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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십니다. 예수님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우상숭배과 우환에서 해방받을수 있습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간 때이기 때문이니라 |
예수 믿으면 진짜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사도행전 10:38)
복음성가에서 <괴로울때 주님의 얼굴보라>는 곡이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힘이 없고 내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사랑이 주님이 안식주십니다. 내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주인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믿음의 주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려면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이 하시게하면 힘들지 않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쉬운 일입니다. 염려가 아니라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저는 실수도 많습니다. 아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때도 많이 있습니다. 왠지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이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 부흥시켜야 할지 어떻게 자녀을 양육해야 할지 모를때가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를 느낄때가 있습니다. 내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온전케 하는 이의 헬라어 원어는 <텔레이오텐>입니다. 텔레이오텐이라는 말은 <완성자><완전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완성자이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다. 무엇을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까?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온전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까? 우리는 영혼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육을 다 회복시켜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 영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은 죽이는 영이고 예수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불을 붙인 촛대는 빛을 내는 것처럼 예수님에게 닿은 영혼은 산 영이 된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 6;63)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그 날 밤 따라 컨디션이 나빴는 지 단 한 마리도 잡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오늘만 날이냐? 푹 자자. 그리고 오늘 저녁 다시 나오리라. 내게는 항상 꿈이 있고 건강이 있다.>
그리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하지 마세요. 밤새도록 못 잡았어요. 새벽은 고기 못 잡을 시간이지 않아요?>
<당신은 목수이니 집을 짓는 데나 가서 참견하시오.>
<당신 고기 잡아 보았소?>
<당신은 갈릴리 고기 성격을 모르나요?>
베드로는 묻지 않았습니다. 믿음에는 질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두 배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절대자 말에 질문이 없었더니 결과가 좋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절대자이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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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께서 에덴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면에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시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영이 파괴되고 혼이 파괴되고 육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던 영이 파괴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 즉 혼이 파괴되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부부로 맺어 졌을 때에는 <내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라고 고백하였던 아담이 하와를 향하여 <저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으로 하여서 따먹었나이다> 라고 여자 핑계를 댔습니다.
하와는 <내 책임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뱀이 따먹으라고 하여서 따먹었다고 뱀 핑계를 댔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증오의 관계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영이 파괴된 후부터 혼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만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혼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악한 생각이 선한 생각으로 회복됩니다. 부정적인 정신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문제가 해결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혼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가 <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진정으로 받아 드렸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화되었다. 이전에 바라던 것, 이제는 바라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 이제는 안 좋게 보이고,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이고, 이전에 내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가 허무함을 알게 되었고, 거짓을 자기를 꾸민 것이나, 여인들과 즐겁게 지내던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면 가치관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즐기던 오락, 쾌락, 놀음이 싫어집니다. 돈, 명예, 권력, 돈과 자식 바라보던 것이 영혼사랑 영혼 구원 영혼이 잘되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정신을 온전케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육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아담과 하와가 영이 파괴된 된 후 혼이 파괴되고 육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가려면 병들어야 합니다. 그 때부터 육체가 파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자 육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병에 들었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온전하게 회복됩니다.
기계를 제일 잘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기계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이 그 건물에 하자가 있을 때 가장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자동차를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을 만드신 예수님은 우리 몸을 가장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채찍에 맞으면서까지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한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팔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천근만근 날마다 때마다 언제나 그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 죄책감은 육체적인 병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제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하여졌습니다. 치료불능의 판결을 받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였습니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억울하였습니다. 그 창녀는 병석에서 전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부흥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분이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씀이 신비롭게 들렸습니다. 그 창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예수님! 정말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면 내 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내 죄도 받아주시옵소서!>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순간 배가 편안해짐을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배가 점점 정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순간 <정말이다. 그 분 예수는 내 죄도 짊어지셨다>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의 배에 평안이 왔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창녀에게는 기쁨이 강물처럼 찾아들었고 병에서도 놓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육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영혼육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도 온전하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안 되던 일이 됩니다. 막힌 일이 뚫어 집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한 일이 풀어 집니다.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만사를 다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결론으로 분명하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부터는 믿음의 주요 영혼육을 온전케 하시고 모든 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