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의 서정시인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이런 말을 했다. “튼튼한 몸에 튼튼한 정신이라는 것은 믿기 어렵다.
뛰어난 정신은 가끔 허약한 육체에 깃든다.” 이 말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음악가가 있다. 악성 베토벤이다. 베토벤은
귓병에다 위장병, 간경변, 황달, 수종, 신장병과 폐질환 등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베토벤이 죽은 후 그의 시신을 해부했던 의사는 그 몸으로 57세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베토벤은 생전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이다.
번호는 그가 작곡한 순서를 가리킨다. ‘영웅’에서 ‘합창’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토벤의 내면적 변화와 성숙의
단계를 볼 수 있다. 3번 ‘영웅’은 그 시대의 영웅인 나폴레옹의 대단한 용기와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데, 한 인간의
위대성을 엿볼 수 있다. 5번 ‘운명교향곡’은 “이와 같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는 주제처럼 인간은 운명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베토벤 자체가 극적인 운명을 살아왔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과 매독 환자였고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였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이는 소경이었고,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셋째 아이는 벙어리였고,
넷째 아이는 폐결핵에 걸렸다. 이어 태어난 아이가 베토벤이었다. 태생적으로 병적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베토벤이 ‘운명’을 작곡한 그 시기도 운명의 거친 파도와 힘겹게 싸웠던 시기였다. 난청으로 잘 들을 수 없었고,
사랑했던 여인 테레제와 헤어졌으며 친구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그러한 운명과 싸우면서 운명의 벽을 넘어 인생의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자는 의도로 ‘운명’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으나,
이후의 그의 삶을 볼 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운명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6번 ‘전원교향곡’은 청각을 상실하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작성했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만든 곡이다.
‘전원교향곡’에서 베토벤은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사를 노래한다. 베토벤이 신실한 신앙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것은 그가 만년에 작곡한 <장엄미사>나 죽기 3년 전에 발표한 9번 ‘합창’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합창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작품으로 4악장인 ‘환희의 송가’가 압권이다.
“포옹하라 만민들이여 푸른 하늘 위에는 사랑하는 주가 꼭 계시리 하늘 위에서 주를 찾으라 많은 별 위에 그는 꼭 계실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인류 평화가 나온다. 극도의 고뇌를 믿음의 힘으로 이겨내고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대목은 베토벤의 성숙한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혼성 합창으로 울려 퍼지는 장엄한 합창은 하나님을 만난 인간의
환희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죽기 며칠 전 신부로부터 종부성사까지 받았던 베토벤은 ‘합창’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일깨워주려고 했던 것 같다.
보통 위대한 음악가라고 하더라도 만년에는 뛰어난 작품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베토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뛰어난 불멸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장엄미사>와 <9번 합창>, 그리고 신의 영역에 속할 정도의 현악사중주곡인 127번부터 130번
까지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것을 통해 볼 때도 고난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위대하게 만든다. ‘영웅’에서 ‘합창’까지를 볼 때,
진정한 영웅은 세상적으로 뛰어난 업적이나 공로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인생의 마지막에 환희의 송가를 부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