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는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의 외침, 사과 이끌어내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성명서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2024년 5월 사망사건이 발생한 부천 정신병원 병원장이 증인으로 참석해 증언하였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유가족을 만나 사과했느냐”라고 묻자 참석한 증인은 “사과하지 못했다”라고 답하였다. 고질적이고 관행적으로 발생해왔던 정신병원 내 인권침해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질의를 이어 나갔지만 부천 정신병원 양재웅 병원장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답변을 모두 회피했다. 또한 서미화 의원은 과실에 대해 인정하느냐고 거듭 물었지만 양재웅 병원장은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도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던 유가족은 서미화 의원 질의 속에서 양재웅 병원장 입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조목조목 밝혀낸 사실들은 관행적으로 정신병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의 온상이었다고 본다. 양재웅 병원장이 과실 인정을 하지 않은 것 역시 ‘정신의료의 당연한 관행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정신병원이 양재웅과 같은 행위를 일삼고 있고 이에 대한 윤리적 문제의식 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책임의식 역시 통감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인정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의식 속에서 춘천, 부천, 영등포 등 정신병원 내에서의 격리 및 강박 등 인권침해 문제가 계속적으로 발생 되어왔다. 정신병원 내 관행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반인권적 그리고 강압적 행위들은 치료보다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히며 심지어 사망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피해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국가는 오히려 이와 같은 폭력적 방식에 예산을 지원하면서 문제해결은커녕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었다.
정신병원 내 환자의 고통과 호소 그리고 요청은 증상으로 치부되고 철저히 무시당했다. 상당수 치료진은 환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오히려 독한 안정제로 통제했다. 관리와 통제 편의를 위해 화학적 그리고 신체적 강박을 통하여 사람을 통제해왔다. 치료받기 위해 간 정신병원 안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은 손쉽게 묵인되었다. 부천 정신병원 입원자 30대 여성도 살고 싶다는 외침에 돌아온 것은 항정신과약물의 추가 투약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세계보건기구 등은 정신병원 내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개선을 계속 요청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요청을 무시하며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방치 속에서,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는 치료보다는 고문에 가까운 행위들에 노출되어왔다.
한편, 정신병원 내 인권침해는 그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신병원 안에서 사망하는지, 고문에 가까운 행위에 노출되어 있는지 등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더라도 행위책임자인 정신과의사와 병원장은 책임에서 자유롭다. 실제 사망사건이 발생한 정신병원들은 이름을 바꾸거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영업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실태조사를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서미화 의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실태조사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정신병원을 모니터링 및 처벌하는 체계도 부재하다. 형식적인 정신의료기관 평가인증은 사람이 죽어도 최우수등급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정부 표창도 받는다. 무소불위 권력 속에서 일부 정신병원은 법망을 피해 치료의 이름으로 고문하고 장기수용하며 사람장사를 하고 있다. 이를 모니터링하고 적정 입원을 관리하며 정신병원 내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규정 자체가 없는 셈이다. 서미화 의원이 질의한 것과 같이 5년 동안 양재웅 병원장의 병원이 격리 및 강박 횟수 최고치이지만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은 바 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정신병원 내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또 강박(Restraint)은 이미 치료적 효과에 대한 증거가 빈약하고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UN CRPD) 등 국제기구에서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의 경우 법률로 고문 등 비인도적 처우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명시하였으며 비강압적인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WHO, 2023). 이에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강박은 치료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신체적 외상의 위험, 치료진의 부담 증가,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 등 부정적 효과가 뚜렷하기 때문에 강박을 폐지해야 함을 주장해왔다.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를 경험하더라도 병원에 장기수용 및 인권침해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며 적절한 권리보장이 이루어질 때 회복(Recovery)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 입증되었다. 특히, 치료 및 진단보다 지역사회 서비스를 우선 선택하도록 보장 하는 것은 국제적 흐름이다(UN CRPD, 2022).
반면 국내 상황은 국제적 흐름과는 역행하고 있다. 줄어들지 않는 재원일수, 퇴원 후 재입원율 등 정신병원 수용 중심의 정책은 여전히 강화되고 지역사회와 분리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입원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정신적 상태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자원은 현저히 부족하다. 우리는 이제라도 정신의료 중심의 정신건강 정책에서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람중심 권리기반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사람중심 권리기반의 정책은 독특한 현실세계 및 정신적 상태를 경험하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정신병원에 장기간 그리고 반복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위기를 대처하고 심리사회적 문제를 완화하며 다양한 자원 및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건강 정책의 선진국들은 이러한 지역사회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신의료만 강조하는 것보다 정책적 및 사회적 효과가 높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고 고립을 심화시키는 정신건강 정책을 과감히 버려야만 한다. 지역사회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동료지원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신병원에 장기간 및 반복적으로 수용되는 사람에게 ‘주거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개별 지원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정신병원 내 권리보장을 위해 절차조력 등 옹호절차를 적극 도입하여야 한다. 지역사회 인프라가 있다면 정신적 상태를 경험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 이미 많은 선진국들이 그렇게 제도를 고쳐나가고 개혁해나가고 있다.
24시간 동료지원쉼터는 지역사회 내 방치되고 고립된 사각지대에 있는 정서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며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이 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기자가 40명이 넘는 등 지역사회 내 뚜렷한 욕구가 보이고 있다. 또한 자살예방센터, 동주민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기관 연계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동료지원쉼터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을 재입원률이 낮다. 그리고 본인의 필요에 의해 입원을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비강압적 치료가 연계되고 있다. 동료지원쉼터를 통하여 새로운 희망을 되찾고 삶을 재설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이미 국제적으로 효과성이 입증되고 국제적 흐름을 바꾸고 있는 사람중심 권리기반 정신건강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을 요청한다. ▶ 동료지원센터, 동료지원쉼터 등 당사자 주도의 동료지원 전달체계 구축 ▶ 인권친화적인 정신의료 서비스 개혁 ▶ 강제적 및 강압적 방식에 대한 종식 선언 ▶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서비스 개발 및 보급 ▶ 지역사회 정신건강 예산 확충 ▶ 정신병원 독립적 모니터링 등을 요구한다. 이제라도 ‘사람을 죽이는 정신건강정책’이 ‘사람을 살리는 정신건강정책’으로 탈바꿈해야 할 때이다.
2024. 10. 23.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