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연못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의 도면 (글,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3481351)
성안나 성당(벳자타 연못) 출입문
성안나 대성당과 벳자타 연못 현판
성안나 성당으로 들어가는 왼쪽편에 서쪽 연못의 남동쪽 코너의 위치 표시
요한복음 5장,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시다 (글,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3481351)
그 뒤에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 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요한 5,1-9)
벳자타 연못 중앙에는 비잔틴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었던 방벽을 볼 수 있다.
비잔틴 교회의 방벽과 연못, 위쪽엔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당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을 가진 벳자타 연못은 제2성전의 북동쪽 밖 가까운 곳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Sheep Gate, 느헤 3,1; 요한 5,2) 곁 키드론 계곡의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사자성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스테파노 성문 근처에 있는 성 안나 성당 경내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 연못은 기원전 8세기에 ‘윗 저수지’라고 불리는 연못(이사 7,3; 2열왕 18,17)이었다. (이사 7,3 :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아르 야숩과 함께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즈를 만나...; 2열왕 18,17 : 아시리아 임금은... 그들이 올라와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그들은 올라와 그곳에 이르러, ‘마전장이 밭’으로 가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곁에 주둔하였다.) 기원전 200년경 대사제 시몬의 시기에 두 번째의 연못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여 진다. (집회 50,1-3 :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은 대사제로서 생전에 주님의 집을 수리하고 자기 생애에 성전을 견고하게 만들었다...그는 자기 생애에 저수 동굴을 팠는데 그 웅덩이 둘레는 바다 같았다.)
비잔틴 교회의 방벽과 연못, 위쪽엔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당
벳자타 연못은 키드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모아 성전에 물을 공급하였고, 종교적이고 의학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특별히 연못의 동쪽은 기원전 150년에서 기원 후 70년 사이에 치유와 종교적인 목적으로 욕실과 동굴들이 만들어져 대중적인 치료센터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요한복음 사가에 의하면 다섯 개의 회랑이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38년 된 중풍병자를 안식일에 치유하셨다. 연못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깊이가 20m 정도 되었고, 120 x 60m의 크기였다.
비잔틴 교회의 방벽과 연못, 위쪽엔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당
유대의 2차 항쟁을 진압한(134년경) 로마 아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을 “엘리아 키피톨리나”로 개명하고 벳자타 연못 위에는 ‘치료의 신’인 에스쿨라피오(Esculapio) 신전을 만들었던 것으로 고고학 발굴결과 밝혀졌다. 로마 이교 신전이 세워졌던 자리에 5세기에는 성모님께 봉헌된 비잔틴 대성당이 지어졌다. 위경인 야고보 복음에서는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성전 근처에 살았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의 중앙 본채는 연못의 중앙 회랑 위에 위치시켰고, 가대는 이교신전이 있던 방향에 두었다. 북쪽의 넓게 자리한 곳에 위치했던 경당의 발굴 작업에서 바닥에 화려하게 장식한 십자가 모자이크가 발견 되었는데 이것은 비잔틴 대성전이 427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거룩한 십자가가 사람들에게 밟혀질 수 있는 바닥 장식을 금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기념성전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 되었다.
비잔틴 교회의 방벽과 연못, 위쪽엔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당
십자군은 요한복음의 치유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비잔틴 성전의 폐허 위에 작은 기념 성전을 지었다. 이 기념 성전은 비잔틴 성전의 유적들 위에 그 골격이 남아 있다. 고고학 발굴 작업은 1871년에 실시되었고, 두드러진 발굴 작업은 마리아 성년인 1954년과 1957년에 이루어졌다. 발굴 작업을 통해서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전의 골격을 볼 수 있는데 깊은 연못 위에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웅장한 버팀목 돌기둥들이 순례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기념성전 끝에는 벳자타 연못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물 저장소가 나온다. 벽에 회칠을 하여 물이 세어나가지 않게 한 후 물을 저장했던 곳이다.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은 크림 전쟁 후 1856년부터 프랑스 정부의 소유로 비안키 수도회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비잔틴 교회의 방벽과 연못, 위쪽엔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당
연못의 자리에 고여 있는 물
연못의 자리에 고여 있는 물
연못의 자리에 고여 있는 물
비잔틴 교회의 흔적들, 이곳엔 여러 동굴들과 욕조들이 있다.
비잔틴 교회의 흔적들
동굴과 욕조(중앙)
아래 5번 숫자가 있는 곳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한 곳(중앙)
아래 5번 숫자가 있는 곳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한 곳
아래 5번 숫자가 있는 곳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한 곳
비잔틴 교회의 흔적들
비잔틴 교회의 흔적들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기념 경당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전의 안쪽
십자군 시대에 지은 기념 경전의 안쪽
철구조물이 있는 부분, 이곳 계단으로 내려가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물저장소가 나온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물저장소가 나온다.
물저장소 내부
물저장소 내부
물저장소 내부
물저장소 내부
물저장소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