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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두엘의 딸이니이다
창 24:17-27
17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18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19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20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21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22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23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24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25 또 이르되 우리에게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창 24:17-27 / 아브라함의 종은 뛰어가 `아가씨, 물 좀 마실 수 있겠소. 목이 마르오' 하였다. 18) `그러시지요. 여기 있어요' 하고 그 아가씨가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어깨에 메고 있던 물항아리를 내려 그에게 물을 떠주었다. 19) 리브가는 그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물을 마시고 나자 `어르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지요' 하였다. 20) 그러고는 물항아리에 남아 있는 물을 구유에 쏟아 붓고는 낙타에게 충분히 물을 먹이려고 얼른 우물로 달려 내려가 물을 더 길어 왔다. 21) 그는 리브가가 하는 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가 여기까지 찾아온 목적을 여호와께서 잘 이루어 주실까 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22) 낙타가 물을 다 마시자 그는 값비싼 금코고리와 금팔찌 한 쌍을 리브가에게 주면서 23) 물어 보았다. `아가씨, 아버지가 뉘시오? 아가씨 집에 우리가 묵고 갈 방이 있는지 모르겠소.' 24) `예, 제 아버지는 브두엘이라 합니다. 할머니는 밀가이고 할아버지는 나홀이라 하지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리브가는 말을 이었다. 25) `저희 집에는 낙타에게 먹일 겨와 여물도 넉넉히 있습니다. 또 어르신께서 묵어 가실 방도 있습니다.' 26)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여호와께 기도드렸다. 27) `우리 주인님이 섬겨 모시는 여호와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호와께 찬미드립니다. 우리 주인님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꼭 지켜 주시는군요. 우리 주인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토록 진실되이 약속을 지켜 주시는군요. 주께서는 이것을 우리 주인님의 아우 집으로 인도하시는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에셀이 하란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준비를 다 해놓으셨습니다.
노종과 리브가의 만남(17-20) 노종 엘리에셀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는 리브가를 발견합니다(15). 고대의 풍습에 의하면 애굽인을 비롯한 남방계통의 사람들은 물 항아리를 머리에 이었지만, 팔레스타인이나 북방 계열의 사람들은 어깨에 메고 운반하였습니다. 리브가는 처음 보는 나그네의 물을 달라하는 요구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물을 주고 더 나아가 낙타들에게까지 물을 먹이는 친절을 보입니다. 이러한 리브가의 행동은 엘리에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충분하였습니다. 낙타는 사막이나 건조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 물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지만, 한번 물을 먹게 되면 먹는 양이 엄청나서 낙타들에게 물을 공급한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하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주목하여(21-25) 우물과 낙타 사이를 쉬지 않고 왕래하며 물을 공급하는 리브가를 지켜보며,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이런 침묵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습관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시 39:2; 행 11:18;). 이제 남은 한 가지는 그녀가 아브라함의 혈통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금 코걸이와 금 손목고리를 선물로 주면서 가문은 확인합니다. 이때 리브가는 자신이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는 당시 일부다처제 사회였기 때문에, 자신을 소개할 때는 먼저 어머니의 이름을 밝히고 나중에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엘리에셀(26-27) 리브가는 나그네뿐만 아니라 낙타들까지도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짐승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이는 족장들의 아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12:11; 29:17). 리브가는 외모도 아름다웠습니다. 이는 내적으로 성숙한 신앙이 반영된 외적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또한 이 아름다움은 순결과 아울러 훌륭한 신부가 갖추어야 될 좋은 조건이 됩니다. 일단 외모에서도 엘리에셀이 정한 기준에 부합되는 여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후손인 것을 알게 된 엘리에셀은, 나홀 성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모든 일을 순적하게 진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적용: 엘리에셀의 찬송 중에 나타난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당신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시 5:8; 23:2; 27:11; 48:14)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경험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타인의 단점은 자동 전조등과 같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보다는 남의 잘못이 더 잘 보인다는 얘기다.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들이 많다. 자기반성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단점이 사실은 대부분 자신의 싫어하는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라는 말은 진리다. 타인의 단점만 보는 까닭은 그 흠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도, 고치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로빈슨.<행복의 기술> 중에서
< 설 교 >
사소한 것의 섭리
창 24장 12~27절 / 임영수목사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이 늘그막에 얻은 독자 이삭에게 짝을 맺어주기 위해 그의 충직한 노종에게 그 일을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매우 긴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하나입니다. 본문 첫 부분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께서,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노년기 후반에 접어든 아브라함의 모습은, 노년기 전반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가 살고 있던 땅과 그가 태어난 곳과, 그의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시는 땅으로 생의 순례의 여정에 올랐을 때 아브라함은 매우 불안정한 사람으로 비춰졌습니다. 그러나 노년기 후반에 들어선 아브라함은 매우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노년기의 생을 이렇게 안정되게 만든 것은 그의 많은 소유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아브라함과 동행해 오신 하나님과 교제의 삶이 깊어진데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깊어지지 못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의 생의 문제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방향으로 해결해 가고자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것은 실패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배운 것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가운데서 그와의 교제였습니다.
노년기 후반에 접어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결코 낯설지 않은 분이 되었고,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미래의 전망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에게는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 더 불편하고 어색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그의 집 모든 소유를 맡아보는 나이 많은 종을 불렀습니다. 그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아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엘리에셀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종은 아브라함의 성품, 생활 습관을 거의 다 꿰뚫고 있었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아브라함과 거의 동일시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것들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있었다면 그의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많은 종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깁니다. 그것은 그가 늘그막에 얻는 독자 이 삭을 위해 배필을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배필을 구하러 이방 여인이 아닌, 아브라함의 친척 가운데서 찾아오라는 분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종이 반드시 그대로 수행할 것을 맹세로 굳혀 놓으려고 했습니다. 떠나 충직한 종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주인의 명을 수행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 아브라함에게 맹세 전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5) 라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라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6∼7)
종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주인의 뜻을 받아드리고,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종은 주인의 낙타 가운데서 열 마리를 풀어서, 주인이 준 온갖 좋은 선물을 낙타에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 종에게 아직도 풀리지 않는 한가지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주인 아들의 아내될 여자를 찾아내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적지인 주인의 친척 나홀이 사는 성에 이르러, 낙타를 성 바깥에 있는 우물 곁에서 쉬게 하였습니다. 해가 뉘였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그 동네 사는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때였습니다. 종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여기 우물 곁에 서 있다가, 마을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면, 제가 그 가운데서 한 소녀에게 '물동이를 기울여서, 물을 한 모금 마실 수 있게 하여 달라.' 하겠습니다. 그 때에 그 소녀가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주겠습니다.'하고 말하면, 그가 바로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의 아내로 정하신 여인인 줄로 알겠습니다. 이것으로써, 주께서 저의 주인에게 은총을 베푸신 줄을 알겠습니다."
