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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나바호 인디언)
-해맑은(이종숙)님의 명복을 빕니다._(()_
또 한 분의 도반께서 지구별 여행을 마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 또한
지구별 여행 견문기 또는 회고록 원고 청탁시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처럼...
또는 방학동안 띵가띵가 놀다 끝날 때 제출해야 할
放學숙제 다 마치지 못한 똥고 마려운 學童이 밤잠을 설치며...
벼락치기라도 해서 비워놓았던 일기장을 채우는 요즘이다.
기억할만한 사건들을 떠올려 업경대와 같은 일기장에 적긴 했다만...
깨어있지 않고 지나쳤던...
불과 며칠 전의 날씨가 맑았는지, 흐렸는지 비 왔는지를 몰라 가짜로 적어 제출하면서...
염라대왕 같은 담임샘께서 이를 눈치챌까 걱정했던 국민학교 시절 또한 떠올려본다.
"고향을 떠나지 않은 자, 결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 !“ 라는 독일속담처럼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천상병 선생께선 <귀천(歸天)>을 노래하며소풍을 마감하셨다.
- 나의 묘비명(Epitaph)은 ?
젊은 날엔 킹 크림슨의 노랫가락에 맞춰 ‘Confusion~!’을 노래했고,
知天命의 나이엔 그것을 알고 보지 못해 시간에 쫓기듯 초조했었다.
60을 넘어선 요즘 쫓고 쫓기는 마음이 점차 내려지니
머리맡에 놓일 비석에 새길 적합한 문구 하나... 뭘까 하며 한번 더듬어 볼 때가 있었다.
다산선생의 자찬 묘지명(自撰墓誌銘)은 너무 길어 다 읽질 못했고...
“괜히 왔다 가는구려~!”라는
중광스님의 Caricature는 일찍이 익히 접했고,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도 봐둔 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와닿던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 카잔차키스(Kazantzakis)의 낮은 묘비에 새겨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렇게 노래하며 돌아가는 뒷모습은
洛花를 노래한 이 형기보다 백배나 아름답지 않은가?
이같이 어떤 이의 발자취는 노래가 되고 비석으로 세워지는데...
그럼 내 묘비엔 ?
적어도 새길 말이 없다면...
“평생에 눈썹 찡그릴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이를 갈 원수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크게 난 이름을 어찌 뜻 없는 돌에 새길 것인가. 길가는 사람들의 입이 비석보다 나을 것이다.”
‘平生 不作皺眉事 世上 應無切齒人
大名 豈有鐫頑石 路上行人 口勝碑’
(명심보감 省心篇의 擊壤詩)-이라는 마음속 비석이라도 새겨...
살아내야 할 일이다.
- Memento mori 와 사수념 (死隨念: Maraṇasati)
전쟁에서 승리하고 로마제국으로 돌아와 개선행진을 하는 장군이
뒤따르는 행렬속에 잡아온 노예를 시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라고
자신의 등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라고 각성시켰다는 라틴어 'Memento mori'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보다 이미 더 오래전
‘죽음에 대한 새김’을 가져야 하며, 이에 대한 공덕이 있다는 말씀이 전해져 왔다.
-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애처롭고, 짧아 고통으로 엉켜있습니다.
결국 익은 과일처럼 떨어져야하는 두려움에 처합니다.
이처럼 태어난 자들은 죽어야 하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집니다.“ (Sallasutta . STN 3)
이미 임서기(林棲期 Vanaprastha)에 접어든...
28년째 이어온 항공스포츠 취미활동 외에도
6학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이다 보니 수많은 죽음들을 목격했다.
이처럼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닌
내가 발 딛는 곳, 숨 쉴 때마다 따라붙는 삶의 가장 짙은 그림자 벗으로 자리 잡는 즈음이라
더이상 투명인간 취급 말고 이를 거들떠봐야 할 일(Dharma, 法)이 아닌가 싶다.
- 남의 일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는 법
작년 유월 중순 페친인 유연 스님께서
도반 연관스님께서...육신이 무너짐을 아시고 단식하시더니,
물마저 끊고 의지대로 떠날 준비하시던 모습을 보이며
가벼운 농담처럼 죽움까지도 인례사(引禮師)하셨다며 입적(入寂)소식을 올렸다.
