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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오리 떼와 함께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
출처 한국일보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2109220005388?did=NA
봄의 향기를 먼저 느낀 한강의 오리들이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 겨울 추위는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강도 이제는 얼음이 녹아 잔잔한 물결이 춤추고, 그 위에는 봄의 향기를 먼저 느낀 오리 떼가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봄기운을 먼저 알아차린 오리들의 활기찬 모습은, 움츠러들었던 우리의 어깨를 다시 펴게 만든다.
봄의 향기를 먼저 느낀 한강의 오리들이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물질을 하고 있다.
머지않아 이 추위는 풀리고, 봄은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뜨거운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찰나처럼 지난 봄의 따스함을 놓치지 말자. 꽁꽁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는 아름다운 봄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겨울 동안 우리를 짓눌렀던 추위와 역경을, 따스한 햇살과 봄바람으로 녹여보자. 물론 봄의 시간은 짧을 수 있다. 하지만 봄의 향기는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과 설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봄의 향기를 먼저 느낀 한강의 오리들이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혹시 아직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괜찮다. 마음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시라. 곳곳에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메마른 땅에서 따스한 햇살을 품고 올라오는 푸르른 새싹, 그리고 긴 겨울 맥을 못 추던 오리들의 물질에서 우리는 봄의 시작을 느낄 수 있다. 봄은 우리에게 희망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계절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봄의 향기를 먼저 느낀 한강의 오리들이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빛명상
쥐꽁지가 된 오징어 다리
맑은 동심으로 가득했던 순수했던 시절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가며
진정한 우정과 순백의 사랑을 되새겨보곤 한다.
어릴 적 우리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감들이 주렁주렁 많이 열렸다.
“애들아, 오늘은 감 좀 따거라. 올해도 감이 많이 열렸구나. 네다섯 접은 넘겠는 걸….”
어머니가 이렇게 이르시는 날이면 우리 형제들은 우루루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다. 형들은 서로 많이 따려고 경쟁도 하고, 자기가 더 높이 올라갔다고 우기기도 하면서 왁자지껄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무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배고픈 시선이 내 가슴을 콱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 서문 시장에서 제법 큰 건어물 가게를 하셨던 아버지 덕택에 우리 집은 팔 형제의 대식구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나무 아래 사람들의 형편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감 딸 때가 되면 동네 꼬마들은 물론이고 아주머니, 아저씨들까지 우리 집 담장을 빙 둘러싸며 우리가 감 따는 광경을 지켜봤다.
은행나무에 올라가 손가락을 빠는 친구며, 대문에 난 구멍을 통해 이쪽 동정을 살피는 사람들, 늦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멀리서 부리나케 뛰어오는 아줌마, 하나같이 허옇게 마른버짐이 핀 얼굴에는 배고픔의 설움이 배어 있었다. 형들이 감을 따다 말고 소매에 쓱 문질러 하나라도 먹을 것 같으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숨죽인 채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침 넘어가는 소리가 온통 귀에 울려 난 도저히 목구멍으로 감을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나무 아래를 한 번 둘러보고는 감을 따서 아래쪽 사람들에게 던졌다. 그러면 사람들은 허겁지겁 감을 받아먹었다. 향들은 우리 먹을게 적어진다고 소리를 질러 안달하기도 했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감을 따는 날이면 감이 다섯 접은 고사하고 한 접도 남을까 말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감 먹는 모습이 또 눈물 나게 했다. 사람들은 내가 던진 감을 미리 준비해 온 된장에 찍어 먹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하나같이 된장에 감을 찍어 먹는 것이었다. 된장이 감의 떫은맛을 없애주기도 하지만, 체하거나 목에 걸리는 것을 막아 하나라도 남보다 더 먹기 위한 것이었다.
