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7년 전에 쓴 글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고 해서 많은 국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영어 문제를 완전히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다음에 마음을 가다듬고 여기 저기에 가셔서 간단하게라도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주먹구구식 영어 조기교육 정책이 나라 망친다
이대로 (idaero@hanmail.net)
정부는 올해 새 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부터 영어 수업을 영어로만 한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로만 수업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선생님이 7.5%밖에 안 된다니 그 교육이 제대로 될 수가 없을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 조기 교육 때문에 일어나는 부작용이 많은 데, 준비도 안 된 '영어로만 하는 수업'까지 밀어 부치는 정부가 제 정신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김 영삼 정권 때 영어 조기 교육을 한다는 말이 나올 때부터 반대했다. 그 때 내가 이끌던 모임은 흥사단 강당에서 영어 조기 교육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교수, 학부형, 정부 관계자를 불러모아 공청회를 연 일이 있다. 그 자리에서 영어 조기 교육을 주장하는 교육개발원 관계자는 일반 참관인들로부터 "교육 망치고 나라 흔들 잘못된 정책이니 절대로 시행해선 안 된다"는 거센 항의를 받고 쩔쩔맨 일이 있다.
그날 토론 결론은 "지난날 영어 교육을 제대로 못했고, 오늘날 영어가 전보다 중요하고 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영어 조기 교육을 강행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라. 먼저 중 고교에서 하고 있는 영어 교육 교재와 선생님의 자질 등 환경부터 개선하고 또 중 고교에서 철저히 가르친 다음 그래도 안 되면, 전국 초등학교에서 한꺼번에 시행하지 말고, 영어 조기 교육을 하고 싶어하고 교육 준비가 잘 된 도시의 일부 학교에서 시험 겸 전문가 양성 차원에서 시행하라. 그리고 그 부작용을 막을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
그런데 정부는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철저한 준비도 없이 영어 조기 교육을 강행했다. 그 때 걱정했던 부작용이 하나하나 일어나고 있다. 몇 가지만 적어본다.
1. 교육 망국병이란 과외 열병을 부채질해서 학부모 부담을 더 늘게 했다.
그 때 염려했던 것보다도 더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경제 식민지가 되어 살기 힘들게 된 뒤에도 과외비는 줄지 않고 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과외비가 가정 수입의 30%가 넘게 들어가는 집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잘못된 교육 정책과 풍토 때문이고 그 원인 제공자가 정부라고 한다.
며칠 전 모 방송에서 특강을 하는 어느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 일년에 술값으로 8조가 나가고 음식물 쓰레기로 10조란 엄청난 돈이 나가는데 사교육비는 그 보다 더 많은 35조가 들고 있다. 이 과외비를 대기 위해 파출부도 나가고 전화방에 나가는 어머니도 있다고 한다" 말했다. 또 다른 방송은 서울에선 월 60만원을 내는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줄서서 기다려야 하고 이런 현상은 부산과 광주 등 지방도시도 비슷하며 어느 고교생 학부모는 과외비가 월 200만이 든다며 해외유학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 '김 대통령 교육 위기 통렬히 반성'이라는 제목 아래 '사교육비가 7조1천억 원이 들고 있으며 학생들을 과외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개탄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사교육비 총액이 어느 교수가 말한 것보다 적은데 줄여 말한 것으로 보인다. 초, 중, 고교 과외비만이 아니고 유치원생 과외비와 대학생들 해외 연수비, 미국 영어 측정인 토익, 토풀 등 시험비와 영어 녹음기 등 교육재료비를 더하면 더 큰돈이 될 것이다.
2. 어린이를 병들게 하고 가정을 파괴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이고서도 좋은 결과보다 부작용만 늘고 있다니 큰 문제다. 조기 영어 교육받은 어느 6살 된 어린이는 영어도 못하고 우리 말도 제 대로 못한데다가 정신병 증세까지 있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으며, 조기 유학을 간 많은 학생들이 현지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아가 되고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키기도 하고, 부부가 떨어져 있게 되어 가정 파탄 난 집도 있다는 방송 보도를 봤다.
실제 내가 아는 집은 영어 유학 때문에 부부가 이혼하고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시킨 집이 있다. 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호주에 가있고 남편은 돈 벌기 위해 서울에 있는 동안 부부 사이도 멀어지고, 아들도 외국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데다가 경제 위기를 맞아 집안 살림까지 기울어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오게 되니 아들은 건달이 되었고 부부싸움이 많아지고 이혼까지 간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만 힘든 것이 아니라 교사들도 힘들다고 한다. 영어 교육 준비에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지만 잘 되지 않아서 강박감에 시달리는 선생님이 많다. 그리고 잘못된 교육 정책에 실망한 교육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다.
