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16)
헌상이란 무엇인가?④ : 헌상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
우리가 올바르게 헌상을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헌상된 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교회는 올바른 헌상을 힘써 가르치지만 그 헌상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등한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헌상을 잘못 관리하고 사용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잘못된 관리와 사용으로 인해서 교회에 많은 다툼이 생기고 교회가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할 헌상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헌상을 관리하고 사용해야 할까? 이 시간에 우리가 헌상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원리를 바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헌상을 통해 교회의 덕을 세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길 바란다.
1. 바람직한 헌상관리 방법
성도들이 자신 전체를 드리는 것을 대표하여 드린 헌상된 물질을 관리하는 일에서 교회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단 이 헌상을 관리하는 일은 성경적으로 집사들 고유의 일이다. 재정 출납을 집사들이 감당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려진 헌상을 집사들이 신중하게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누가 얼마를 드렸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누구에게 유익이 있겠는가? 따라서 교회에서 재정 관리에서의 큰 원칙은 비밀성과 정직성이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이 두 가지 원칙이 잘 보장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헌상된 것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는 정신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상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것이다.
2. 헌상된 재물의 이상적인 사용
신약성경에서는 일차적으로 구제와 복음 전도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직 복잡하게 제도화되지 않은 처음 교회의 이 모습은 헌상된 재물의 사용에 대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를 해 준다.
1) 헌상된 재물은 구제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처음 교회는 교회 안의 과부와 같이 가난하고 자신들을 돌볼 수 없는 이들을 돕고 그들의 생활을 지원하는데 우선적으로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6장은 과부들에 대한 구제가 사건의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고, 2장에서도 재산과 소유를 팔아 그것을 공동체의 목적을 따라 사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드려진 헌상된 물질이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교회의 직임자들에 의해서, 특별히 집사들에 의해서 공급된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돌봄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였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과부나 가난한 이들을 모두 교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회 서신에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5:16절에서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구제는 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 지역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다른 지역의 교회가 헌금을 모아서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돕는 일을 신약 성경은 자주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유대지역이 크게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안디옥 교회는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9-30)고 했으며,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 12:25)라고 했다. 이방의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과 유대 교회의 어려움에 구제하는 일을 각기 그 힘대로 실행한 것이다. 이는 후에 바울이 전도여행 기간에도 여러 번 있게 된 일이었고, 바울은 그런 활동을 격려하는 일을 자주 하였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전서 16:1-4에서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자신이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에 소위 특별헌금을 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면서 성도들이 그렇게 모은 것을 성도들을 위한 ‘연보’(1,2), 또는 ‘은혜’(3), 즉 ‘자비의 선물’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라고 한다.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의 어려움 당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가 시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린도후서 8-9장에서는 고린도를 포함한 아가야 지역의 교회와 마케도니아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를 위한 섬김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여기서도 구제를 위한 헌금을 ‘성도를 위한 연보’(1,2), 또한 ‘교제’(8:4; 9:13), ‘은혜’(8:4)와 ‘섬김’(8:4; 9:1, 12, 13)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면서 이 모든 것은 서로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8:14)고 하여 헌상이 교회와 교회 사이의 균등하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것은 로마서 15:25-27절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쁘게 얼마를 동정한 것과 같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와 같은 교회 간의 구제는 그 자체로도 의미 있을 뿐만이 아니라, 특별히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고 그의 사역의 결과로 세워진 교회들이 그런 구제를 모아 보낸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여겨진다. 자신을 미워하고 의심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교회적인 유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런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에서 교회 안에서, 교회간의 성도를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헌상된 재물이 사용되었고, 그런 목적을 위해 헌상되어야 할 것이 언급되어져 있다.
2) 세계선교와 같은 복음 전파역사에 사용되어야 한다. 구제보다 적게 언급된 것은 바울이나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위해 여러 교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고린도후서 11:8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린도후서 11:9절에 보면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 말한다. 즉, 마케도냐와 여러 다른 교회들이 바울의 선교사역을 도운 것이다. 복음이 온 세상에 효과적으로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은혜를 먼저 받은 교회가 선교 사역에 힘쓰는 사역자를 경제적으로 지지하는데 헌상된 재물과 개인적인 도움과 교제인 연보가 사용되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마케도니아 교회를 떠날 때에 바울을 후원한 유일한 교회였으며(빌 4:15), 또한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서도 늘 생각하던 후원을 실행하고 아마 에바브로 디도를 통해 전달한 것에(빌 4:18) 대해서 바울은 기쁨과 칭찬의 마음을 가지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빌립보서 4:18절을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선교 헌금에 대해서 바울이 칭찬할 때 그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는 것과(빌 4:11)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라는 것을 강조한다(빌 4:17). 그는 “모든 것이 풍부하다”(빌 4:18),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빌 4:11)고 한다. 즉 그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빌 4:12)고 한다. 빌립보교회가 선교 사역을 하는 바울을 돕는 것은 그의 괴로움에 동참하는 교제의 한 부분이며, 귀하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알게 하여 많은 이들로 하나님 나라 안에로 데리고 들어오는 선교 사역을 위해 교회의 헌상과 개인의 기금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3) 전임 사역자를 위해 헌상을 사용해야 한다. 