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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61025172623106
전문가들은 학벌주의 영향이 강해진 배경으로 ‘취업난’을 꼽는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불경기에는 취업시 이른바 ‘괜찮은 대학 간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며 “결국 취업난이 심해질 수록 학벌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는 믿음도 커지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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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면 아이들에게 지식교육과 더불어 진리를 교육해야 하는 이유
인간의 불행과 세상의 많은 문제는 사람들이 우주의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無知), 알아도 사리사욕(탐욕)에 이끌려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배우고,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인간과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적인 길이다.
공자는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진리를 갈구하였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은 진리의 중요성을 모르고 또 먹고 사는데 마음을 쏟느라 진리에 관심들이 별로 없는 편이다.
노자는
"上士가 道를 들으면 근면하게 행하고,
中士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며 하는둥 마는둥 하고,
下士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거니 만약 비웃지 않으면 도라 하기엔 부족하다"고 하였다.
오늘날 신이나 인과응보, 지옥이나 천국의 존재를 말하면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미신으로 치부하며 비웃는 사람들이 많으니, 대각자가 진리를 전해도 세인들 모두가 그것을 진리로 믿고 실천하지는 않는 것이다.
예수는 요한복음 8장 32~36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하니 예수는 바로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그리스도)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께서 가르키는 자유는 신분의 자유를 말하는게 아니라, ‘죄업의 속박’ 으로 인한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무지와 거짓, 탐욕과 분노, 원한 등을 통해 남을 해롭게 하는 악업으로 생긴다. 대각자가 전하는 진리와 진실은 거짓과 무지를 타파할 수 있고, 탐욕과 집착을 버리게 할 수도 있으며, 나쁜 일을 하려는 마음을 제어하고 正念을 강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진리에 거하고 이를 실천하면 다툼과 갈등이 줄어들어 사회가 안정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죄업의 속박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하지만 바램과 달리 질병이나 사고, 불화 등으로 고통을 겪으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왜 인생에 불행과 고통이 찾아오는가?
성경에 '욕심이 죄를 낳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 하였는데 요한복음 5:14절을 보면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또 예루살렘 근처 실로암에 있는 망대(塔)가 붕괴하여 18명이 죽었는데, 예수는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였다.(누가복음 13장 5절 )
이는 질병이나 재난의 고통이 모두 죄업의 결과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우연이 아니라 선행과 악행에 따른 인과응보인데, 붓다는 카르마(業)와 마음수행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만약 사람이 행한 業이 없는데도 즐겁거나 괴로운 과보가 생긴다면, 그 누구도 바르게 살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業이 있으므로 과보가 있으며, 그 때문에 수행해야 한다.”《잡아함경》
"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인간세상에 이어 천상계가 있어서 業에 따라 그 세계들이 등차적으로 건립되어 있다. 중생은 자기가 지은 그 죄과에 의하여 자기에게 맞는 세계에 태어나고 또 다른 다음의 業因을 지어가는 것으로 끝없는 삶을 살아간다. 선행을 행한 착한 사람은 안락한 세계에서 한결 더 안락한 세계로 나아가다 보니 그 지혜는 더욱 더 밝아지게 되며, 악행을 지은 악한 사람은 고통스런 세상에서 한결 더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나아가다 보니 그 마음이 더욱 더 혼탁하고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수능엄경》
모든 대각자들은 살생, 도둑질, 거짓말, 음행 등 여러 악행을 저지르다가 그 응보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중생들을 위해 모든 악행을 금하고 선행과 마음수행을 권했다.
"모든 惡을 짓지 말고, 모든 善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생각(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칠불통게]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끈다. 청정한 마음으로 행하면 행복이 그림자처럼 따른다."《법구경》
특히 붓다는 깨달은 스승과 인연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현명한 이를 가까이 하면 道와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이를 가까이 하면 재앙이 오는 법이다. " (법구경)
사람들은 보고 듣는 정보들을 통해 대뇌 속에 후천적인 사상(思想)이 형성되는데, 사람의 언행은 그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평소에 자주 접하는 정보가 진리와 진실인가 거짓인가, 청정한가 혼탁한가의 여부가 아주 중요하다.
만약 허위정보에 의해 세뇌되면 그 사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에, 불교나 기독교 모두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이 존재한다.