이 소식에 바로 ...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등재된 김동리선생의 소설 등신불(等身佛)과 법력 높으신 고승께서
‘나 이제 가네 ~’ 라며 앉은 채 바로 숨을 놓아 버리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을 떠올리며...
”예전에도 가끔 보아 왔던...
이제 목숨이 다해졌음을 알아차린 옛 선인들이 곡기를 끊고 가볍게 떠날 채비를 하듯,
오래 전에 DNR(do not resuscitate)을 명시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저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은 요원하기에, 이를 항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오래전에도...
사람들이 고향이 어딘가를 물으면, 어떨 땐 가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이 제 고향이라 대답하지만,
저의 본적은 제주시 화북동이며,양친께서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 결혼을 하고선 바로 부산에 와 정착하셨기에...
제 고향은 제주도이고, 마음의 고향 또한 그렇다며 대답한다.
살아계시면 130세 넘을 나이인 구한말 태어나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5녀 1남을 키우신 할머니는
자식들 다 결혼 출가시킨 후 홀로 생활하시던 중
타지로 떠나간 외아들이 50세도 채 못 넘기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맞게 되었다.
그후 딱 10년이 지난 1989년. 같은 날 - 94세에 내 할망도 숨을 거뒀다.
몸의 기력이 다함을 아신 내 할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아들의 잊을 수 없는 기일에 맞춰 곡기를 끊으시고
입 또한 닫고 묵묵히 그날을 기다려셨다는 말을
초상을 칠 때 고향집 고모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장마 시작되는 이맘때면 할머니와 부친의 제사를 함께 지내고 있다.
* Idam me ñātīnam hotu. Sukhitā hontu ñātayo.
(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오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 가벼운 농담처럼 갈 수 없다면 시 한수라도 읊조리고...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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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가네 ~! 라며 농담처럼 가볍게 한마디 툭 던지며 앉아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면....
적어도 갈 때를 알아 벚꽃의 낙화를 노래하는 시처럼 묵묵히 가는 그 뒷모습은 어떤가?
- 죽음의 명상, 사수념(死隨念: Maraṇasati)과 그 공덕
“사람의 목숨은 짧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 목숨을 경시하라.
머리에 불이 붙은 듯 살아야 하리.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S4.9)
'삶은 덧없고 목숨은 짧으니, 늙음을 피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쉴 곳이 없네.
세월은 스쳐가고 밤낮은 지나가니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세속의 자양을 버리고 고요함을 원하리.'(S1;3)
- 늙음의 품
'오! 어찌 웃고, 어찌 즐기는가?
언제나 세상은 불타고 있고, 그대들은
어둠에 덮여 있는데, 등불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
보라. 아름답게 꾸며진 영상,
상처투성이로 세워진 몸, 고통스럽고 망상으로 찬 것,
영원하지도 않고 견고하지도 않다.
이 영상은 마침내 노쇠하고 질병의 소굴로 쉽게 부서진다.
이 부패한 축적물은 파괴된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라.
참으로 가을에 버려진 이 호리병박들처럼 회백색의 해골들이 있다.
그것들을 보고 어찌 기뻐하겠는가?
뼈로 만들어지고 피와 살로 덧칠해진 도시,
거기에 늙음과 죽음과 자만과 위선이 감추어져 있다.
잘 꾸며진 왕의 수레도 낡아 가듯,
마찬가지로 몸도 또한 늙어 간다.
그러나 참사람의 가르침은 부패하지 않는다.
참사람이 참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황소처럼 늙어간다.
그의 살은 뚱뚱해지지만 그의 지혜는 자라지 않는다.
나는 집을 짓는 자를 찾으며 그러나 발견하지 못하고
많은 생애의 윤회를 달려왔으니, 거듭 태어남은 고통이다.
집짓는 자여, 그대는 알려졌다.
그대는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꺽였다.
많은 생애의 윤회를 달려왔으나,
마음은 형성을 여의고 갈애의 부숨을 성취했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고기 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백로처럼 죽어간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누워서 옛날을 애도한다.'
