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수요일 2009. 3. 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 5,17-19)
오늘의 묵상
한 주간의 가운데 수요일입니다.
흔히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율법은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어떤 행위를 해야 함에도 실천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한 어떤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행위를 했음을 인정하도록 가르쳐 줍니다.
곧, 율법과 계명이란 인간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좀 더 잘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의 틀에만 얽매여 있다면
사랑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랑의 행위는 전적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최소한의 사랑의 실천을 성찰하기 위한 내적 기준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넘어서면,
오히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계명에 충실한 사람보다는
그 계명의 정신, 곧 사랑의 실천에 더 충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율법의 완성이란 바로 진정한 사랑이 가득한 상태를 뜻합니다
율법을 강조하는 이유
-허찬란 신부-
마태오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복음서이면서
이스라엘 사람이 썼기 때문에
이스라엘 풍속, 더 자세히 말해 유다이즘을 모르면 복음을 읽어나가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특히 오늘 대목은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란 제목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율법학자를 욕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은 율법의 실천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의
한 사람이 성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에서는 가당치 않은
공식입니다. 왜 율법을 강조하면서 썼을까요? 그것은 복음서의 저자인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성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조상 제사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저희 집안은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천주교를 믿어서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지 않습니다. 그냥 조상님 사진과 초와 기도서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 다른 신부님에게 여쭈었더니 당신네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입교를 그 이후에 하신 분들은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고
연도를 바칩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는 율법은 모세가 받은 계명입니다. 이를 가장 잘
이행하시고 또 완성하신 분이 예수님임을 마태오 복음 저자는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 속의 예수님은 늘 공동체 안에서 생각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