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언양읍성(蔚州 彦陽邑城)
국가유산
사적 지정(등록)일 : 1966년 12월 27일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성안2길 55-8 (언양읍)
시대 : 조선 광해군 9년(1617)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수량/면적 : 89,990㎡
예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처음에는 흙으로 성을 쌓았던 것을 연산군 6년(1500)에 현감 이담룡이 확장하여 돌로 다시 쌓았다. 평지에 네모꼴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평지성으로, 원래는 둘레가 약 1,000m, 높이가 4m나 되었으며 성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성을 쌓았던 큰 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은 조선 전기 읍성 축조의 일반적인 방식이 반영되었다. 큰 돌을 대충 갈아 쌓은 후 빈 공간에 잔돌을 채워 성벽을 튼튼하게 하였다.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언양읍성 → 울주 언양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울주 언양성당(순례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⑬]
데일리안 기사 입력 2024.09.19. 14:46, 수정 2024.09.19. 14:48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 제103호
성당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커다란 느티나무와 초록의 전나무 사이로 잿빛 벽돌로 된 하얗고 뾰쪽한 성당 십자가가 보인다. 성당주위에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소나무와 왕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깊은 산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성전은 고딕식 형태의 건축물로 우리나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 제103호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28년 5월 25일 기공식을 가진 이 성당은 보드뱅 초대 신부가 직접 설계하였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건축했던 중국인 기술자들에 의해 지어졌다.
성전 주변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앙유물전시관이 있다. 1936부터 사제관으로 사용되어 오다 언양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1990년 신앙 유물전시관으로 개관되었는데, 총 696점의 신앙 및 민속유물 중 교황청에 등록된 아주 귀한 자료도 있다.
성당 마당 안쪽 옛 예수성심전교수녀회의 수련소 건물 2층 성인유해참배실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성 라우렌시오 주교, 성 야고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당 뒤쪽 언덕에는 커다란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이 잘 왔다고 환영하는 듯 내려보고 계신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름드리 울창한 소나무숲이 나온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빼곡한 숲길은 야자나무 매트가 깔려 있어 푹신함이 느껴져 발이 편안하다. 10분쯤 올라가면 순교자 오상선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오상선은 병인박해 때 언양감옥에서 순교하였는데 1995년 5월 15일 이곳으로 이장하였으며 순례지로 지정되었다. 순교자 오상선의 묘 앞에서 기도를 드린 후 계속 올라가자 십자가의 길이 보인다.
널따란 십자가의 길에서 온 정성을 기울여 애틋하게 기도하는 신자들이 보인다. 두 손 모아 깊숙한 절을 올린 후 무릎 꿇고 바치는 형제의 기도가 간절해 보인다. 아마 이 형제의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지 않았을까. 각 처마다 커다란 바위에 어울리는 말씀을 새겨 놓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와 닿을 것 같다.
14처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곳'에는 큰 바위가 무덤처럼 생겨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돌무덤이 이런 것인가 하여 마음속 깊이 다가온다.
바로 인근에 성모동굴이 있다. 성모님이 모셔져 있는 큰 바위 아래에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마실 수 있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으로 흘리시는 성모님의 눈물 같다.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생명수인 것 같아 한 모금 들이켰다. 오르막길을 오느라 힘들었는데 갈증이 단번에 해소된다.
올라와 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500미터의 오르막길에 조성된 14처 기도를 하며 올라와도 좋지만, 그냥 등산 삼아 오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언양성당을 오신다면 꼭 성모동굴까지 올라와서 성모님이 주시는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실 것을 권한다.
주소 :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전화번호 : 052-262-5312
울산 언양성당과 사제관(蔚山 彦陽聖堂과 司祭館)
종목 국가등록문화재 (구)제103호(2004년 9월 4일 지정)
면적 본당-2층 연면적 410.94m2
사제관-1층 연면적 107.8m2
시대 1936년
소유 천주교 부산교구 유지재단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외 1필지 (송대리)
좌표 북위 35° 34′ 11.8″ 동경 129° 06′ 55.5″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울산 언양성당과 사제관(蔚山 彦陽聖堂과 司祭館, 영어: Main Building and Presbytery of Eonyang Catholic Church, Ulsan)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다. 2004년 9월 4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현지 안내문
울산지역에 건립된 최초의 천주교 성당.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종교 건축의 수용 및 정착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연혁
1927. 5. 14 : 에밀 보드벵 정신부(한국명 丁道平, 1897-1876) 언양성당에 부임
1928. 5. 25 : 성전 및 사제관 신축 기공식
1936. 10. 25 : 본당 및 사제관 축성식
1990년까지 8동의 건물, 신·증축
언양성당은 부산교구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
영남 천주교 신앙의 온상지로 13곳의 성지와 사적지 및 16개소에 공소 설치
근년에 본당 정면의 현관 좌측면에 새시와 유리로 방풍실 및 신발장 증설
수년전 골함석을 철거하고 샌드위치 패널로 지붕 수리
굴암사(窟巖寺)
지역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29-12[송대리 392]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굴암사(窟巖寺)는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재위 479~500] 때 승려 도화(桃花)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후의 연혁은 알려 진 바 없다. 처음 이름은 화장암이었고, 매년 8월 16일을 관례일로 행사하여 관민이 모여 부처에게 참배하고 소원을 기도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 폐사된 것을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수도한 승려 안석범(安石凡)이 1966년 중창하여 ‘화장산(華壯山) 굴암사’라 이름을 붙였다.