된장에 감을 찍어 먹는 맛이 어땠을까? 지금은 아마 돈 주고 먹으라고 해도 안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그것도 못 먹을까봐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감뿐만 아니라 나는 유별나게 친구들에게 뭐든 나눠주는 일을 좋아했었다. 원래 잔정이 많고 여린 성격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집안에 있는 먹을 것을 빼돌리다 형제들과 많이 다투기도 했고 때론 너무 지나쳐 어머니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한 번은 외투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왔다가 어머니께 호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먹을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던 때라 친구들은 추운 겨울에 마다한 겉옷은 생각도 못했다.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난 두툼한 외투를 입은 내 모습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내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주었던 것이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어? 도대체 왜 그러니? 새 옷이 아니라고 투정하는 거야?”
어머니는 외투도 없이 동동거리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보통 화를 내신 게 아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새 옷이나 새 책을 가져본 적이 없다. 형들 것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물려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팔 형제가 줄줄이 한 물건으로만 내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여섯째인 내게는 새것에 대한 행운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그것이 불만인 줄 아셨던 모양이다.
“아니야, 엄마, 헌 물건이라서가 아니야. 그냥 떨고 있는 친구가 불쌍해서….”
책도 마찬가지였다. 가난 때문에 책을 못 사 풀이 죽어 있는 친구를 보면 내 책을 슬며시 건네주었다. 물론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께 혼날 것을 각오해야 했지만, 당장은 친구의 기뻐하는 얼굴만이 내 마음을 채웠던 것이다.
당시에는 주위에 거지들이 상당히 많았다. 친구들 중에도 진짜 거지가 몇 있었다. 내 짝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그 친구는 학교에 와서도 각설이 타령을 외웠다. 아니 각설이 타령을 외우기 위해 학교에 나오는 것이었다. 각설이 타령을 외우지 못하면 아버지한테 얻어 맞거나 밥을 굶는다고 했다. 그 친구들의 공책에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아닌, 어느 동네 어느 집의 제삿날, 잔칫날, 심지어 아이 돌 날까지 언제인지 가득 쓰여져 있었고, 그날이 되면 학교에 오지 않고 그 집으로 갔다.
“일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그 친구들의 각설이 타령을 듣고 있노라면 눈가에 눈물이 절로 흘렀다. 못 외우면 밥을 굶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배어 나오던 그 슬프고도 구성진, 찌그러진 깡통에 몽둥이 숟가락을 두드리며 읊던 각설이 타령….
나는 집에서 뭐 하나를 먹다가도 그런 친구들이 생각나 이리저리 궁리를 해가며 갖다 줄 방책을 찾아내곤 했다. 옥수수떡, 보리 찐 것, 과일, 오징어 긴다리 등 도시락언 온전히 내가 먹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가 하면 친구들을 데리고 서문 시장에 계시는 아버지 가게를 찾아가기도 했다. 멸치나 어포 등 먹을거리를 아버지 몰래 나눠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팔려고 내 놓은 오징어마다 왕다리를 하나씩 떼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오징어를 사가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드디어 ‘왕다리 사건’ 이 들통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저씨! 왜 사가는 오징어마다 다리가 한씩 없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한 아주머니가 사간 오징어를 들고 와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성질이 보통 깐깐한 아주머니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아주머니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시고는 오징어 한 축을 안겨 겨우 돌려보냈다.
이제 그게 내 짓이라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내 모른 척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도 어렵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래서 내 행동을 눈감아주셨던 게 아닐까.
그 후 아버지는 명태나 오징어 등을 채 써실 때 몽땅 썰지 않으셨다. 원래는 머리 부분만 빼고 몽당 채를 썰어야 하는데, 항상 가슴께를 뚝 잘라 그 아래만 채를 썰고 나머지는 따로 모아 두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냉큼 집어다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는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가게에 가보면 어김없이 채 썰다 남은 생선들이 모아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마음속으로부터 나를 도와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오징어 다리에 얽힌 사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요즘처럼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그 시절, 아끼고 절약하는 데에는 요즘 사람들이 당해 낼 재간이 없을 정도였는데 조금 부유한 편에 속했던 우리 집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변변한 학용품 하나 구하기 힘들었던지라, 연필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고 소중히 아껴섰다. 연필이 짧아져 손에 쥐기 힘들어지면 싸리 참나무나 모나미 볼펜대에 연결해 한참을 더 쓰곤 했다.