거짓말은 남에게 물질적으로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심지어 거짓말로 인하여 자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앞으로 얼마 간다는 증권사들의 전망을 그대로 믿고 주식을 샀다가 크게 손해보는 사례가 대표적인 예이다.
거짓말은 악업을 쌓아 자기 마음을 혼탁하고 정당하지 못하게 만들고 공동체 상호간의 신뢰와 화합을 해치는 것으로, 붓다는 진실된 말, 타인에게 유익한 말, 서로 화합하게 하는 말, 자비로운 말을 하도록 강조했다.
사람의 사상은 고정불변하는게 아니고 늘상 보고 듣고 접하는 정보와 인연에 따라 변할 수 있기에, 진실하지 않고 불량한 정보를 남발하는 유튜브나 불건전 커뮤니티, 진리가 아닌 邪敎와 거짓선지자들을 멀리하고, 대각자가 전하는 정법을 인연하여 수행을 하면 사상과 마음이 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컵 안에 든 흙탕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방법은 깨끗한 물을 계속 부어서 맑은 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혼탁해진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려면 맑고 밝은 고차원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받아서 탁하고 어두운 기운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탁한 기운이 발산되는 책과 유튜브, 불건전 사이트 등을 멀리하고 대각자의 고차원 에너지가 발산되는 진리의 가르침을 자주 접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또 들뜬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명상을 매일하는 것이 곧 자신을 정화시키는 길이다.
미국 메사추세츠종합병원의 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선정을 통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되면 해마와 전대상피질의 회색질 밀도가 증가되어 기억력과 학습능력 증가, 자존감과 동정심(측은지심), 반성의식이 증가하고, 편도체의 회색질 밀도는 오히려 감소하여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우리가 병의 원인을 모르면 그 병을 치유할 수 없듯이, 나는 누구이며 왜 사람으로 태어나 고생스럽게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서는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진리를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우주의 본성과 어긋나는 탐욕 분노 무지는 모든 다툼과 불행, 고통으로 향하는 길이요,
우주의 본성 眞善忍은 화해와 평화, 행복과 낙원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인류는 진선인의 실천이 필요하며, 이것이야 말로 인류가 다툼없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길이다.
현 시대는 도덕이 타락한 말세라 예수님의 계시대로 거짓 선지자들이 창궐한데, 우주의 본성인 진선인과 동화됨을 가르치는 분이야말로 진정한 선지자이다.
《진(眞)이란 바로 진실한 일을 하고 진실을 말하며 속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잘못을 저지르고 숨기지 않는 것.
선(善)이란 자비심을 말하며 남을 괴롭히지 않고 약자를 동정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
인(忍)이란 바로 곤란에 처하거나 굴욕을 당할 때 넓게 생각하고 견딜 수 있어야 하며, 남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기억하거나 알리지 말며,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고 보통사람이 참아내기 어려운 일을 참아낼 수 있는 것.》
진리(法, 道)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법륜대법 李洪志 사부님의 가르침을 소개하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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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좋고 나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사부: 어떤 것이 좋은 사람인가? 어떤 것이 나쁜 사람인가? 당신들은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그가 바로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어떤 사람도 보면 역시 몹시 나쁘다. 다만 그가 표현하지 않았거나 표현됨이 아주 은폐적일 뿐이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모태에서 출생할 때 어떤 속인의 사상도 없고 오로지 젖을 먹고 울 줄만 알 뿐이었는데 후천적으로 그에게 속인 중의 일체를 부어 넣었다. 예전에 사람들은 가정교육을 아주 중시하였다. 내가 느끼건대 당신들 예전의 백인가정의 자식에 대한 교육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욱이 지금 미국의 자식에 대한 방임, 그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어린이는 교양이라곤 전혀 없으며 전반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인류에 책임지기 위해 반드시 어린이를 잘 교육해야 한다. 그들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다고 알려준다면 그는 모두 머릿속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마치 하나의 가죽가방과도 같이 이 가죽가방에 금을 담았다면 남들은 이것을 금이라고 말할 것이고, 당신의 가죽가방 속에 흙을 담았다면 남들은 이것을 흙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당신의 머릿속에 좋은 것을 담았다면 당신은 곧 좋은 사람인 것으로,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틀림없이 모두 좋은 염두인가 하면, 당신이 좋지 못한 사상을 담았다면 당신의 행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나쁜 일이고 생각하는 문제도 모두 나쁜 것이며 나쁜 사상이다. 이것이 바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근본적인 구별이다.
