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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달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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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최대의 엘리트만 모인
명문 불교학교 마하간다용 수도원의 탁발의식 관람
▶200년 전에 세워진 세계 최장의 목교 우뻬인 다리 (1.2km)
▶높이 3.8m의 불상이 있는 마하무니 파고다
▶전통 불상 제작소/금박 제조 공방 견학
▶현존하는 미얀마 최대의 성 만달레이 궁전
▶2500년 전 부처가 직접 방문하였다는 해발 236m 언덕 만달레이 힐
1.2km길이의 목조다리로 세계 최장입니다. 1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렇게 견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티크나무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티크목은 물속에서 썩지 않으며 총으로도 뚫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다고 하네요. 호수 끝까지 구불거리며 길게 펼쳐진 우빼인 다리 위로 스님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은 경건하면서도 평화로운 광경이랍니다.
마하무니 파고다
그레이트 파고다(Great Pagoda) 또는 파야지라고도 한다. 1784년 마하무니 부처상을 모시기 위해 보도우파야(Bodawpaya) 왕이 파고다를 세웠다. 금박의 무게만 12t이 넘는 화려하고 값비싼 금불상이다. 아침에 얼굴을 씻기는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쿠도도 파고다
민돈왕이 25년에 걸쳐 1857년 완공한 파고다이다. 729개 파고다 안에 각각 석장경을 넣어 보관해 두었다. 석장경 안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불린다. 파고다는 미얀마 냥우에 있는 쉐지곤 파고다
민군으로 이동
중식 후 유람선 탑승하여 이라와디 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민군으로 이동(약 50분 소요)
미얀마의 에야와디 강은 우리나라의 한강 격으로, 미얀마의 젖줄이라 부르는 강.
만달레이에서 배를 타고 이 강을 건너면 각종 불교유적이 있는 밍군 섬에 도착.만들레이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1시간 정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강 건너편 하얀색의 파고다 옆으로 웅장한 탑이 나타나는데 바로 밍군 대탑이다. 선착장에서 내려 상가 사이로 나 있는 작은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세계에서 제일 큰 전탑(흙벽돌로 쌓은 탑)인 밍군 대탑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미완성으로 남겨진 밍군 대탑은 지진으로 금이 가고 여러 곳이 허물어져서 지금은 대탑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은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되어 있다. 대탑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흰색의 특이한 파고다가 나오는데, 1826년에 바지도 왕이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건설한 신쀼미 파야(Hsinbyume Paya)다.
미얀마 만달라이(Mandalay)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마을에는 민군 대탑(Mingun Pahtodawgyi)이라고 하는 유명한 유적이 있다. 1790년 보다우파야(Bodawpaya)왕의 지시로 지어지기 시작한 이 불탑은 한 점성술가가 이 탑이 완성되면 왕이 죽을 것이라 예언하는 바람에 완공되지 못한채 오늘날 까지 남아 있다. 거대한 외관을 자랑하는 이 불탑은 완성되었다면 건물의 높이가 150m로 세계에서 가장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군 대탑과 함께 제작한 민군 종(Mingun Bell)은 무게가 약 90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민군 대탑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신뷰메 파고다(Hsinbyume Pagoda)라고 하는 백색 불탑이 있는데, 1816년에 보다우파야 왕의 손자이자 후계자였던 바기이다우(Bagyidaw) 왕이 세상을 떠난 첫번째 부인 신뷰메 공주를 기리기 위해 건설한 불탑이다. 이 불탑은 1836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1874년에 재건되었다.
세계 최대의 종.. 민군 종(The Great Mingun Bell)
밍군 종은 미얀마 사가잉 구 밍군에 있는 종이다. 1808년 바돈 왕이 헌정한 종으로 19세기 러시아에서 제일 큰 종을 만들기 전까지는 밍군 종이 세계 최대 크기의 종이였다. 현재로는 두 번째로 큰 종이다. 무게는 90.52톤이며, 높이는 3.3m로 종 아랫부분 직경이 4.8m에 이른다. 1838년 지진으로 종의 지지대 부분이 부러져 방치되다가 190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
민군 대탑과 함께 제작한 민군 종(Mingun Bell)은 무게가 약 90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얀마역사상 가장 길었던 왕조인 콩바웅(Kongbaung)왕조의 보다파야왕(Bodawpaya,1782~1819)에 의해 1805년에 만들어져, 민군 파고다에 헌정되었다. 민군 종은 갈라져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에 있는 종 다음으로 큰 규모의 종으로, 현재 타종이 가능한 세계최대의 종이다. 무게 약 90톤, 종의 둘레 5미터, 높이 약 3.7미터의 민군 종은 갈라져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에 있는 종 다음으로 큰 규모의 종으로, 현재 타종이 가능한 세계최대의 종이다. 종은 민군동쪽, Ayeyarwady강 중앙에 있는 섬에서 주조되었다. 강을 가로질러 민군 파고다까지의 수송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동원되었다. 주조된 종은 1811년 Raft Creek운하로 옮겨져, 종아래에 2겹의 덮개를 씌운 바지선을 축선한 후, 운하에 물이 찰 정도의 비가 오길 기다려 옮겨졌다고 한다.