종은 매우 소박하고 사소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종에게는 그의 주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지만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종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로 한 것입니다. 종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그의 기도는 곧바로 현실적 사건으로 다가왔습니다. 종이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매우 아리땁고, 정숙하게 보이는 소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오고 있었습니다. 종은 그 소녀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올 때에,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의 물동이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소녀는 급히 물동이를 내려, 노인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겠다."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종은, 이번 여행길에서 주께서 모든 일을 과연 잘되게 하여 주시는 것인지를 알려고, 그 소녀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종은 그가 가지고 온 선물 일부를 소녀에게 주면서 조심스럽게 "그가 누구의 딸이냐?"고 물으면서 "아버지 집에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의 집에는 "겨와 여물도 넉넉하고, 하룻밤 묵고 갈 방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종은 머리 숙여 그의 길을 순탄케 인도해 주신 주께 경배하며, 찬양했습니다.
"나의 주인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지 않으셨으며, 주께서 저의 길을 잘 인도하여 주셔서, 나의 주인의 동생 집에 무사히 이르게 하셨습니다."
종은 매우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전능하신 천지자를 하나님, 그의 아들을 우리 위해 희생시키신 하나님,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매우 섬세하고 사소한 일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고 만나 주시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됩니다. 소녀 리브가 편에서 우물 근처에 앉아 있는 낯선 노인에게 물 한 모금 대접하는 일은 일상적인 삶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두 민족 공동체의 족장의 어머니가 되는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에서는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다는 것을, 성서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을 비롯해서, 모세의 사소한 의분, 요셉의 형들의 사소한 질투, 삼손이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자를 찢어 죽인 일 등 모두 이러한 부류에 속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만들어 갈 생명력, 성장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자 한 사람도 소홀함이 없이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어느 의과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가난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가 보던 의학 교과서 몇 권을 들고 헌 책방으로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곳 저곳 다니며 팔려고 했지만 별로 값이 나가지 않아 팔지 못했습니다. 한 나절이 지나 교외 어느 조용한 농가를 찾아 갔습니다. 그 집에는 한 부인이 가사일을 하고 있다가 이 학생을 맞이 했습니다. 이 학생은 부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자기는 배가 매우 고프니 혹시 빵과 우유라도 있으면 달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안으로 들어가 잠시 후 빵과 우유를 마련해서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학생은 그것은 다 먹고, 자기는 돈이 없으니 대신 책으로 음식 값을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자기가 베푼 호의를 베푼 것이니 값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은 부인의 집 주소와 이름을 적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 왔습니다.
그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의과대학 병원에서 중한 수술을 마친 부인이 퇴원 일이 되었을 때 부인과 그의 딸이 있는 병실에 한 장의 청구서가 배달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딸이 청구서에 적힌 병원 비용을 확인하기 위해 청구서를 들여다 보았을 때, 거기에는 돈의 액수 대신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빵과 우유 한잔으로 병원 비용이 다 계산 되었습니다."
딸이 그 사실을 확인해 보니 어머니를 수술한 담당의사가 몇 년 전 그의 집을 찾아 왔을 때 어머니가 그에게 빵과 우유를 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호의, 친절은 매우 아름답고 중요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대하는 사소한 일들에는 그렇게 호의와 친절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나온 한 주간을 돌이켜 보면 사소한 일,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고, 어느 정도 기도와 찬송, 말씀으로 이루어 놓은 마음의 평정이 다 깨어져 버린 때도 있었습니다. 사소한 일로 하루 종일 분노와 격한 감정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사소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릇된 길로 가게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보면 사소한 일 때문에 아파하고, 고민하고, 분노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깊이 절망하고 가장 소중한 일을 포기해 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우리를 분노와 좌절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것에 대응하는 우리의 '낡은 습관' 때문입니다. 우리의 낡은 습관은 언제나 섭섭함, 오해, 분노, 적대감, 좌절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새로운 습관은 그러한 것을 통해서 생의 발전, 진보, 성장의 기회로 삼습니다.
낡은 습관은 자기 경멸, 열등감,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대 평가, 사물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곡해해서 보는 편견으로 사건에 대응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반면 새로운 습관은 좀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관점에서, 겸허한 마음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대응하는 것입니다.
우물로 달려 가서
창 24장 20절 / 강성찬목사
시골에서 살다 서울 부잣집 가정 도우미로 들어온 아가씨가 수세식 변소에 대한 알지못한 가운데 물을 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간신히 우물을 발견 하여 물을 떠다 주고 다시 떠오라는 말에 난감해 하면서 우물에 누가 앉아 있다고 하더랍니다.
시골에서 칠석날이 다가오면 비가 많이 온다고 하여 우물 청소를 하는데 우물 속에 들어가서 마지막 정리를 하다보면 일년동안 사용 하면서 빠뜨려 놓은 여러 물건 가운데 생활 도구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동전 등은 들어간 사람의 몫이 되고 했습니다.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을 낮 삼아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산업 시대가 되며 농어촌을 등지는 모습을 나타낸 유행가의 가사에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 났네 라고 했습니다.
야전에서 군 부대는 우물에 민물고기를 넣어서 독의 여부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우물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두 명의 유럽인이 아프리카의 사막을 횡단하기로 했습니다. 물도, 사람도 없고 문화생활도 전혀 누릴 수 없는 여행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죽을 고생을 하며 겨우 사막을 횡단했습니다. 여행이 끝났을 때 그들은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기념할 만한 것을 남기자고 의견을 모으고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와 여행객을 위한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다시 그 곳을 찾았습니다. 기념비는 모래 바람에 휩쓸려 온데 간데 없어졌지만 우물만은 여전히 남아 여행객들의 타는 목을 축여주고 있었다합니다.
테일러는 청년 시절 여러 곳을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는 도중 우물이 있자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가까이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반대 방향으로부터 말을 탄 청년이 그와 마찬가지로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우물로 왔습니다. 테일러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청년에게 다가가서 예수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곧 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한 사람은 왼쪽으로 헤어졌습니다. 테일러는 이 청년의 장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도 몰랐으나 훌륭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그때 전도받고 훌륭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드디어 아프리카 전도를 위해 헌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청년은 자기를 예수께 인도한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영국으로부터 그에게 몇 권의 책이 도착했습니다. 그가 그 중 한 권을 손에 들고 표지를 들추어 보니 다년간 알고 싶었던 그 전도자의 초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씌어 있었습니다.
"오! 주여, 저에게 영혼을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만약 그렇지 않으신다면 삶의 보람이 없나이다."
그는 그것을 읽고 자신을 예수께 인도한 은인이 테일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우물은 인생과 관련된 여러 말로 표현 됩니다.
그래서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에는 짤막하면서도 인생의 예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에도 우물이 등장합니다.
어떤 나그네가 메마르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고 목이 마른데, 느닷없이 사자가 나타나서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급한 김에 곁에 있는 작은 우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우물에는 물이 바짝 말라 있었는데, 안에 있는 돌담을 타고 내려가다 보니 그 밑바닥에는 커다란 뱀이 입을 쩍 벌린 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 갈 수도 없고 다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위경에 처한 나그네는 우물 안의 돌담 사이에서 자라난 조그만 관목을 발견하고, 그 가지에 매달리면 잠시는 버틸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갖습니다. 다행히 그 관목 가지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나뭇가지 위를 보니까 검은 쥐와 흰쥐 두 마리가 그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어서 머지않아 연약한 가지는 부러지고 말 지경이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사방을 두러번거리던 나그네는 옆에 있는 나뭇잎에 몇 방울의 꿀이 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그 꿀을 보고 기뻐하여 꿀맛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떨어져서 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우물은 성공에 관해서 함께합니다
한 우물을 파라 하기도 합니다.