무엇이 좋은 사람인가? 무엇이 나쁜 사람인가? 사회의 선전기구, 각종 신문, 잡지에 실린 그런 폭력, 색정을 당신 머릿속에 부어 넣는데 여러 사람은 그래도 보기를 좋아한다. 부어 넣은 것이 더욱 많으면 당신은 그와 같게 된 셈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지 말고 그런 좋은 것을 보라.
좋은 것을 더욱더 많이, 더욱더 많이 부어 넣는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당신의 행위는 당신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이 교육을 중시하지 않고 후대에 대한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사람의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감히 상상할 수 없으며 감히 바라볼 수 없다. 나는 때로 그들을 보게 되는데 그야말로 보기 싫다. 그의 안에서 외면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에서 마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위에서 옷에 이르기까지 바른 것이 한 가지도 없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 가정교육이 비교적 좋은 일부분이 있고 자식을 비교적 잘 단속하는 일부분이 있다. 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다음 한 세대 사람과 미래의 사회를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세대 사람들이 어떤 모양일지, 당신들은 자신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출처 : 98년 유럽법회 설법)
제자 : 장기간 형성된 사유와 성격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입니까? 법 공부에 대해 아주 큰 교란을 형성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이런 교란을 철저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부 : 사람의 사유와 생각, 머릿속에 형성된 각종 관념은, 모두 당신이 장기간 사회 중에서 각종 일을 접촉하는 과정 중에 형성된 것이며, 나이가 많을수록 누적된 것이 더욱 많다.
중국 대륙에 좋지 않은 현상이 지금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당신이 보게 되는 것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중국 대륙의 아이들이 국외의 아이들과 유난히 다르다고 하는데, 대륙에서 온 아이들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으며 또한 약삭빠르다. 그렇다.
그 사회는 무슨 나쁜 일이든 모두 드러내었다. 신문, 매체, 사람의 행위, 말하는 것 무엇이든 하한선이 없으며, 어린아이의 머리에는 있지 말아야 할 것들이 국외의 어린아이들에 비해 많이 주입되어 있으며, 그 또한 많이 웃자라 있다.
어떤 것이든 사람의 사상 속으로 주입되면 곧 거기에 존재하게 된다. 사람은 기억력이 있다. 기억이라 말하지만, 이를 말하자면 마치 모두 관념에 불과한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실재적이고 실재적인 물질이다.
사람이 말을 할 때, 당신에 대해 한 가지 어떤 이치를 말할 때, 혹은 당신을 설득하려고 할 때, “왕왕왕” 하며 줄기차게 당신 머릿속으로 주입시키는데, 정말로 당신에게 물건을 던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주 화가 나서 끊임없이 반대하는데, 바로 끊임없이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대법제자는 사람에게 유익하여 우리가 말을 할 때는 정념에 의거해 하므로 말을 함에 따라 나가는 것은 연꽃이다. 그러나 속인사회 중에서 형성된 것에는 무슨 그리 좋은 것이 없어 인체로 진입하면 그것이 사람을 조종하려 할 것이다.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상관없다고 하며,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당신이 보았다면 들어갔다. 왜냐하면 어떠한 것도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모두 분체(分體)할 수 있기 때문이며, 본 시간이 길수록 들어간 것이 더욱 많다.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를 보는데, 어쨌든 어떤 것이든 당신이 보았다면 바로 들어간 것이다.
사람 머릿 속에, 신체 속에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을 많이 담았다면, 당신의 행위는 그것의 통제를 받게 마련이다. 당신이 하는 말, 당신의 사유방식, 당신이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는 모두 그것의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떠한 환경이 어떠한 사람을 만든다는, 이것은 절대적이다. 비단 수련계뿐만 아니라, 속인사회의 옛날 노인들도 다 안다. 이러한 것은 수련 중에서 조금씩 제거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나는 오늘 수련하여 전부 다 제거해 버리겠다고 한다면 일반적인 정황에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얼음 석자가 하루 추위에 얼지 못하는데, 형성된 것을 한 번에 모두 제거하기란 어려운 것으로, 당신이 그렇게 큰 열량(熱量)이 없어 그것을 녹여버릴 정도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당신은 여러 차례를 거쳐야만 그것을 녹여버릴 수 있다.
