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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30주년(2026.8.1)을 맞이하며
햄릿.데미안.조르바 2026. 7. 26. 17:10
우리집사람; "왜 요즈음, 필립 파스 전화 안 와요?"
나;....
우리집사람; "그 사람 전화 오면 당신 또 바빠지던데……."
나;....
(그러나, 당분간 그의 전화는 오지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수단은 지금 내전중이며 거기에 미국의 무역제재가 언제 풀릴지 알 수가 없다.)
(수단참깨농사는 계속 좋지않을 것이며 따라서 참깨수출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Hi, Dong!"
그의 전화가 오면, 나는 또 바빠질 것이다.
밤잠을 설치면서 새 입찰준비를 할 것이다.
오는 8월1일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한참 잘나가던 대기업임원자리를 팽개치고, 대평원농상(주)를 창업한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헐, 30년@@@
창업할 때는 30년은 언감생심, 3년만 버텨보자 하였다.
후한 동양그룹의 임원 퇴직위로금 모두를 집사람에게 주면서, 앞으로 월급은 없어요, 한 3년만 해보겠다 하였다.
운명적으로, 참 뜬금없이 저질렀던 나의 창업은 정말 아무런 준비 하나없이 무모하게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찬바람 가득한 허허벌판에 나서는 자 치고는 왠지 불안.걱정 하나없었다.
제대로 해석하자면, 미쳤다해야 맞았다.
30년전 그때를 잠시 돌이켜보면 앞뒤 사리가 전혀 맞지않은, 엉뚱함이었다.
잠시, 지난 창립 7주년 기념사(2003년)를 다시 읽어보면 그때의 상황이해에 조금 도움이 될까요?
'자유를 찾아서'
어느 무역상의 창업 7주년 기념사 (2003.8.1)
(지면상 생략; 아래붙임 참조)
2015년 무렵,
나는 대평원농상(주)에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수단에 새로이 도입한 색채선별기가, 고품질 참깨를 요구하는 한국정부의 입찰방향에 딱 맞아, 욱일승천의 기세였던 인도산참깨를 이겨내고, 잃어버린 옛영화를 되찾고, 다시 절대적 강자의 위치에 다시 우뚝 설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하였다.
호사다마?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을 만났다.
고품격참깨를 공급해주었는데도 누구도 예상하지못한 일이 발생하엿다.
기술적 볶음방법에 제때 적응하지못한, 참깨가공시장의 무책임한 거부에, 마땅한 대응방법을 찾지못하였다.
(세상에 누가 어느 공급자가, 계약규격외, 국내실수요자의 특이한 가공방법까지 책임져야하고, 누가 국내유통과정까지 책임져야하는 국제계약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가!!)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하여,
유통공사측의 부조리하고 부당한 소위 '마켓클레임'에 대항, 국제 상사중재위원회에 제소하였지만 , 거대한 국가조직에 효과적인 대항수단을 찾지못한 것은 두고두고 천추의 恨, 소규모 무역상의 한계였다..
끝내는 정부측의 절충안(중재안?)을 받아들여야 하였다.(통관완료분은 소소한 품질클레임으로, 미도착분은 반품으로, 미선적분은 선적불이행으로 정리하며, 향후 입찰참가자격 1년 정지)
당시 중국산 불량고추에 대한 불같은 언론의 공격때문에 수단산참깨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아픈 현실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두고두고 아쉽고 뼈아픈 결말이었다.
무역일반의 국제법상 규정에 따라도 정부측의 불합리.부당한 마켓클레임(공급자에게 명시적 계약조건이 아닌, 시장수요자의 주관적 기대까지 공급자에게 책임을 확장시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함)에 끝까지 저항하며 싸워서 이겨야했다.
.
창업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돌이켜서 하지않을 수 없다.
끝까지 싸우지않고 농유공측의 절충안을 쉽게 수용해버린 후회,
창업후 30년, 시도때도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서고, 특히 재벌대기업 종합상사들의 공격까지도 모두 이겨내었다.
그러나 농유공측의 무자비한 '마켓클레임'에는 어찌하지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뼈아픈 한점의 티가 되어, 오늘 다시 또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Mr.P.G. Philippas,
지난 1994년, 내가 수단에 첫출장간 이후,
나는 그의 귀인이 되었다.
(창업 1996년 8월1일, 그는 나의 귀인이 되었다.)
오늘 그 필립파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만하다.
그때 정부측의 절충안, 중재안을 거부하고, 김앤장의 조언에 따라 끝까지 정부측과 담판을 지었어야 하였다.
입찰참가자격 1년정지후..또 다른 시련이 이어졌다.