옛날 어떤 동네에 우물파는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몇번이고 실패해야 겨우 우물 하나를 팔뿐이었으나 그 사람은 땅을 팔 때 마다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100발 100중으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하는 특별한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간단하지요. 저는 한 번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파내려갑니다. 그러니 파는 곳마다 우물을 만들었지요."
가난한 농부가 부자를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부자는 농부를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거기에 있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채우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물을 길어 항아리에 부었으나 도무지 물이 괴질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속을 들여다보니 밑이 빠져 있었습니다. 농부가 부자를 찾아가서 화를 내자 부자는 그러면 내일 다시 우물가에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농부가 물가에 가니 말짱한 새 항아리에 물을 채워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물을 푸려고 하니, 이번에는 두레박의 밑이 빠져 있었습니다. 농부는 할 수 없이 그것으로 물을 긷기 시작했습니다. 밑 빠진 두레박으로 물이 퍼질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레박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물을 항아리에 받다가 보니, 마침내 저녁 때에는 항아리를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 모양을 본 부자는 빙그레 웃으며, 알겠나? 바로 그것이 내가 재산을 모은 비결이네.
부모가 두 자녀에게 유산으로 밭을 물려 주는데 한 자녀에게는 큰 나무가 있는 밭을 한 자녀에게는 우물이 있는 밭을 물려 주었는데 나무가 있는 밭을 물려 받은 자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쉬기만 하니 농사가 되지 않고 우물이 있는 밭을 물려 받은 자는 더우면 우물물을 길어 목욕하며 열심히 농사를 지으니 농사가 잘 되었다 합니다.
우물은 재산 목로이기도 합니다
[발목고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악사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40년동안의 광야생활을 거쳐 장년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 이었습니다. 이는 열두 정탐꾼 중에 두 사람만 신앙적인 보고를 하여 하나님께 얻은 상급이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악사는 많은 종교적인 감화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과 갖가지 헌신의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오랜 세월 그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교의 방법을 익혔고 자기 아버지이지만 그 생활과 신앙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결혼 상대를 구할 때에도 자기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라면 즉시 결혼을 승락할 정도로 그 아버지를 존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갈렙이 드빌을 쳐서 정복하는 자에게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약속하자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고 악사를 아내로 맞이 하는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는 갈렙의 경솔하고 무모한 결정이었으나 악사가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은 아버지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반응이었습니다. 갈렙이 자기 딸을 두고 한 도성의 함락에 대한 보상의 조건을 삼은 것을 보면 악사는 누구나 남자라면 욕심을 낼만큼 두드러진 처녀였습니다. 그렇게 유리한 입장인데도 자기 선택의 기회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의견을 따른 것이 정말 훌륭한 순종이었습니다. 갈렙의 딸 악사가 출가 할 때에 아버지 갈렙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찾아와서 나귀에서 내려서 청원합니다. 이는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히 함이요 윗사람을 존경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악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자 악사는 내게 복을 주소서 합니다. 복(베라카)은 추상적인 의미뿐 아니라 복과 관련된 선물로 아버지가 딸에게 기원하는 축복의 말보다는 결혼에 대한 축복 또는 결혼 지참금으로 주어지는 물질적인 선물을 가리킵니다. 악사는 구체적인 선물 곧 밭과 더불어 샘물도 요구 합니다. 샘물(꿀로트 마임)은 물(마임)과 샘(꿀로트)이 함께 쓰인 말로서 단 하나의 샘물이 보다는 물이 풍부한 여러 개의 샘 혹은 저수지를 의미합니다. 남방(네게브)은 거의 사막과 같은 곳이어서 물을 풍부하게 공급하는 샘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자들에게 있어 절대 중요한 문제였으며 또한 부의 축적에도 절대적이었습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악사는 현명하게 아비에게 샘물도 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딸 악사의 요구에 갈렙이 윗 샘과 아랫 샘을 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물을 지배하시고 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민 21:16-18]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브엘'(Beer)은'우물', '물웅덩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여 땅을 파게 함으로써 물을 주신 곳입니다. 이 짧은 노래를 흔히 '우물의 노래'(the Song of Well)라 일컫습니다.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명의 샘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스럽게 찬양합니다.
우물 때문에 다투기도 합니다
이삭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유목 생활을 하던 이삭에게 흉년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요, 절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가나안을 떠나 애굽 땅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시하는 땅에 거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가나안의 전경 지대인 그랄에 거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시고 복 주셨습니다. 이 땅에 네가 살면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하여 주고 네게 복을 주겠다는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여 땅에서 농사를 지은 그 해에 이삭은 백 배의 추수를 하였고 복을 주시므로 번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이삭을 만류하시고 가나안에 거하게 하시고 네가 거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에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셨습니다(창26:2-3).
이삭이 너무나 크게 번성하고 풍족하게 복 받음으로 인하여 위협을 느끼고 질투가 일어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사용하는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사는 그랄에서 떠나가라고 협박하였습니다.
(창26:20-22)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26: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복주심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세력이 아비멜렉을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크게 번성하는 것을 관찰한 아비멜렉은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임을 인정하고 자진하여 그랄에서 찾아와 이삭과 동맹을 맺으려 하자 처음에는 옛날 일을 생각해 그를 책망하였으나 나중에는 잔치를 베풀며 환대하였습니다. 아비멜렉과 이삭은 서로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 아비멜렉과 그의 일행 등은 평안히 돌아갔습니다. 이삭이 그들을 보내자마자 이삭의 종이 우물에서 물이 나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줍니다.
우물이 삶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아 늙은 아브라함은 만년에 얻은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얻게 하려고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종을 불렀습니다. 그 늙은 종에게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시킨 다음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이에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늙은 종 엘리에셀은 길을 떠났습니다.그리고 메소보다미아의 나홀의 성밖 우물가에서 늙은 종은 아브라함에게서 당부받은 사명의 완수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린 종은 미처 그 말을 다 마치지 못하여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그때 아리따운 한 처녀가 종이 머물고 있는 우물가에 나타났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이 청하건데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는 요구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물을 마시우게 합니다.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다시 말합니다.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습니다.
낙타는 항상 위에 물을 저장해 두는 덕에 장기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반면 한번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엄청난 양을 마십니다. 따라서 여행 끝에 지친 열마리의 낙타들(10절)이 배불리 마실 수 있을 만큼 구유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리브가가 우물에 몇 십번을 왕래하여야만 했음에도 리브가는 불평 한마디 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중간쯤 하다가 포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의 수고를 계속합니다.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리브가에게 주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그친 것이 아닙니다. 엘리에셀은 리브가의 집으로 따라가 부모들을 만나고 자신이 아브라함의 종임을 밝히고 주인 아브라함이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며느리로 삼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 선히 인도하셨다고 말하며 이제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가부간 결정해 달라고 합니다.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가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하며 리브가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줍니다.