그런 와중에, 일년에 한두 번은 그 귀한 연필과 공책을 공짜로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쥐와 파리 잡기 운동’ 이었다. 지금은 이런 일을 운동으로 벌인다는 생각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집집마다 쥐와 파리가 많았던 그 시절에는 이런 운동이 연례행사처럼 열리곤 했었다.
이때가 되면 아이들은 유독 신이 났다. 쥐꼬리 하나를 가져가면 귀한 새 공책 한 권과 맞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 형편이 어려웠던 학생들은 물론이고, 사정이 넉넉한 아이들은 또 넉넉한 대로 공짜 학용품을 받으려는 속셈으로 쥐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이 운동은 여름 방학 중에 열려 쥐꼬리 가져가는 것이 마치 과제물처럼 학생들에게 부과되었고, 개학을 하루 이틀 앞두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쥐를 잡는 데 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쥐를 잡는 방법도 가지가지라, 마음이 약한 사람은 벼락쥐덧이나 쥐틀을 쓰기도 하고, 좀 대담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은 몽둥이로 쥐를 때려잡기도 하는 등 다들 자기 구미에 맞는 방법으로 쥐를 잡았다. 때로는 장독 뒤에 숨은 쥐를 잡으려 돌멩이를 던졌다가 쥐는 놓치고 애꿎은 장독만 깨뜨려 일 년 동안 먹을 간장이 쏟아져 내려 종아리가 얼얼하도록 맞고 벌 받는 일도 있었다.
나와 내 주위의 각설이 친구들도 그런 멋진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쥐를 잡으면 공책을 탈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그 일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우리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며 열심히 쥐를 잡아들였고 개학을 하면 그 쥐꼬리들을 신문지에 곱게 사서 가져가곤 했다. 공책을 가져다 줄 소중한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한 내 친구들이 공책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꾀를 내어 친구들을 돕곤 했는데, 그 덕택일까? 우리 반은 유독 다른 반에 비해 공책을 훨씬 많이 타 가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다른 반 친구들이 우리에게 몰려와 그 비결이 뭐나며 귀찮도록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결코 쉽게 알려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비결이 들통나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당시 우리 반 교실 맨 뒤쪽에는 언뜻 중학생처럼 보이는 커다란 친구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하루는 그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은 듣지 않고 책상 아래로 몰래 만화책을 보며 낄낄대며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선생님 입에서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희들 거기서 지금 뭐하는 짓이야! 당장 앞으로 나오지 못해?”
화가 난 선생님은 당 장 그 둘을 교실 앞으로 불러냈고 종아리를 몇 대 때린 후 다시 소리쳤다.
“당장 저 양동이에 물 가득 떠와!”
그 두 녀석은 물을 가득 채운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복도 끝에 서 있는 벌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양동이를 들고 벌을 서던 두 녀석 중 한 명이 그만 깜빡 졸았던 것이다. 꾸벅꾸벅 고개를 흔들던 녀석은 그만 물이 든 양동이를 옆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양동이가 떨어진 곳이 하필이면 쥐꼬리를 모아둔 상자였다.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에 놀란 선생님이 복도로 뛰쳐나왔고 선생님의 시선은 이내 물이 흥건히 젖은 쥐꼬리 상자로 옮겨졌다. 그런데 선생님은 쥐꼬리 상자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웬일인지 물에 젖은 쥐꼬리들이 검은 색이 아니라 하얀 살색을 군데군데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수상쩍은 느낌이 든 선생님은 허리를 굽혀 쥐꼬리들을 천천히 뚫어지도록 살펴보았다. 그리곤 선생님은 아까보다 훨씬 더 굳어진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어떤 놈이야! 오징어 다리에 먹물을 칠해서 쥐꼬리로 속인 놈이 대체 누구야!”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거지 친구들이 더 많은 공책을 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나는 또 한 번 오징어 다리를 생각해낸 것이다. 나는 아버지 몰래 오징어 다리를 하나씩 떼어내어 동글동글한 빨판을 떼어낸 후 거기에 까맣게 먹물을 칠했다. 그러면 오징어 다리는 영락없는 쥐꼬리로 둔갑했고 그 누구도 그것이 오징어 다리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반이 다른 반들 보다 유독 쥐꼬리가 많았던 비결은 바로 그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 수법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알아채시고는 당장 나를 교단 앞으로 불러내셨다.
