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할머니 혼자서 사는 앞집에 공사차량이 왔다 가더니 앞마당에 국기 게양대가 설치되고 다음 날 할머니가 호주 국기를 달았다.
가끔 큰 개인 집에 국기게양대가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우리 동네 집들처럼 조그만 집에 게양대가 있는 집은 별로 없어서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다. 앞집 아주머니가 왜 갑자기 돈을 들여 게양대를 설치했는지가 무척 궁금해졌지만 이민자인 내 입장에서는 친근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아마 일상적으로 국기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개인 집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에서도 백인남자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에 성조기가 차창에 부착돼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국기라는 깃발이 갖는 의미는 대부분 미국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도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맹세, 다짐, 경외심, 바른 자세는 미국이 만들어낸 국가라는 종교의 성례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국기는 애초 독립전쟁 때 제정된 군기였다. 미국의 국가(國歌)는 국기(國旗)인 ‘성조기’를 노래하는 군가다. 가사는 밤새 적의 포탄 공격을 받고도 새벽녘에 변함없이 휘날리고 있는 성조기의 위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1931년 의회에서 국가로 공인되기 이전에도 100년 넘게 군대의 행사나 국기를 게양할 때 연주되던 곡이었다.
오래 전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을 이어온 메노나이트 (Mennonite) 종파의 교인들이 세운 인디아나주에 있는 고션대학(Goshen College)에서 운동경기 전에 미국국가를 부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미국의 국가만큼이나 성조기의 우상화와 군사문화의 고착에 역할을 한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of Allegiance)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미군은 그 전쟁이 어떤 전쟁이든 모두 자유를 위해 죽었다는 칭송을 듣고 주검이 실린 관은 성조기로 감싸 헛되지 않는 죽음을 위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태극기가 처음 제작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통상조약을 준비할 때였다. 미국은 주권 국가들 사이의 조약에 국기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북전쟁 이후 성조기라는 깃발을 중심으로 미국을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고 제국주의의 꿈을 펼쳐나갈 때, 모든 국가가 그런 깃발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무리가 아니었고, 실제로 많은 국가들의 국기는 19세기 후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기에 대한 객관적 기억으로서 나에게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언젠가 월드컵에서 브라질과의 경기 전에 북한 국가가 연주될 때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흐르던 정대세의 눈물이었다.
그날 경기장에서는 정대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지켜본 관중들과 외신기자들은 의아한 듯 웅성댔다. 그들은 국제경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으로 보고서 저 선수가 왜 눈물을 흘릴까 하고 수군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가 왜 울었는지. 정대세는 한국도 북한도 아닌 일본 내에서만 인정되는 진짜 나라는 없고 무국적상태의 형식상의 나라인 ‘조선적’을 가진 재일교포들에게만 있는 특수 국적인 가진 선수였다.
주관적으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국기에 대한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는 금요일 일과가 끝나는 시간에 전 부대 장병들이 모여 엄숙하게 국기를 내리는 하기식을 거행한다. 하기식은 사병들로서는 군장을 차리고 부동 자세와 행진으로 지휘관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하기식이 귀찮은 왕 짜증 시간이다.
부대의 크기에 따라, 즉 지휘관의 계급에 따라 몇 명 없는 초소의 하기식에서부터 군악대와 의장대가 등장하는 사령부급 하기식부터 부대의 규모에 따라 형식도 다르다.
나는 38 년 전 월남에 파병되어 28 연대 교육대에서 2 주간 현지적응 훈련을 받을 때 첫 번째 금요일 저녁 하기식을 지금도 기억 한다. 임석상관이 대위인 교육대장이고 150 명 정도의 교육생이 소금기가 버썩 이는 후줄근한 복장으로 땀 범벅인 채로 도열한 초라한 하기식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태극기를 향하여 “받들어 총!”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었다. 그날 태극기를 보고 흘린 눈물의 의미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살아서 돌아 갈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처지이어서 착잡한 마음이 뒤섞석여서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아마도 월드컵 경기장에서 정대세의 눈물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