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1~7 /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신 예수님
(눅 12:1) 그동안에 무리 수 만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 12: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 12: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눅 12: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을 책망하신 후에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누룩은 외식을 의미합니다.
(눅 12:1) 그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 주위에는 수만 명의 무리가 모여서 서로 밟힐 만큼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많은 무리들 속에서 먼저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많은 무리의 좋은 목자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에 지도자였습니다. 제자들이 바리새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외식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외식은 배우가 탈을 쓰고 하는 것입니다.
연기를 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모이면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외식의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말과 행동은 거룩했지만 속은 더러웠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선을 행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악을 행합니다.
제자들도 외식의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중세 시대에 보면 수많은 사제들이 외식의 죄에 빠졌습니다. 누룩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부풀게 하는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외식의 죄는 영향력이 큽니다. 지도자가 외식하면 구성원도 외식하기 쉽습니다.
왜 이런 외식의 죄악에 빠질까요?
(눅 12: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사람들은 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식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이 몰래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 착취를 하는 n번 방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감출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는 외식은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골방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이 집 위에 밝은 곳에서 말해집니다. 성도는 골방과 같은 은밀한 곳에서 언젠가는 드러날 것을 생각하고 진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다윗은 몰래 골방에서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후처를 데려다가 지붕 위에서 공개적으로 강간했습니다.
우리가 숨어서 짓는 죄는 만천하에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죄가 다 드러날 것을 알았다면 숨어서 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완전 범죄를 노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 외식이 없나 살펴야 합니다. 마음의 동기와 목적을 살펴야 합니다. 중심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깊이 숨기는 자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어두운 데서 행하며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아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패역함이 크다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외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은밀한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때 은밀한 곳에서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은밀한 곳에서 보고 계신 하나님을 인식할 때 은밀한 곳에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은밀한 곳에서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은밀한 것인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외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연약하여 은밀한 곳에서 죄를 지었을 때는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깊은 속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잠언에 보면 거짓이 없는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다 드러내면서 진실하게 살 때 우리는 진실할 수 있고 그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일기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좋습니다.
4~5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로 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책망한 것과 대조하여 제자들을 칭찬하십니다. 제자들을 친구로서 예수님과 동등하게 높여주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두 번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두 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몸을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칭찬하지만, 겉만 보고 칭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외식의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우리를 죽인 후에 능히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후에 우리의 은밀한 죄에 대해서 철저히 징계하십니다.
우리의 은밀한 선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은밀하게 죄를 짓는 이유는 사람들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은밀히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한 목회자의 간증을 잊지 못합니다. 이분은 미국의 유명한 라디오 TV 설교자입니다. 그런데 창녀촌을 다니는 성중독의 죄를 지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밝혀져 교도소에 갔습니다. 그분의 설교를 듣고 은혜받은 분이 면회갔습니다.
‘당신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죄를 질 수 있는가?’ 화가 치밀어 한 대 치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다음에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죄를 짓고 죄를 지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후에도 하나님의 징계가 두려운 것이지 사람들의 비방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6~7절 하나님은 심판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기억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한 생명도 귀하게 여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보통 10만에서 15만 개의 머리털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많은 것을 셀 만큼 우리를 섬세하게 아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믿을 때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잠언에서 반복적으로 솔로몬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않고 진실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훈련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섬세하고 정확한 사랑을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마음에 찾아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