종의 주조작업은 1808년4월 29일 밤에 시작되었다. 무게 65,877비스(약107톤)의 구리가 종의 주조에 소요되었다. 종의 도리부분에 "왕조 28년, 1810년 3월 23일 주조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거의 2년동안의 작업기간을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종의 울림소리를 얻기 위해, 고대 미얀마 전통의 제조법에 따라, 5가지의 금속(금, 은, 동, 철, 납)을 합금하여 주조되었다. 종을 주조하는데 쓰인 비용만해도 658,726챠트가 들었다. 종의 무게는 55,555.55비스(90.52톤; 꽁바웅시대측정, 측정시기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략 90톤~101톤내, 1982년 기네스북기록;101.4톤)이다.
▶종의 무게: 미얀마인들은 무게의 기억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연상표현법을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종의 무게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인 "민쀼 흐만 흐만 쁘와(Min Phyu Hman Hman Pyaw)" 말을 보면, 자음'M','Ph','Hm','P'는 5의 5번, 매번 돌아오는 5번째날 목요일을 나타내고 있다. 즉, 어원에 따르면 viss단위로 종의 무게를 나타내면 55,555비스가 가장 유력하다.종의 외지름 16피트 3인치(4.96미터), 외부높이는 12피트(3.66미터), 내부높이는 11피트 6인치(3.51미터), 가장자리의 외부원주는 50.75피트(15.47미터), 두께는 6인치~12인치(14cm~29cm)이고, 종의 꼭대기에서 가장자리까지는 20.7피트(6.31미터)이다.
거대한 종은 민군의 동쪽, 아웨야와디강(Ayeyarwady River)중심에 있는 섬에서 주조되었다. 강을 가로질러 민군까지의 운송은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왕은 운송에 대한 방법을 고안하는 사람을 친히 왕실에 불렀으나, 실행이 불가능한 것들 뿐이었다.
완전히 제모습을 갖춘 종은 200,000 (viss)/ 730,000 lbs/ 331,120 kg의 무게로, 아웨야와디강 서쪽어귀까지의 운송은 어려운 작업이 남게 되었다. 결국, 포대장, 아마욱 웬(Amyauk Wun)을 양곤에 보내 운송에 필요한 기계장치와 종을 배에 실고 내리는 작업방법을 아는 이를 요청하게 된다. 민군에 종을 운송하기전, 종아래부분를 파서, 그곳에 두 척의 카라웨익 바지선(Karaweik Barge)을 만들었다. '라프트 크릭(Raft Creek)'라고 부르는 36피트(11미터)의 거대한 운하가 건설된 후, 1811년에 왕은 종을 운송할 거대한 바지선 축조를 명하였다.
종아래에 두겹으로 된 바지선과 운하가 완성되어, 이제는 강물이 라프트크릭 운하를 채우고, 바지선을 뜨게 하는 우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1811년 드디어, 운하에 강물이 차고, 왕은 친히 강을 채운 배들과 황금빛 바지선을 이끌며 자축하였다. 소형선대에 둘러싸인 종을 실은 바지선은 잘 견디었고, 무사히 종을 운송할 수 있었다. 왕과 왕비, 왕자, 공주, 왕손들, 장관, 국민들이 경사스러운 이날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운송에 동원된 금속 주물공, 목수, 브라민, 기술자, 노동자들 모두에게 많은 돈과 옷감, 장신구등을 포상하였다.
민군섬
만들레이에서 11km 정도 떨어져 있는 밍군은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보도파야 왕(바돈 왕, 1781~1819)이 1790년에서 1797년까지 만들다 미완성에 그쳤다. 이는 꽁바웅 왕조의 불운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도파야 왕은 자신의 강력한 왕권 강화와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탑을 만드는 불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혹독한 노동에 지친 라카인족 일꾼 천여 명이 몰래 라카인 아쌈(Assam) 지역으로 도망친다. 당시 라카인 아쌈 지역은 보도파야 왕이 인도(당시 영국이 지배)로부터 빼앗은 영토로, 인도와 국경 문제로 미묘한 분쟁이 일던 지역이다. 보도파야 왕은 도망친 라카인들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얀마 군대는 도망자들을 추격해서 인도 땅인 라카인 아쌈 지역을 침범하게 된다. 이에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국경 침범을 이유로 미얀마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 결과 꽁바웅 왕조는 비운의 마지막 왕조가 되고 밍군 대탑 역시 건설이 중단된 채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보도파야 왕이 높이 152m로 만들려고 계획했던 밍군 대탑은 현재 70m 정도의 높이에서 상층부 공사가 멈췄고 1838년과 1956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탑의 입구 부분과 양쪽 기단 부분이 심하게 금이 가고 일부는 허물어져 버렸다. 이제는 지진으로 금이 가고 벌어진 틈새와 허물어진 모습이 여행자의 마음을 더욱 애잔하게 만든다.
대탑 안에는 촛불을 밝힌 불상이 하나 놓여 있으며 탑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탑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만들레이와 신쀼미 사원, 에야워디 강이 한눈에 들어오며, 에야워디 강 쪽으로 내려다보면 양쪽으로 거대한 수호신인 사자상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2013년부터 밍군 대탑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붕괴의 위험 때문에 폐쇄가 되었다. 더 이상 정상에 올라갈 수가 없어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