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땅 속으로 길을 내고
두더지들이
털에 묻은 황토 터는 소리 들렸다
흰 수건으로 탁탁 분홍손바닥 발바닥까지
매화가지 맺혔던 눈송이가
잎 방석에 날아와 앉았다
매화 필 때
고라니가
꽃 앞에 멈춘 적 있다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4.01.12. -
잘 보존된 자연이 있다. 이곳에서는 서로에게 경외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매화가 필 때에는 뛰는 고라니도 발걸음을 멈춰 꽃 앞에 잠시 가만히 설 줄을 안다. 떡갈나무의 잎들이 진 산은 푸근하고 탄력이 있고 부드럽다. 산에는 생명들의 여러 각각의 길이 있어서 두더지도 자신의 길을 소유하고 있다. 방해받지 않은 채. 두더지는 오늘도 그 땅속의 길을 명랑하게, 위협을 느끼지 않고 지나간다. 이처럼 보호를 받는 자연이 있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자연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