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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HOP 사도적 기도의 집 원문보기 글쓴이: Lion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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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10월 초까지 무더운 여름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이곳도 가을다운 쌀쌀한 날씨가 찾아왔네요. 저는 얼마 전 방학을 마치고 다시 개강하였지만 여름처럼 집중코스가 아니라서 여유롭게 공부하며 기도사역에 정진하고 있답니다.
요즘 초막절 집회에 참석하신 많은 한국 분들이 절기를 마치고 저희 기도의 집에 많이들 방문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귀한 보석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서 일하심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제가 처음 이스라엘에 마음을 품게 된 2002년도... 그때는 정말 한국교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었는데... 최근 들어 “회복”이란 영화가 상영되고 잇따른 “국가적 이스라엘 성회”가 곳곳에서 개최되고 그것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이스라엘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숨겨져 왔었던 비밀들을 깨닫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스라엘을 알고 삶이 변화된 인생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혼자 무계획으로 며칠, 몇 주, 몇 개월씩을 이스라엘에 방문한 수많은 형제자매님들... 최근 저는 참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신비(Mistery - 롬11:25)들을 실제적으로 풀어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많은 말씀에 대한 계시들도 열어주고 계십니다. 물론 이는 지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는 우리가 전혀 알 수조차 없던 것이었죠.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가 다시 탄생하면서부터 이제 우리에게 성경을 다시 보는 (아니 정확히 해석하는) 눈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영적의미가 아닌 문자그대로의 의미로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그 중에 요즘 하나님께서는 땅에 대한 말씀을 제 마음 속에 자꾸 주십니다. 그래서 몇 차례에 걸쳐 여러분들과 "예루살렘/이스라엘 땅"에 대해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1. 예루살렘(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위해 "구별하신 땅"이다.
어느 날 이스라엘에 계신 한 목사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사람이 더 중요한가? 땅이 더 중요한가?” 저는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뒤통수를 잠시 때리듯 “땅”이라고 답하셨습니다.
만약 사람이 더 중요했다면, 하나님은 애굽 땅에 사는 백성들을 (출애굽하지 않고) 그곳에서 강하고 부하게 만드실 수 있으셨고 바벨론 및 전 세계로 흩어진 백성들을 통하여 (고토로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서 새 역사를 써내려 가실 수 있으셨으며 1940년대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이전 유엔의회 때 지금의 이스라엘 땅(중동지역)이 아닌, 아프리카 ‘우간다’에 유대 국가 ‘Jewish State’ 를 세워주자는 제의가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죠. (장소/땅에 상관없이 유대인 백성만 중요했다면 정말 그럴 수도 있었겠지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신 이유에는(창12) 모세에게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내 백성을 인도하라고 하신 이유에는(출3)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족속들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에는(수1)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유대백성들을 고토로 돌려보내게 된 이유에는(스1) 지금도 전 세계 열방에 흩어진 백성들을 손수 모으시는 그 이유에는(사11:12, 사49:22 등) 바로 그 중심에 당신이 택하시고 구별하신 땅 “예루살렘”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에 대해 수차례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땅을 나누려는 열국의 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욜3:1,2)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리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이 말씀은 앞으로 예루살렘을 사이에 두고 벌어질 이스라엘과 열방(지금 현재는 아랍권과 미국 측이지만 점차 확대될 것임)의 땅 싸움에 대해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날 현재 그 영토분쟁의 핵심은 바로 “정착촌” 문제입니다.
9월 초에 미국의 중재로 어렵게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또한 바로 이 정착촌 문제로 곧 결렬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입장 차이 때문이죠.
이스라엘 : 우리는 계속 정착촌을 건설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돌아오는 우리의 민족들 때문에 살 공간이 계속 필요하다. (작년 한 해만 17,880명의 유대 이민자가 이스라엘로 돌아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땅, 예루살렘을 결코 양보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및 아랍권 : 너희가 잠시 점령한(* “점령”-아랍권 입장 / “수복”-이스라엘 입장) 우리의 땅에 (특히 미래의 팔레스타인 수도가 될 예루살렘 땅에) 너희들의 정착촌을 계속 건설한다면 평화협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도 그 땅 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미국 :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이 조금 양보해라. 정착촌 건설을 잠시 중단해라. (심지어, 1967년 6일전쟁 이전대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에게 다시 돌려줘라)
지금은 중동지역 민족 간의 작은 갈등정도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정착촌 문제, 예루살렘을 둘러싼 영토분쟁은 온 열방을 전쟁으로 뒤흔들어 버릴 크나큰 도화선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세계의 화약고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다.” “천하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일 것이나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슥14:1,9)
지난 반세기간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협력하던 편에 서서 큰 축복을 누렸던(창12:3, 시122:6) 미국이 오바마 정권이후 아랍권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평등과 평화라는 그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그러나 하나님 뜻에 벗어난 인본주의적 사상과 정책이 맺게 될 악한 열매를 미국이 스스로 거두지 않도록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향한 우리나라의 정책과 입장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땅 싸움에 대한 실례를 감란산 정상부근의 한 사진을 통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잘 보세요~ 집들 위에 보이는 검은색 물통은 이곳이 아랍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흰 색 물통은 유대인 지역이라는 의미; 이것으로 이 동네가 어느 지역에 속한 곳인지를 알 수 있음)
그 검은 물통 집들 사이에 보이는 파란색의 이스라엘 국기...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혹시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나요?
본래 팔레스타인 자치 법으로 유대인에게 땅/집을 팔면 사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곳에 한 팔레스타인 사람이 몰래 유대인에게 큰 값에 집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실이 밝혀져 집주인은 사형에 처해졌고, 그 집을 계약한 유대인 측은 그 집 위에 커다란 이스라엘 국기를 “꽂았습니다.”
그 집에 사는 유대인은 매우 위험한 생활을 지속해야겠지만 (국가적 보호를 받는다고 함) 결국 그는 아랍구역인 감람산 정상부근에 이스라엘 영토표시?를 한 셈이고 반면 아랍사람들은 저 국기를 볼 때마다 수치심과 분노를 품게 되겠지요.
지금까지 ‘선택된 땅’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대체 어쩌란 말이죠?" "그들이 살던 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나가라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정당한가요?"
물론 하나님은 동일하게 아랍민족-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의 조상 하갈과 이스마엘 속에 뿌리내린 그 버려짐의 깊은 상처에서(창21) 그들을 위로하고 회복하여 구원하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저 또한 때론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하심?에 따르게 되는 비선택적 주체의 차별적인 인생?과 국가적 역사적 부당함? 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깨닫게 하신 것은 바로 이사야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나고 팔레스타인이 못나서도 아니요, 이 모든 것들이 다 자신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택하고 택하지 않고의 문제, 인생과 민족에 대한 구별은 사실 하나님 앞에서 먼지 같은.. 아니, 없는 것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긍휼의 감정을 넘어서 인본적인 생각으로 반유대적인 감정을 품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입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사40:12~17)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8:9,11)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과 계획은 완전하십니다. 당신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깊고도 풍성하신지요. 당신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하고 그 길은 찾을 수 없습니다. (롬11:33)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신비를 저의 생각으로는 다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주님이 친히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 그렇게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저는 그저 당신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 지어진 존재일 따름입니다.”(사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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