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나주역 역사 내경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 30분경 나주역에서 발생한 일본인 남학생들의 한국인 여학생 희롱 사건과 이를 꾸짖은 박준채 등 한국인 학생 간의 충돌은 대규모 항일 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역사적 현장이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역을 출발하여 나주역에 도착한 호남선 통학 열차에서 일본인 중학생 남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들 박기옥, 이광춘 등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모욕하고 희롱했다. 이를 목격한 광주 고등보통학교(조선인 학교) 학생 박준채(박기옥의 서촌동생)가 일본인 학생(후쿠다 슈조 등)을 꾸짖으며 언쟁과 격투가 벌어졌다. 다음 날인 10월 31일, 통학 열차 안에서 다시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을 비하하고 일본 학생들만 두둔하여 민족 감정이 자극됐다. 11월 1일 통학생 전체로 다툼이 확대됐고, 일제 유도 교사가 일본 학생 편을 들어 한국 학생을 제압하려 하면서 항일 시위로 번져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나주역은 현재 구 나주역사(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인근)로서 이러한 민족 항쟁의 시발점이 된 중요한 사적지로,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배경이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역은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실질적인 진원지다. 현재 이 장소는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나주역사'라는 명칭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11월 3일 광주에서 대규모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것이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촉발시킨 나주역 사건의 정황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4대절의 하나인 명치절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명치절 기념식 후에 있을 신사참배를 집단 거부하고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쟁소식은 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전국의 194개교 54,000여명이 시위운동에 참가한 역사적 사건으로 확산됐다. 이렇듯 나주역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평가 돼 2000년 12월 29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됐다.
나주인의 항일정신을 보여준 전남 나주시 죽림동의 구 나주역은 1913년 7월 1일 영업을 시작한 근대 교통 시설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규모와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현재 구 나주역사내에는 나주역 영업당시의 개찰모습, 일제 강점기에 썼을 법한 역무원들의 근무모습이 밀랍인형들로 재현되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 바로 옆에는 광주학생항일 운동 기념관이 개관해 당시의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영상자료도 볼 수 있다. 2001년 호남선 복선화 사업으로 인해 실제 기차역 기능은 나주시 송월동의 신(新) 나주역으로 옮겨졌으며, 옛 나주역사는 보존되어 역사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옛 나주역사 바로 옆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공원 조성되어 당시의 기록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