당신이 오늘 수련을 좀 잘해서 일부를 녹여버리고, 내일 수련을 잘해서 일부를 녹여버리고, 모레 수련을 잘해서 일부를 녹여버리고, 점차적으로 당신이 정말 정념이 십분 충족할 수 있다면, 그 열량 역시 커져, 그것을 전부 다 녹여버리게 된다.
왜 어떤 사람은 사상 중의 나쁜 것을 내가 모두 제거해버렸는데, 어째서 또 있게 되었는가? 라고 한다. 또 내가 매일 발정념을 해서 제거하는데, 어째서 아직도 반영되고 있는가? 어찌 늘 제거되지 않는가? 라고 한다. 그렇다. 당신 그것도 하루에 들어간 것이 아니며, (사부 웃음) 또한 일시에 형성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럼 내가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면 나에게서 다 제거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이것은 사부가 당신을 대신해 수련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결국 당신이 수련한 것으로 볼 수도 없지 않은가. 당신이 수련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럼 수련하지 않은 것이며, 바로 수련에 누락이 있는 것이다.
천상으로 돌아간 후 뭇 신들이 보자마자 당신은 어떻게 수련했는가? 한다. 많은 것이 자신이 수련한 것이 아니고, 위덕이 없으며, 이 면에 고생을 하지도 않았고, 줄곧 모두 사부가 제거해 준 것인데, 그럼 천상에서는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아직 갚지 못한 빚이 있으면 안 된다. 무엇을 빚졌다면 그것을 갚아야 하는데, 이는 우주의 이치이다.
사부는 당신을 대신해 일부분을 갚아줄 수 있고, 당신을 대신해 사상 중에서 마땅히 청리해야 할 것들을 청리해줄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은 반드시 수련 중에서 당신이 마땅히 수련해야 할 그 부분을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만한 것을 감당해야 한다.
당신으로 말하면 무슨 위험이 없다. 하지만 당신은 무엇이 수련이며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깨달음이 있고 제고가 있어야만, 그것이 비로소 수련이다. (출처 : 2010년 뉴욕법회 설법)
나는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은 일성(一性)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의 사상계(思想界)에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내내 모두 물질이 일차적인가 아니면 정신이 일차적인가 하며 이 문제를 담론해 왔다. 나는 매우 많은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다.
사람이 사유(思維)하고 있거나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생성되는 사상자체에 대하여 현재 그것이 물질의 체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신이 아닌가? 바로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체 우주는 가장 미시적인 것에서 가장 거시적인데 이르기까지,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의 입자(粒子)에는 모두 특성이 존재하고 있는데 真ㆍ善ㆍ忍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真ㆍ善ㆍ忍 우주의 특성인 그는 부동(不同)한 층차의 우주 중의 일체의 일체를 제약하고 있으며, 물질은 바로 이러한 정신의 특성으로 집합되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물질, 그것은 일성(一性)이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는 말하기를 기공(氣功) 연마는 그냥 기공 연마일 뿐, 心性을 제고할 필요도, 책을 볼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려는 가장 관건적인 문제인데, 그러면 영원히 제고되어 올라올 수 없다. 또 몇 개의 기공 동작으로 단련한다 해서 당신의 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 대륙의 매우 많은 일반사람도 모두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법 공부(學法)를 하지 않고 책을 보지 않아 당신이 그 속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당신의 도덕은 다시 올라갈 수 없다. 당신의 心性이 좋게 변해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될 수 없다면 당신에게는 병이 있게 된다. 사람은 모두 이러하기에 병이 있게 되는데, 오로지 속인을 초월해야만 당신은 병이 없게 된다.
그런데 단지 몇 개 혹은 더 많은 동작연습만으로는 속인을 초월할 수 없다. 오직 진정으로 그 법리(法理)를 알아야만 당신의 사상과 경지가 제고되어 더욱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한 좋은 사람으로 된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초상적인 사람으로 되었다면 당신은 마땅히 일반 속인들이 반드시 얻게 되는 병을 얻지 말아야 하는 바로 이런 이치이다.
