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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도서명: 찰스 E. 제퍼슨. 「이런 목회자가 교회를 성장시킵니다」. 김점옥 옮김. 서울: 엘맨, 1999.
Ⅱ.저자 약력 : 뉴욕의 브로드웨이 타버너클 교회에서 40년간 현장 목회. 20세기 초의 세계적 설교가이며, 목회자.
옮긴이: 김점옥으로 홍익대학교와 총신대 신학대학원(Th.M.)을 졸업했다. 저서로 「성경교리 실물설교」, 「구원에 이르는 길」, 등 다수 있으며, 「쟈크엘룰 사상입문」, 「디트리히 본회퍼」등의 역서가 있다.
현재 창신교회 교육 목사로 있으면서 서울신학교, 기독교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Ⅲ. 요약:
제 1 장 성경과 역사를 통해 본 목자의 의미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파송 받은 사자에게 주어진 모든 이름들 중에서 목자라는 명칭은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목회자에 대한 다양한 명칭들로, 감독(bishop), 장로(presbyter),(elder), 사제(priest), 설교자(preacher), 성직자(clergyman), 구역목사(parson), 사역자(minister)등이 있으며, 종의 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이며,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사역자요 종이다. 또한 목자(shepherd)란 그리스도의 위대한 양떼인 모든 회중들 속에서 귀히 여겨지고 영예를 얻고 있는 칭호이다.
칭호로서의 목자의 매혹적인 신비중의 하나는 이 용어가 우리를 단번에 주께서 연합하게 한다는 것으로 목자라는 개념은 항상 주님의 심중에 존재했다.
천상에는 선한 목자께서 계시지만 이 땅 위에는 결코 선한 목자가 없다 그러나 “주께서 목자와 같이 그의 양떼를 먹이실 것이요. 주께서 그의 팔로 어린양들을 모으시고 그의 품에 품으실 것이며, 어린 것을 거느린 양들을 부드럽게 인도하실 것이라”
주께서 주님 자신의 모습을 그리시기 위해 사용하신 최상의 비유는 바로 목자의 비유로, 주께서 이 칭호를 자신에게 사용하셨듯이 사도들의 지도자인 베드로에게도 이 칭호를 주신 것이다.
“나는 목자라. 너 또한 목자가 되어라”
베드로는 양들을 찾아 구원하기를 즐겨하시는 그 목자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시야 앞에서 그의 모든 사명을 감당하였으며, 목자의 눈으로 애정어린 염려와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 본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목자처럼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았다면 우리의 일은 당연히 목자의 일이 되어야 한다.
목자의 형상으로 표현된 주님은 성도들이 가장 외로운 때에 그들을 위로하셨고, 마음이 찢어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 있을 때에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목자의 부드러움이며, 성도들의 박해와 죽음의 순간에도 그들을 강하게 했던 것도 목자되신 주님의 용기와 힘이었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는 선한 목자의 종교였다. 그러므로 목자의 개념 속에서 온 우주의 영혼들을 향하여 호소하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목회의 개념은 사제나 설교자의 개념보다 더 심오하고 포괄적며, 그 내용은 더 풍부하고 사제와 설교가들은 그들의 가슴속에 목자의 개념이 살아 숨쉬게 하지 않는 한, 그들의 생명은 빈곤하게 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할 것이다. 교회에서 좋은 목자라면 목회사역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교회의 직무를 수행하는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강대상이란 온 마을에 소식을 소리쳐 전할 수 있는 지붕 위와 같은 곳이다.
오직 십자가를 향한 고난의 발걸음을 통해서 목자는 만들어지는 것이며, 목회사역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려와 낮아져야 한다. 목자는 빛나지 않는 것이며, 그는 두드러지지 않으며, 은밀히 이루어지며, 그가 한 일에 어느 누구도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사도들의 계승자인 우리는 사도적인 정신을 가져야만 하고 사도의 직무를 해야하며, 우리 모두는 각각 성령에 충만하여 고생하고 유리하는 사람들을 목양 해야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그들에게 옮겨주어야 한다. 이것은 오직 목회 사역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이로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제 2 장 목회자의 사역
목회자의 사역은 그 사역이 갖은 영역의 포괄성과 그로 인한 사역의 책임성에 대한 중대성이란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되지 않는 한, 결코 중차대하고 고귀하게 여겨질 수 없다. 목자는 파수꾼(Watch-man)이며, 신중함은 그들에게 기본적인 자질이었으며, 조심성은 필수 조건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의 항로는 위태롭기만 하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온 우주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모든 목회자는 책임감으로 깨어 경성 해야만 한다. 시편 기자는 목자로 인한 안전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목회 사역에서 최고의 영역은 양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또한 목자는 인도자이다. 양들의 속성을 알지 못하는 무능력은 목회자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양들의 의사로 기억 속에 뿌리 박혀 있는 슬픔을 없애주고 마음속의 사라지지 않는 고뇌를 제거해 주며, 압박감을 주는 가슴속의 해로운 기억의 소재들을 말끔히 씻어 주는 것, 이것이 치유의 사역이다.
