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과자
고미화
향수鄕愁를 불러오는 먹거리가 있다. 식욕보다 먼저 떠오른 추억 때문에 주전부리를 살 때가 있다. 둥근 보름달 같은 뻥튀기 과자가 눈에 띄면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아이들처럼 왜 불량식품을 사느냐’는 남편의 핀잔에도 추억을 먹기 위해서라고 맹랑한 응수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단지 안에 장이 열린다. 산책길에 구경 삼아 지나가는 데 전통과자를 파는 작은 트럭이 보인다. 과자를 쌓아 놓은 진열대 한편에서 펑! 펑! 소리와 함께 동그란 과자가 튕겨 나온다.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 여인들의 시선이 분주한 상인의 손길을 따라다닌다. 후덕해 보이는 아주머니는 바삐 움직이면서도 아이들을 먼저 챙긴다. 엄마 손을 잡고 달덩이 같은 과자를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시골에서 자랐던 유년시절,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제철 과일이나 고구마, 옥수수 등 수확한 농작물이 간식이고 주식主食이었다. 주전부리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용돈이 따로 없던 시절이었다. 가끔은 군것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학용품값을 부풀리기도 했다. 등하굣길에 친구들과 함께 먹는 과자 맛은 불편한 황홀경이었다. 고소하고 달달한 맛은 잠시 죄책감도 잊게 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400여 명 정도의 작은 학교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곱고 온화하신 분이었다. 미혼이었던 그분은 계란형 얼굴에 하얀 피부와 도회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계셨다. 가정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지내던 나는 선생님을 많이 의지했다. 부드럽고 따스한 모습에서 엄마의 향취가 느껴졌다. 간혹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보신 선생님께서 연유를 물으시면 까닭 모를 설움이 북받쳐 올라올 때도 있었다. 아침 자습 시간에는 종종 아이들 앞에 나를 세우시고 책을 읽게 하셨다. 소란하던 교실이 조용해지고 스토리에 귀 기울이는 급우들을 볼 때면 작은 희열감이 나를 감쌌다.
늘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다. 대여섯 명이 아웅다웅 무리 지어 다니며 교실 분위기를 주도했다. 아이들 세계에 존재하는 소소한 갈등으로 친구들과 거리감을 느낄 때면 나만의 아지트를 찾았다. 공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그곳에서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함께 푸른 초원을 뛰어다니고, 소공자와 소공녀를 만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친구는 ‘사라’였다.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소설《소공녀》의 주인공인 사라는 역경 속에서도 특유의 상상력으로 현실을 극복해 나갔던 예쁜 소녀다. 비루한 상황에서도 따스한 감성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좋은 결말을 맞는 주인공에게 내 모습을 투영시켰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고전읽기대회’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학년 대표로 출전하는 우쭐한 마음도 있었지만, 6총사에서 열외 되는 두려움도 있었다. 가끔 엄마가 소포로 보내온 예쁜 옷과 학용품을 부러워한 친구에게 괜한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였다. 친구들에게 소외되는 것은 또 다른 외로움이었다. 썰물처럼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선생님도 교무실에 가시면 왁자하던 교실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어느 날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려 교실 뒤편에서 공기놀이를 했다. 교무회의에 들어가신 선생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잠깐 놀다 들어갈 심산이었다. 한참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갑자기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선생님께서 엄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계셨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고개를 떨군 채 선생님 뒤를 따라 교실에 들어갔다. 긴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무언의 책망이 자책감의 무게를 더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굵은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후 지폐를 꺼낸 선생님은 뜻밖의 심부름을 시키셨다.
긴장감으로 막혔던 가슴이 서서히 편안해졌다.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당당하게 가게 문을 열고 선생님이 칭하신 달 모양의 과자를 안고 돌아왔다.
선생님과 함께 앉아 달빛 조각을 먹었다. 사르르 녹는 과자가 허허로운 가슴을 채웠다. 엄마 곁에 있는 것처럼 포근해졌다. 이불을 끌어올려 감싸주는 손길을 느낄 때처럼 따스했다.
아련한 추억을 일깨우는 동그란 과자는 이젠 크기도 맛도 달라졌다. 자색 고구마와 단호박이 첨가되고, 다양한 곡물을 재료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영양도 더욱 풍부해진 과자에서 나는 옛맛을 찾지 못한다. 다양한 음식에 길들여진 미각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사실 그날의 과자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질책 대신 받았던 포근한 사랑의 포만감만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남아 있다.
저녁 산책길에 마주한 둥근달이 환하다. 이제 나는 당시의 선생님보다 갑절 이상의 나이가 되었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저런 달빛이 되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흐렸던 하루가 저물면 이슥한 어둠 속에서, 잿빛 구름 가르며 말간 얼굴 보여주려 애썼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여전한 달빛에서 무언으로 건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지러지면 차오르는 법이라고 일러 주신다.
첫댓글 고미화 샘도 뻥튀기 과자 좋아하는군요. 나도 그런데~~~^^
뻥튀기가 선생님의 포근한 사랑 달빛과자 추억으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에게도 이지러지면 차오르는 법을 다시 일깨워주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뻥튀기 과자를 살 때마다 눅눅해질 때까지 남기게 되면서도~~ ^^
매사에 꼼꼼하시고 성실하신 회장님께도 저는 달빛의 언어를 듣고 있답니다.
읽다보면 따스함이 스며드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민선생님 감사합니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발표된 글을 보니 저는 더욱 부끄러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