3. 실제 삶에 더 중요하고 필요한 건강 교육과 인성 교육, 우리 국어와 국사 교육, 과학 기술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아기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 녹음기를 틀어놓고 듣게 하고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영어로만 말하게 하고 한 달에 수십만 원이 드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극성을 부리니 애가 동무들과 뛰어 놀 시간도 없고 한국말을 하는 애들과 놀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 애가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랄 수가 없고 참된 한국인 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며칠 전 신문에 역사 교수와 교사들이 모여 "우리 국사 교육 시간이 줄어서 큰 문제다. 국사 교육시간을 늘려 달라"라고 주장했다는 보도가 크게 난 것을 봤다. 국사 교육뿐만 아니라 과학 실업 교육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온통 영어만 중요하게 여기고 대학생 때까지 영어에만 매달리다보니 인문학교만 좋아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는 가는 학생이 없다고 한다. 땀흘려 일하고 좋은 생산품 만드는 것보다 입만 움직여서 편히 살겠다는 사람만 만들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제 나라를 우습게 여기면서 저만 잘 살겠다고 하는 사람만 많이 키우니 그 나라가 무슨 꼴이 되겠는가. 거리엔 미국말 간판이 점점 늘어나고 미국말을 우리 공용어로 하자는 무리들까지 생겼다. 제 나라 말글만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겨레 얼까지 약하게 해서 나라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 35조이란 돈을 입시 경쟁을 위한 학원비와 과외비로 날린다니 정말 아깝다. 또 그 돈을 학교 교육 환경 개선에 써서 학원이나 과외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면 더 좋고 큰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터인데 입시 점수 따기 위한 비용으로 날리고 애들은 애들대로 무능력자를 만들고 있으니 답답하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든 사교육비를 저축하면 그 학생이 일생동안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될 수도 있는 큰돈이다.
정부가 과외 망국병을 치료하진 못하더라도 영어 교육 필요성 때문에 준비도 없이 무조건 강행해서,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을 더 늘리게 만들고, 어려운 나라 살림을 더 힘들게 만들고, 겨레 말 과 얼까지 죽게 만들고, 사교육을 못시키는 서민들 절망시키고 있으니 답답하다.
영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나도 안다. 그러나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영어 조기 교육을 강행한 것은 큰 잘못이다. 서울대 이현복교수는 한글 새소식 343호에 " 영어 조기 교육은 시작부터 무리수였다. 교육부에서 영어 조기 교육 찬반을 논의하는 위원회가 꾸려져 몇 차레 회의를 했는데 참석자들은 말할 것 없고 교육부 관계자도 반대 의견을 표명했는데 마지막에 교육부 관계자가 찬성으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었다. 21세기 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 대통령에게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라는 충분한 준비와 연구 없어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해서 실패를 본다. 영어 회화 몇 마디 하기 그렇게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이지 말고 중, 고교 영어교육이나 개선 강화하라"고 쓰고 있다.
모든 일은 때를 잘 맞추고 차례를 지켜야 잘 된다. 그렇지 않으면 헛일이 되고 일을 더 그르칠 수도 있다.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역 특성과 학교 사정은 무시한 채 전국에 똑 같은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군사 독재식 행정 편의주의로서 잘못이다. 잘못될 줄 알면서도 불나비처럼 그 정책을 좇는 국민들도 어리석다.
엉터리 영어 조기 교육 당장 중지해서 착하고 똑똑한 우리 애들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키우고 영어 열병에서 구하자. 조기 교육을 꼭 하고 싶으면 지역 특성과 개성을 살려서 인천 어느 초등학교에선 중국어 조기 교육, 부산 초등학교에선 일본어 조기 교육, 광주 초등학교에선 예술 조기 교육, 농어촌 초등학교에선 농 어업 조기교육을 해보자.
영어 학원과 교재 만드는 분들과 미국인들에겐 미안하지만 주먹구구식 영어 조기 교육은 그 몇 사람만 위하는 일이지 온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나라에서 금 같은 시간과 돈을 애들 병들게 하고 나라 망치는 데 써서야 되겠는가! 시화호, 의약분업 정책 꼴처럼 조그만 이익 때문에 너무 서두르다가 큰 손해보는 짓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