다음날 아침 엘리에셀은 주인에게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리브가의 가족들은 며칠 또는 열흘 후에 가라 하나 종은 여호와께서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주인에게로 돌아가겠다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소녀를 불러 물으리라 하고 불러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하니 가겠다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즉각 순종합니다.
리브가와 여자 종들이 낙타를 타고 갑니다. 낙타에게 물을 먹인다고 고생은 많이 했지만 자기가 물을 먹인 낙타를 타고 신랑 이삭에게로 갑니다.
우리가 인간 낙타에게 영생하는 생수의 물을 먹인다고 고생했지만 그 사랑과 인내가 우리가 천국 갈 때 영광의 수레가 됩니다.
예수님이 교회가 바로 구원의 우물입니다.
[사 12:2-3]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길러 왔다가 구원의 우물되신 에수님을 만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마을로 이 소식을 전하려 달려갑니다. 영적으로 낙타와 같은 심령에게 구원의 우물을 길어 주기 위해 달음 질 하여야 합니다. 물 달라고 울부짖는 낙타인데 신랑 낙타도 있고, 신부 낙타도 있고, 자식 낙타도 있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친정식구들, 이웃 낙타들이 있습니다. 가족 낙타, 친척 낙타, 이웃 낙타, 고통스러운 낙타가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물을 긷기 위하여 우물로 달음질 하며 사랑을 실천합시다.
엘리에셀을 통해 주시는 교훈
창 24장 26~27절 / 지용수목사
길가에서 계란을 몇 판 놓고 팔아도 귀하게 보이는 부인이 있습니다. 엄청난 백화점을 경영하는 경영주라도 초라하게 보이는 인물이 있습니다. 가정부로 살아도 고귀하게 보이는 보배로운 여인이 있는가 하면 가정부를 거느리는 부인이라도 돼지 코에 금 고리같은 형편없는 여인도 있습니다. 경비실에 근무하지만 귀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만 명 사원을 거느리는 경영주라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항해사가 파도를 탓하고, 어리석은 일꾼이 도구나 연장을 탓하고, 어리석은 코치가 선수들을 탓하고, 어리석은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잘못 냈다고 선생님을 탓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탓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상황에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되는 것이 없습니다.
강단에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은 우리 한순복 권사님을 비롯한 꽃꽂이 팀 네 분, 하나님의 딸들이 밤 12시까지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꽃도 귀하고 한순복 권사님도 귀해 보이고 그 팀이 다 귀해 보이는 것입니다.
물건 값은 사람이 매기지만 사람 값은 자기 자신이 매기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일했는데 억울하다. 회사가 나를 몰라주는구나.’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15년간 이 회사를 위해서 이렇게 일했는데 해고시키다니 두고 보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에 필요한 보배라면 왜 해고시키겠습니까? 회사에 득이 안 되는 인물이니 해고시키는 것입니다.
인생은 밭입니다.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종입니다. 당시의 종은 인권도, 자유도 없는, 재산 품목 중 하나입니다. 그런 종이지만 엘리에셀은 주인에게 아들처럼 사랑받고, 모든 종들에게 주인처럼 존경받고, 밖에 나가면 이웃 사람들에게 귀족처럼 대접을 받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전 재산과 종들을 다 맡깁니다. 심지어 하나뿐인 외아들의 배필을 고르는 일도 “자네가 가서 선택해 오게.” 하고 그에게 맡깁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어디에 처해 있든지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귀하게 살면 귀한 대접을 받는 복 있는 사람들이 될 줄 믿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가문을 이어갈, 왕보다 더 귀한 가문의 도련님인 이삭의 아내감을 정하러 갑니다.
그가 메소포타미아 땅 나홀의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얼마나 막막한 일입니까? 그 성의 많은 처녀들 중에 이삭의 부인감이 누구인 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것을 실감나게 설명해 봅시다. 여러분 아들의 며느릿감을 찾으러 대전에 갔다 합시다. 대전에 살아도 며느릿감을 찾기가 어려운데 대전에 가서 하루 이틀 사이에 어디에서 어떻게 며느릿감을 찾겠습니까? 막막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30년을 함께 살아도 알 수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의 마음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도 그 마음을 모르는데 이 처녀를 이삭의 아내로 정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어떻게 자기 주인의 며느릿감을 찾겠습니까?
엘리에셀은 나홀 성 앞의 우물가에 이르러 아기처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여, 제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이제 성 사람들의 딸들이 물을 길러 나올 텐데 제가 어느 아가씨에게 ‘아가씨, 물 좀 마시게 해 주세요.’라고 하겠습니다. 그때 ‘예, 마시소서. 어르신네, 당신의 약대들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아가씨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삭의 아내감인 줄 알겠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집에 은혜 주신 줄을 알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벌써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아가씨가 우물가로 오는 것입니다. 주목해서 보니 물을 긷는 모습이 품위가 있습니다. 물을 다 길어 집으로 가는 아가씨에게 엘리에셀이 말합니다.
“아가씨, 나는 먼 길을 온 나그네라 몹시 목이 마르오. 미안하지만, 내게 물을 줄 수 있겠소?”
“어르신네, 어서 마시소서. 어르신네의 약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
그리고는 아가씨가 뛰어다니며 열 마리의 약대에게 물을 먹입니다. 뛰어다니면서 땀 흘려 일하는 아가씨를 보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되기에 넉넉합니다. 아름답고, 부지런하고, 기품 있고,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가씨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이삭의 아내감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집안사람들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4장 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그러니 아무리 아리땁고 부지런하고 예절 바르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아가씨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집안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이 떨리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아가씨는 뉘 댁의 딸이오?”
“예, 저는 미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
나홀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제가 지난주까지는 이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다가 어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때 엘리에셀이 “야!”라고 외칠 정도로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 아가씨가 아브라함의 친척이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면 소용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두근두근한 가슴으로 “뉘 댁의 딸이오?”라고 물었는데 “저는 미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라고 하니, 세상에! 껑충껑충 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야! 하나님께서 나를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도다.” 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 숙여 경배하고 찬송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고 나를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일생 붙잡고 살 보배로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아무리 앞길이 막막하여도, 캄캄하여도 기도하면 형통하게 된다.”
