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형님께서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내민다. 열어보니 데쳐서 깐 머위대가 들어있다. 머위 대는 들기름을 넣고 볶다가 들깨가루와 쌀뜨물을 넣어 자박자박 끊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나물로 먹기까지 데치고 껍질을 까고 가운데를 쪼개고 손이 많이 간다. 직장 일에 바쁜 나는 해먹기가 쉽지가 않다.
일주일간 손자 하준이를 맡겼던 딸 부부가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서 친정집이 있는 공주 마곡사로 온다고 한다. 점심은 마곡사부근 식당에 미리 예약해 두었다며 그리로 오라고 한다. 남편과 나는 점심시간에 맞춰 손자를 데리고 딸이 예약해놓은 두부두부로 갔다. 곧이어 딸 부부가 도착하였다. 딸은 주문한 메뉴와 함께 차려진 반찬 하나를 보더니 대뜸 한마디 한다.
“이 반찬 자기가 좋아하는 거다.” 호들갑을 떨며 반색을 한다. 언 듯 보니 중국산 궁채 나물이다. 나는 딸 부부가 30대여서 식감이 오들오들한 것을 좋아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마곡사에서 점심을 먹고 남편은 어디론가 가고 딸 부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주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정산 골에 머위대가 많다며 베어 온다고 한다. 생뚱맞게 웬 머위 대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사위가 좋아하는 거라고 한다. 나는 남편한테 물렁물렁한 머위대가 아닌 사위가 좋아하는 건 오들오들한 궁채라 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아니라고 분명 머위 대라 했다고 한다.
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남편말대로 사위는 머위 대 볶음을 좋아한다고 한다. 문득 옆집형님이 주고 간 머위대가 생각나 사위한테 바로 머위 대를 볶아주겠다고 했다. 사위는 손이 많이 가는 걸 어떻게 금방 할 수 있냐고 한다. 나는 보란 듯이 형님께서 주신 머위 대를 냉장고에서 꺼내 들기름을 팬에 두르고 들깨가루를 얹어 볶아내었다. 사위는 맛을 보더니 너무 좋아한다. 딸 부부는 시댁으로 가면서 저녁 밥반찬으로 먹게 다며 볶은 머위 대를 모조리 싸가지고 갔다.
남편은 사위가 머위 대를 좋아하는 걸 알고 나서부터 다음날 정신골에 다녀오더니 머위 대를 잔득 잘라왔다. 우리가 먹기에는 너무 많다고 하자 5월이 가장 머위 대가 맛있을 시기라고. 이 시기를 놓치면 머위 대 안에 벌레가 들어앉아 먹을 수 없단다. 남편은 삶아서 사위가 올 때까지 냉동고에 보관해두라 당부한다.
친구한테 이 말을 했더니 머위 대는 얼려놓을 경우 실 가닥처럼 풀어져 먹을 수 없단다. 머위대의 경우 장기보관이 어렵다며 혹, 햇볕에 말려 묵나물로 해먹으면 어떠냐 한다.
나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머위 대를 살짝 삶아서 실험삼아 장아찌를 담아보기로 했다. 때마침 사다놓은 짱아지용 간장도 있었다. 삶은 머위대의 물기를 빼고 먹기 좋게 5센치로 잘라 통에 넣고 짱아지용 간장을 부었다. 큰 통은 마당에 있는 저온창고에 보관하고 작은 통에 담은 건 집안 냉장고에 두었다. 그리고 삼일이 지난 후 식탁위에 반찬으로 담아 내놓았다.
아삭아삭 남편의 입안에서 맛있는 소리가 난다. 남편은 머위장아찌를 먹어보더니 밥한 공기 뚝딱 해치운다. 그러면서 아삭거리는 식감이 너무 좋다고 한다. 향도 그렇고 아삭거리고 연한 것이 내 입맛에도 딱 맞았다. 머위장아찌는 맛도 좋고 냉장보관하면 장기보관도 가능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머위 대를 일 년 내내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남편은 머위 대를 찾아 대중리 마을을 갔다. 그리고 곧바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머위 대를 베러간 집의 형님이셨다. 형님은 머위 대 장아찌 담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남편을 통해 머위로 장아찌 담는다는 걸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형님께 상세히 알려주었다. 형님도 머위 대를 엄청 좋아하는데 잘되었다고 한다. 끝없이 배워야 한다면 좋은 걸 배웠다고 고맙다고 한다. 올 해 가교리 마을은 유행처럼 머위 대 장아찌를 담가놓느라 집집마다 분주하다. 아삭아삭 맛있는 소리가 사립문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