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프로 경마에 출전한 최초의 여성 기수이자 이듬해 켄터키 더비에 출전한 최초의 여성 기수 다이앤 크럼프가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P 통신이 3일 전했다. 크럼프는 지난해 10월 공격적인 뇌암 진단을 받았는데, 새해 첫날 밤 버지니아주 윈체스터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사망했다고 딸 델라 페인이 통신에 확인했다.
크럼프는 1998년 50번째 생일을 앞두고 마지막 경주를 치르기 전까지 228 차례 우승을 차지했는데, 1969년 2월 7일 플로리다주 하이얼리아 파크에서의 선구적인 라이딩 이후 거의 30년 만이었다.
크럼프는 당시 기수 면허를 받기 위해 성공적으로 싸운 여러 여성 중 한 명이었지만, 경주에 출전시킬 준비를 하는 조교사를 여전히 필요로 했다. 남성 기수들이 보이콧하거나 여성 기수가 말에 오르면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여러 차례 시도가 좌절됐다.
크럼프가 하이얼리아 안장 구역으로 걸어가는 사진에는 경비원들이 그녀를 보호하는 모습과 군중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마크 슈래거는 전기 '다이앤 크럼프, 경마 개척자의 안장 생활'에서 당시 경주에 참가하기로 했던 12명 가운데 6명이 출전을 거부했다고 썼다. 출전을 거부한 기수에는 미래의 전설인 엔젤 코데로 주니어, 호르헤 벨라스케스, 그리고 4년 후 'Secretariat'을 타고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는 론 터코트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기수들이 대신 나서 12마리의 말이 트랙에 들어오자 나팔수는 전통적인 기지 호출을 건너뛰고 대신 'Smile for Me, My Diane'을 연주했다. 크럼프는 우승 확률 50-1의 롱샷(longshot, 거의 승산이 없는 선수) '브라이들 앤 빗'(Bridle 'n Bit)을 타고 10위로 마감했으나, 장벽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한 달 후, '브라이들 앤 빗'은 걸프스트림 파크에서 크럼프에게 첫 승리를 안겼다.
1970년에는 켄터키 더비에서 여성 최초로 기승하며 다시 한 번 역사를 썼다. 그날 처칠 다운스에서 열린 첫 경주에서 우승했지만, 역사적인 경주에서 출전한 그녀의 말은 역시 성능에서 밀렸다. 그녀는 17명 중 15위를 차지했다.
켄터키 더비에 크럼프의 뒤를 잇는 여성 기수가 나오는 데 14년이 걸렸고, 이후 수십 년을 통틀어 단 4명만 배출됐다. 줄리 크론이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시리즈 우승 여성 기수의 기록을 세운 것도 1993년에 이르러서였다.
사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건 개선과 함께 참정권 등을 요구한 이래 금녀의 벽이 차례로 허물어졌지만 경마야말로 여성의 진출이 쉽지 않은 분야였다. 경마가 태동한 서구에서도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 때문에 여성 기수나 조교사 등이 나오기 어려웠다. 특히 기수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조건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나 근력이 앞선 남성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처칠 다운스 경마장 대표 마이크 앤더슨은 이날 성명을 통해 크럼프가 "경마 전설 속에서 영원히 존경받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럼프가 다섯 살 때부터 승마를 했고 10대 때부터 젊은 순종마의 등에 올랐다며 앤더슨은 "어린 시절 꿈을 훌륭히 이뤄낸 상징적인 개척자였다"고 언급했다.
켄터키 더비 박물관의 크리스 굿렛은 "다이앤 크럼프의 이름은 용기, 끈기, 그리고 진보를 상징한다"면서 "압도적인 역경에서도 그녀의 결단력은 여러 세대의 여성 기수들에게 문을 열었고, 경마를 넘어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경마에서 은퇴한 후, 크럼프는 버지니아에 정착해 사람들이 말을 사고팔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말년에는 닥스훈트 치료견을 데리고 병원과 다른 의료 클리닉에서 환자들을 방문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도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딸 페인은 어머니가 기수가 되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일이든 '아니오'란 답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경쟁심이 강했다기보다 고집이 셌다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가 그녀를 믿고 있다면, 그녀는 절대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 없다."
말년에는 크럼프의 좌우명이 팔뚝에 새겨져 있었는데 왼쪽에는 '친절', 오른쪽에는 '연민'이었다.
크럼프는 화장돼 유골은 버지니아주 프론트 로열의 프로스펙트 힐 묘지의 부모 사이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크럼프는 1948년 5월 18일 코네티컷주 밀포드에서 월터와 진 크럼프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말이 거의 없는 지역에 살았는데도 일찍부터 말에 관심을 가져 책과, 그림을 통해 말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사춘기 전에 가족과 플로리다 올즈마로 이사해 13세 때부터 승마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모를 졸라 잡일을 하며 돈을 모아 첫 조랑말을 사기도 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그 시절 대회에 출전하려면 경찰의 경호를 받아야 했다. " 관중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미쳐서 들끓고 있었다. 야유하는 사람들은 '부엌으로 돌아가 저녁을 요리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는 그런 사고방식이었다. 그들은 내가 이 종목 전체의 몰락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중세적인 생각이다. 난 '여러분, 지금은 1960년대잖아요!'라고 생각했다."
고인은 1969년부터 1987년까지 조련사 돈 디바인과 결혼했다. 1985년 잠깐 경마 일을 그만 뒀는데 어린 딸이 학교에 입학하려던 시기 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이 때 켄터키주 렉싱턴의 한 농장에서 조교사로 일하며 3년 넘게 머물렀다가 1992년 복귀했다가 1998년 영구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