엎친데 덥친격,
입찰자격 정지는 1년만에 끝났지만,
그 이후 수단에는 내전이 발발하여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참깨농사가 언제쯤 회복될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거기에 또 덥치는 시련, 미국의 생션(Sanction), 미국정부가 리비아.북한.이란등에 부가하는 것처럼, 수단에 대한 무역·금융 제재는 언제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위와같은 시련이나 위기는 내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기다린다.
30년 전,
필립 파스의 전화 한 통이 나를 밤낮 구분없이 바쁘게 만들었듯이,
창업 3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아직도 그의 전화를 기다린다.
"Hi, Dong!"
창립 7주년 기념사 마지막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3년을 더 채우고 나서 또 얼마를 더 할 것인지 물어보겠다."
그후, 이제 23년이 더 흘렀다.
오늘 또, 그 질문에 답을 한다.
다시 3년이 지날 것이고,
또 3년이 지나고,
그렇게 또 지나다보면, 어느새 또 30년이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몇마디 추가하고 넘어가자.
창업하고 3년을 넘기지 못하는 기업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30년을 버텨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힘께 땀 흘리고 고생한 직원들,
국내외 거래처와 친구들,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내 곁을 지켜 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0년 전 내가 찾아 나섰던 것은, 보이지않으나 숨막히는 어떤 거대한 조직의 그 '우리'에서 벗어나고픈, 그냥 그 '자유'였다.
물질적 돈이 아니라 막연하기만한 그저 그 자유였다.
그 자유는 화려하지도 않았고,
늘 편안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내 삶을 내 스스로 하고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내 원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자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길이었다.
대평원농상(주)가 언제 다시 수단대평원을 누비게 될지,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Hi, Dong!"
그의 전화를 기다린다.
2026.7.26 아침에
대평원농상(주) 창업 30주년을 맞으며
붙임; '자유를 찾아서' 가는 길, 어느 무역상의 창업 7주년 자축기념사, 2003.8.1
| '자유를 찾아서' 가는 길/2003.8.1 창업 7주년 자축기념사 햄릿.데미안.조르바 2003. 8. 1. 01:20 (광복절 우리 모두들에게는 '다시 빛을 본 날'이다. 그동안 어둠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였는데 드디어 그 날 빛을 보게 된 것이라는 뜻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 '자유독립만세!!!' 8월 1일. 창립기념일, 오늘이 창립 7 주년, 그 날은 내게 '광복'은 아니었지만 '자유를 찾아서' 숨막히던 우리를 뛰쳐나온 날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감격은커녕 불안함 반, 두려움 반으로 살얼음 위를 걷기 시작한 날이었다. 뒤돌아보면 아득하다. 다시 돌아가서 새로이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감히 할 수 있을까.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고 아찔하게 보인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포기할 것이다. 지나온 길의 험난함과 위험함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 그 상황이라면, 내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나로 말한다면 당연한 결정이었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소위 '운명'이었다. 모두들 '바보짓' 하지 마라. '미친짓'을 왜 하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꿈' 일 뿐, 제발 냉수먹고 속 차리라고 해댔다. 누가 말릴 것인가, '꼴통'이며 '독불장군'을. 나는 '옥떨메'를 들어서 저항하며 대항하였다.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같이 못생겼지만 '된장'은 누가 만들며, 옥상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자유'를 외치며 산화하는 젊은이가 '몸값'을 따졌더냐 하였다. 좋게는 걱정스러움을 바탕으로 안타까워들 하였으며, 좋지 않게는 '그래, 한번 잘 해봐라' 하며, 비웃음과 고소함이 함께 배어있기도 하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잘 생각했어요. 까짓껏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용기가 대단해요, 존경해요.' 하는 얼치기도 있었다.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격려하고 축하해주던 사람들도 조금은 있었다. '자유를 찾아서' 그 때 나의 화두였다. 재벌급대기업임원자리의 안정된 지위와 생활이 보장되었지만, 나만의 '그 자유'는 없었다. 보이지않는 거대한 조직의 '창살없는 우리'가 나를 숨막히게 하였다. 내 스스로 자유롭지 않았다. 