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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金鰲山]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고전면·진교면에 걸쳐 있는 산.
개설
금오산[ 849m]은 지리산이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옥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이명산을 거쳐 섬진강 만덕포구로 빠져 들기 직전 우뚝 솟은 둘레 약 30㎞의 웅장한 산이다. 바닷가에 있는 산 치고는 제법 높아 하동군이 해맞이 공원을 별도로 조성했을 정도로 남해의 섬들과 어울린 조망이 볼 만하다.
명칭유래
자그마한 산줄기가 바다를 건너다보는 모습이 자라와 닮아서라고도 하고, 오행으로 볼 때 산의 형상이 금상(金相)이라 금오산이라 명명했다고도 한다. 노적가리처럼 우뚝 솟아있어 소오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병목처럼 생겼다고 병요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자연 환경
금오산은 일반적으로 화강암이라고 부르는 화강 섬록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화강암은 편마암과 퇴적암에 비해 물리적·화학적 강도가 가장 강하지만 다른 암석과 달리 지구조적 요인으로 형성되는 구조선이나 절리와 같은 균열이 암석 내부 깊숙이 발달하는 특성이 있다. 모든 암석의 풍화는 수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절리나 균열은 이런 수분의 이동통로 구실을 한다.
암석 내부 깊숙이 발달한 절리가 있다면 암석의 풍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화강암은 지구조적 요인을 비롯한 다양한 균열들의 발달 여부에 따라 금강산·설악산·속리산처럼 거대한 암석이 산체를 이루는 돌산이 되거나, 춘천분지·대전분지·악양분지와 같은 낮은 분지가 되는 등 극단적인 지형으로 나타난다. 즉 구조선의 발달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하동군에서 이런 지구조적 요인의 간섭이 가장 미약하게 나타나는 곳은 하동포구에서 하동읍성이 있는 양경산과 이명산을 잇는 가상의 선 아래쪽 해안 지역이다. 하동군 남부 해안 지역은 대부분 퇴적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사이에 화강 섬록암이 관입되어 발달한 것이 금오산이다. 금오산은 큰 구조선 발달이 거의 없고 국지적인 절리나 균열 발달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돌산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현황
금오산은 말굽 모양의 능선이 둘러있고, 전망이 매우 좋아 지리산과 다도해, 하동화력발전소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북쪽 하동군 진교면 안심리에 있는 태봉(胎峰)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태지(胎址)가 있었다고 전해 오며, 동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금남면 중평리 당사동에는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태지가 있다. 산행의 시작은 보통 중평리 청소년 수련원에서 시작하는데, 중평리에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景忠祠)와 정기룡 장군 유허지도 있어 산행 시 들러볼 수 있다. 또한 금오산에는 고려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했다는 금오산성, 하동 금오산 봉수대 및 고려 시대 불상인 하동 금오산 마애불이 있다.
참고문헌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경남의 산』(베스트북, 2011)
부산일보(http://news20.busan.com/)
사람과 산(http://mountainkorea.com/)
하동군청(http://www.hadong.go.kr/)
하동 문화관광(http://tour.hadong.go.kr/)
한국의 산천(http://www.koreasan.com)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정보시스템 (http://geoinfo.kigam.re.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하동금오산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봉수대.
