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중략)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
번개가 밤하늘을 찢어 놓던 장마가 지나갔다
새로 이사 간 집 천장에 곰팡이가 새어 나오듯
석 달 만에 작은 혹이 주먹보다 더 커졌다
착한 암이라고 했는데 악성 종양이었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 구토 증상을 겪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엄마의 피가 흐르는 내 심장을 만지며 생각한다
엄마는 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환자이고
나는 엄마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중환자라는 걸 알았다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023.03.18. -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일종의 터부다. 죽음은 감춰야 하는 것, 두려운 것, 도망쳐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어령의 마지막 책에는 죽음은 터부가 아니라는 강조가 나온다. 죽음은 생명의 뒷면이니까 오히려 그것을 통해 삶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정신은 우리를 조금 더 씩씩하게 만든다. 나의 죽음을 생각하면 오늘은 더 잘 살고 싶어진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또 다른 이야기다. 그 사람이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사나. 그 이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공포가 되어 밀려온다.
이병일 시인의 이 시는 ‘처음 가는 마음’이라는 청소년 시집에 실려 있다. 시인은 성인이지만 시집에는 청소년의 시선에서 쓴 작품들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확 꽂힌다. 엄마는 진짜 환자, 나는 엄마 없이 못 산다는 의미에서 중환자라고 쓰여 있다. 엄마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이가 청소년뿐일까.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누군가 비난한대도 어쩔 수 없다. 소중한 이를 아끼고 살자.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고 애쓰신 모든 분과 이 시를 함께 읽고 싶다.
대롱이 길고 굵은 놈일수록 순을 크게 뽑아 올린다 깊숙이 박혀있던 뿌리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푸른 힘을 밀어내고 있다 댓잎이 쌓여있는 아랫도리마다 축축이 젖어 뾰죽 튀어나온 수만의 촉이 가볍게 머리 내밀고 뿌리는 스위치를 올릴 것이다
난, 어디로부터 나온 몸일까?
대나무 숲, 황소자리에서 쌍둥이자리로 넘어가는 초여름이다 땅속에서는 어둠을 틈타 안테나를 내밀 것이다 난 초록의 빛을 품고 달빛 고운 하늘에 뛰어오를 것이다 대나무 줄기가 서로 부딪쳐 원시의 소리를 내는 아침, 날이 더워질수록 물빛 속살을 적시며 얕은 잠을 자고 있었던가 초승달이 보름달을 향해 갈수록, 난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하늘에 닿을 때까지 단전에 힘을 줄 것이다 대나무향이 하얗게 깔리는 밤, 튀어나온 뿌리 마디마다 젖무덤처럼 불어올라 포개져있는 껍질을 열어젖힐 때, 댓잎에 미끄러진 햇빛이 푸른 옷을 던질 것이다 나는 마침내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