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생각으로, 의식으로, 분별로써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교리 중 18계의 육식, 의식이고, 알음알이, 분별심, 분별망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직 의식으로만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유식무경, 만법유식이라고 하지요.
이 '식(識)'이란 '알 식'자로, 대상을 아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대상을 파악해서 알 때는 바로 이 식이 안다는 것이지요.
즉, 세상을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이 파악한 세상을 아는 것입니다.
내 의식의 필터에 맺힌 허상을 진짜 그것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내가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곧 내 의식이, 내 생각이 만들어낸 세상일 뿐입니다.
꿈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의식 조차도 전혀 움직이지 않을 때, 그때에도 여전히 세계는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의식이 파악하지 못할 때, 세계는 없습니다.
내가 죽고 나도, 세계는 없습니다.
내가 파악한 세계, 내가 인식한 세계, 내가 창조한 세계이기 때문에, 내가 사라지면, 내 의식이 사라지면 그런 허망한 세계도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분별하지 않으면, 무분별지, 즉 무분별의 지혜로 보면, 이 세상은 공성일 뿐, 실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분별 없이 보면, 실체적인 세계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있으면서도 있지 않는 중도적인 지혜로 보게 됩니다.
낱낱이 다 따로 따로의 개별적 존재이며, 그것들은 다 구분되는 별개의 것이라고 여기던 의식이 멈추면, 이 모든 삼라만상은 의식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의식 너머, 분별 너머에서는 둘로 쪼개지는 것이 없어, 불이법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중도의 길이고 불이중도라고 하지요.
불이중도로 보면, 있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없지만 없는 것도 아닌, 진공묘유가 드러납니다.
물질이 곧 공이고, 공이 곧 물질입니다.
둘로 나뉘어질 것 없는 한 바탕의 본성이 드러나지만, 그것을 본성이라거나, 하나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이름붙여 인식하면 그것이 또 다른 의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로 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참된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하나의 진실'입니다.
일진법계요, 일불승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