나는 방금 사람은 반드시 더욱 좋은 사람이 되고 현재의 일반속인을 초월하는 데 이르러야만 진정으로 병이 없게 된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당신이 더욱 높은 경지로 수련되어 가려면 이 요구보다 더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병이 없다하여 높은 경지에서 수련하고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 아니며, 단지 속인의 도덕 수준보다 높은 사람일 뿐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속인을 초월하고, 나아가 더욱 높은 다시 말하면 더욱 좋은 사람, 도덕이 더욱 고상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오직 이래야만 여러분은 수련되어 올라올 수 있다.
현재 일부 중국인 이외의 다른 민족의 수련생들은 법 공부를 그다지 중시하지 못하고, 그다지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방금 내가 한 이런 말들이 당신을 명백해지게 했을 것이다. 기공의 수법(手法)은 단지 수련의 한 보조적 수단일 뿐 절대로 근본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만약 당신의 心性이 올라가지 못하고 당신의 경지가 더욱 높은 경지로 제고되지 못하면 당신이 아무리 동작을 연마해도 전혀 연마해 올라갈 수 없다. 오로지 당신의 心性이 그렇게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제고를 가져올 수 있으며, 병을 제거할 수 있다. 당신이 자신에게 더욱 높고 더욱 훌륭할 것을 요구할 때면, 당신은 속인을 초월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러면 속인이 아니다.
여러분도 보았겠지만 사람이 속인사회에서 하는 생각ㆍ행동ㆍ행위는 자신을 위하고 자기 집을 위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며 심지어는 오로지 이익만을 도모한다. 게다가 현재는 도덕(道德)이 매우 타락한 시기이다. 당신이 속인과 같은데, 당신이 동작을 좀 연마한다 해서 당신의 병이 나아질 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신이 속인처럼 동작만 연마한다고 해서 초상적인 사람에 도달될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책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정신경지와 사상이 그렇게 높은 표준에 도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은 병이 나아질 수 없고 또한 높은 경지에 도달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하는지 그 이유와 책을 보아야 하는 필요성이다.
법은 당신들이 부동한 층차 중에서 제고하도록 지도할 수 있다. 『전법륜(轉法輪)』 이 책은 여러분을 계통적으로 수련하게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든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 『전법륜(轉法輪)』을 본 후면, 당신으로 하여금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인류는 그 어떤 도덕표준의 구속도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것을 반대하고 옛 관념을 반대한다. 사람은 눈앞의 현실에 착안하면 할수록 더욱더 인간의 본질(本質), 가장 선천적이고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하게 되며 도덕의 구속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인데, 이러면 안 된다.
인류의 타락은 이미 인류로 하여금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했는데, 이후에 나는 설법 가운데서 여러분의 이러한 문제들에 해답해 주겠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문제를 좀 말하겠다. 속인 중에서 수련할 때, 늘 허다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지금부터 수련 중의 구체적인 문제를 말하겠다. 많은 사람이 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이지(理智)를 흩트려 놓아도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다.
천백 년 동안, 수련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정하게 말한 사람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수련은 가부좌를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 시골에는 나이든 많은 부녀가 일 년 내내 온돌에 앉아서 옷을 꿰매거나 신발 밑창을 꿰맨다. 만약 이렇게 간단하다면 나는 그녀들이 마땅히 신(神)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동작, 그것은 다만 보조적 수단으로서 당신이 연공하지 않고서 가부좌를 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련의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수련 중에, 나는 당신에게 법리(法理)를 알도록 하고 책을 보라고 말하는데,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높은 경지로 제고되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제고되는가? 바로 당신은 속인 중의 그런 좋지 못한 사상, 사람에 대한 쟁투심을 버리는 것이다. 작디작은 파리 대가리만 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조금 얻으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조금 잃었다고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르면서, 이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여 온몸에 병을 얻는데 당신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가! 사람이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서 생존해야 한단 말인가?
여러분이 이미 이 한 점을 명확히 본 바에야 무엇 때문에 진정한 수련인처럼 자신의 집착심을 버리지 못하는가? 당당한 수련인이 돼라. 나는 늘 말하는데, 정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당신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여러분은 수련 가운데서 모순에 봉착했을 때 그 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다른 사람이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당신은 왜 좋아하지 않는가? 그럼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 때, 마음속에서는 바로 수련과 제고의 기회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은 기쁨을 얻고자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곧 속인이 아닌가?!