놀랍습니다. 엘리에셀의 재주로는 나홀 성에서 이삭의 부인감을 정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리시기 위해 바로 공주에게 근질근질한 마음을 일으키시어 목욕하러 나오게 하신 것처럼, 이삭의 아내를 찾게 하시려고 엘리에셀의 기도대로 그 성에서 이삭에게 가장 적합한 딸의 마음에 ‘지금 물 길러 가자.’라는 생각을 주시고 물 길러 가게 하시어 엘리에셀을 만나게 하신 줄 믿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브라함 링컨의 자서전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 어려움 앞에 나는 아무런 아이디어도, 지혜도 없다. 하지만 그 때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떠오르게 하신다.” 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기도하나 찾으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 3절에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50편 15절에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직장 때문에, 아들딸의 교육 때문에, 부부생활의 갈등으로, 사업의 어려움으로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 캄캄하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답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뒤에는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가 있고, 앞은 홍해가 가로막고, 양 옆에는 험한 바위산이 있어 사방으로 에워싸인 이스라엘 백성이 공포의 도가니에서 아우성을 쳤지만 모세는 그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조용히 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방에 길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길이 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네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니 바다가 열려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과 저의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그 길이다.(I am the way.)’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가는 길뿐 아니라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지용수의 길, 여러분의 길, 우리 교회의 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답이 있습니다. 열쇠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근심하다 망하지 말고, 근심 중에서도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모든 괴롬 아니진 자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제가 찬송가 가사를 섞어서 불러 보았습니다.
25,6년 전,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해서 벅찬 가슴으로 목회를 설계하고, 조용한 때에 큰 교회를 섬기시는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제가 양곡교회에 부임해 왔습니다. 지도해 주십시오.”
“지 목사님, 실수했습니다. 양곡교회는 안 되는 교회입니다.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고 철거당하면 교회를 세울 부지도 없습니다. 교인이라고는 청년들과 몇 가정밖에 안 되는데 왜 양곡교회로 왔습니까? 전에 계시던 교회가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왔습니까? 어서 새 목장을 찾아 가십시오.”
그때 우리 교회의 최고 십일조가 5만 원이었고, 저도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월말이 되면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살 돈이 없어 이 옷 저 옷마다 호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러다 오천 원짜리 하나라도 발견하면 주님을 만난 듯 기뻐했습니다. 그런 형편에서도 제가 비싼 점심까지 사드렸는데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참 착잡했습니다. 제가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양곡교회에 온 것이 잘못이랍니다. 양곡교회는 누가 와서 해도 안 된답니다. 어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랍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제 가슴에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했지만 나사렛에서 나오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세주가 되신 것처럼 양곡교회가 세계의 등불이 되리라. 양곡교회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이런 확신이 오고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교회를 5만, 10만 제단이 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세계를 구원하는 큰 방주가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막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했습니다. 철거지역에 있는 하꼬방 교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철거당하기 전에 교회를 지으려고 신촌의 주택지 두 필지를 사려 하니 시청에서 종교부지가 아니라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동사무소가 서 있는 땅도, 양곡초등학교 앞의 작은 땅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양곡동에는 종교 부지가 없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터는 지금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이 땅뿐인데, 이 땅은 도지사도, 건설부 장관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청와대에서 허락해 주어야만 되는 땅이라며 도지사가 세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저는 그 막막한 상황에서도 7년 가까이 새벽기도를 마치면 이 땅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팽 장로님도 때때로 이곳에 오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때가 되니 이 땅이 종교 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우리 교회를 지었습니다. 여기에 교회를 지을 때 얼마나 기쁜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설계할 때 제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정문을 앞쪽으로 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앞이 남의 땅이어서 문을 옆쪽에 내야 하는데 자꾸 앞으로 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교회 앞은 남의 땅입니다.’
‘그래도 정문을 앞에 내라.’
‘남의 땅입니다.’
‘문을 앞쪽에 내라.’
이 교회를 설계하신 분은 대단한 분입니다. 광림교회와 온누리교회도 그분이 설계하셨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정문을 옆에 내지 말고 앞에 내라고 했더니 “목사님, 교회 앞은 남의 땅입니다. 그러니 앞에 정문을 내도 사용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우겨서 그렇게 설계를 했습니다. 얼마 후 교회 앞의 그 땅이 우리 땅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더 지난 다음에는 그 앞의 땅도 우리 땅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성전과 비디오실을 합하면 이천 명이 앉을 수 있는데 새 성전을 지으면 만 명이 앉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큰 교회는 세계에서도 몇 교회뿐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 교회와 프레드릭 프라이스 목사님 교회, 그리고 디엘 무디 목사님 기념 교회 정도입니다. 예전 반월의 우리 교회로서는 이런 교회가 지어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새로 짓게 되는 대 성전은 교인이 넘치면 배로 증축할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 드리세요」
어려워도 기도해야 됩니다. 잘되어도 기도해야 됩니다. 잘될 때 기도하면 더 잘되고, 어려울 때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콘라드 힐튼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하나님! 하나님 영광을 위해 큰 재벌이 되고 싶어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아, 네가 가진 것이 없어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기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호텔을 세 개나 가진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호텔 세 개를 가진 성공자가 되어서 기쁜 것이 아니다. 네가 기도하고 있으니 기쁘다.”
그런데 경제 불황의 파도가 밀려와 그의 호텔도 다 망했습니다. 그의 동업자 중 한 사람은 호텔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한 사람은 관자놀이를 권총으로 쏴서 자살했습니다. 재기할 길이라고는 전혀 없는 힐튼에게 마귀가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 간단하다. 한 방만 쏘면 된다. 아니면 호텔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된다. 그러면 몇 초 후에 모든 것이 끝난다. 빨리 쏘아라. 아니면 빨리 뛰어내려라.’라고 충동했습니다.
‘그래, 끝내자.’라고 마음을 먹는데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기도하면 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권총을 내려놓으며 “하나님!” 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재기하게 하셔서 그는 세계에 이백오십 개의 호텔을 둔 호텔 왕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 형통한 길을 가고 계십니까? 감사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해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기도하니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 다음 중요한 교훈은, 응답받은 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야! 눈부시게 아름답고 부지런하고 품위 있고 따뜻한 가슴의 아가씨! 게다가 아브라함 동생의 후손! 내 주인 아브라함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다 주셨구나. 기도한 대로 다 주셨구나.’ 하며 바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성실을 끊임없이 주시는군요. 나를 내 주인의 동생 집으로 인도하셨군요. 할렐루야!”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와 계속 거래를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후로 계속 형통했습니다.
그 아가씨의 집에서 귀족 대우를 받고 이삭의 아내가 되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아브라함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과연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구나. 형통하구나.” 하며 좋아하고, 이삭도 “엘리에셀이 최고예요. 역시 최고예요.”라며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잘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고침을 받았지만 아홉은 다 제 갈 길로 가고 한 사람만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홉과는 거래를 끊으시고 감사하러 온 그 한 사람과는 계속해서 거래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거래가 끊긴 아홉은 망했고, 하나님과 계속 거래한 한 사람은 구원 받고 복 받은 줄로 믿습니다.
