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에 핀 진달래
김신기가 빠져 아쉬웠지만
친구들과 한 달에 한번 산에 오르는 날인데 오늘은 용인에 있는 광교산을 올라가기로 되어있다. 석희태 교수와 같이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어 죽전역에 도착했더니 모두들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신기가 빠져 아쉬웠지만 김재훈, 최기영, 오삼환, 최종순,
최예만, 홍인기, 김중회, 김종진, 임영빈, 황의중, 석희태, 김정태 모두 열두 명으로 근래 모임 중 가장 성황이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이동해서 용인에 사는 김 재훈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산을 올랐는데 등산로에는 보통 산 밑에 작은 매점들이 많이 있는 법이지만 이상하게 올라가는 입구는 한산하여 그런 곳이 안 보인다.
일행들이 막걸리 몇 병은 사가지고 가야되는데 어떻하나 하며 걱정들을 하다가 그냥 올라갔다.
광교산은 582m의 별로 높지 않는 산이라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이상하게 처음부터 힘이 든다. 바둑팀에 합류할까 하는 유혹이 올라가는 발걸음을 붙잡아 무겁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숲이 없는 경사진 삭막한 길을 얼마동안 올라가니 본격적인 산길이 나타나며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좁은 산길을 메워 북적거린다. 산을 오를 때면 나는 친구들에게 숲의 사랑과 여유로움을 배우며 산새와 풀벌레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이야기한다. 빨리 가는 친구들에게 “산은 경주하는 곳이 아닌데 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느냐” 고 큰소리치기도 하지만 만고강산하며 뒤따라 올라가보면 기다리며 무료해 하는 것 같은 친구들에게 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제 산엔 그만 올라가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곤 하지만 친구들이 함께하는 산이 너무 좋아 근근이 버티며 다니고 있다.
설악산 마등령
내가 처음 산에 오른 것은 1989년 7월 어느 연휴 때였는데 그때 회사 산악회에서 설악산 마등령을 간다며 같이 가자해서 따라갔던 것이 처음 산행이었다. 부서 직원들이 같이 가자고 여러 번 권하는 통에 처음으로 등산장비를 장만해서 아내와 아이들까지 데리고 갔다. 맨몸으로 가도 힘든 곳인데 먹을 것, 마실 것, 각종 장비등 배낭에 가득 채워 메고 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둘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는데 아이들이 보채지 않고 산을 잘 오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멋모르고 따라간 처음 산행이 마등령을 오르는데 다섯 시간, 곰골을 내려가는데 여덟시간이 걸렸으니 완전히 사람 잡는 산행이었다.
1400m 마등령 정상에서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고 각자가 쓰레기를 정리했는데 이전에 버린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였다.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산에 쓰레기를 버려둔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내려가는 곰골은 백담사 계곡과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그때 전두환 전직대통령이 백담사에 은둔하고 있던 시절이라 등산로가 폐쇄되어있었다. 산에 등산로가 없어져버려 바윗길 계곡을 내려가다가 절벽을 만나면 산으로 기어 올라가서 조금 걷다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걷기를 반복했는데 저녁 여덟시가 넘어 어둠이 깔린 후에야 천신만고 끝에 겨우 백담계곡에 야영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마등령을 오르면서 좌측에 공룡능선이 아름답고 신비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백담계곡을 내려오다가 거기서 만난사람이 오삼환 대장이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초심자(初心者)에게는 너무 힘든 산행이었지만 설악산 산행이후로 가끔씩 산에 가는 일이 생겼으며 뒤늦게 대학동기들과 만나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4년이 넘어 서울 근교에 있는 왠만한 산은 거의 몇 번씩은 다녀오게 되었다.
화산두견(花山杜鵑)의 울음소리
이번에는 리더가 용인, 수원쪽에 사는 친구들의 편의를 위해서 광교산을 택했는데
능선엔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햇빛을 보지 않고 산행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나무가 빽빽하여 삼림욕을 할 수 있는 것이 이 산의 백미로 꼽힌다고 한다. 듣던대로 내려오는 길은 황토길에 솔입 낙엽이 깔려있어 상쾌하기 이를데없었다.
서울에는 진달래가 다 지고 철쭉이 만개해 있는데 평균기온이 3도정도 낮은 지역이라 그런지 광교산에는 온 산이 진달래가 평화롭게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어릴 때 시골 산에서 보던 진달래처럼 아름다웠다. 입이 새파래지도록 따먹었던 그 진달래가 활짝 핀 광교산은 고향의 뒷산처럼 아름답고 정겨웠다. 진달래꽃에는 겨레의 정서가 얽혀 있고 얼이 스며있어 많은 시인들이 진달래 그 이름으로 사랑과 한을 노래해왔다. 길옆에는 제비꽃이 수줍은 자태로 예쁘게 피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진달래 꽃이 수원화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두견새가 산을 날며 울어대는 아름다움을 화산두견으로 일컽는다. 화산에는 비운의 사도세자와 그 아들 정조대왕이 잠들고 있는데 봄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을 사람들은 어버이를 향한 정조대왕의 애끓는 외침과 그리움으로 받아들인다. 광교산 진달래 춤사위에 화산두견의 울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광교산의 본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라 하였는데 928년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평정한 뒤 이 산의 행궁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산 정상에서 광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부처가 가르침을 내리는 산'이라 하여 '광교산(光敎山 )'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원에는 화산두견, 서호낙조등 빼어난 수원8경이 있는데 겨울철 광교산노송에 눈이 쌓여 절경을 이루는 광교적설(光敎積雪)을 예로부터 ‘수원8경’중 으뜸으로 꼽았다 한다.