(늙음의 품, 법구경 Dhp)
- "수행자들이여, 죽음에 대한 새김을 닦고 익히면
불사에 뛰어들고 불사를 궁극으로 하는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을 얻는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에 대한 새김을 닦아라.
‘죽음이 닥칠 것이라고 새기면,
근접단계에 이르는 명상주제가 생겨나고.
죽을 때에 두려움, 공포, 혼미에 빠지지 않고, 두려움 없이 혼미 없이 죽는다.
그는 만약 현세에 불사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는 좋은 곳으로 간다.” (Vism.8.41)
“죽음에 대한 새김을 닦기를 원하는 수행자는
홀로 떨어져 명상하면서
‘죽음은 일어날 것이다. 생명의 능력은 단절될 것이다..’라거나
‘죽음, 죽음’이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
옷이 불붙고, 머리가 불붙었는데, 그 옷이나 머리에 불을 끄기 위해 극도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하고 정근하고 불퇴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려야 하듯,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그 수행승은
악하고 불건전한 원리를 버리기 위하여 극도로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하고 정진하고 정근하고
불퇴전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Dutiya maraṇasati suttaṃ A 6:20)
“나의 삶은 견고하지 않지만 나의 죽음은 견고하고
나의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나의 삶은 죽음을 끝으로 하고,
나의 삶은 불확실하지만 나의 죽음은 확실하다.
뭇삶은 행위의 소유자이고 행위의 상속자이고
행위를 모태로 삼는 자이고 행위를 친지로 하는 자이고 행위를 의지처로 하는 자로서
그가 지은 선하거나 악한 행위의 상속자이다. (A10.216)
선행을 하면, 두 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하나니
‘내가 선을 지었다’라고 환호하고 좋은 곳으로 가서 한층 더 환희한다.(Dhp.18)
아! 머지않아 이 몸은 쓸모없는 나무조각처럼
의식 없이 버려진 채 실로 땅 위에 눕혀질 것이다(Dhp.41)
형성된 것들은 실로 무상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이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지멸이야말로 참으로 지복이다.”
(죽음에 대한 새김의 이치, 예경지송)
또한 “죽음에 대한 새김을 닦는 수행승은
항상 방일을 여의고, 일체의 존재에 대하여 싫어하여 떠남의 지각을 얻어,
목숨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악을 꾸짖고, 쌓아 모으지 않고, 필수품에 대한 간탐의 티끌을 여의고,
무상에 대한 지각을 익혀서 그것을 새김으로써
괴로움에 대한 지각과 실체없음에 대한 지각을 일으킨다.” (Vism.8.41)는 공덕이 있다.
- 호흡에 대한 새김(출입식념 anapanasati)
어렸을 때, 젊었을 때, 늙었을 때의 3가지 중요한 인복(人福)이 있다.
만나고 싶다고 또 맘대로 누릴수 없는 인복인
좋은 부모, 배우자(소울메이트. 스승), 자식이 그것이다.
이런 인복말고도 늙은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며 원하는
‘자는 잠에 그냥 영원히 숨을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죽는 복 또한 저절로 갖춰지지 않는다.
“라훌라여, 이렇게 호흡새김을 닦고
이렇게 반복하면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이 있다.
라훌라여, 이렇게 호흡새김을 닦고 이렇게 반복하면,
심지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사라질 때에도 알아차려지는 것이고 모른 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M. 62)
이 말씀 또한 새겨,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마지막 숨까지 알아차리며 떠나길 위해, 일상을 마치고 밤에 잠이 들기 전에도....
호흡에 대한 새김(출입식념 anapanasati)을 더욱 몸에 배이게 하려는 요즘이다.
- Jamaica Farewell
벨라폰테 이 분도 얼마전 작고하셨죠...

첫댓글 할 일을 다해 마친 ‘청정한 삶(brahmacariya)의 실현한 수행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반길 것입니다.
[세존]
“분노하지 않고 욕심이 없고
온화하고 길들여져서
잘 훈련된 자처럼 때를 기다리는 님,
사리뿟따는 현자로 알려져 있네.”(S2.29)
그래서일까 테라가타에서 아디뭇따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안에 이르고, 집착을 여의고,
할 일을 다 해 마치고, 번뇌를 여읜 님은
형장에서 풀려난 것처럼,
목숨이 다한 것을 기뻐한다.(Thag.711)
또한
「장로게(長老偈)」(Thag.654)에는 레와따(Revata) 존자의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집니다.
