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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월 17일 아침.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대학동창들이 라오스 여행에 나섰다.
10년 전,
태국으로 단체관광을 다녀 온지 10년 만의 동행이었다.
1년에 몇 번씩 만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태국 여행 때보다 별로 늙어보이지 않는데
정작 카메라에 촬영된 내 모습만 그때에 비해 확실히 늙수그레해 보인다.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모여 아침 8시 경 출국수속을 마쳤다.
신사장의 주선으로 우리 네 명은 왕복 비즈니스 석을 배정받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나는 약간의 불안을 느낀다.
지정된 활주로에 들어선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전 속력으로 동체를 가속시킨 다음
앞바퀴가 들리고 조금 있다 뒷바퀴마저 지면에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기체는 60도의 각도로 공중을 향해 솟아오른다.
창밖에 비치는 도로와 건물 그리고 산하가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지고 이윽고 기체가
양탄자처럼 깔린 구름 위를 스노우보드같이 내달릴 때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편이다.
새벽 잠을 설쳤을텐데도 신사장은 독서에 몰입하고 있다.
30대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애들을 모두 미국으로 보낸 훌륭한 가장인 그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그래서 여행은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돕는가보다.
그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을 빌려 봤는데 그중 ‘옥수수와 나’라는 단편은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재주가 엿보여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소설 속에서 야구에서 볼이 휘어져 나가듯, 등장인물의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고,
우회적이라고 해서 붙인 ‘스크루 볼’코미디라는 작가의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두 번의 기내식이 제공되고 난 후 승무원은 비행기 착륙을 알린다.
이륙 후 꼬박 다섯 시간이 지난 뒤였다.
우리나라 9월의 날씨같은 라오스 공항은 아주 아담했다.
입국 수속하는 직원들의 복장이 모두가 군복이어서 마치 오래전 방문했던
금강산 출입국 신고처에 있었던 북한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이 나라가 공산국가였구나.
하지만
최근 시장경제 원칙을 받아들여서인지 자유와 활기가 넘치는 도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점심을 든 후 우리는 시내 관광에 나섰다.
프랑스처럼 여기에도 개선문이 있었는데 내부의 층층마다에서는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국교가 불교이기 때문에 첫날 관광은 몇 개의 사원들을 방문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1월 18일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국내선 비행기를 통해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쾅시폭포로 가기위해서는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다.
룸메이트가 된 임교수는 잠을 잘못 잤는지 한쪽 다리를 절면서 걸어서 신경이 쓰인다.
그런 불편한 몸상태에서도 연신 친구들을 위해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이런 몸에 배인 배려심이 그를 오늘의 대학교수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중간에 산속에서 한 여인이 땔감으로 쓸 무거운 나무토막들을 메고 내려온다.
카메라를 여인에게 향하니까 고단한 삶속에서도 미소를 지어준다.
순박한 사람...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 사는 모습들이 이렇듯 다르구나.
과연 인생이란 어떤 의미의 모습을 남기는 것일까.
자취를 남기는 흔적인가, 조용히 스러져 가는 망각인가.
쾅시 폭포는 신비스러웠다.
쾅시 남똑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나라 말로 ‘남’은 ‘물’이고 ‘똑’은 ‘떨어진다’란 뜻으로
남똑은 폭포를 의미했다.
4, 5개의 꺾어진 수직 관절로 연결된 폭포는 물안개를 피우면서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아래 에메랄드 빛 연못은 계속 흘러가면서 수 십개의 중간 연못을 만들어 낸다.
석회질 암반으로 인해 물의 빛깔이 이렇게 곱다고 한다.
폭포 아래 반달 가슴곰 우리가 있는데 그곳 구멍가게의 딸이 말타듯 개를 타고있는 모습
또다른 방문처 푸시산은 일몰 때문에 유명하단다.
아니나 다를까.
산 정상에는 일몰 장면을 촬영하려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는데 마치 인종전시장과 같았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각기 다른 언어로 속삭이면서 이들 모두는 일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을 끝낸 후 이 도시의 궁전같은 식당에서 이십여 명의 남녀 무희들이 나와 공연하는
전통 무용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토지의 가격이 저렴하고 인건비도 낮으니까 이런 건물에서의 저런 공연이 가능하겠지...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1월 19일
라오스 공양의식인 탁밧 참관을 위해 우리는 새벽부터 서둘렀다.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사람들이 한 줄로 무릎을 꿇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들 앞에는 밥이나 과자같은 음식물들이 놓여져 있었으며 모두들 모자를 벗은 채
경건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저 먼 곳에서 주황색 법의를 걸친 일행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스님들은 둥그런 통들을 옆에 낀 채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 곁을 지나가면
무릎꿇은 사람들이 그 통안에다 준비한 음식물들을 넣어주고는 합장을 한다.
