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고요한 방에 앉아
주님과 교제나눕니다.
아무런 방해가 없는 시간,
잠잠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전날 더러워진 마음을 보혈로 씻어주시어,
잠잠한 중에 말씀의 통치를 받게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성경본문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본문주해
18절: 하나님의 심판은 돌이키는 자를 사랑으로 구원하는 데까지 다다른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닌 구원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이 배제된 냉랭한 심판이 아니며, 사랑은 공의를 전제로 하고, 공의는 사랑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20-21절: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권면이 그 백성 가운데 함께할 것을 의미한다. 21절은 더욱 명백히 말씀하신다. 곧 그들이 잘못 갈 때에도 그 뒤에서 말 소리가 들려 오듯 참된 지도자들의 교훈이 계속해서 따를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22절: "던짐같이~나가라" 이는 회개하는 자가 죄악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신앙은 이처럼 죄악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든지 덥든지 해야 한다. (계3:15)
23-26절: 이 부분에서는 회개한 유다 민족에게 곡식이 풍성해지고 가축도 잘 살게 되고 산천이 아름다워질 것에 대해 예언하고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20,21절에서 영적인 풍족함을 먼저 말하고 여기서는 자연계의 은총을 말하고있다. 우리는 여기서 영적인 것이 육적인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령한 은혜가 임한 곳에 물질의 축복이 언제나 따르는 것은 아니다. 위의 20절을 보면 그들이 한 동안은 환난의 떡을 먹으며 고생의 물을 마시면서 은혜를 받았다. 그 때에는 자연계를 통한 물질적 축복을 받지 못한 상태였던 것 이다.
나의 묵상
유다는 심판 받을 지언정 달려가 안길 품이 있다. 택한 백성은 아무리 징계를 받아도 돌이키면 하나님은 언제든 기다려주시고 또 은혜 베푸시기위해 친히 일어나신다. 또한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더라도 스승만은 숨기지 않으신다 약속하신다.
전날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던 때가 떠오른다. 질퍽이는 사막을 걷듯 끝없이 펼쳐진 고난 앞에 아무런 소망이 없던 날을 보내었다. 두 다리에는 모래 주머니를 찬듯 앞으로 걸어가나 제자리 걸음 하기를 수개월을 그렇게 하였다.
다윗은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는데 나는 울 기력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때에도 약속대로 스승은 숨기지 않으셨다. 육체적 한계 속에서 들어야 할 말씀을 듣게하시고 들리게 해 주셨다. 만일 성령께서 영의 귀를 여시지 않았다면 들으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의 말씀을 영으로 받고, 내 안에 심겨진 수많은 우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상이 우상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비진리가 진리인양 심겨진 내 심령은 도무지 고쳐쓸 수 없어 완전히 무너뜨려 재건축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진리가 들어서니 비진리가 거슬린다. 예전에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불편해진다. 또한 육신은 율법 행위에 충실했던 예전의 삶으로 회귀하려 든다.
그러나 이미 완전한데로 나아간 지금(히6:2) 믿음을 통한 의가 아닌, 율법을 통한 의를 경계한다.
율법에 길들여진 육의 근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주를 섬기길 간절히 구한다.
묵상기도
주님,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던 때에
쉬지않고 권면하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 사막의 땅을 건너
약속의 땅에 다다랐는지
그 시간들이 마치 꿈 같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율법적 삶에 익숙해져
예전의 습관대로 하지 않으면
무언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게서 떨어지고 맙니다.
종교적 관습에 물든 율법의 멍에를
십자가에 못박고
아들의 목숨과 맞바꾼
영의 자유함을 가지고 주를 섬기기 원합니다.
긍휼이 여기시고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