건립 경위
건립과 관련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인 1149년(의종 3)에 외적의 방어를 위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에 특히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연대 봉수대에서 올리는 봉화를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1,915m]에 있는 봉수대까지 전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만기요람(萬機要覽)』 봉수 편에 의하면,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에 오장 2명과 군졸 10명이 2교대 하며 봉수대 부근에 거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위치
높이 849m의 금오산 8부 능선에 위치한다. 금오산은 남해안 한려 수도가 정면에 보이는 전략상 군사 요충지이다. 전라도의 순천 방답진 백야곶이 충청도를 거쳐 양주 화개산에 이르는 봉수대에 속하는 것으로 우측에는 여수, 좌측에는 통영이 바라보이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형태
992㎡[300평]에 달하는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산성의 축성 형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둘레 200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고, 봉수대가 있었던 곳에는 봉수군이 머물던 곳으로 보이는 석굴이 있다. 석굴은 높이 3m, 가로 3m, 둘레 2m로 그 위를 큰 돌로 막은 듯하다. 남아 있는 봉돈은 길이 2m, 폭 1.5m의 타원형으로 봉수대의 아래쪽에서 봉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개인 소유로 하동군이 관리하고 있다.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주변에는 봉수군이 쓰던 맷돌이 있는데 옆 부분에 ‘순치 17년(1660)’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봉수군이 휴식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석굴 등은 있으나, 석축한 봉수대는 붕괴되어 원래의 규모와 형태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석굴은 현재 부처를 모신 불당으로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봉수대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통신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동 금오산 봉수대의 역할은 남해안의 왜구 감시와 침입 상황 등을 조정에 보고하는 일이었으므로, 훼손된 봉수대를 복원하여 고려와 조선 시대의 통신 수단을 체험하고 교육하는 중심지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참고문헌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문화유적분포지도』-하동군(하동군·대구한의대학교 박물관, 2006)
『하동군의 인문지리변천사』(하동군, 2009)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하동금오산마애불[河東金鰲山磨崖佛]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전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내용
높이 110cm. 199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해 바닷가에 면한 해발 850m의 금오산 정상 부근의 거대한 자연 암벽에 그려진 선각마애불좌상(線刻磨崖佛坐像)이다. 불상은 앞면이 ㄱ 모양으로 터진 거대한 바위의 한 면에 조각되었다. 이 바위 위로는 커다란 또 다른 바위가 천장처럼 덮어씌워져 예배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현재는 불상이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된 바위 면과 각을 이루는 면에 천장 높이까지 돌담을 쌓아 ○ 모양으로 형성된 예배 공간을 마련하였다. 불상의 오른쪽 벽면에는 단순한 형태의 9층탑이 선각되어 있어 흥미롭다. 바위 벽 중앙에 자리한 불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으로 선각의 깊이가 얕은데다 표면이 마모되어, 앉은 자세나 수인(手印) 그리고 착의(着衣) 형식 등 세부를 정확히 알아보기는 어렵다. 소발(素髮 : 민머리)의 머리에 아담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얹혀졌다. 육계 정면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나 있다. 이 구멍은 마치 중앙 계주(中央髻珠)처럼 나타냈는데, 어떤 의도에서 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얼굴은 넓적한 타원형으로 상호(相好 : 얼굴 형상)는 손상을 입어 알아보기 어렵다. 목은 짧으나 삼도(三道)는 표현되었다. 넓은 어깨에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목깃이 가슴 아래로 길게 늘어지고, 배 앞에서 몇 단의 주름을 형성하였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져 있다.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양손의 각 엄지와 장지를 맞닿아 손목을 가까이 대고 있는 모습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 두 손등을 맞대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은 서로 얽고,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돌려 오른손의 손바닥에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맞댄 모습)과 비슷한 손 모습을 취하였다.
무릎의 높이는 비교적 낮은 편이나, 무릎 폭이 상체와 비례하는 적절한 너비로 안정감 있게 앉아 있다.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원형의 거신광(擧身光 : 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이다. 내부에는 역시 원형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이 음각선으로 표현되었고 아무런 조식(彫飾 : 잘 다듬어 꾸밈)도 하지 않았다. 대좌(臺座) 위로는 상현좌(裳懸座 :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처럼 휘장이 늘어져 있다. 그러나 불의(佛衣)가 늘어진 것이 아니라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위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특이한 형태이다. 불상을 새긴 음각선이 정교하고 치밀한 것은 아니나, 단정 근엄한 인상에 약간 길어진 상체와 신체 각부의 비례가 비교적 적절한 점 등 고려시대 후반기 불상의 양식을 반영한 불상으로 보인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노량대교[露梁大橋]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서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는 교량으로 2018년 9월 13일 개통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이 일어났던 장소로, 다리의 디자인은 이순신 장군의 전술 '학익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주탑에 8도의 경사각을 주는 '경사(기울어진) 주탑' 방식으로 시공되어 V자 모양의 주탑으로 완성되었다. 교량의 길이는 3.1km, 주탑 높이는 148.6m (건물 50층 높이)이며, 상부구조는 현수교 형식이다. 노량대교의 주탑 간 거리를 나타내는 주경간은 890m이며 이순신대교(주경간 1,545m)와 울산대교(주경간 1,150m)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 2009년 10월 공사를 시작하여 9년의 공사기간 끝에 2018년 9월 완공되었고, 교량 위의 도로는 국도 19호선에 속하며 왕복 4차선 도로로 완성되었다. 노량대교 바로 옆 바다에는 1973년 6월 22일 개통한 남해대교(南海大橋)가 위치하고 있으며, 교량 주변 설천면 노량리 방면에는 남해충렬사, 흥선대원군 척화비, 남해대교 유람선 선착장이 있고, 금남면 노량리 방면에는 노량항, 금남면사무소가 있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하동금오산[金熬山-] 해맞이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금오산에서 매년 1월 1일 행해지는 해맞이 행사.