목회자는 의사를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되지만 목회자로서의 자신이 의사임과, 하나님께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두신 모든 수단들을 통해 인간의 영적 건강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 차원에서도 인간다움을 회복시키는 일이 그의 의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양들의 신체적인 건강과 도덕적이고 영적인 건강은 목회사역의 한 부분이다.
목자는 구원자(savior)이며, 잃은 자들을 찾는 사역은 엄밀히 말해 목회사역 그 자체이다. 양을 먹이는 일(feeding)이 목자의 의무 중 핵심적인 것이라는 것은 목자들과 이런 일에 능숙치 못한 사람들에게조차 알려져 있는 이며, 예수께서도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시면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이다. 또한 평범하면서도 겸손한 사역이다.
설교가 문학적인 일이기는 하나 생사가 걸린 사역으로 정직한 마음과 진지한 가슴의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면 결코 잘되어질 수 없는 사역이다. 목회자들의 목회사역 중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인 여러 사역은 그의 설교 안에서 감당되어진다. 설교로써 그는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고, 치료하고, 구출하고, 양육할 수 있다.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는 일이며,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 구원하여야 한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라고 하신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경성하며, 지키며, 인도하며, 치료하며, 구원하며, 먹이며,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노라. 나를 따르라.”
제 3 장 목회자에게 찾아오는 성공의 기회
현대문명은 목회자를 정중한 태도로 이 문명사회에서 내어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온 인간의 영혼은 항상 목자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문명이라고 하는 표면적인 것은 변화하고 있지만 인생의 내면은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또한 현대의 시대는 출판물로 많은 악영향을 받고 있는 시대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시고 우물가의 여인에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셨듯이, 한 개인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만이 문제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고 어두움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거대한 대도시에서의 목회문제가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것은 사실이며, 현대의 목자들은 누룩이 될 수 있으며, 소금이 될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다. 선을 행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무언가 줄 수 있고, 기꺼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한 과제의 해답은 목자가 가지고 있으며, 목자는 양떼의 죄와 허물로 인한 상처의 공감이 있어야한다. 따라서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주된 문제는 교회가 세상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세상이 오늘날 요구하는 사랑의 표현은 오직 어린양을 품에 안고 양떼를 온유하게 인도하며 날마다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목자의 사랑의 모습인 것이며, 인격은 목회의 전부이다.
현대에 목양하는 것이 사라져 가면서 오래 전에 목자와 양과의 온화하고 성스런 관계도 사라져 간다. 마태는 증언하기를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군중의 모습 때문에 주님의 마음은 그들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자기가 살던 시대의 종교적 상황을 묘사할 때 ‘고생하다’, ‘유리하다,’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같은 의미의 말씀을 언급했다. 양떼인 백성들이 유리하는 모습을 보며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든 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도다,” 라고 언급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탄식을,
“내 양들이 모든 산지와 모든 높은 언덕에서 방황 하도다. 내 양들이 모든 땅 위에 흩어져 있으며 그들을 찾고 찾는 자가 없도다.”하였다. 목자는 개개인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 교회에서 당신의 기도와 성도들의 기도가 계속 된다면, 당신은 섬기는 목회자로서 점차로 당신의 지도를 받는 훈련된 목회자 군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농부들처럼 목회자들도 교회의 토양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모든 교회에는 세 종류의 낭비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 들이 있는데, 첫째는 비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사람들이고, 셋째는 사마리아인 등이며, 목자는 목양이란 개념으로 대치해야 하며,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을 특별히 지속적으로 보살펴야한다.
제 4 장 목회자에게 찾아오는 유혹
목회자들이 빠지는 유혹으로 물질을 사랑하는 것과 명예를 사랑하는 것이며, 탐욕은 우리 마음 속에서 돈과 결부되어 있으며, 목회자는 당연히 할 이상의 수준으로 그들의 사례비를 높게 잡아서는 아니된다. 또한 물질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그들을 일평생 가난하게 만드는 그 부르심에 헌신하는 것은 현 세기의 가장 숭고한 현상이자, 성령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탐욕이란 거듭나지 못한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며, 한 방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때에는 다른 방향에서 정복의 대상을 찾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성향이다. 사도 바울은 “탐욕을 죽여라.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를 우상으로 섬기는 것은 늘 지옥행의 지름길이며 목회자의 자기숭배는 매우 신속히 자신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네가 어떻게 하나님께로서가 아닌 사람으로부터의 영광을 구할 수 있겠는가?”,
목회자는 사소한 것에도 부주의해서는 않되며, 탐욕은 그 작태를 종종 비겁함의 형식을 드러내며, 탐욕적인 목회자는 자신의 일신만을 위한다. 예수님께서 탐욕스런 설교자들을 가리키는 이름을 사용하셨는데, 그들을 삯꾼이라 부르셨으며,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삯꾼이란 마음을 자기가 맡은 일에 두지 않고 오로지 그 일로부터 얻을 삯만 기대하는 사람이다.