산에서는 겸손을 배워야
정상부근의 넓은 공간에는 먼저 올라온 등산객들이 끼리끼리 모여 간식도 나누고 한담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각자가 배낭을 풀어 가져온 간식을 내어놓으니 떡, 포도, 과자,참외, 더덕주 에다 커피까지 진수성찬이다. 풍요로워지는 마음에 일순간 환호가 터졌다.
올해는 까다로운 겨울 탓에 봄은 제대로 기지개 한번 펴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화창한 봄날이다.
날씨와 이야기에 취해 내려오다 보니 경사진 내리막길에서 돌부리에 발이 걸려 몇 발 곤두박질치다 그대로 넘어졌다.
앞에 가는 일행들이 놀라 달려왔는데 입에서 피가 났다. 다행스럽게 입술만 터졌고 다른 상처는 없다. 내리막길이라
체중이 앞으로 쏠리니 제어가 안 되었다. 주변에 솟아있는 돌들이 있었는데 그만하니 천만 다행이다.
산을 오를 때 순간적이나마 580m 조것쯤이야 하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두 달 전 도봉산 자운봉 산행때 바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다가 찢어진 다리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데...
산에 오를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올라와야겠고 겸손하지 못하면 산에서 겸손을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은 영원히 고고함으로 인간세상의 어떠한 소음에도 획책에도 타협이나 동요가 없기에 사람들은 산을 찾고
숲속에서는 이리도 평화로워지나보다.
12월 셋째금요일은 송년회로
하산하여 김 작가가 미리 예약해놓은 식당에 들렸더니 식당이 넓고 깨끗해서 마음까지 정갈해 졌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입담들이 좋아 웃음꽃이 만발한다.
오늘은 東臺선생에게 호를 받은 潭原 홍인기가 기분이 좋아 종횡무진이다. 재치도 있고 입담도 좋아 제어할 사람은 이용화 뿐인데 직장관계로 못나오니 충천(衝天)하는 潭原선생 기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김재훈 작가의 제안에 따라 금년부터는 12월 셋째 금요일에 송년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광교산 산행에 일일이 전화를 하여 김종진뿐만 아니라 발목이 아픈 김중회까지 참여하도록 하여 성황을 이루도록 역할을
해 주어 오삼환 대장과 함께 수고가 많았고 송년회도 딱 부러지게 결정해주어 참으로 큰일을 하시었소.
헤어지기 아쉬워 밤늦게까지 놀다가 ‘안동국시’ 맛있는 저녁까지 대접해준 홍인기소장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3. 5. 6. 濟巖 김정태
첫댓글 제암 선생 터진 입술은 다 나앗소 ? 조심 조심 또 조심하이소.제압선생 입술이 고장나면 이만 시린게 아니고, 산행을 즐겁게 해주는 제압선생의 재담 못 들을까 저어 되오.
광교산 산행기 잘 읽었읍니다. 감사.
김천 아저씨가 '최기영'이란 걸 이제 알았네!
염려덕분에 거의 다 나았어요. 일주일 전에는 어린 아가씨가 뒤에서 차를 들이박더니 그 좋은 광교산에서 넘어지고
요즈음 왜 이러는지 몰러
봄산만 싱그러웠던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젊음으로 꽃이 활짝 폈던 날이었어요.
밤 늦었는데 잘들 가셨는지??
맞아! 석교수가 그날 집에 돌아가면서 무척 좋아했어.
모이던 중 제일 많이 모였고 너무 즐거웠어. 김작가님이 애써준 덕분에 너무 즐거웠어요
인생십락 중 으뜸이 "다정한 옛 친구들과 함께 소일하는 것"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날 참 즐거웠고, 위엣 글도 재미있었네.
아...! 潭源이 아니라 潭原일껄...
그날은 날씨도 좋았고 친구도 좋아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어.
내가 산행기를 쓸때면 생동감을 위해 참석한 사람들 어록 중심으로 많이 썼는데 이번에는 칼라를 좀 바꾸다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석교수의 玉根三振, 三桑三振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못썼네 .
최변호사 '줄빵'이야기도 재미있는데...
나두 가고 싶어...............
그렇찮아도 산에서 김사장 이야기 많이 했어
같이 갈 수 있도록 빨리 공부 끝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