시편 73편 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잘될 때 더 주님 가까이로 다가서야 합니다. 아들딸이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 막 매달리다가 합격하고 나면 하나님은 멀리 두고 “우리 딸이 열심히 해서 합격했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너하고는 이제 거래하지 않는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과 거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거래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잘 되어도 하나님께 달라붙고, 잘 안 되어도 하나님께 달라붙어야 됩니다. 안 될 때 더 달라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 아들이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서울대의 가장 낮은 과와 연세대 상대에 원서를 냈습니다. 우리 노 장로님 아들과 똑같이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두 대학에 다 떨어지고 장로님 아들은 연세대 상대에 붙었습니다. 장로님 아들도 공부를 잘했지만 제 아들도 그에 못지않게 잘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수석 합격까지 기대했는데 두 대학에 다 떨어진 것입니다. 그때 제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장로님 기도발이 더 세구나. 8시간 동안 손을 들고 기도했는데 괜히 팔만 아팠네. 하나님, 제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나요? 이게 뭡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감사하라.’는 말씀 때문에 ‘아들이 두 대학에 다 떨어져서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가출을 했습니다. 이틀 뒤에 들어온 아들이 “아빠,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 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들어왔어요.”라고 했습니다. 날씨가 추운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 달간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아들이 “아빠, 작년에는 주일에도 공부했어요. 잘못했어요. 또 떨어진다 해도 주일에는 이제 공부하지 않을 게요.”라고 했습니다. 그 일로 아들의 신앙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집중해서 공부하고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푹 쉬더니 서울대 상위권 학과에 수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잘 되어도 주께 나가고, 안 되어도 주께 나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욥은 하루아침에 아들 일곱과 딸 셋,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여러분, 좀 가졌다고 자만하지 마세요. 하루아침에 끝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S사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욥은 동방 최고의 재벌인데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 하고 부시면 누구나 그 날로 끝날 수 있습니다. 욥이 간음을 했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악을 행했나요? 의롭게 살고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도 망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됐다. 네 자세가 됐다.” 하시며 갑절의 복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잘 되어도, 못 되어도 더 주께 가까이 나아가자.”
엘리에셀은 잘 되니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십대 때보다 이십 대에 더 주님 가까이, 이십 대보다 사십 대에 더 주님 가까이, 오십 대보다 육십 대에 더 주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날이 갈수록 더 가까이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사는 한 노인이 서울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야, 오늘 네 엄마하고 이혼할 거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이혼이라니요?”
“네 엄마하고는 더 이상 못 살겠다. 지긋지긋하다.”
“아버지, 이혼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야, 끝난 얘기다. 이제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 대전의 네 누나에게는 네가 알려 주어라.”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서울의 아들이 대전의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누나! 큰일 났어. 아버지가 이혼하신대.”
“뭐라고? 말도 안 돼.”
대전의 딸이 당장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이혼은 안 돼요.”
“아니야, 이혼한다.”
“절대 안 돼요.”
“아니야, 이혼한다.”
“제가 지금 달려갈 테니 그 때까지 그냥 계세요. 이혼하시면 절대 안 돼요.”
전화를 끊은 후 노인이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아이들이 올 거요.”
노인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생일날 아들딸을 보는 것입니다. 명절에 아들딸을 보는 것입니다. 한 해를 살면서 가장 기쁜 날이 아들딸이 찾아오는 생일과 명절입니다. 그런데 아들딸이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으니 이혼 소동을 벌여 억지로라도 오게 한 것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드니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손자가 더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미국에 있어서 보지 못했는데 지난 목요일에 그 손자가 서울에 왔답니다. 그러면 당장 저를 보러 올 줄 알았는데 크리스마스 때나 온답니다. 저도 이혼 소동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못난 자식도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막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얼굴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목마르게 우리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도, 환난을 당해도 주님께 나와 “주님, 주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앞길이 아무리 막막하고 캄캄하고 불안해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결국 형통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더 잘 되게 하실 줄로 확신합니다.
리브가를 통해 주시는 교훈
창 24장 15~25절 / 지용수목사
지난번 미국 시애틀 교회 성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입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미국 해군의 중심 기지인 타코마로 안내해 정박 중인 항공모함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 항공모함에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장착한 전투기가 50대나 실려 있고, 그것이 움직일 때는 엄청난 군사 장비와 군함들과 해군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그 위력이 엄청나다고 하셨습니다. 그 항공모함이 어느 지역을 지나게 되면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은 공포를 느끼게 되고 미국의 우방국들은 힘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주여! 우리 양곡교회가 영적인 항공모함이 되게 하소서. 우리 양곡교회가 방향을 잡고 나아가면 그 앞에서 마귀들은 덜덜 떨며 도망가고, 약한 교회는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 버스가 지나가면 시골 교회들은 힘을 얻습니다. 그러니 우리 교회가 십만 이십만 삼십만 제단이 되고 영적으로 강해져 온 성도가 한 몸이 되어 사역을 펼치면 약한 교회가 강하게 되고 악한 세력은 물러가고 민족이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양곡교회가 위대한 영적 항공모함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라고 했지만 우리 주님께서 나사렛에서 나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주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창원에서, 경남에서 무슨 위대한 것이 나오겠느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우리 양곡교회가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교회를 일으키는 영적인 항공모함 같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꿈을 갖고 함께 달려갑시다.
신앙생활은 아주 단순합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한 원칙이 단순한 것처럼 신앙생활도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는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하고 훈련받고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미국 국민건강 특별위원회가 의회에 보고한 보고서에 의하면 암, 고혈압, 동맥경화, 간질환 등 모든 현대병은 잘못된 식습관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식사만 잘해도 그런 병에 걸리지 않고 혹 병이 들게 되어도 식사를 잘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식사법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 땅에서 나는 음식,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나는 것을 잘 먹어야 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식인종도 ‘신토불이’라며 식인종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자연 그대로 먹어야 합니다. 감자도 껍질째 먹는 것이 좋고 사과도 껍질째 먹는 것이 좋습니다. 혹 요리를 하더라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즐겁게 먹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는 싱겁게 먹어야 합니다. “이것 싱겁잖아!”라며 부인에게 신경질을 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몸이 요구하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애기를 가지면 무엇이 먹고 싶습니까? 신 것이 먹고 싶습니다. 그것이 몸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원칙에 따라 음식만 잘 먹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쉽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잘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통해 메뉴를 정하여 시간 시간 들려주십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용수 목사의 말로 받으면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용수 목사를 통해 내게 말씀하신다.’ 하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말씀을 받아야 그 말씀이 복이 되고 힘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흐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으면 능력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아멘! 아멘!’ 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게 되고 우리가 그 말씀으로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주일 낮, 주일 밤, 삼일 밤, 새벽예배, 구역예배를 드리는 일에는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잘 받고 그대로 순종하면 승리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늘의 양식을 받습니다. 이 말씀을 잘 받을 때 우리가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 엘리에셀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아리따운 소녀가 물을 길러 우물가로 옵니다. 리브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빛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리브가가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름다운 리브가가 우물에서 물 긷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 저 아가씨가 우리 도련님의 부인 감으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여인인가 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엘리에셀은 자기 주인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열 왕이 탐내는 탁월한 미인이었기 때문에 여자를 볼 줄 알았습니다. 열 왕이 탐낼 정도로 잘 생긴 여주인을 평생 모시고 살았으니 웬만한 여자는 엘리에셀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보는 순간 감이 왔던 것입니다.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 물을 긷는 리브가의 모습도 기품 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물동이를 갖고 집으로 가는 리브가에게 달려갑니다.