“탐욕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가 소유한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명예욕에 대한 탐욕은 돈에 대한 탐욕보다 더 파괴적이며, 인간 내면의 더 깊은 자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는 모든 믿는 자의 제사장 됨을 믿으며 같은 주의 제자로 부름받은 형제됨을 믿는다.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한 가계이며 똑같은 속성과 특권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동일하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구속받았고, 모두가 동일하게 영원한 상속자이다. 설교자 사역의 본질이 주권적으로 영들을 먹이며, 주도적으로 양들의 식욕을 채우는 성향의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목회자가 자신 안에 쉽게 독선적 성향을 세워가며 마음속에 독단적 권한을 키워 감은 잘못이라고 본다.
설교 속의 진리도 청중들이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야한다. 목회자는 그가 생각하기에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을 선포하고 변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역시 그 진리를 사랑 가운데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마18장은 예수께서 그의12제자들을 부르시고 작은 어린아이 한 영혼 그들 가운데 세우셔서 하신 말씀이며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가식 없음은 그리스도께서 목회자들에게 바라시는 비밀 그 자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시며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는 세상 끝날까지도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실 것이며,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셨을 때에 조심스럽게 “내‘라는 소유 대명사를 사용하셨다. 즉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신약성경 속에 이 소유격 대명사는 목회자들이 양들에 대해 주인 행세를 하려는 죄악에서 목회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강력한 대명사인 것 같다.,
제 5 장 목회자가 받는 상급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서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는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받는다. 목회자들에 대한 사랑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사랑은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다 하여도 끝까지 교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유명한 설교가로서의 명성보다는 그의 좋은 인품이 공동체 안에 더 오래도록 살아 남는다.
하늘로부터 오는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부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기의 인생을 남을 위하여 쏟아 붓는 영향력 있는 인격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별한 은사를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에게 주신다. 설교 준비과정은 두 단계를 걸쳐 일어나는데, 하나는 설교자로서의 준비와 다른 하나는 메시지 준비이다. 목회자가 양들보다 더 마음이 가는 대상이 있다면 그는 양들을 더 좋아할 수 있도록 자신을 더 훈련시켜야 하며, 가장 좋은 책들은 세계와의 근원적인 접촉을 가진 사람들의 두뇌 속에서 나온다.
목회 사역이 설교자를 위하여 목회자에게 설교의 재료 거리를 제공해 주며, 책 속에서, 또 다른 하나는 매일의 삶 속의 체험 가운데서 나온다. 그리고 목회자가 설교의 가장 많은 예화를 얻는 것은 그의 목회지 에서 이며, 진정 사람들을 아는 설교자라면 그는 늘 설교거리로 가득 할 것이다.
목회자가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은 그의 목회사역 속에서이며, 설교 가는 세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세상이 무엇을 원 하는 가도 알아야만 한다. 설교 승패의 대부분이 설교시 목회자가 사용하는 어휘에 달려 있으며, 설교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단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사용하는 어휘는 일상적인 대화 가운데서 발견될 수 있는 어휘이어야 하며, 설교자의 목적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럴 때 대화체의 명료함과 평안함이며, 또한 모호하지 않은 직접성이다. 문장은 곧장 개인의 마음속에 와 닿아야만 하는 것이다.
언어사용에 있어 설교자의 첫 번째 의무는 청중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며, 설교가 흥미로울려면 독창적이고 생생해야 하며,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 독창적이란 말은 설교가 말하는 강조점에 있으며, 설교의 소재들을 융합시키는 설교자의 열정에 놓여 있으며, 설교자가 개 교회의 교인들에게 진리를 적용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설교란 살아있는 감정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성경의 옛 이야기들을 말하여, 그 옛 말씀이 각 사람의 마음 가운데 불붙듯 타오르게 할 수가 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세상이 주는 고난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목회자는 삶의 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회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존 번연이 “나는 내가 느낀 것을 설교한다.”는 말처럼 목회자의 경험이 그의 설교의 실체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설교의 생명력과 힘을 더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목자의 사역이 예비의 사역이라면, 선지자의 사역은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사역이다.
진리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함에 있어서 설교자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둘째로 듣는 사람도 들은 그것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목회자가 받는 보상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은 그의 영적인 위상이 커진다는 것이며, 목회자의 인격은 교회 생활의 흐름 가운데 형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사역은 목회자에게 어머니의 인내와 같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며, 목회자의 노고는 그에게 겸손의 은혜를 입게 할 것이다.
신실한 목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을 알게 되며 그의 죽음의 순간까지라도 평안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모든 특권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면 그 특권은 현저하게 목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고의 보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사귀는 것이며, 그의 영광에 끝없이 참여하는 것이다.
“나 있는 곳에 그들도 있게 하여 그들로 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
Ⅳ.비 평
우리가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 받는다고 하면 심판 날의 기준은 목자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이시므로 하나님 자신이 바로 목자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목자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 안에서 영원히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는 이 말이 목자의 길을 가기 위해 훈련받고 있는 연구자로서는 심각하게 나의 가슴에 무겁게 와 닿는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연구자로서는 진정 무겁게만 느껴진다.
현대의 목자들은 누룩이 될 수 있다. 그는 소금이 될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다. 그는 선을 행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무언가 줄 수 있다. 그는 기꺼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다. 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말과 글로 쉽게 쓰고, 말하기는 쉬워도 진정으로 행할 이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