이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고팠고 마음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늘의 시각이 아닌, 10 년 후 20 년 후의 나를 위치시켰을 때, 결론은 지금 '나의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오늘의 편안함이 결코 앞으로의, 먼 훗날의 '자유'와 '행복'을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것. 불안하고 험난하고 위험해 보여도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나의 자유를 위하여' '분식집 좋지 않아?' 나로 말할 것같으면, 비록 돌팔이지만 그래도 식돌이 식품공학 출신 아닌가. 아니면, '국.영.수 학원강사가 어때서? 좀 나이가 많지만....' 다른 건 몰라도 가르치는 건 차별이 없고, 대학 등록금 마련하던 왕년의 과외선생님, 인기많았지요? 최후의 보루, 배수진을 쳐놓고, 최소, 세끼야 담보될 것으로 믿고 밀어붙였다. 그냥 저질렀었다. 선택은 외롭고 쓸쓸했으며 겁나는 것이었다. 아무도 새로운 나에 대하여 옛날과 같이 평가해 주지 않았다. 시장은 냉정하였으며 찬바람은 곳곳에서 불어왔다. 은행의 창구직원은 얼마 전 '대단하셨던 나'를, 평범한 張三李四로 간단히 만들어 버렸다. 순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리쳤다, 나를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그것은 괜한 자격지심이었고, 되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였다. 두려워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신이 났던가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그리고 어느새 또 1 년이 훌쩍 지나갔고 이제 7년이 되었다. 달리다가 넘어지는 것조차 재미있고 즐거웠다. 진흙탕을 밟기도 하였다. 길을 잘못 들어 외길에 맞닥뜨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견뎌내고 참아내고 받아내고 만들어 내었다. 이윽고 간신히 자그마한 집 한 채 그리고 또 한 집(바둑에서의 아담.소박한 2집을ㅎ)를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엠에프IMF가 오셨다. 그는 내게 면죄부를 주셨고 또 축복까지 주셨다. 그는 나의 생각, 원칙론이 옳았음을 확인해 주셨다. 옛 부하 동료들에게 지워졌던 나의 정신적 부채까지도 일거에 말끔히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행운의 열쇠까지 주고 가셨다. 행운의 열쇠는 내게 좀 더 큰집을 마련하게 해주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게 넓지도 않지만, 나의 자유는 이 집에서 지금도 숨쉬고 있다. 더 크고 강하게 만들고도 싶었지만, 그러면 나의 자유는 그곳에 있지 않을 것. 욕심을 내지 않기로 하였다. 욕심을 더 내볼까 지금도 가끔 마음속에서 충돌하지만 곧 욕심을 버리는 것으로 내 욕심을 채우는 것에 나는 익숙해 있다. '비우기와 채우기' 어느덧 7년. 강하고 큰놈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정답은 '작지만 강한 놈' 이 되어야 한다. 'Small but strong' 은 살아남고, 'Small and weat' 는 반드시, 곧 죽는다. 먼저 '작은 2 집'을 짓고서 살아남아 그리고 맞부딪칠 것. 그렇지 않으면 나의 자유는 더 이상 없다. 나는 곧 죽는다. 나의 원칙과 상식이 살아남는 길은, 남보다 많이 아는 것. 먼저 덤비지 않는 것. 그리고, 바닥을 만들어 놓고, 나가서 싸울 때만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렇게 해야 '나의 자유'는 존재한다. 3 년을 더 채우고 나서, 또 얼마를 더 할 것인지 물어볼 것이다. 다시 또 시작하는 마음으로 3 년을 시작하자. 새롭게 넓히지는 말고, 있는 것을 가꾸면서 '느리게' 시작하자. 자유는 더 찾아 나서고 공부하는 시간을 더 만들어내자. 자연스럽게 자연에 따라 자연에 맞추어 자연과 함께, 더 느리게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3 년 후, 다시 이 자리에 서서 다시 말할 것이다. '자유를 찾아서' 2003.8.1 대평원농상(주) 창업 7주년 아침에 |

첫댓글 '자유를 찾아서' 가는 길/2003.8.1 창업 7주년 자축기념사
박동희추천 0조회 2626.08.02 10:0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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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서' 가는 길/2003.8.1 창업 7주년 자축기념사
햄릿.데미안.조르바 2003. 8. 1. 01:20
(광복절
우리 모두들에게는 '다시 빛을 본 날'이다.
그동안 어둠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였는데
드디어 그 날 빛을 보게 된 것이라는 뜻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
'자유독립만세!!!'
8월 1일.
창립기념일,
오늘이 창립 7 주년,
그 날은 내게 '광복'은 아니었지만
'자유를 찾아서' 숨막히던 우리를 뛰쳐나온 날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감격은커녕 불안함 반, 두려움 반으로
살얼음 위를 걷기 시작한 날이었다.
뒤돌아보면 아득하다.
다시 돌아가서 새로이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감히 할 수 있을까.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고 아찔하게 보인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포기할 것이다.
지나온 길의 험난함과 위험함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 그 상황이라면, 내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나로 말한다면 당연한 결정이었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소위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