“광호 너 이 녀석! 너 어쩌자고 오징어를 쥐꼬리로 속인 거냐? 우리 반이 쥐꼬리를 가장 많이 가져와 나는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했었다마는 이게 다 네 녀석 속임수로 밝혀져서 내가 얼마나 창피한 중 아냐? 게다가 너는 집안 형편이 그리 나쁘지도 않은데 꼭 그렇게까지 해서 공책을 받아야 했어?”
선생님의 다그침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선생님, 죄다 오징어 다리만 낸 것은 아니었어요. 진짜 쥐꼬리도 많이 있었어요….”
그러자 교실 뒤편 각설이 친구 하나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네, 선생님 광호가 우리 도와주려고 그런 거에요. 한 번만 서해주세요. 그 공책을 광호가 가진 것이 아니라 저희 각설이 친구들한테 주려고 한 것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의 반응은 의외로 너그러웠다.
“예끼, 이 녀석, 그렇다고 오징어 다리에 먹물을 칠해 쥐꼬리로 내는 놈이 어디 있어?”
선생님은 내가 한 짓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꿀밤을 한 대 쥐어박았다.
“이번 일은 광호가 친구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생긴 일이니 한 번 눈감아주겠다. 대신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는 날에는 아주 혼날 줄 아아! 알겠냐?”
“네, 선생님.”
선생님의 기분이 조금 풀린탓에 나는 안도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날 일은 그렇게 웃으며 넘어갔지만 그 후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져온 쥐꼬리에 항상 물을 부어 확인하시곤 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곤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비록 물자는 조금 부족했을지언정 맑은 동심으로 하루하루가 넉넉했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컴퓨터 게임도 없고, 또 읽을 책도 풍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밖에 나가 깡통차기며 땅따먹기, 돌치기 등을 하며 뛰어놀았다.
특별한 장난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장난감이기도 했다.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늘 친구들과 뒹굴며 어울려 놀았고, 그런 와중에 보이지 않는 단결심도 진한 우정도 함께 익어갔던 것이다. 맑은 동심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그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 늘 가슴에 담아 두고 돌이켜보곤 한다.
행복을 주는 남자
초판 1쇄 인쇄일 2002년 6월 07일
초판 1쇄 발행일 2002년 6월 20일 P. 13-21
행복을 주는 남자*
운명인 듯 우연처럼
만난 그대
그대는 내 인생의
최고의 선물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나
내 영혼을 사로잡은
그대는 행복을 주는 남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은
내 영혼 황금빛에
젖어버려
온 세상을 다 바꿀 수 없는
당신은 행복을 주는 남자
다음 세상도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파
당신은 내 인생의
행복을 주는 남자
당신은 내 인생의
행복을 주는 남자
* 가수 구정은 님의 노래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234-235
가수 구정은 - 행복을 주는 남자 (아이넷TV 풍경 천안시 천안삼거리)
출처 : 차현대의 흥 YouTube
https://youtu.be/pSnh7147Uk4?si=hD5jHevv_hx6b0Ma
첫댓글 감사합니다.
동심으로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존경과 감사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학회장님의 남달랐던 이웃사랑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땅에 현존의 빛으로 와주신 학회장님께
두손모아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학회장님께 감사와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어릴때 부터 남달랐던 학회장님의 나눔의 베품과 인정의 성품을 본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 동심의 추억속에서도 남달랐던 나눔의 실천하셨던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귀한 빛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행복을 주는 남자
감사라고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나눔을 하셨던 학회장님이 자연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정은님 👍 👍 👍
감사합니다.
우주마음 학회장님께 끝없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웠던 시절 가난했던 친구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신 학회장님께
무한한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부터 사랑나눔 실천하심
큰마음 .*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사랑나눔을 늘 실천하신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희망과 설렘을 가지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시는
학회장님의 따뜻한 모습들과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의 모습들을 보며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행복을 주시는 학회장님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디를 들으면서 노래 가사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을 나눠주는남자...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