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으로서 나는 드니 빌뇌브가 구축한 세계에 열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영화들엔 분명 어떤 공통적인 색채가 있었지만, 그것이 더 큰 세계로 확장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를 단순히 장르 영화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던 것이, 오락적 기능이 도드라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뚜렷한 미학이 드러나지 않는 것에 비해 다소 과대평가된 감독이 드니 빌뇌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의 그런 생각을 완벽하게 깨부순 영화가 있었으니, ‘컨택트’였다. 동시대 SF소설의 대가 테드 창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를 평가할 수 있다면, 그 평가는 ‘영화가 이야기를 형상화한 방식’에 한정돼야 할 것이다.(테드 창의 소설은 이미 그 자체로 완결적이고, 드니 빌뇌브가 이 소설의 영화화를 결정한 이유도 여기 있을 테니.) 그러나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이미 하나의 세계를 그리는 이상, 그 상상을 완전히 폐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관객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독자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 잡은 이미지를 감독 자신이 새롭게 구축한 이미지로 완벽하게 압도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컨택트’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어쩌면 SF야말로 드니 빌뇌브의 진짜 재능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듄’이 기대됐던 것은 그래서다. 드니 빌뇌브와 미국 SF소설의 거장 프랭크 허버트의 기념비적 고전의 만남. 그러나 ‘듄’을 관람한 지금은 드니 빌뇌브가 영화화할 작품으로 왜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거대한 스케일과 현대적인 이미지 등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그게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그가 관객에게 들려주고자 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어떻게(스타일) 그릴지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무엇을(문제의식) 그릴지는 고민하지 않았다고 할까.
(중략)
2022년, 우리는 당장 몇십 년 뒤를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유례없는 팬데믹과 기후위기는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 2100년만 돼도 인류와 지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8000년 남짓 지난 10191년에 인류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게으른 가정이라니, 너무 손쉽고 안일한 태도 아닌가?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이 나온 것이 1960년대이고, 그는 기후위기 이전인 1980년대에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드니 빌뇌브는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전에 진지하게 되새겨보았어야 했다. 그 60년 사이에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1965년(‘듄’ 1권이 출간된 해)에 프랭크 허버트가 상상한 우주는 이제 없다. 당연하게도, 1965년에 상상했던 방식으로 2021년에 10191년을 상상할 수는 없다.
더욱 기만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영화에 등장한 시대착오적 설정들이다. 드니 빌뇌브가 상상한 인류는 10191년에도 남성 중심적 사고를 한다. 제시카와 제시카의 시종들은 몸의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드레스를, 베게 게세리트 세력은 부르카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는다.(신체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채 지금도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는데 이런 설정이라니, 당황스럽다.) 남작이 독가스를 마시고 치료받는 동안 그의 옆을 지키는 시종은 모두 ‘여자아이들’이다. 감독의 상상 속에선 10191년에도 ‘첩’이 존재하는데, 폴을 낳아준 제시카는 레토 공작의 ‘첩’이다.
