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동고동락하며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온 소와 인간이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은 40년을 산 늙은 소 누렁이와 팔순 노인 최원균, 이삼순 씨 부부이다.
누렁이가 고령이라 몸도 성치 않았던 데다가 힘도 없어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할아버지는 부담을 덜기 위해 새 소를 한 마리 샀는데 요즘 세상에 일소가 있을 리 없어 육우를 들여온지라 말을 잘 안 듣고 자꾸 늙은 소를 괴롭혀서 관객들에게 욕을 먹었다.
게다가 새끼를 밴 상태여서 낳고 기르는데 시간 보내느라 일은 늙은 소가 다 하고 축사에 틀어박혀서 놀고 먹었다. 그래도 팔려가는 송아지와 헤어지면서 우는 장면은 찡하다.
중간에 자식들의 계속된 권유로 한번 누렁이를 팔려고 하지만, 너무 나이가 들고 고생한 탓에 빼빼 말라서 아무도 안 샀다. 측은하게 여긴 상인들이 웃돈을 주고 팔라고도 한다.
결국 누렁이는 겨울나기를 위한 땔감을 해온 뒤 일어나지 못하다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가 일하던 밭 한가운데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1. 한 시골 소농 할아버지와 40년 동안 산 늙은 소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생명질서에 순응하는 소농과 소라는 생명체가 농사라는 노동의 일을 매개로 진실된 세상을 일구어나가는 삶의 정수가 그려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워낭소리’는 소에게 풀 대신 육골분을 먹이고 상품가치가 떨어질까 봐 일어나지 못하는 앉은 소에 물대포를 쏘아대어 일으켜 세우는 비인간의 타락된 세상에 자연 질서와 생명질서에 순응하며 소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그리고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가는 늙으신 농부 마음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2. 농약 치라는 할머니 말에, “안 돼”
늙은 소 싸게 팔라고 하는데, “안 팔아”
농기계로 농사짓자는데, “안 해” 라고 말하는
봉화 할아버지는 노인의 옹고집이 아니라 소농 삶의 철학에서 나오는 위엄으로 보입니다.
일반 사람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일들이지만 세속 물정에 조금도 오염 되지 않고 소와 더불어 평생을 농사다운 농사를 지어 왔기에 말 할 수 있는 자기 소신입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동물, 농사와 살림살이 관계에서 어느 하나 왜곡됨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소농 삶 말입니다.
농약을 치면 사람은 편하지만 땅이 죽고, 풀이 죽고, 강이 죽고, 소가 죽기에 농약을 치지 않는 체화된 생명 사상과 농기계 대신 소로 논밭을 갈고 본인의 손으로
추수까지 한다는 것은 쌀 한 톨도 논바닥에 흘리지 않는 몸에 밴 살림살이 그 자체입니다.
늙은 소농의 눈으로는 기계농사보다 훨씬 경제적일 것입니다. 비싼 농기계 내어 농사짓다, 빚진 농부들이 태반인 현실이니까요.
눈만 뜨면 밭에 나가고, 농사 일로 하루해가 저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단한 농업노동이지만 농부가 살아있는 한, 밭은 묵히지 않고 그 땀의 대가로 자식 키우며, 교육시키는 농업노동은 인간세상을 일궈온 토대였습니다.
지금 세상살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으로 극단적으로 나눠지고 대부분의 육체노동은 기계에 얽매인 타율노동으로 지극히 왜곡되어진 노동형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 할머니 잔소리(?)에 듣는 척도 하지 않으면서 소가 울면 눈을 번쩍 뜨는 할아버지. 소가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이기에 서로 맞추는 감응 주파수는 늘 열려있나 봅니다.
소는 주인 잘 만나 제 목숨 다 할 수 있었고, 몸이 성치 않는 할아버지는 소 덕분에 농사도 지을 수 있고, 이렇게 인연 짓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온 생명 모두에게 있나 봅니다.
생명사슬의 그물코 어느 한 고리라도 깨지면 전체가 피해를 보건만 근대의 자본 문명은 극단적인 인간본위로 뭍 생명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의 업보만 남기는 듯싶습니다.
4. 워낭에는 노동의 거친 숨결과 생명체들의 교감이 담긴 채 2천년을 이어온 이 땅 소농의 진실한 위대한 소리입니다.
이 생명의 소리가 우리세대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미국 대농의 과잉 작물생산이 싼 가격으로 강제 개방되면서 지구 모든 소농의 워낭 소리를 거둬 갔습니다.
동아시아에서 2천여 년 내려온 쌀농사와 쌀 문화를 위협하고 또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농촌마을을 붕괴시키며 기아의 벼랑으로 내몰았습니다.
경제 합리성을 내세우며 농업을 천시하는 눈먼 경제정책으로 논밭이 골프장으로 변하고, 투기의 먹이 감으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일어나고 있고, 석유 종말을 걱정하는 세상임에도.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워낭을 다시 소에 달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파국이 오기 전에 우리는 워낭의 소리를 제대로 새겨들어야 될 듯싶습니다.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