이런 음식 공양을 이 사람들은 탁밧이라고 불렀다.
예전 한국의 스님들은 곡식 자루를 어깨에 맨 채 마을의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쌀 한줌씩을
얻어 드셨다는데 이 나라 스님들은 굽신거림 없이 도도하게 그냥 지나기만 하면 신도들이
음식물을 제공하고 있으니 우리보다 더 존경과 대우를 받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스님들의 행렬이 끝날 무렵
우리는 루앙프라방 아침 재래시장 관광에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은 토속음식 재료와 온갖 야채와 과일들이 넘쳐났다.
여기 귤은 우리나라 제주도의 한라봉처럼 당도가 높았다.
갈증이 날 때면 우리는 음료수 보다는 코코넛 과즙으로 목을 축였다.
특히 두리안은 내가 좋아하는 열대과일이다.
중국에서 한국 돈으로 6.000원하던 두리안을 여기는 2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껍질을 까면 마늘쪽 같은 알맹이가 달콤한 망고스틴의 값도 저렴했다.
사탕수수는 그냥 잘라 먹어도 진한 단물이 나온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는 하루종일 버스로 해발 1000m가 훨씬 넘는 산맥을 오르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차창밖에는 진귀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산악지대의 도로변에 무수히 많은 야생 바나나 나무가 열매를 달고 있었으며
고지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빗자루용으로 생각되는 작은 갈대를 채집해서
손질하고 있었다.
산간 시골사람들은 이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보였다.
해발 1600m지점에 위치한 푸비양파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쉬었다.
여기는 아직도 화전(火田)이 성행해서 산아래에서는 연기가 자욱하다.
건너편 보이는 산봉우리 위로 화산의 용암 분출처럼 한점 구름이 머물고 있다.
저 구름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우리의 허망한 인생처럼...
식당 앞에 병아리들이 노닐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나라의 개들이다. 닭이나 소 같은 가축들에게는 일체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예로부터 집에서 함께 기르는 가축들에게 위협을 하는 개들은
도태시켜왔기 때문에 개들의 성격이 그렇게 순화되었을 것이리라.
고개를 몇 구비나 넘었을까.
저녁때가 돼서야 평지에 다다르면서 20여명의 관광객을 태운 채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던
버스의 엔진도 겨우 안정을 되찾은 듯 했다.
도로 주변에는 이따금 가족단위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고 주인도 없이 아침에 집을 나서서 풀을 뜯던 소 무리들이 어슬렁거리며 알아서 집으로 퇴근(?)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이 나라 농민들은 소에게 사료를 줄 돈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한다.
년중 돋아난 풀이 지천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버스 여행 끝에 방비앵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해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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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관광 4일 째.
아침 식사는 방비앵의 호텔 로비 2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했는데 옥상처럼 사방이 트여서인지
무척 싸늘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우리들이 이정도 한기를 느낀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떨지 짐작이 되었다.
인근에 있는 몬도가네 아침시장을 둘러봤다.
여러 식재료와 함께 특이한 시장이름처럼 거기에는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 먹거리들도 많이
있었다. 쥐고기, 다람쥐, 고슴도치과에 속하는 동물, 야생 산양, 큰 코뿔새 등...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른 그것들을 치운다.
포획된 동물들을 볼 때 후진성을 나타내는 밀렵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 마음이 아팠다.
밀렵한 호저(고슴도치) 류의 날카로운 가시를 뽑아 보여준다.
금방 잡았는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산양과 거의 같은 종의 야생 산양의 눈동자가 섬뜩하다.
시장을 둘러본 뒤 우리는 탐남동굴로 이동했다. 우선 점심을 들었는데 닭고기와 파인애플을
꼬치에 꿰어 구워낸 것에 밥과 빵을 함께 제공받았다.
쏭강 지류에 있는 탐(동굴) 남(물) 즉, 물 동굴은 물에 반쯤 잠겨있어 튜브를 타고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수심이 깊지 않아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약간 추위를 느껴야 했다.
헤드랜턴을 켠 채 밧줄을 잡고 이동하는 동굴 안쪽에는 기이한 모양의 종유석들이 많았다.
동굴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그야말로 기러기 아빠로 고생은 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최사장은 자기 보따리를 비서에게 넘기듯 현지인 청년에게 주니까
그가 얼른 받아 든다.
나중에 20.000킵(3000원)을 손에 쥐어 주었는데 매우 고마워했다.
이곳 천연 동굴과 그것을 활용한 이벤트는 너무도 독특해서
참으로 괜찮은 이런 관광자원이 탐이 났다.
