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3~17
◈ 새번역 ◈
13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15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 묵상 Point ◈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 예수님의 세례와 메시아 임명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세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죄인들의 세례와 달리 예수님의 세례는 자신과 이스라엘을 동일시하는 의식으로 순종의 표현이다. 메시아로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임하시고, 하늘의 아버지께서 공식적으로 그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해주신다. 이는 시편 2편에서 예고한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고난 받는 종으로 부름 받았음을 말해준다. 고난 받는 종과 왕, 어울리지 않는 두 정체를 한 몸에 안고 사는 것이 메시아 예수의 삶이 될 것이다.
◈ 설교 / 두 사역의 교차점 ◈ 마태복음 3:11~17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성령님이 예수님 위에 임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 예수님이 누구신지 선포했습니다. 이제 세례 요한에게 주어졌던 준비의 시간은 끝나고, 메시아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이 교차되는 시점을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감당할 우리 역할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낮춥니다(11절). 그의 사역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5절; 막 1:5) 자신 뒤에 오실 메시아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식했습니다. 위대한 사역을 감당한 세례 요한조차 예수님의 사역에 어떤 것도 더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자랑하고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성령님이 함께해 주시길 간구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12절)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심판이 다른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도 알았지만, ‘나는 아니다’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신들의 혈통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근거는 회개, 그리고 회개를 온전히 구현하는 삶에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부여하는 정체성에 있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님께 세례 요한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만류합니다(13~14절). 세례는 죄가 있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과정에서 받는 것이므로 무죄한 메시아는 세례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죄인들처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의 모습이 되신 예수님의 성육신과 같이 이해하면 됩니다(빌 2:6~7). 몸을 입으셨듯이, 다른 이들처럼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어떤 특권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메시아의 삶이 있고, 세례 요한에게는 길을 예비하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거기서 예비하는 자의 역할은 끝나고, 메시아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13~15절). 세례 요한은 자신의 역할과 그것이 끝나는 지점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삶과 사역에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달란트와 그것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겸손한 퇴장이 아닌 교만과 갈등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난 소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선포했습니다(16~17절). 그 내용은 사랑이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요일 4:8),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일 역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요일 4:11). 사랑으로 오셨고, 사랑으로 이루신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사랑 위에서, 사랑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 13:1~3).
이제 세례 요한은 점점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역이 나타납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퇴장에 어떤 미련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에 맞는 은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에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