당신은 반드시 이런 때에 내가 무엇 때문에 좋아하지 않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말할 때 마음속에서 좋아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속인 속에서 사람마다 자신을 잘 대해주길 바라고 편안하게 지내려고 한다면, 당신은 또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당신이 속인의 그 어떤 것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고해 올라오겠는가? 그러므로 제고되어 올라올 수 없다. 당신은 이런 것들과 사람이 포기하지 못하는 집착을 진정으로 버려야 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오늘날 수련하고 있는 이 대법(大法)에 대하여 나는 이미 현대 인류사회에서, 속인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를 충분히 고려했다. 그러므로 대법을 수련하는 당신은 직업이 있을 수 있고 장사를 할 수 있으며, 일체 가정생활과 사회활동이 있을 수 있다.
대법이 속인사회에서 널리 전해지는 것과 수련방식은 당신의 수련에 영향주지 않으며, 이 점에 대해 나는 이미 충분히 고려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대법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물질이익 가운데서 당신의 마음을 제거하지만 정말로 물질이익에서 꼭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물질자체는 아무 것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 가정에 재물이 넘쳐나고 당신의 집이 모두 금으로 된 벽돌로 지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마음속에 그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담담하게 내려놓았다면 이것은 바로 금전에 대하여 집착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다시 말하면 대법이 요구하는 것은 사람 마음의 개변이지 결코 당신에게 무슨 물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고험에서 필연적으로 엄숙한 이러한 고험이 나타나게 되는데 당신이 이러한 물질에 대해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며 어떤 물건을 중히 여기는가를 본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대법제자들 중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수련자로서 그들의 사업 환경 속에서 그들은 매우 좋은 사람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아도 장사가 잘 된다.
그들 또한 속인들처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애쓰는 것도 없지만 그들은 장사를 아주 잘한다. 특히 지금 이 경제가 불경기일수록, 활기를 잃은 이런 때일수록 수련인의 다름(不同)이 더욱 도드라진다. 자신이 수련의 표준에 도달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와 같은 초상적인 반영(反映)이 나타난다.
내가 금방 말한 것은 집착심이 수련을 저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수련생이 모순에 봉착했을 때, 마음속으로 아주 불쾌해할 때, 당신은 당신이 속인한테 화를 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불(佛)ㆍ신(神) 그런 위대한 각자(覺者), 그가 인간에게 화를 내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층차 속에 있지 않으므로 속인의 정(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을 속인 중에 둘 수 있겠는가? 당신이 속인과 마찬가지로 모순을 대할 때 당신은 이미 속인과 같은 수준이고, 동일한 경지이며 당신은 이미 속인 중에 있다. 당신이 오로지 그들과 같지 않을 때야만 당신은 비로소 그 속에 있지 않게 된다. 물론 표현되어 나오는 그것은 곧 너그러움(寬容), 대범함(大度)인데, 속인들은 이렇게 본다.
실은 여러분들의 수련 중 心性이 처해있는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과 모순에 직면했을 때, 모두 선량한 마음, 慈悲한 마음으로 일체를 대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박수)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평범한 속인이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을 때 당신은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반대로 그와 함께 속인처럼 쟁론하고 다투어야겠는가? 수련생과 수련생 사이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치를 여러분에게 말해 주면 여러분이 모두 명백히 알게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은 법리(法理)이며 여러분에게 전시해 준 것은 바로 이 법(法)이다.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당신들 자신의 수련에 달렸다.
물론 내가 당신을 도와 줄 수 있는 것들은 대다수가 속인사회의 이 면에서 체현되지 않는데 아주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다. 수련하면서 이 법을 잘 배우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서 당신이 집착하면서 내려놓지 않는 그러한 마음을 제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그중에는 가장 나쁜 그런 부분의 것들도 포함된다.
당신은 당신의 관념이 당신 자신이라고 인정하지 말라. 아주 많은 사람이 대법(大法)을 볼 때 어떤 관념을 가지고 보고 있다. 그는 “오, 이 구절이 좋다, 오, 이 구절은 내가 이해를 잘 못하겠다, 오, 그 구절은 내가 보기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당신이 매우 총명하고 당신이 가늠한 것이 맞는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사실은 틀려도 아주 크게 틀렸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상은 이 속인사회 중에서 수립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은 속인의 표준으로서 절대 속인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법에 담겨 있는 진정한 본질을 보아내지 못한다.