오후의 일정은 빡빡했다. 카야킹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봉고트럭을 개조한 차량에 탑승했다.
현지인들은 일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차량 뒷부분에 매달려 오는 것이었다.
한 술 더 뜬다고 해야하나. 카약을 실은 채 뒤따라오는 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약 위에도 사람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저들이 안쓰러웠다.
1시간 가까이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카야킹은 편안했다.
우리나라의 한탄강이나 내린천에서 만큼의 급격한 쏠림은 없었지만 강변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가로움을 누리기에는 충분했다.
강물에 몸을 담근 채 투망을 치거나 다슬기를 줍는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 가이드를 설득해서 들린 휴양지 블루라곤.
푸른 연못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여기에도 유럽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심 5m를 넘는 물속을 향해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 중 최사장이 먼저 나무에 올랐다.
늘 솔선수범하는 진실한 친구가 이번에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막상 오르긴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지 나무위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윗쪽 나무에서 서양 젊은이가 뛸거냐, 안뛸거냐고 다그치니까 하는 수 없이 뛰어 내린다.
나도 용기를 내 보았다.
나 역시 나무위에 올라서서 뛰어드는 순간 몸이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와 손을 모아 사선을 그으며 입수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란 말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젊은 서양 친구들도 폼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
두어번 다이빙을 하고나니 왠지 보람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현지인들이 맥주 한잔을 권한다. 금융업에 종사한다는 이들과 한참동안 담소를 나눴다.
저녁 식사후 시내 나들이를 했다.
외국인들이 카페에서 맥주 한잔의 낭만을 즐기고 어떤이들은 맛사지를 받기도 한다.
한국 식당에 있는 원숭이는 자기를 예뻐하자 존경의 표시로 털고르기를 해주고 있다.
시내 관광 후 호텔로 가기 위해 톡톡이(3륜 택시)를 불렀다.
20분 거리의 비용이 40.000킵(6.000원)
마누라 강추 19금 사진 <휴양지에서의 망중한>
1월 21일
드디어 닷새간의 일정 중 마지막 날이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첫날 왔던 비엔티엔으로 이동했다.
젓갈 마을에는 민물고기들을 소금으로 절인 각종 젓갈들과 건어물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다음으로 들린 곳이 소금마을이었다. 바다가 없는 이곳에선 염분이 많은 지하수를 끌어올린 후
끓여서 흰 소금 결정을 얻고 있었는데 그 과정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남능강에 위치한 탕원 유원지에서 선상 중식의 기회를 가졌다.
유유히 강물을 떠다니는 배 위에서의 식사.
음식 시중을 받으며 음악과 술이 함께하는 것이 정녕 임금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호사를 누렸다.
그 옛날 배를 띄우며 손님에게 술을 권하는 소동파의 적벽부 한 대목이 떠올랐다.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소자여객 범주유어적벽지하. 청풍서래 수파불흥.)
소동파가 손님과 함께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서 노니는데,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잔잔하구나.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거주촉객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이 술 한 잔 받으시오, 그대는 밝은 달을 시로 읊조리고,
나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리니.
선상에서 점심을 마친 후 달랏사오 자유시장에 들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는 자유가 보였고 삶의 의지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쥬스를 먹고 있기에 다가가서 능청을 떨어보았다.
침을 꿀꺽이며 쥬스를 쳐다보니 선뜻 먹겠냐고 쥬스를 권한다.
아! 참으로 착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
라오스 미남에게 사진 촬영을 허락받아 한 장 찍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 때 콩뷰 레스토랑에서의 마지막 식사.
식당 앞에 있는 강 건너 아스라이 보이는 곳이 태국이란다.
밤 12시 넘어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거친 다음 8시 10분 춘천행 버스에 몸을 싣고서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집에 도착하니 다시 겨울이 거기에 있었다.
이제 내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지난 5박 6일의 라오스 여행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자산이 되었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때묻지 않은 자연과 마음, 선량한 얼굴들...
함께 한 친구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아울러 남정네들만의 여행을 허락하신 마나님들의 넉넉한 아량에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여행 때는 꼭 모시고 갈께.
언제 또 느낄 수 있을까.
새로운 세계를 휘둥그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첫댓글 라오스도 가볼만하네여..
댓글 감사합니다.
여행은 친구들과 같이가는게 젤 재미난것 같은데
즐거운 여행하고오셨네요
자세한 여행기 라오스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아요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등을 가봐서 라오스도 비슷하리라는 생각에
별로 흥미를 못느꼈는데
가보고 싶은 생각이 모락모락 나네요.
잘보고갑니다
즐 좋은날 되셔요
귀한 댓글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