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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수우도 새봄맞이
엊그제가 바로 동면하던 개구리가 뛰쳐나온다는 경칩이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겨울 날씨가 다소 따뜻한 탓인지 이미 한 달 전에 인근 도솔산 자락 웅덩이에 풀어놓은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볼 수 있었다. 그간 겨울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산행을 하지 못했다. 이제 산행의 동면기를 벗어나 기지개를 켜본다. 통영의 수우도로 새봄맞이를 떠나본다. 통영이라지만 사천의 삼천포에서 유람선을 타고 30분가량을 가야 한다. 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포근하여 4월 중순의 기온이라고 한다. 그래도 바닷바람은 처음에는 다소간 싸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도 잠깐 출렁거리는 바다물결에서 봄의 기운이 꿈틀거림을 느끼기에 부족하지가 않았다.
갈매기들의 날갯짓이 아주 분주했다. 봄을 물고 부지런히 여기저기 모종이라도 하는 것일까. 한겨울 추위를 털고 먹잇감을 찾아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일까. 이따금 바다에 살짝 내려앉아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기도 한다. 한려수도. 여전히 바다는 짙푸르고 청청함을 뽐내고 있다. 건강미를 과시하듯 잠시도 멎지 않고 출렁거린다. 크고 작은 섬이 생동감 넘치게 들어오고 유람선은 물살을 갈라 아침 뱃길을 열며 힘차게 수우도로 달려간다. 수우도는 통영시 사량면으로 본섬 사량도의 부속 섬 중에 하나이다. 이웃 에 위치한 사량도의 유명세에 눌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동백나무숲과 곳곳에 기암절벽이 손짓한다.
수유도선착장에서 하선하자 바로 왼쪽으로 산을 오른다. 기다렸다는 듯 진달래꽃이 반갑게 맞아준다. 좀은 수줍은 듯 발그레하다. 벌써 꽃이 피었구나.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서 있음을 한눈에 느낄 수가 있었다. 한결 가뿐한 마음의 발걸음이다. 좀은 촌스럽게 깎은 길이 잘 다듬어진 길보다 오히려 정겹고 봄을 찾아 나서기에 자연스럽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찾아 다닥다닥 걸어놓은 시그널들이 한 나뭇가지에서 눈길을 잡아끈다. 동백섬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동백나무숲을 지난다. 그러나 야생인데다 꽃이 작고 듬성듬성하여 그다지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더러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 있다. 꽃잎이 하나씩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송이채 진다.
고래바위를 거쳐 신선봉을 오르고 백두봉으로 간다. 수유도에서 가장 빼어난 모습이지 싶다. 반도처럼 길게 늘어진 커다란 바위를 타고 간다. 밧줄을 아찔하게 잡고 실감나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짜릿함을 맛본다. 군데군데 잔디가 천연덕스럽다. 온통 바위에 세찬 바람을 견뎌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 얼마나 악착스러운 삶일까 싶다. 바위의 끝자락에 올라서니 탁 트이면서 시퍼런 바다가 넘실거리는 정말 빼어난 경관이다. 저 물결에 바위마저 깎이고 파여 좀은 섬뜩하지만 해골 같은 몰골을 만들어 해골바위까지 만들어 명물로 거듭났다. 해안은 온통 바위로 병풍처럼 둘러쳤는데 섬의 안쪽은 잔돌에 너덜겅이 형성되어 흘러내리다 멈췄다.
뒤돌아 나와 은박산에 오른다. 이 섬의 최고봉이지만 고작 189m에 지나지 않는다. 정상 앞에 커다란 화분처럼 진달래가 환영의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다. 봄을 터트리고 있다. 동박새일까, 작은 새들의 감미로운 소리다. 하산을 하면서 돌이 동글동글 깎이고 다듬어진 몽돌해수욕장을 지난다. 해안이 가파른 절벽으로 접근하기 어려운데 이곳에서만 약간의 밭떼기를 볼 수 있지만 그마저 신통치가 않다. 다시 선착장이 있는 마을에 닿는다. 섬에는 이곳 계곡에만 유일하게 마을이 있다. 지금은 빈집이 많이 생겨 20여 가구에 50명 남짓이 살고 있을 뿐이다. 산에서는 먹을거리를 기대하지 못하고 오로지 바다만을 터전으로 하기에 살아가기에 팍팍했을 것이다.
작은 어촌이랄 이곳도 젊은이보다는 늙은이가 많은지 경로당건물이 반듯하게 세워졌고 할머니 몇 명이 작은 가게 앞에 나와 봄볕을 쬐며 마른 홍합을 팔고 멍게를 팔고 있다. 고샅길을 따라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 본다. 사량초등학교 수유도분교장 터 교적비가 보인다. 1946년 11월 1일 개교하여 졸업생 269명을 배출하고 2008년 3월 1일 폐교되었음을 경상남도교육장이 알리고 있다. 60년이 넘었으니 한 해 졸업생이 불과 5명 내외다. 그마저 유지를 못하고 폐교 되었지만 울타리를 치고 보존하고 있다. 아담한 교실 앞에 커다란 감나무가 서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려 가을이면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이들의 눈망울처럼 올망졸망 익어가며 그들을 기억할까.
아직 책을 펼치고 있는 여학생과 건강한 모습의 남학생 석고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잔디밭이 된 운동장 한 쪽에 녹슨 그네와 시소와 골대가 고스란히 비바람을 맞고 햇볕을 받으면서 동백꽃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졸업생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삶의 바퀴를 열심히 돌리다가 어느 날 찾아오면 깊은 감회에 젖어들 것이다. 그들을 위한 막연하면서도 절절한 기다림일 것이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마을의 역사고 섬의 역사가 되었다.
수우도는 두 시간 남짓이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섬이다. 이웃에서 사량도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앞쪽에 삼천포화력의 커다란 굴뚝 세 개가 우뚝 솟아 한낮의 등대처럼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비록 작은 섬이지만 새봄맞이 하기에 적당하지 싶다. 소를 닮았다는 섬은 그리 무리하지 않은 산행에 곳곳에서 한려수도의 빼어난 경관을 음미해보며 한 발 빨리 동백꽃이며 진달래꽃과 별꽃과 매화꽃도 만나볼 수 있다. 10시경에 도착하여 오후 2시 전에 떠났으니 불과 4시간도 채 머물지를 못했다. 돌아가는 길 삼천포방향의 뭍을 향해 무덤들이 늘어서 있다. 하나씩 사연을 안고 들어왔거나 평생을 이곳에 살다가 죽은 영혼들일 것이다.
뭍을 그리는 향수 같은 심정은 죽어서도 놓지 못하였던가. 지금은 그다지 멀지 않는 바닷길이지만 오가는 배만 바라보고 있지 싶기도 하여 좀은 씁쓸한데 햇볕을 받은 물결이 반짝거리며 작은 새가 날아들어 까불거렸다. - 2015. 03. 08. 文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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