“아가씨, 아가씨! 내가 먼 길을 와서 목이 마른데 그 물을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왜 이러나?’ 하고 ‘쌀쌀맞게 “저 바빠요.”라며 그냥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리브가는 “예, 어르신. 어서 물을 드세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르신의 약대들에게도 물을 배불리 먹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낙타는 한 번 물을 마시면 보름간 안 마셔도 될 만큼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마시는 동물입니다. 소녀의 몸으로 그렇게 물을 먹는 낙타를 열 마리나 먹이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20절에 보면 리브가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물을 길어 낙타에게 먹입니다. 엘리에셀이 보니 뛰어다니며 물을 먹이는 모습도 기품이 있고 볼수록 더 좋아 그녀가 도련님의 배필이 될 여인이라는 감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그래서 아가씨에게 금 고리와 금팔찌를 선물하면서 묻습니다.
“아가씨는 뉘 댁의 딸인가요? 아가씨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습니까?”
“예, 어르신. 저는 미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짚과 보리가 많고 유숙할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그 집으로 가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혼사를 결정하게 됩니다. 리브가는 열 왕이 부러워하는 아브라함 가문의 며느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리브가에게서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어디에 가도 깨달음을 얻고 누구에게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전에 말씀 드린 일이 있습니다만 제가 목회를 더욱 열심히 하기로 결단하는 마음의 불이 붙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던 때입니다.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화장품 광고 모델도 했던 아주 사나이답게 생긴 찰스 브론슨이라는 배우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그가 살인 청부업자로 나왔습니다. 그가 30만 불을 받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따라다니면서 계속 사진을 찍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여야 할 사람이 식당에 가고 친구를 만날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계속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구슬을 손 안에 넣고 굴리면서 궁리합니다. ‘어디서 죽일까? 어떻게 죽일까? 언제 죽일까? 어떻게 언제 어디서 죽여야 감쪽같이 죽일 수 있을까?’ 하고 새벽 3시 4시가 되도록 구슬을 굴리며 고민합니다. 그러다 그가 서재에 있을 때 죽이기로 합니다. 그래서 그가 외출한 다음 그 서재에 들어가 책꽂이에 폭발물을 감춰 놓고 맞은편 빌딩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다 그가 서재에 들어오자 폭발물을 총으로 쏘아 명중시킵니다. 결국 서재는 불덩어리가 되고 그 사람이 죽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서재에도, 제 방에도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늘 조심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도 새벽 3시 4시까지 그렇게 연구하는데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가 이렇게 편하게 목회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그 이후로 ‘하나님, 어떻게 설교해야 사람을 구원합니까? 어떻게 목회해야 합니까?’ 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고 연구하며 오늘까지 달려오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인 살인 청부업자에게도 이렇게 배울 점이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축복받은 여인 리브가에게 얼마나 배울 것이 많겠습니까?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리브가를 통해 좋은 교훈을 주실 줄 믿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의 부인이 될 자격이 넉넉했습니다. 이삭 부인의 자리는 어느 나라 왕비보다 더 귀한 자리입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다 주님의 신부들입니다. 할렐루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신부는 이삭의 부인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에클레시아는 여성 명사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주님의 신부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신부로서 자격이 넘치는 오늘의 리브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리브가는 외모가 기막히게 아름다웠습니다.
16절에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외모도 잘 가꾸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사무엘이 키도 크고 잘생긴 엘리압이 임금이 될 인물인 줄 알고 기름을 부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아, 그 사람의 키와 용모를 보지 말아라.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는 그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우리의 외모를 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외모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잠언 31장 10절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진주보다 더 귀한 여인은 자신의 외모를 아름답게 가꿉니다. 22절에 보면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숙한 여인은 세마포와 같은 귀하고 품위 있는 옷, 자주색의 화려한 옷을 입습니다. 아무 의자에나 앉지 않고 꽃같이 아름다운 의자에 앉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절에도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 9장 8절에는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남자도 깨끗한 옷을 입고 향수를 바르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6절에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Joseph was well-built and handsome)』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셉은 체격이 좋고 단정한 신사였습니다. 그러니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비서처럼 하라」라는 책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고 우리 직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책을 읽고 리포트를 내라고 했습니다. 한국 유명회사의 CEO들의 태반이 비서 출신입니다. 그 책에 보면 비서의 특징 중 하나는 여자 비서든 남자 비서든 옷을 단정히 입는다는 것입니다. 비서는 자세가 다릅니다.
따라 합시다.
“옷만 잘 입어도 성공한다.”
옷은 인격의 표현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옷을 편하게 입는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은 제 딸이 미국에서 돌아올 때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제 아내와 제가 열을 받아서 “그게 옷이냐?”라고 소리를 쳤더니 “미국에서는 다 이렇게 입는 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딸아이가 미국의 서민들만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을 이끌어가는 상류사회의 사람들은 언제나 정장을 입습니다. 교회에 갈 때도 정장을 하고 어디를 가든지 옷을 반듯하게 입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올 때 옷을 잘 갖춰 입고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와! 교인들, 참 매력 있네.’라고 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모두 거지 같은 모습으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 누가 예수님을 믿고 싶겠습니까? 사람들은 우리 외모를 보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잡지를 보았는데 거기에 한 부인의 후회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너무 착하고 어진 남편을 친정아버지같이, 오빠같이 여기며 편하게 살다보니 체중이 250파운드(약 113Kg)나 되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가출을 했답니다. 집을 나가면서 남긴 편지에 ‘여보, 정말 미안하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살 수가 없어요. 당신을 향한 사랑의 불이 이미 꺼졌소. 아무리 해도 불이 다시 붙지 않는구려.’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남편이 착하다고 편하게 살아 몸을 그렇게 만드는 부인의 모습에 남편은 몸서리가 쳐졌던 것입니다. 아무리 남편이 착하고 어질어도 우리는 긴장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 몸을 잘 관리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어야합니다. 잘 때도 청바지 같은 옷을 입고 침대에 눕지 말고 경우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외모도 굉장히 중하니 우리는 몸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화장을 해도 하나님의 딸답게, 머리를 깎아도 하나님의 아들답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품위 있게 살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귀족은 귀족답게 옷을 입고 처신을 해야 하듯 예수님의 신부는 예수님의 신부답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외모보다 속사람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낯선 사람이 “아가씨, 물 좀 마십시다.”라고 할 때 “네, 어르신. 어서 물을 드세요. 어르신의 약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묵을 곳이 있느냐고 물을 때도 “그럼요, 저희 집에는 유숙할 곳이 많이 있답니다.”라고 했습니다. 리브가의 대답이 얼마나 친절합니까? 로마의 철인 세네카는 “인간이 있는 곳에는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쌀쌀맞게 구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난 체하고 고개 쳐드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사람들도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리브가가 “할아버지, 저 바빠요.”라고 대답했다면 그는 이삭의 부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로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여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친절히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그 빛나는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친절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오시는 목사님들께 최선을 다해 대접합니다. 지금 저희가 교회를 짓는 중이라 10원이라도 아껴 써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번에 서울에서 집회를 섬길 때도 저는 첫날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고구마만 먹고 버티면서 십 원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시는 강사님들께도 양해를 구하고 사례비를 적게 드릴 수 있겠지만 저는 ‘아니지, 그래도 손님 대접을 잘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접합니다. 저희 교회에 오셨던 손님들의 마음이 훈훈해지시도록 노력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아름다움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외모는 아무리 가꾸어 보아도 손쓰지 못할 날이 오고 맙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제 어머니 얼굴이 달덩이같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구십이 가까우시니 그 곱던 얼굴에 주름이 얼마나 많이 지셨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보는 제 마음이 좀 그래서 지난번에 주름살이 펴진다는 6만 원짜리 크림을 하나 사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그것을 밤에 듬뿍 바르고 주무시더니 아침에 일어나셔서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좋아진들 구십 노인의 얼굴이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외모의 아름다움은 잘 익은 과일 같다고 했습니다. 사과가 잘 익으면 빨갛고 예쁘지만 영원히 예쁜 사과는 없고 아무리 예쁜 사과도 곧 썩습니다. 오늘 내가 예쁘고 모양이 좋다고 뽐내도 얼마 뒤에는 손 댈 수 없는 날이 옵니다. 그것이 우리의 외모입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 여자를 공에 비유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십대 여자들은 축구공과 같답니다. 여러 사람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랍니다. 이십대는 농구공과 같답니다. 따라다니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다 삼십대가 되면 골프공이 된답니다. 한 사람만 따라다니기 때문이랍니다. 사십대가 되면 탁구공이 되어 서로 받지 않으려 하고, 오십대가 되면 피구공이 되어 다 피한답니다. 이것이 여자의 일생이랍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습니다. 꽃은 십 일이면 떨어집니다. 요셉이 잘 생긴 사람이었지만 죽을 때는 백십 세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리브가가 아무리 예쁘다 한들 세상 떠날 때는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계속해서 아름답게 가꿀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리브가는 친절할 뿐 아니라 정결했습니다.