“나는 죽음을 기뻐하지도,
삶도 기뻐하지도 않는다.
고용된 사람이 그저 월급날만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죽음이 올 날만을 기다린다.”
kālaṃ kaṅkhati sudantoti: Srp.I.126에 따르면, 번뇌를 끊은 자는 여러 다른 시간에 열반에 들게 되므로,
고용된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기다리듯이 열반의 때를 기다린다.
이같은 생각이 Thag.606에도 나와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고 노래하던 최희준의 <하숙생>과 함께
잘랄루딘 루미( Rūmī)의 여인숙도 떠올려 보네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들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짐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또한...
도처에 널려있는 생로병사를 보고도
어찌 남의 일처럼 어찌 수수방관했냐는
죽음의 왕 야마의 질문과 다섯 천사들의 경고가 이어집니다.
@ehipassika 데와두따경(M130)에서 야마왕이
“이 사람아, 그대는 이 세상에서 다섯 번째 천사가 나타난 것을 보지 않았는가?
(amho purisa, na tvaṃ addasa manussesu pañcamaṃ devadūtaṃ pātubhūta)”라고 묻는다.
-첫 번째 천사 (태어남도 괴로움. jātipi dukkhā)
‘이보게, 인간 가운데 갓난아이가 침대에서 스스로 똥과 오줌으로 분칠하고 누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두 번째 천사 (늙는 것도 괴로움. jarāpi dukkhā)
‘이 사람아, 인간 가운데 여자나 남자가 태어나 팔십이나 구십이나 백세가 되어
늙고, 허리가 서까래처럼 구부러지고, 지팡이를 짚고, 몸을 떨며 걷고, 병들고, 젊음을 잃고, 이빨이 빠지고,
머리가 희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대머리가 되고, 주름이 지고, 검버섯이 피어나고,
얼룩이 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세 번째 천사’(병드는 것도 괴로움.vyādhipi dukkh)
‘이 사람아, 인간 가운데 여자나 남자가 병들고 괴로워하는데 중태이고, 스스로 똥과 오줌으로 분칠을 하고, 다른 사람이 일으켜 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앉혀 주어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ehipassika -네 번째 천사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appiyehi sampayogo dukkhā)
‘이보게, 왕들이 인간 가운데 도둑이나 범죄자를 잡으면 갖가지 형벌로 다스리는 것,
즉 채찍으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장으로 때리고, …죽이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다섯 번째 천사(죽는 것도 괴로움.maraṇampi dukkhā)
‘이 사람아, 인간 가운데 여자나 남자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되어서 부풀게 되고 푸르게 되고
고름이 생겨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Devadūta sutta-천사의 경, M130)
세상은 불타고 있고...
머리에 불 붙고 발등에 떨어진 불이 어찌 남의 일이라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지금 그대들에게 당부한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부서지고야 마는 것이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었다. (D16)
열반경의 마지막 유훈을 떠올려봅니다.
@ehipassika
_()_
@아위자 몇 번의 수술과 풍으로 불편한 몸은 좀 어떠세요 ? 더 나빠지지않고 차도가 있길 바랍니다._(()_
오래전에....필명 진흙속의 연꽃(담마다사) 이 병욱선생이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선지식을 찾아 만나겠다는 구도행각의 글을 접하고는....
부산 태종대 태종사의 도성스님과 기장 묘관음사 서강스님,
그리고 경주에 아위자선생을 만나보는건 어떻냐?고 추천한 바가 있습니다.
특히, 태종사의 도성스님께선 세수가 95세가 넘어 더 늦기전에...봐야된다고 말했지요.
더 늦기전에...
연꽃님 나름대로 바쁜 시절인연인지 지금 글 쓰는데 머물러있는데 두 분의 상봉 기대하는 1인입니다. ^^*
이병욱선생이 부산 내려오면 경주로 함께 가서 얼굴 함 뵐테니... 그 간 더 건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