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후원 아동을 만나러 갔다 왔답니다
어주 어주 힘들게 갔다왔습니다.
그 나라는 정말로 어렵게 살고 있더라구요
느낀점을 간단하게 적으면....
산도 거의 없어 물이 안좋고 먼지가 많고 사람도 많고 교통도 복잡하고 냄새도 많이 나고(도시쪽)그렇지만 사람들은 좋더라구요물론 안좋은 사람도 있다.
힘들고 어지러운 방글라인들 처럼 보이지만 그다지 힘들어하는 기색은 없고 그래서 행복지수가 세계1위인 것일까? 가는 곳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들은 매우 신기한 듯 바라본다(복장도 한몫 하지만).
거리마다 아이를 안고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 불구의 몸을 이끌고 도로 중앙을 다니면서 구걸하는 사람, 수많은 차들과 릭샤 사이를 오가면서 꽃을 파는 아이들.
꽃을 실에 꿰어서 파는 아이들, 신문을 파는 아이들, 어렸을 때 서울역에서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신문 팔던 기억이 떠오른다. 커다란 현수막에는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고 써있었다. 한번도 준적은 없었다. 돈을 그냥 주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 교육문제, 의료시설, 도로시설, 물 문제, 먼지 문제 등.
아이들과 이야기 하는 동안에 내년에 꼭 다시 와달라고 말할 때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열악한 환경, 전기도 없고 조그마한 발전기로 운영하는 마을 병원 시설은 형편없었다.
방글라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매번 들었지만 좋아한다는 말보다는 먼지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정말이지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 곳과 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는 숨쉬기가 어려울정도로 먼지가 많았다.
사람이 많아서 가게가 많은지 아니면 가게가 많아서 사람이 많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영어, 한국말, 방글라말 들을 섞어 적가면서 지냈던 시간들.
내가 이용했던 교통편은 주로 택시와 릭샤, 트럭, 버스를 이용했다. 택시는 3륜택시 ,베이비 택시, 옐로우 택시가 있고 트럭도 대형 소형이 있고, 버스도 시내버스와 고속버스가 있고 시내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요금은 아주 싸다.
릭샤(3륜자전거)는 약 10분정도 거리이면 보통 3~5타카(=60~100원사이)정도이지만 짐이 있거나 하면 조금 더 달라고 한다. 아주 작은 트럭도 한번 타보았다. 16명 꽉 채우고 출발한다. 목적지에 오면 어디어디 왔으니 내리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처음 방글라데시 공항에 도착해서 US달라를 타카로 환전할 때 전부 500타카(=10000원)로 한 뭉치를 받았다. 잔돈으로 달라고 하니 없다고 그냥 가라고 한 순간이 생각난다. 물건을 사거나 비용을 지불할 때 잔돈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이 나라는 잔돈은 자기가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국내 항공은 비만(BIMAN)항공으로 약 350km(50분비행) 거리에 2350타카(=약48000원)정도였다.
반면에 고속버스는 같은 거리에 200타카(4000원)으로 아주 저렴했다.
고속도로는 말로만 고속도로이고 사람, 자전거, 일반 택시, 릭샤, 마차 등 모두가 다니는 곳이었다.
야간에는 매우 위험할 정도로 복잡했다. 가로등은 시내 근처에 왔을 때 겨우 보였고 IC도 단 한군데만 있었다.
시내 중심 도로에는 사람과 차량들로 늘 꽉차 있었다. 차량끼리 접촉사고는 다반사이지만 내가 본 것은 단 한번 뿐이었는데 운전석에서 내려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고 만다. 아마도 너무도 자주 발생하고 또 거의 모든 차량들이(고급 승용차는 제외하고) 상처 투성이인 채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4거리 있는 곳에는 어디나 시장, 상가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매우 혼잡했다.
각국 대사관들이 있는 Gulsan 이라는 곳은 Dhaka 중심지에 위치하고 대부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도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거의 같은 형상이었다. 개인 주택이나 모텔(Gust House) 등은 반드시 경비원이 집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 나라에는 도둑도 많아 늘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아주 특이했던 것은 길거리에서 체중계를 놓고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돈 벌이가 되는지 궁금했다.
내년에 다시 온다는 기약도 없이 그저 여건이 된다면 다시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래요 매년 갈수만 있다면
첫댓글 나의 꿈이에요 나도 그렇게 하고싶어요 이렇게 가까운곳에 이런분이 계셨구나..
바람의 딸 한비야 씨......이런 분들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 나라도 이젠 베풀 때가 되었지요. 우리도 많이 받았잖아요? 직접 구호활동 할 수 있는 시간적 여건이 대부분 안될테니,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봉사겠지요. 저도 지난 여름 캄보디아를 다녀 오고 유니세프 회원이 되었답니다. 대사랑님 복 받으실껴~
음..이런거 생각하면 사소한 걸로 불만품고 사는 내 모습이 참..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해여-_-
난 케냐에 있는 레시파요 나린투라는 애를 후원하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