동양에 대한 대상화 역시 문제적이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행성과 거주지는 과거 중국의 문화유산과 건축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보이며, 배우들이 입고 있는 옷은 동양 전통 의상을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레토 공작이 초반부에 입고 나온 옷은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영화에 나오는 악기의 형태와 소리마저 동양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동양은 ‘실재하는’ 세계다. 이미 지구 반대편에 그 세계에 발 딛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가져다 낯선 미래의 것으로 포장해 쓰다니. 이것이 대상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듄’은 최첨단 기술을 손에 쥐고도 1965년에 갇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아니, 현실조차 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인류가 아주 먼 미래에도 경쟁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서로를 공격하고, 힘없는 민족과 자연을 착취한다는 데 주제의식이 있지 않겠냐고. 그러나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숱하게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다. 8000년 후 미래까지 가서 그 이야기를, 그것도 전혀 새롭지 않은 방식으로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도 환장하고 봤는데 딱 저런 부분들이 아쉽긴함 물론 설정 자체가 인류가 다시 봉건제 시작하는 내용+ 감독은 듄 덕후라 자기가 상상해오던걸 그대로 만들고 싶었겠다 싶어서 시대착오적인건 그러려니 하고싶은데... 그냥 주인공이라도 백인 남성이 아니었다면 신선하게 느껴졌을거 같음 메시아같은 존재가 다른 인종 여자면 객관적으로 좀 재밌지 않나? 주인공 설정은 그간 수많은 sf를 본 관객들한테 좀 무심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더라.. 딱 10년 전에 나왔어야함 티모시가 없겠지만ㅋㅋ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가 조선시대 때 퇴보해버린 것만 봐도 그닥 미래엔 지금보다 발전한 사회일 것이다! 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긴 해 오히려 지금 당장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미래가 더 근시안적인 관점 아닐까..? 저기선 무려 8000년 이후인걸
40년 전에 나온 에이리언보다 못함. 지금이 몇년도냐 대체.. 이래서 파운데이션이 인정 받는 거지 여긴 주인공을 아예 흑인 여성으로 바꿔버림 그외 주요인물들도 다 여성들로 바꾸고. 이걸 피씨하다고 까면서 열폭하는 건 원작빠인 그 성별충들뿐.. 참고로 파운데이션은 듄 원작보다 10년 더 일찍 나왔고 (1950년대) sf계의 바이블이라 주인공 성별 바꿀 때 더 저항 쩔었음. 모든 게 최첨단이고 비상하게 발전한 8천년뒤의 미래를 그리고 있으면서 왜 ^남성중심적 문화만^ 과거에 머물러있어?
‘그런데 8000년 남짓 지난 10191년에 인류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게으른 가정이라니, 너무 손쉽고 안일한 태도 아닌가?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이 나온 것이 1960년대이고, 그는 기후위기 이전인 1980년대에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드니 빌뇌브는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전에 진지하게 되새겨보았어야 했다. 그 60년 사이에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1965년에 프랭크 허버트가 상상한 우주는 이제 없다. ‘듄’은 최첨단 기술을 손에 쥐고도 1965년에 갇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아니, 현실조차 보지 못했다.
첫댓글 내가 별로라고 느꼈던 포인트랑 비슷.. 영화 첨 시작부터 "8000년 이후 인류에 저출산은 없군..(모여있는 군인들을 보며)" "아니 8000년 이후에도 저렇게 노동집약적인 삶이라니.." 하는 느낌으로 집중이 안됐어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별로야! 라고 생각한 부분을 잘 살명해줬넼ㅋㅋㅋㅋㅋ 가랴운 곳 긁어줬다..
8000년이나 지난 후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아닌가...?
여성혐오적요소 많았던건 인정ㅇㅇ 근데 악기는 그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같았는뎅..
미래에 여성차별 혐오가 없으려면 지금 더 목소리내고 행동해야된다고 생각함.. 여자 부르카 입는 국가도 예전엔 엄청 자유로웠다며 행동하지 않고 목소리 내지 않는다면 후퇴하는것도 한순간이니까
부르카의 패션화 개씹스러워
있을법하다, 현실적이다라는 말은 변명이 안 됨 상상이 아무리 현실에 기반한다고 해도 씹스러운 상상력에 제동을 걸어야할 때도 있는거임 좋은작품들은 대부분 그걸 해내고
세상이 망해도 정신 안차리면 저렇게 된다라고 비꼬는 것 보다 정말 그냥 대상화 신비한 느낌내기에 불과했던 것 같음.
헐 나도 공감... 너무 좋은 평론이다. 남성 혈통 중심, 영화 스토리 주요하게 이끄는 고위직 전부 남성... 여자는 영적 능력이 있는 신비한 존재로만 그리는 게 ㄹㅇ 딱 몇십년전 성별이분화
이 시대에 만들려면 충분히 더 고민하고 원작보다 철학적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음. 그리고 알맹이 다 빠진 영화라는 것도 공감함. 눈은 즐겁지만 중심철학은 없음
부르카 ㅇㅈ 임 존나 투리구슬마냥 잘보임 걍 여혐해도 머라그래 클리셰를 존나잘만들면 사람을 미치게만드는게 잇잔아 그런거지머...
원작 설정이 ai 배척하고 인간주의로 돌아가서 인간의 머리로만 기계 개발해서 그 기술까지 도달한거라 8000년 후에도 인간들의 모습은 그대로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흥미롭네
빈 껍데기만 남은 영화 같더라.. 재미조차도 없고 진부했음 솔직히..
