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눈물
김정호
머지않아 한가위 추석이다. 한가위를 앞두고 아내와 대구 서문시장에 간다. 한가위 차례상에 올릴 차례 용품 구매가 목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목적이 있다. 어머니께 드릴 추석빔을 사기 위함이다.
해마다 설·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큰 장에 가서 어머니께 드릴 명절빔 옷을 고른다. 요양원에 누워계시는 어머니가 옷이 필요할까마는 그래도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스웨터와 바지 등 한 벌씩을 사다 드렸다. 그렇게 한지가 벌써 5년이 넘었다. 지난 설에는 노인일수록 고운 옷을 입어야 한다며 꽃분홍색 스웨터와 바지를 사다 드렸다. 그렇게 사다 드린 옷들이 요양원 침대 옆 옷장이 몇 벌이나 있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올해는 간편한 조끼를 사겠단다. 노란색 털실로 짠 조끼가 첫눈에 들어온다. 주저 없이 조끼를 산다. 선뜻 내가 셈을 치른다.
어머니 올해 95세이시다. 하기 쉬운 말로 백수를 누리시겠다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인 것 같다. 부모가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자식이나 다 같겠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자꾸 생각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누워 계시는지도 5년이 넘었다. 6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만사를 손에서 놓으시더니 한 1년 지날 때부터 다리 힘이 빠져 거동을 못 하셨다. 거동을 불편하시니 집에서 모시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형제간에 의논하고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하였다. 그렇게 5년여 세월을 보냈다. 지난해 설 명절 때까지만 하여도 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와서 명절을 보냈다. 허나 지난해 코로나19가 만연하고부터 추석에도, 설에도 어미는 모시고 명절을 쇠지 못하였다. 올 추석 명절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올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5년여 세월을 요양원에서 보내시지만, 잔병치레가 없으셔서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노인이 다리가 불편하여 거동을 못 하시고 종일 침대에 누워만 계시지만, 아직까지 정신상태도 말짱하시고 눈, 귀도 비교적 밝은 편이시다. 요양원에 많은 친구들이 계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여 침대에 누워만 계시니 하루해인들 얼마나 지겨우실까.
추석 전날이다. 올해는 여동생의 제안으로 집에서 송편을 빚기로 하였다. 벌초 가는 길에 고향 선산에서 정갈한 솔잎도 한아름 따왔다. 아내와 가족들은 송편을 빚고 있다. 별로 할 일이 없는 나는 손자와 막내 외손자를 대리고 요양원을 방문하였다. 요양원 입구에 마련된 간이 면회소에서 어머니를 뵙는다. 어머니께는 증손자가 되는 아이들의 이름까지도 모두 기억하고 계신다.
어머니 손을 잡아본다. 이건 사람의 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살집이 빠져 완전 피골이 상접하였다. 손뿐만 아니라 다리도, 가슴도 그렇다. 젊은 시절, 활짝 핀 함박꽃 같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자식으로서 어머니에게 무엇인가 해 드린 것이 없다는 것에 더 속이 상한다. 정기적으로 동생들과 순번제로 고기반찬이나 전북 죽 같은 음식을 해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집안 어른들이 이르기를 노인네가 살집이 많이 빠지면 오래 못 사신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가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다. 단지 당신의 굳은 정신력과 아직은 잃지 않으신 식욕으로 지탱하고 계신다.
면회 시간은 단 15분이다. 내일이 중추절 한가위 명절인데 올해도 어머니를 띄어놓고 돌아서는 발길이 애잔하여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내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다짐을 두지만, 발길은 또 허방을 집는다. 이번 뵙는 모습이 마지막인 것이 아닌지. 며칠 후 명절을 보내고 다시 어머니를 뵐 수 있을지….
이번 한가위에도 휘영청 보름달은 뜰 것이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했으나 저 달처럼 어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만수무강하시기를 천지신명님과 만물을 주관하시는 부처님 전에 빌어보는 수밖에 ….
첫댓글 어머님의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짠하게 다가옵니다.
세월이 가도 마음데로 움직이다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바람은 극소수만 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시고 정신이 명료한 것만으로 감사하시지요?
예, 선생님 말씀대로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뵙고 나면 슬픈 생각이 먼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