이는 당신의 집착심이 당신이 법을 얻는 것을 저애하고 있는 것이며 당신이 좋다고 여기는 부분을 당신이 골라서 본다면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좋지 않다고 여기거나 혹은 당신이 보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당신의 그 좋지 않은 마음, 좋지 않은 사상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당신이 아닌데 당신은 오히려 그것을 당신으로 여기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그에게는 어떠한 속인의 관념도 없다. 내가 말했지만, 6세 이하의 어린이는 나의 말 한마디면 그의 천목(天目)이 곧바로 물건을 볼 수 있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는 속인 사회 중의 그 어떠한 관념적인 것을 형성하지 않아 순수하고 깨끗하기에 우주 真ㆍ善ㆍ忍의 원초적 표준에 부합되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속인사회 중에서 이른바 경험이라는 것을 축적하게 되고 사상에 틀이 생기게 되면 속인 중에서 자신을 미화(美)하여 노련하고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당신은 이미 자신을 아주 나쁘게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관념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우주의 진상, 본질(本質), 우주의 진리(真理)와 저촉되게 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당신에게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당신일 수 있겠는가?
무엇을 반본귀진(返本歸真)이라고 하는가? 자신을 깨끗이 씻어서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원초적인 가장 순수하고 바르며 어떠한 사상관념도 없는 상태 속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총명한 것이며 세상의 일체를 똑똑히 볼 수 있게 된다. 당신에게 어떠한 관념도 없기 때문에 일체는 당신의 안중에 있게 되며 세상의 일체를 당신이 척 보기만 하면 바로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智慧)이다.
당신이 어떤 틀을 갖고 사물을 볼 때면 당신은 바로 당신의 틀 속에 빠지게 되지만 당신의 그 틀은 진리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지식이 아주 많아 당신이 가늠한 표준이 맞는다고 여기겠지만 사실 맞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이렇게 말해도 당신은 나의 관점을 바로 이해하거나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이 정말로 마음을 내려놓고 그 『전법륜』을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은 나의 이 책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보아내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중국과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있는가? 중국 지역만 하더라도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배우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과학자, 높은 지식인, 사회학자, 사상학자,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고위층 간부이다. 외국에서도 그토록 많은 박사, 석사, 연구생, 교수가 배우고 있는데, 그들이 모두 사상이 총명하지 못하단 말인가?
특히 중국의 그 사회에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겪어 왔다. 사상(思想)을 신앙(信仰)했고 문화대혁명을 거쳤으며 또한 숭배하기도 했는데 교훈이 매우 깊다. 그들은 무엇이든 모두 겪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맹목적으로 어떤 것을 믿으라 한다고 가능하겠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이 법을 배울 수 있고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확고할 수 있는지, 이 자체가 문제를 설명해 주지 않는가?
이는 내가 여러분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였으며 내가 여러분에게 더욱 좋은 사람, 초상적인 사람, 건강한 사람, 더욱 고상한 사람, 나아가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圓滿)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건 나 리훙쯔(李洪志)가 말 몇 마디로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이지(理智)를 잃은 것과도 같이 나를 따르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대법(大法)은 느슨하게 관리하는바, 당신이 배우려면 배우고, 당신이 배우지 않으려면 당신 마음대로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든지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어떠한 구속도 없고 어떠한 조직형식도 없으며 또한 당신에게 일전 한 푼 달라고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여러분이 모두 여기에 모였으며 심지어 쫓아내도 가지 않는가? 그들은 생각이 없는가? 이지가 없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엇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이 책을 보지 못하는가? 보건대 리훙쯔(李洪志)가 무엇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배우고 있는가? 이 책을 보고 나면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1999년 오스트레일리아법회 李洪志)
전법륜을 외운 후의 변화
2026년 09월 15일
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나는 법을 외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줄곧 법을 외우고 싶었지만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몇 번이나 중도에 포기했다. 2018년에 명혜망에서 한 편의 글을 보았는데 한 수련생이 자신이 ‘전법륜(轉法輪)’을 100여 번 외웠다고 했다.