나도 환장하고 봤는데 딱 저런 부분들이 아쉽긴함 물론 설정 자체가 인류가 다시 봉건제 시작하는 내용+ 감독은 듄 덕후라 자기가 상상해오던걸 그대로 만들고 싶었겠다 싶어서 시대착오적인건 그러려니 하고싶은데...
그냥 주인공이라도 백인 남성이 아니었다면 신선하게 느껴졌을거 같음 메시아같은 존재가 다른 인종 여자면 객관적으로 좀 재밌지 않나? 주인공 설정은 그간 수많은 sf를 본 관객들한테 좀 무심한 태도가 아니었나 싶더라.. 딱 10년 전에 나왔어야함 티모시가 없겠지만ㅋㅋ
정확히 공감해 뭔 8천년 후 얘기하면서 결국 과거의 진부한 여혐범벅이라 개노잼이었어
모래바람 펑펑 불고 뜨거워서 냄저들 다 사막용슈트 입고있는데 제시카는 시종들이 끝자락 쥐어줘야하는 보기에만 좋은 펄럭 드레스 입고있는 장면 띠용
킹정 보는내내 여혐에 시달림
생각해 볼 지점이 많은 기사다 고마워!
앗… 저것도 다 세계관에 포함돼 있는 설정 아닌가. 난 찾아보고 보니까 이해가 가던데. 배경지식 없이 봤을 땐 뭔 저 먼 미래에 중세시대여ㅎ 이랬음 나도 ㅋㅋㅋ 근데 맥락이 있더라고 ㅋㅋㅋ 작가 상상력이 존나 방대해.
이거 원작소설이 1960년에 쓰인거라 감안하고 봐야됌..
감독 역량 문제가 아니라 원작 소설 그냥 충실히 따라간 거 같던데...?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가 조선시대 때 퇴보해버린 것만 봐도 그닥 미래엔 지금보다 발전한 사회일 것이다! 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긴 해
오히려 지금 당장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미래가 더 근시안적인 관점 아닐까..? 저기선 무려 8000년 이후인걸
40년 전에 나온 에이리언보다 못함. 지금이 몇년도냐 대체.. 이래서 파운데이션이 인정 받는 거지 여긴 주인공을 아예 흑인 여성으로 바꿔버림 그외 주요인물들도 다 여성들로 바꾸고. 이걸 피씨하다고 까면서 열폭하는 건 원작빠인 그 성별충들뿐.. 참고로 파운데이션은 듄 원작보다 10년 더 일찍 나왔고 (1950년대) sf계의 바이블이라 주인공 성별 바꿀 때 더 저항 쩔었음.
모든 게 최첨단이고 비상하게 발전한 8천년뒤의 미래를 그리고 있으면서 왜 ^남성중심적 문화만^ 과거에 머물러있어?
‘그런데 8000년 남짓 지난 10191년에 인류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게으른 가정이라니, 너무 손쉽고 안일한 태도 아닌가?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이 나온 것이 1960년대이고, 그는 기후위기 이전인 1980년대에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드니 빌뇌브는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전에 진지하게 되새겨보았어야 했다. 그 60년 사이에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1965년에 프랭크 허버트가 상상한 우주는 이제 없다. ‘듄’은 최첨단 기술을 손에 쥐고도 1965년에 갇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아니, 현실조차 보지 못했다.
연어왔는데 당시에 나만 이런 생각하는거 같아서 당황스러웠음 검색해봐도 그런 점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 거의 못봤어 그리고 그런 점에 대해 얘기하면 작품을 대변해서 변명하는 사람들만 한바가지였음 걍 배경만 우주인 남성향 판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와 내가 듄 보면서 느낀 그대로다ㅋㅋ 이런 구시대적인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으면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생각함
원작소설이 워낙 옛날거라,,그나마 주요인물들 원래 남자인데(하인즈 박사 2에서 나올 다른 인물들) 여자로 캐스팅한거라도 그나마 낫다 생각중,,,ㅔ
그리고…놀랍게도 우주력 만얼마라,,우리가 지금 세는 이 날짜가 망하고 새로 재정한거라 만년보다도 훨 뒤일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