활동 사항
1966년 중창 후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였으나 한국불교태고종으로 종단을 변경하여 중생 구제를 위한 포교 활동에 진력하고 있다. 매달 초하루 정기 법회를 봉행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굴암사는 승려 자광이 주지를 맡고 있으며, 굴법당의 이름을 ‘미타굴(彌陀窟)’이라 지었다. 미타굴 안에는 아미타불좌상이 있으며, 특별한 문화재는 전하지 않는다.
[생활 속의 풍수지리] 석맥으로 이어진 미타굴과 성모동굴
경남신문 기사입력 : 2025-10-17 08:15:04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화장산(花藏山) 자락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찰인 굴암사(窟巖寺)가 자리하고 있다. 굴암사의 미타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폭 6m, 높이 2m가량의 자연 동굴로 이루어진 법당으로, 극락정토에 있는 부처가 왕림해 머무는 굴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굴 내부는 20여 명이 법회를 참관할 정도의 규모이며, 굴 밖에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꽤 오래된 듯한 약사여래불상과 근래에 조성한 마애지장보살이 있다. 굴암사에는 신라 소지왕에 얽힌 창건 설화가 있다. 난치병을 얻은 소지왕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남쪽에서 도화(桃花)를 찾으면 치료가 될 것이라 하자 수소문 끝에 화장산에서 도화라는 이름의 승려를 찾아 설법하게 하니 왕의 병이 3일 만에 낫게 되었다. 소지왕이 부처의 은공에 보답하기 위해 승려가 있던 굴에 절을 세웠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굴암사라 한다.
굴암사 전체 터는 주산(뒷산)인 화장산의 용맥(龍脈·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이 좌우로 요동치고, 상하로 기복을 하면서 뻗어 내린 곳이긴 하지만, 용맥이 아직 영글어지지 않았기에 무해지지(無害之地·해가 없는 땅) 중상급에 속한다. 비탈진 길을 잠시 내려가다 보면 사찰 입구에 자리한 노거수를 맞닥뜨리게 된다. 입구에 근엄하게 서 있는 이 나무는 건물을 직접 때리는 바람을 순화시키거나 수구(水口·드나드는 어귀)를 좁혀 생기의 누설을 막는 비보목(裨補木)이자 살기(殺氣)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는 당산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사찰 마당은 앞쪽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때, 마당을 포함한 주변은 대부분 바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위는 모서리가 많고 들쑥날쑥한 흉석(凶石)과 모가 나지 않고 둥근 길석(吉石)으로 나뉘는데, 사찰의 바위들은 상서로운 돌이어서 은은한 생기가 사찰 곳곳에 묻어 있다. 그러나 안산(앞산)이 너무 멀리 있어 앞에서 불어닥치는 세찬 바람으로 인해 미타굴과 마애지장보살을 감싸고 있는 바위가 거무죽죽한 색으로 변색되었기에 마당 앞에 나무나 조형물을 두어 바람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마당 한쪽의 바위에 새긴 마애지장보살은 보통의 기운을 발산하지만, 약사여래불상이 있는 곳은 생기가 솟구치고 있다. 동굴법당인 미타굴은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가 천장 역할을 하고 있어 그 자체로도 엄숙함을 자아낸다. 미타굴은 자연 동굴을 다듬어 만들었기에 생기가 법당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그러한 생기의 분출은 아미타불 좌상과 그 부근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화장산으로부터 하강한 그리 탄탄하지 않은 용맥은 사찰로 다가가면서 석맥(石脈·정기를 품은 돌줄기)으로 바뀌어 미타굴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아미타불 좌상과 그 근방의 바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로 인해 미타굴은 기도 효험이 뛰어난 동굴법당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굴암사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천주교 부산교구 언양성당이 있다. 언양성당은 1927년 5월 25일 현 부산교구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며, 교구 내 가장 오래된 성전이 있는 곳이자 부산교구에서 고딕 양식으로 만든 유일한 석조 건축물이다. 성당에서 산길을 도보로 20분 정도 올라가면 성모동굴이 있다. 굴암사 미타굴과 언양성당 성모동굴은 같은 주산인 화장산의 용맥이 각각 뻗어 내려왔는데, 두 동굴 모두 굵고 큰 줄기에 해당하는 용맥인 간룡(幹龍)으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에 속하는 지룡(枝龍)의 연장선에 있다. 미타굴로 향하는 지룡은 간룡에서 이제 막 독립한 용으로 비록 단단히 여물진 않았지만 산등성이에 속해 있어 혈(穴)을 맺을 가능성이 높은 용맥이다. 그러나 성모동굴로 향하는 지룡은 계곡 옆의 산비탈에 들어 있어 혈과는 무관한 용맥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화장산에서 이어져 내려온 용맥이 아니라 미타굴과 성모동굴을 두르고 있는 바위가 석맥이 맺힌 곳인가 하는 것이다. 미타굴은 아미타불 좌상을 포함한 근방, 그리고 성모동굴은 성모상을 포함한 근방에서 생기가 솟고 있다. 이는 미타굴과 성모동굴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가 생기를 내뿜는 원천이 되기에 기도발이 잘 받는 길석임을 뜻한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사주명리·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울주 언양읍성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