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으로 본 한국 정치 암살의 역사
암살을 뜻하는 영어 assassin은 대마초의 일종인 Hashishin을 하는 사람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대마초를 핀 몽롱한 상태가 되어야 겁없이 살인 행각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마르코 폴로'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season1, ep.4). 노사(老師)로 불리는 지도자 아래 모여든 젊은 암살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지극한 환락을 누린 뒤 암살에 참여한다. ‘마르코 폴로'에서 징기스칸의 손자로 3대 칸인 쿠빌라이를 암살하기 위하여 이들은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몽골의 경호원들을 뚫고 쿠빌라이의 궁에 침입했지만 암살에는 실패한다.
이처럼 암살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케임브리지 사전에서 암살은 ‘주로 정치적 혹은 사상적 동기를 가지고 고용되거나 전문적인 살인 청부업자에 의해 수행되는 계획적 공격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적 사상적 동기에 의해 일어난 암살의 피해자는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다.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여운형은 1947년 7월 19일 암살되었다. 그의 장례에는 무려 60만 명 이상이 운집했으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도 운구에 참여했다. 그의 장례는 정부 수립 이전이라 독특하게 인민장이라는 이름으로 치뤄졌다. 암살자는 한지근으로 극우 단체인 혁신탐정사와 비밀결사 백의사에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 전쟁 때 월북되어 이후로 행방은 묘연하다.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해방 후 1947년에 서북청년회에 가입 후 극단적 반공주의자로 변했다. 육사 8기 졸업 후 군인신분으로 1949년 6월 26일 서울특별시 경교장 서재에서 백범 김구를 권총으로 암살했다. 처음에는 무기 징역을 선보 받았으나 곧 15년으로 감형되고 1953년 겨우 4년 반에 완전히 복권된다.
4.19이후부터 안두희를 향한 암살 시도는 이어져 왔다. 결국 1996년 10월 23일 버스 기사일을 하던 박기서씨가 직접 수제로 제작한 '정의봉'으로 살해함으로써 안두희는 생을 마감했다. 박기서씨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기인 1998년 3월 1일 사면을 받아 1년 5개월만에 출소했다. 어쨌든 살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1년 5개월만에 사면이라는 조치는 당시 여론의 향방을 보여준다.
안두희 피습에 쓰인 정의봉. 그 옆에는 견리사의 견위수명(이득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을 던진다- 논어 헌문편)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글이 보인다. 박기서는 안두희 제거에 나서면서 안중근의 이 글귀를 생각했다.
이처럼 한국은 우익세력이 진보 진영을 암살한 경우가 많다. 백범 김구는 대표적 우익 인사였지만 좌우를 통털어 존경을 받고 있었고 우익들이 보기에는 좌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보 진영에 있는 현대 정치인들이 김구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 사회는 독특하게 합리적 우익 김구와 극우 이승만을 존경하는 세력들이 대립하고 있다.
몽양과 백범 암살의 배후에는 이승만 정권이 있었다는 것은 구체적인 증거나 증언이 없이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후가 박정희 정권이란게 공공연한 비밀인 사건의 희생자가 장준하다.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 광복군을 거쳐 해방공간에서 백범 측근에 있던 장준하는 박정희가 집권하자 본격적인 반독재 운동에 나선다. 일본 헌병 출신인 박정희에게 장준하는 눈엣 가시를 넘어 심장의 비수였다. 장준하는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산악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진보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계속 이어져 1969년 김영삼은 질산테러를 당하고 1973년 김대중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에서 납치되어 현해탄에서 수장될 뻔 하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미국 일본의 개입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러한 사건의 공통점은 어떤 시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배후를 못 밝혔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대중 납치와 장준하 추락 사망에는 사건 당시 측근들이 있었다. 숱한 의심과 심층 취재에도 불구하고 그 측근들은 입을 닫았다.
최근에 발생한 이재명 대표에 대한 피습 사건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언론은 정치적 양극화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양비론으로 물타기 하고 있지만 언론과 검찰을 장악한 현 정부의 이재명 죽이기의 결과가 이와 같이 드러났을 뿐이다. 범인은 이런 악마화의 단순 신봉자인지 배후가 있는지는 밝혀진바 없으나 살해의도가 명백한 무기와 준비성으로 실제로 사망에 이를 뻔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번에는 보수 언론들이 동원되어 특혜, 과일칼, 나무 젓가락, 자작극의 용어로 또 한번 이재명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은 정부 경찰을 압박해 진상규명을 정확히 하고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 정치에서 암살(기도) 사건에 배후는 밝혀진 바 없다. 주범이 아니라 종범들이 밝혀지고 그나마 솜방망이 처벌만 있었다. 경찰은 이미 단독범행으로 몰고 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차피 안될 진상규명을 요구하다가 정치적 양극화 세력의 한 축이 되거나 언론에 의해 음모론의 덧칠만 입혀질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 결단주의다. 카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친구를 나누는 것’이라는 위험한 명제로 히틀러의 초기 브레인 역할을 했다. 히틀러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자 결국 그와 결별한 덕분에 전후 전범재판에서도 가택연금형만 받았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도 그의 천재성을 높이 사서 히틀러를 떠난 슈미트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의 위험한 명제 때문에 미국 우익 이념의 아버지 레오 스트라우스 등이 카를 슈미트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진보 좌파에서도 카를 슈미트를 소환하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합리적 이성에만 천착해온 진보 좌파 철학자들도 슈미트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르조 아감벤이다.
정치적 결단 주의란 슈미트가 그의 책 ‘정치적 낭만주의’(조효원 옮김, 에디투스)에서 밝힌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한 진영에서 옳게 생각하는 것은 그냥 밀고 나가라는 의미다. 앞서 박기서의 예에서 보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어쨌든 살인자인 박기서를 1년 5개월만에 사면했다. 안두희를 죽인 행위는 일반 살인과는 다르다는 ‘정치적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대중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정치적 결단앞에서 여론의 흐름을 고려하고 그 뒤에 화해 용서같은 말을 덧입혔다.
슈미트는 이런 행위를 기연주의라고 부른다. 기연주의란 어떤 사태의 참된 원인을 찾지 않고 신이라는 제3의 절대자(카를 슈미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므로)를 끌어들여 해결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대중, 여론, 역풍 이런 말로 원인을 비켜 간다는 의미다. 그러 점에서 기연주의란 ‘사이비-원인주의’다.
더불어 민주당은 밝혀지지도 않을 배후색출에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이럴 때일수록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 이념과 행위를 자신감있게 밀고 나가는 정치적 결단주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일 것이고 향후 이재명에 대해서도 유리하게 작동한다.
결단을 미루며 대화만 되풀이하는 정치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게 슈미트의 결단주의의 요지다.
첫댓글 완전 동의는 아니지만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