차원에서 적자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야하는데 지자체와의 협상, 연봉 계약 문제 등 실질적인 부분에는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시즌 관중이 많이 늘었지만 이는 박주영 때문이었지 프로축구 자체가 인기를 끈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올해 박주영 같은 대어급 신인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스타 1,2명 때문에 관중이 들어찰 거라고 예상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게다가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처럼 지금 박지성, 이영표 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면서 팬들의 관심도 수준높은 외국리그에 맞춰져 있습니다. 얼마전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제 처가 토트넘 경기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쉬지 않고 움직이니까 경기가 재밌네. 프로축구를 볼 때는 너무 재미가 없었는데."
축구에 축자로 모르는 제 처의 말을 듣고 저는 새삼 놀랐습니다. 'K리그도 프리미어리그처럼 열심히 뛰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겠구나'라구요.
최근 몇년간 K리그개막에 앞서 감독들은 미디어 데이를 갖고 시즌을 준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는데 감독들의 말을 하나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프로축구는 관중이 많이 와야 사는 것 아닙니까. 관중을 불러모을 수 있는 흥미로운 경기를 하겠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죠. 그렇습니다. 매년 시즌 개막에 앞서 감독들이 하는 말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말로는 팬들을 위해 재밌는 경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시즌이 진행될 수록 흥미진진한 경기를 갈구하는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만을 위해 재미없는 축구를 한 것이죠. 감독들은 수비하기에 급급했고 선수들은 이길것 같다 싶으면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기 일쑤였죠. 교체아웃될 때 늑장을 부리는것, 괜히 축구화 끈을 고쳐묶는 것, 충돌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것, 볼보이가 건네준 볼을 무시하고 멀리 있는 공을 주으러가는 것…. 모두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온 팬들을 무시하고 그저 이기기 위해서 시간을 끄는 행동들이었죠.
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직접 현장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축구관련 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더라구요. "프리미어리그에서 선수들은 자기들이 뛰는 경기가 팬들을 만족시켜야하는 상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넘어지면 바로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끝까지 열심히 뛰죠. 이런 선수들의 진정한 프로다운 플레이가 관중으로 하여금 1인당 우릿돈으로 10만원씩을 쓰면서 경기장으로 불어모으는 힘이죠."
감독, 선수, 구단 관계자, 연맹, 서포터스 등 축구로 먹고 살거나 축구에 죽고사는 여러분. 한국축구의 현실과 환경이 유럽만 못하다는 점은 모두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만 한탄하면서 우리 프로축구장에는 관중이 오지 않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투덜거리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오로지 팬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때 경기장은 저절로 채워질 것이니까요. 물론 저도 축구 기자의 한사람으로서 노력할 것이고요. |
첫댓글 흠... 이 글을 쓰신 김세훈 님이나 이 글을 퍼오신분, 하루가 멀다하고 K-리그를 걱정하시는 분들, 그리고 오늘 낮에 한참 연고이전에 관해 설전을 벌였던 카페의 몇몇 분들... 이 분들이 있으시기에 K-리그의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는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힘냅시다! 사람이 곧 희망 입니다... 화이팅!!!
저역시 글쓰신분 생각과 동일....다치지도 안았는데 누워있는거 보면 죠낸짜증남...시간끌기땜에 너무짜증나서 아무리 빅경기라도 프로축구를 안보게 되던데
경기의 질이야 선수들의 능력의 문제도 있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경기진행만큼은 매끄러워졌으면. 선수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심판에게도 당연히 오심의 가능성은 존재하니 너무 거칠게 항의하지 말고, 정말 아프면 경기 지연시키지 말고 구석에서 푹 쉬다 돌아오고, 욕 좀 작작하고.
제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홈 경기의 반 이상은 보러 갔었는데, 작년 8월이었던가 포항전에서 포항 선수들이 거의 10분 넘게 누워있고, 심판 몰아세우는 것 보고 질려서 지금까지 안가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