16절에 『지금까지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처녀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예쁜 리브가에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접근했겠습니까? 사춘기를 지나는 소녀들의 마음은 다 같은데, 마음이 울렁울렁하는 그 사춘기에 얼마나 많은 남자들의 유혹이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리브가는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리브가가 이 남자 저 남자를 품고 지냈으면 하나님께서 그녀를 이삭의 부인이 되게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유혹 많은 세상에서도 정결을 지킨 리브가를 하나님께서 점찍어 복 받은 이삭의 부인이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신앙의 정결을 지켜야 됩니다. 잠언 11장 22절에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절세미인, 절세 미남도 절개를 지키지 않으면 돼지 코에 걸린 금 고리처럼 사람들에게 천대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놀라운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절개를 지키지 못하니 눈이 뽑히고 초라한 신세가 되어 망신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오후에 극장에 가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노래방에 가서 춤추는 성도를 저는 잡탕 성도로 봅니다. 우리는 거룩한 생활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의 피로만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신부이니 처신을 잘 해야 합니다. 주님의 신부답게 갈 곳에 가야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는 가지 않아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구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으로는 이렇게 빛나게, 청결하게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어 영혼은 새 피조물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서는 싸움이 늘 계속됩니다. 우리 속에는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본능이 늘 함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 17절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합시다.
“내 마음은 전쟁터다.”
성령의 욕구는 ‘거룩해라. 귀하게 살아라.’라고 하지만, 본능의 욕구는 ‘되는 대로 막살아라. 방탕해라.’라고 합니다. 이 두 욕구가 우리 안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성령을 따르면 주님처럼 되고, 본능을 따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짐승처럼 되는 것입니다. 본능의 열매는 분명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에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 열매는 첫째가 음란입니다. 그 다음은 더러움입니다. 육신을 따라 살면 음란하게 되고 더럽게 살게 되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당을 짓고 패거리를 만들고 싸움하기를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방탕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오직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우리는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짐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는 거룩해지고 주님과 비슷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사라도, 교인이라도 육신을 따라 살면 어쩔 수 없이 짐승 같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따라 살아서 우리의 속사람이 주님처럼 아름답게 되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부지런했습니다.
20절에 보면 리브가가 뛰어다니면서 물을 긷는 모습이 나옵니다. 게으른 여인은 좋은 아내가 될 수 없고, 게으른 사람은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리브가는 부지런하니 이삭의 부인이 된 것입니다. 잠언 31장 13절에 진주보다 값진 현숙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일하며.”
주님의 신부가 된 여러분과 저는 부지런해야 됩니다. 주님의 신부가 된 학생은 목숨 걸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됩니다. LA 한 장로님의 아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한 달에 월급을 5억씩 받는 탁월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천만 원도 못 받는 변호사도 많은데 그 장로님의 아들은 한 달에 5억씩 버는 변호사가 된 것입니다. 성공은 부지런함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회사원으로 성공하고 싶으면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근무 시간에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나?’라며 계속 시계만 보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과장, 차장, 부장, 이사로 계속해서 승진하는 사람들은 일에 집중하느라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부지런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양극화를 없애려고 하지만 그러다 망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많은 보상을 받고 게으른 사람은 조금만 받아야지, 농땡이 친 사람과 부지런히 일한 사람에게 똑같은 집, 똑같은 자동차를 주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그러면 나라가 망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병들거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도와서 사회복지를 이뤄 나가면 되지, 게으른 사람이나 부지런한 사람이나 똑같이 살도록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죽도록(to the point of death)”
죽음의 시점까지 우리는 일해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사업해야 합니다.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망하지만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사람, 바빠서 손톱 깎을 시간도 없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하고 특별히 주님의 신부인 우리는 교회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서울의 한 교회는 차량 안내를 해야 장로님으로 세운다고 합니다. 십일조를 7억, 8억 해도 차량 안내를 하지 않으면 장로로 세워주지 않는답니다. 이명박 장로님도 교회에서 수요일, 주일 밤에 비를 맞으며 차량안내를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량안내나 설거지 중 하나를 해야 항존직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해야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은 자기에게 복이 됩니다. 할렐루야!
한국 연금공단의 조사에 의하면 중령 이상의 퇴역 군인들에게 연금을 일시불로 주는 것보다 매달 나누어 주는 것이 국가에 유익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입니까? 제대한 지 10년 안에 퇴역 장군의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군인들이 왜 제대한 지 10년 안에 죽겠습니까? 제대하니 긴장이 풀리고 손이 풀리니 건강도 풀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긴장이 풀리면 죽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장군들은 이 통계와는 달리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들에게는 교회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새벽기도에 가려고 긴장해서 살고 교회 일을 하느라 바빠서 손이 풀리지 않으니 장수한 것입니다. 특히 새벽기도는 긴장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새벽에 항존직분자들의 출석을 부를까 합니다. 이름은 안수집사이고 권사인데 새벽기도도 안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영국 격언에 새벽은 황금이 굴러오는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성도도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자신의 일에 부지런하고, 특별히 교회 일에 부지런할 수 있기 바랍니다.
리브가는 외모가 아름답고 내면도 아름답고 부지런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신부가 될 자격이 넉넉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우리 주님의 신부가 될 자격이 넘치는 아름답고 귀하고 부지런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