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13)
대근교(大根橋)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데…
하곡천에 돌다리 놓인 내막은
하곡산이 운해를 뚫고 장엄하게 솟아올라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하곡천 너머 황금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끈질기게 퍼붓던 장마가 끝나자 지글지글 끓는 불볕더위가 찾아왔다. 장마만 오면 나무다리는 힘 한번 못 쓰고 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버렸다. 연례행사다.
하곡천을 건너서 관아가 있는 대처로 가는 사람들은 동네가 다르다. 하곡산 자락 드넓은 들판을 안은 매화촌 양반과 천변에 붙어 버들가지로 소쿠리나 짚방석을 짜 장터에 내다 파는 버들촌의 상것이다. 버들촌 사람은 백성·짚신장수·엿장수·대장장이로 대처 장터에 나가 그날그날 벌어먹는 가난에 찌든 이들이다. 하곡천 다리가 떠내려가버리면 버들촌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지만 매화촌 양반은 느긋하다. 장터에 갈 일이 급하지 않아 그들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결국 폭염 속에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와 교각을 박고 서까래로 상판을 얽어 솔가지로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나무다리를 놓는 것은 버들촌 몫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버들촌 사람들이 무더위 속에 하곡천에 달라붙어 다리를 놔도 매화촌 양반은 막걸리 한말을 내놓지 않는다. 족히 쉰걸음이나 되는 다리를 한달 걸려 완공하고 나면 양반네들은 ‘에헴 에헴’ 헛기침에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다리를 건너 장터로 간다. 이듬해 장마철이면 또 떠내려갈 것이 불 보듯 뻔한데 버들촌 사람은 다리를 막고 통행세를 받을 수도 없는 일이라 오장육부만 뒤틀린다.
“아이고, 허리야. 이놈의 허리가 또 도진다. 구월아 얼른 와서 허리 좀 밟아라.”
매화촌 유 대감댁 안방마님이 하녀 구월이를 불렀다.
“구월아 네가 지난번에 말한 접골원장이 당달봉사(눈뜬장님)에 벙어리라 했나?”
“네, 울 엄마도 세번 받더니 멀쩡하게 나았어요.”
그날 저녁나절 접골원장이 유 대감댁에 왔다. 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지팡이 한쪽 끝을 구월이가 잡아 원장을 이끌었다.
촛불을 켜고 안방마님이 이불 위에 배를 붙이고 눕자 접골원장이 꿇어앉아 허리 지압을 시작했다. 버들촌 언저리 다 쓰러져가는 외딴 초가삼간에 이사 와 접골원 간판을 단 젊은이는 비록 봉사에 벙어리지만 접골에 지압까지 해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하곡천 다리를 함께 놓지는 않았지만 돼지도 한마리 사고 때때로 막걸리도 몇말씩 샀다.
접골원장은 보고 말할 수 없어서 그렇지 팔척장신에 어깨가 딱 벌어지고 이목구비가 반듯한 총각이다. 유 대감 안방마님의 숨소리가 가빠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남자 손이 내 몸에 닿은 게 몇년 만인가? 남편이란 건 과거에 붙더니 한양에 가서 첩살림을 차려놓고 부모상 때만 다녀가고. 내 나이 이제 서른여섯인데!’
접골원장 손길이 속치마 밑으로 들어와도 피하지 않았다. 매화촌 열녀 과부들의 골절이 잦아졌다. 당달봉사에 벙어리인 접골원장의 매화촌 밤 출입도 따라서 부쩍 늘어났다. 대담하게도 장옷으로 얼굴을 감추고 대낮에 다리를 건너 버들촌 접골원에 가는 과부도 생겨났다.
가을이 되자 하곡천이 바짝 말랐다. 우마차 다섯대가 돌을 나르기 시작했다. 어디 석공장에서 오는지 모두 다듬어진 돌이다. 석공 네댓명의 지시로 버들촌 남자들이 목도로 돌을 날랐다. 버들촌 숙원사업인 장마에도 떠내려가지 않을 돌다리를 놓게 된 것이다. 쉰걸음이나 되는 긴 돌다리를 놓으려면 거금이 필요할진대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대낮에 접골원장 박대근이 옥색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매화촌 유 대감댁으로 들어갔다. 지팡이 한쪽을 잡아 끌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성큼성큼 올라와 대청마루에 앉았다.
“안방마님, 하곡천에 돌다리를 놓으려는데 자금이 너무 모자랍니다.”
안방마님이 자지러졌다. 봉사도 아니고 벙어리도 아니었다. 안방마님이 안방 장롱 속에서 금붙이 패물을 한보따리 싸왔다.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입은 무겁습니다.”
매화촌을 한바퀴 돌고 나니 금은보석이 한자루가 됐다. 보물자루는 다리 놓는 주무, 버들촌장 영감에게 전해졌다.
번듯한 돌다리 이름은 ‘대근교(大根橋)’라 지었다. 박대근은 다리 준공식도 보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