수련생의 초인적인 의지가 나에게 깊은 충격을 줬고 그해 하반기에 나는 법을 외우기로 굳게 결심했다. 나는 주로 ‘전법륜’을 외우는 것을 위주로 했고 현재 ‘전법륜’ 3번째 암송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첫 번째로 ‘전법륜’을 다 외우는 데 3년이 걸렸다. 나는 첫 번째로 ‘전법륜’을 외우는 것이 비교적 어렵다고 생각하며 굳건한 의지와 인내력이 없으면 끝까지 다 외우기 어렵다고 본다. 두 번째로 ‘전법륜’을 외우는 데는 2년이 걸렸는데 첫 번째에 비해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나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며 장사하고 있어서 시간과 환경이 내가 수련하고 법을 공부하며 법을 외우는 데 비교적 유리한 편이다. 나는 평소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휴대폰도 보지 않으며 낮에 장사를 마치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수련생들의 교류 글과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본다. 낮에는 장사해야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아 법을 외우는 시간이 적다. 나는 ‘전법륜’을 주로 아침과 저녁에 외운다.
1. 법을 외운 후의 변화
‘전법륜’을 외운 후 내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적어 두피가 보였는데 법을 외운 후 정수리 머리카락이 빽빽해졌고 머리카락 색도 예전보다 훨씬 검어졌다. 사실 처음에 나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가게에 물건을 사러 오는 단골손님과 친구들이 나를 보자마자 “머리숱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네. 머리 염색한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이것이 파룬궁을 수련해서 생긴 변화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전에 나는 추위를 많이 탔다. 겨울에 옷을 많이 껴입어도 늘 손발이 시리다고 느꼈다. 법을 외운 후에는 겨울에 더 이상 옷을 잔뜩 껴입지 않게 됐고 손발도 시리다고 느끼지 않게 됐다.
법공부와 연공에서의 변화는 더욱 뚜렷했다. 법을 외울수록 더 잘 외워지고 외우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다. 생각이 갈수록 청정해졌고 몸과 마음에 일종의 홀가분함이 생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했다. 동시에 법도 더욱 수월하고 빠르게 외워졌는데 이는 상호보완적인 것이었다.
법을 외운 후 법륜장법(法輪樁法)을 연공할 때 내 마음은 고요해질 수 있었고 1시간 포륜(抱輪)을 하는 것도 아주 수월했으며 때로는 2시간 동안 견지할 수 있었다. 예전에 1시간 포륜을 돌파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간이 되면 팔이 몹시 시큰거리고 마음속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쳐서 결국 포기해야 했다.
지금 제5장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을 연공할 때도 마음이 매우 고요하다. 1시간 동안 연공하는 것도 아주 수월하고 가끔 다리만 아프지 않으면 뒤로 30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반면 예전에 제5장 공법은 30분도 돌파하지 못했다.
법을 외우기 전에는 가부좌를 하고 30분만 지나면 아프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너무 아파 몸과 마음이 몹시 불편해져서 다리를 풀어야 했으며 1시간도 돌파하지 못했다. 법을 외운 후 나는 가부좌를 하고 1시간을 수월하게 넘기게 됐다.
2. 법을 외운 후 심성이 향상
법을 외운 후 인내력이 연공에만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수련하며 심성 고비를 넘을 때도 잘 참을 수 있게 됐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아내가 가끔 사소한 일이나 심지어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 화를 내며 언성을 높여 소리치고 욕할 때도 내 마음은 평온했다.
첫 번째 생각은 아내가 왜 저렇게 크게 화를 낼까 하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아내에게 몇 마디 해명하고 때로는 아내와 말다툼까지 벌이며 마음속으로 늘 분해하고 억울해했을 것이다.
법을 외운 후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남을 배려하게 됐다. 예를 들어 집안의 더럽고 힘들고 고된 일, 아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모두 내가 솔선해서 했고 예전처럼 아내와 비교하려는 마음과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나는 이것이 선의 체현이자 자비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미시적인 변화는 더욱 많았다!
결론적으로 법을 외운 후 얻은 이로움이 아주 많고 변화도 컸다. 우리 모두 우주의 진리인 ‘전법륜’을 외워 대법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새기자. 일상 생활과 수련 속에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대법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게 해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해탈하여 사부님을 따라 본향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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