바울과 사도들은 매우 조심해서 자신이 지금 사역하고 있는 해당 교회로부터는 도움을 될 수 있는 대로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한 것이다(살전 2:9, 고후 11:9). 그래서 고린도에서도 바울은 장막 깁는 일을 하였고(행 18:3),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아무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자신의 손으로 자신과 동행들의 쓴 것을 감당하였다(행 20:33, 34). 그가 이렇게 한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고린도전서 9:12절을 보면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소위 목회 사역자가 교회의 지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4), “우리가...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5),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6)고 반문 하면서, 사람의 예대로 말한다고 하며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기록한 신명기 25:4절의 말씀을 인용하고(고전 9:9), 또한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9:13)고 구약의 제도까지를 인용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원칙을 재천명하고 있다(고전 9:14). 그는 자신이 이런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아주 분명히 한다. 고린도전서 9:15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원칙은 풀타임으로 복음 사역에 힘쓰는 사역자들을 교회가 그 생활을 지지하는 것이 마땅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5:17-18절을 보면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고 했다. 이 말씀의 맥락과 연결시키면 결국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에 대한 교회의 지지 책임이 시사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사역자 자신은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하고(딤전 3:3),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여야”하며(딤전 1:7), 목회 사역을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아야”(벧전 5:2) 한다. 그러나 교회로서는 그들의 생활을 지지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이상의 성경적인 예를 잘 종합해 보면 헌상된 재물은 교회 안팎의 가난한 자들과 교회들을 균등하게 하는데 상당 부분 사용되어야 하며, 복음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도록 전도자들과 해외 선교 사역을 돕고 그 사역자들의 생활을 지지하며, 목회를 담당하는 복음 사역자들의 삶을 지지하는데 대부분 사용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를 일년 3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도록 하던 구약의 예를 들어서 요약하자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신 그 하나님 백성의 사명을 잘 의식하도록 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헌상된 것들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년 3차례 예루살렘 방문은 그저 순례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나 그 자체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구약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신 그 성격을 상기하고 유지시키며, 실제로 그 성격을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기초를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구약의 하나님 백성의 모습은 이런 절기에 참여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왜 이렇게 독특한 하나님 백성으로 부르셨는가를 생각하면서 주께서 의도하신 바를 이 세상 가운데서 드러내는데 열심 있는 하나님의 친 백성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주께서 우리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부르시고 세우셔서 하도록 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헌상하는 것이므로 항상 주께서 우리를 불러 주의 백성으로 세우신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헌상된 재물이 교회의 구체적인 교제(구제)에 사용되는 것에 힘쓰며, 복음이 온 세상에 효과적으로 전파되도록 하는 일에 힘쓰고, 각 교회에서 목회를 담당하는 분들의 생활을 잘 지지해서 그들이 다른 염려 없이 목회하며,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여 주께서 교회를 세우신 뜻을 잘 드러내는데 힘을 써야 한다.
결론 : 우리의 헌상이 진정한 헌상이 되기 위해서
이제까지 우리는 헌상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제 문제는 이런 의식에 충실하게 매 주일 주께 헌상하는 일이다. 그것을 제대로 감당할 때 우리는 매 주일의 헌상 예식만을 바르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도 주께 헌상한 자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헌상된 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더 온전히 순종하여 나갈 것이다. 주께서 자신들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친히 인도하여 가시는 삶의 실제를 경험하며 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렇게 온전히 헌상하는 이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헌상된 의미를 더 풍성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혹시 부분적으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었을지라도 날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헌상의 이해에로 나아가서 복 받는 대가나 수단으로 헌금을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헌상한 것과 나머지 부분에 대한 오해도 하지 않고 헌상과 삶의 관계도 잘 정돈하여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진정 헌상해 가는 이들은 교회 가운데서 자기의식이 풍성해져 가서 교회가 주께 받은 사명을 수행해 가는 것에 대한 한 지체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날마다 그 인격이 성령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전진해 가고, 모든 판단과 해 나가는 일이 주님의 뜻에 점점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가는 데서 자신이 진정 헌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헌상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잘 이해하고 정립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헌상을 드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
54) 연말 정산에서 기부금에 대한 증빙 서류를 갖추는 목적이 없는 한 재정 담당 집사님들조차도 누가 얼마를 드렸는지를 알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개발하는 것이 최선이다. 혹시 연말 정산과 관련해서도 그런 의식과 비밀 유지 중심의 관리가 필요하다.
55) 사도행전 2:45를 참조하라.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56) F. W. Grosheid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thians, NICNT (Grand Rapide: Eerdmans, 1953), 397.
57) 예루살렘을 위한 것임은 고린도전서 16:3절에 언급되어져 있고, 이것이 그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임은 고린도후서 8:13: 9:9, 12에 시사되어져 있고, 로마서 15:26에서 아주 명백하게 언급되어 있다.
58) 사도행전 24:17도 참조하라.
59) 이 두 번째 요점을 잘 지적하고 있는 Archibald Robertson and Alfred Plummer, First Epistle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 ICC, secod Edition (Edinburgh: T. & T. Clark, 1914), 382를 보라.
60) 헌상의 사용에 주의해야 할 점은 교회의 건물 치장에 될 수 있는대로 적은 돈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의 건물이 예배와 교육과 교제를 위해 필요하지만, 교회로서 마땅히 해야할 구제와 선교, 교육과 전도의 일을 못하면서 이 부분에 너무 많은 재화가 사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역자들을 위한 지원도 사역자들을 잘 선정하여 그들의 삶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비량으로 할 수 있는대도 불구하고 교회서 지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또한 사역자들의 사례비도 그 교회 교우들의 중간 정도의 사례가 적당하며, 부양 가족에 비례해서 사례비를 책정하는 것이 좋다.
*강의자 : 손재호 교수
*본글은 2024년 8월 16-17일에 부천개혁성경신학교 2024년 봄학기 집중강의 겸 부천개혁교회 제직교육을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란 주제로 실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