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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게시판 스크랩 [좋은수필]?이상한 수발(鬚髮) ?/ 이길영
이길영 추천 0 조회 67 14.07.18 14: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상한 수발(鬚髮) / 이길영

 

 

 

통계에 의하면 할아버지들 보다 할머니들의 평균 수명이 칠 년이나 더 길다고 한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병 수발을 하는 할머니가 많음이 당연하다. 그렇긴 하나 할머니가 어지간히 거동하시는 분은 할아버지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보내진 않는다. 내 한 몸 건사도 힘들지만 남편을 섬긴다.

그러나 반대일 경우 할아버지들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신다. 그리고는 열심히 점심과 저녁으로 면회를 가서 식사를 살핀다. 많은 노인환자 중에 남편이 집에서 아내를 수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녀가 동거하지 않는 경우 감당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며칠 전 케어 의뢰 전화가 왔다. 반갑지 않은 곳이어서 계약서도 준비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휴대전화기만 달랑 들고 방문했다. 쇠창살의 잠금장치를 몇 차례 통과한 후 안방에 들어섰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내 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세상에,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몸은 불에 오그라든 그 무엇과 차이가 없었다. 말려든 손은 손가락마다 거즈가 끼워져 가슴에 붙어 있고, 두 다리는 각이 지게 접혀 허벅지가 배에 붙어있었다. 오랜 기간 요양병원을 드나들었지만 이런 참담한 환자는 보지 못했다.

이 여자가 보고 싶긴 했었다.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내게 주던 눈길이 지워지지 않아서였다. 바짝 마른 나무둥치 같은 몸으로 나를 포옹을 하던 그녀가 지워지지 않았었다. 남편의 학대로 멍이 든 몸을 내게 보여주며 눈으로 고자질하든 그녀가 지워지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잊고 싶었다. 그녀의 남편을 내 기억에서 들어내고 싶었다. 그 집의 연락처를 내 휴대전화에서 모조리 삭제해버렸다.

소변 줄을 달고, 콧줄(Levin tube) 식사는 내게 낮선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욕창의 흔적과 현재의 욕창은 나를 뒤로 물러서게 했다. 불과 몇 달 전 그녀는 산책을 하며 내게 감사의 눈빛도 보내고 나를 껴안았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위한다며 비싼 식재료와 비싼 치료재를 설명하며 돈이 많이 들어감을 내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된 것은 그 동안 그녀의 수족 결박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병원에 왜 안가느냐고 남편에게 물었었다. 대학병원 입원비가 비싸다고 했다. 요양병원에 가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니 요양병원엔 절대 안 보낸다고 했다. 잘 먹여야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며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을 자랑이라고 늘어놓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 남자는 아내를 놓아주지 않을까. 몰골이 처참하기까지 한 이 여자를 말이다. 이 남자는 이 와중에 자신만의 의(義)를 늘어놓는다. 시설에 갔으면 영양부족으로 저세상에 갔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이 상황만 보면 이 남자가 대단히 훌륭해 보일 것이다. 쪼그라진 그녀를 살리려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든다. 강릉의 초당두부를 주문하여 갈고, 해양침청수를 배달해 쓴단다. 물 1개월분에 기십 만원이라고 자랑이다. 고급 과일을 갈고 겨울에도 고가의 채소를 갈아 먹인다며 절절히 늘어놓는다.

그러나, 그러나, 그날 치매환자인 그녀를 내리치는 현장에 내가 있었다. 말리는 나를 뿌리치고 그는 아내의 뺨을 계속 후려치고 있었다. 성난 소가 들이받듯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난폭함이었다. 큰 이유도 아니었다. 방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그녀가 집어 먹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순간 나도 불같은 분노의 용암이 솟아올랐다. 몽둥이로 그를 내려치고 싶었다. 너무 기가 막혀 가방을 들고 그 집을 뛰쳐나왔다. 사무실에 와서도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했다. 케어는 고사하고 이건 학대다! 고발해야해!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다리가 마비되어 털썩 주저 않고 말았었다.

참담한 모습의 그녀를 보고 돌아오며 아찔했던 그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예전에 그녀를 케어 하던 요양보호사를 만나러 병원을 찾아 갔다.

오랜 병 수발에는 미움과 측은함만 남는다는데, 그는 왜 할머니를 곁에 붙잡아 두고 용을 쓰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혼자 남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별난 성격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다 떠났지만, 할머니를 돌보는 것을 자신의 의(義)를 내세우고 있는 거라고 했다. 바른 답을 해줄 리 없겠지만 과연 그러냐고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내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자신도 노동에서 벗어나는데 왜 그렇게 곁에 붙들고 있느냐고 묻고 싶다.

두 사람이 궁리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를 도울 특별한 대안은 없었다.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서다 보니 병실에 자주 뵙던 할아버지 몇 분이 와 계셨다. 요양보호사는 그분들을 가리키며 요즘은 저렇게 할머니들은 안 오시고 할아버지들만 지극정성으로 오시지 않느냐고 했다. 그 할아버지들을 보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그가 다시 오버 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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