개설
금오산은 지리산이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옥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섬진강 만덕포구로 빠져 들기 직전 우뚝 솟은 둘레 30㎞의 웅장한 산으로 해발 고도는 849m다. 바닷가에 있는 산치고는 제법 높은 해발 고도를 자랑하는 금오산에 지자체가 해맞이공원을 별도로 조성하였으며, 매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가 행해진다. 금오산 일출과 다도해는 하동팔경의 하나로, 크고 작은 섬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다도해 풍경은 절경으로 꼽히며, 일출과 일몰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연원 및 개최 경위
금오산 해맞이는 하동군민의 소망 성취와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고 군민 화합과 번영을 비는 한편 하동에서 새해를 맞는 감동과 독특한 체험을 전국에 알리고, 천혜의 자연 환경, 볼거리 등을 제공하기 위해 개최하고 있다. 금오산은 하동군 일대의 고봉으로, 다도해와 어우러진 금오산 일출은 하동군 주변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금오산 정상은 오랫동안 군사 시설이 점유하던 곳으로,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허용된 것은 1993년부터였다. 해맞이공원을 비롯해 헬기장·통신 시설·송신탑이 있으며 군용 도로로 건설된 도로가 산 아래부터 정상까지 이어진다. 금오산은 군사 지역으로 폐쇄되어 있던 곳이라 개방 당시 경상남도 지역의 산악인들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금오산 해맞이는 등산객과 주변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절경으로 손꼽히며 하동팔경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2005년 지자체에서 조망대와 벤치, 화장실 등을 설비하여 960㎡의 넓은 전망대를 조성하였다. 목재를 이용해 바닥과 난간을 만들어 해맞이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남해와 여수 바다 그리고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섬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2000년에 새천년 시작을 계기로 하동군 차원에서 해맞이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으며, 하동군수가 직접 참여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주민들과 함께 일출을 조망한다.
행사 내용
금오산에서 새해 일출을 조망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등산객들은 주로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의 하동군 청소년수련원 오른쪽에서 시작되는 등산로 코스로 정상에 오르는데, 간혹 야간 산행을 하는 등산객은 텐트와 취사도구, 보온 도구를 챙겨 와 일출을 기다리기도 한다. 불교 신자들은 산 중턱에 있는 금성사나 대원사에서 철야 예불에 참석하거나 선방에서 잠을 청한 뒤 일출 직전에 차량으로 정상에 오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출 직전 차량으로 정상까지 오르는데,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상에서 차량 통제를 하기도 한다. 금오산 일출이 유명해짐에 따라 하동군 내 지역 봉사 단체가 자발적으로 나서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군내 부녀회와 의용 소방대에서는 일출을 기다리는 방문객에게 따뜻한 떡국과 떡, 커피, 녹차 등의 음료를 제공하여 추위를 덜게 하며, 해병대 진교전우회 및 진교면 청년회에서는 당일 교통정리를 담당한다. 또한 기타 사회단체나 기관에서는 복조리나 등긁개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다도해 넘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간소한 제물을 준비해 산신제를 지내는데, 하동군수를 비롯한 각계 인사 및 주민들이 연이어 절을 올린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한 해의 소원을 빈다.
현황
금오산 해맞이 행사는 진교면 청년회 주관으로 매년 12월 31일 해넘이 행사와 함께 연례행사로 치러져 왔다. 그러나 2010년 12월에는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축산농가에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구제역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하동군은 진교면 한우협회와 협의해 해맞이 행사를 취소하였다.
참고문헌
월간 사람과 산(http://mountainkorea.com)
오감만족 하동투어(http://tour.hadong.go.kr)
인터뷰(진교리 중평2구 부녀회장 박영순, 여, 2011. 1. 15.)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www.youtube.com/watch?v=SrxmpKINr0Y
[하동포구 아가씨 하춘화]
1. 쌍돛대 님을 싣고 포구로 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 진 물결 위에 꽃잎이 진다.
갈십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님 데려다주오
2. 흐르는 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지리산 낙락장송 노을에 간다
파도에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
굽이쳐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갈십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님 데려다주오
2024-01-26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