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책상 위에 금붙이가 시선을 끈다. 체구는 작으나,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돋보인다. 머리에 태극 문양을 하고 몸은 열쇠처럼 생겼다. 문학 행사에 초대받아 갔다가 지인으로부터 건네받은 행운의 열쇠다. 극구 사양했으나 달리 어찌할 수 없어서 얼떨결에 가져왔다. 행운의 열쇠는 행운을 열어주는 의미가 담겼지만,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행운을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방황을 불러온다. 금붙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지난 기억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간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늦가을과 초겨울 경계다. 어머니 병환이 깊어져서 대학을 그만두고 병구완해야 할 처지다. 어머니는 무척 외로웠던 모양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을 찾는다. 낮에 포효하던 바람이, 밤이 되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추운지 천장을 뛰어다니던 서생원마저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어스레한 불빛 사이로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외삼촌이 왔다.
어머니는 누워서 외삼촌을 보며 반가운 몸짓이다. 중풍으로 언어장애가 왔으나 의식은 또렷하다. 희미한 불빛 아래 외삼촌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의 모습이 희미한 어둠을 헤집고 살아난다.
“어머니 잘 모셔라.”
외삼촌은 한마디 툭 던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만 껌뻑거리다가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차가운 돌덩이처럼 묵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어두운 벽장 속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룻밤 머물면서 마음속에 품은 정을 나누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밤이었다. 온몸이 절여오는 냉골에 저승사자의 그림자만 드리운다. 그가 다녀간 후 달포쯤 지났을까. 하얀 첫눈이 내리던 날 그렇게 어머니는 천상으로 떠났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마땅히 상의할 집안 어른이 없어서다. 아는 이는 외삼촌뿐이다. 어머니 부고를 알리자 그는 득달같이 달려왔다. 어렵사리 장례를 치르고 벽장에 넣어두었던 가방을 꺼내어 돌려드리니 노발대발이다. 어머니 모시는데 보태쓰라고 놓고 간 금붙이를 쓰지 않았다고 지청구다. 사실 그것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어서 몰랐다. 외로움에 찌든 어머니 모습을 뒤로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없이 가방만 놓고 냉정하게 떠나서 서운했다.
세상 물정 모를 때다. 금붙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금방으로 들고 가서 물으니, 주인이 놀라며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다.
“어! 순금이네, 무게가 375, 어디서 났어요?”
이리저리 만져보고 무게를 달더니 형사처럼 캐묻는다. 그는 금괴 수준이라며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주겠다고 한다. 내 것이 아니라서 팔 수가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 몫이다. 생전에 어머니가 바나나를 드시고 싶다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사다 드리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죄스러웠다.
방황의 시작이다. 금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매일 보채는 여인이나 되듯 곁에 두고 관리해야 하니 살 수가 없어서 급한 대로 은행에 맡겼다. 하루 살아내기가 어렵던 시절이다. 연탄을 들이고 쌀을 사고 밀린 방세를 내야 했다. 돈을 벌려고 이곳저곳 다녀보아도 반기는 이 없다. 다급하여 은행에 맡겨 두었던 행운의 열쇠를 들고 종로 귀금속 거리를 찾아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서다. 다시 허드렛일을 찾았으나 마뜩잖다. 결국, 그것을 찾아서 전당포에 맡기고 곶감 뽑아먹듯 하다 보니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바닥이 났다. 살길이 막막했다.
게다가 꿈속에서 어머니가 나타났다. 환청인지 모르나 행운의 열쇠를 달라고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벼룻길에서 지게질을 시작했다. 새벽에 동대문 시장으로 나가서 물건을 지게에 지고 버스까지 나르는 일이다. 지게꾼도 눈치가 있어야 돈 번다. 부티 나는 아주머니에게 줄을 서니 수입이 짭짤하다. 낮에는 학원 가느라 새벽일밖에 할 수 없었다. 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 뚝딱하고 학원으로 달려가면 몸이 나른하다. 강의실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졸은 날이 다반사다. 젊은 날 행운의 열쇠를 찾느라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돌이켜보니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누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보았다고 하는가. 젊은 날 내가 본 하늘은 먹구름뿐이다. 375그램짜리 행운의 열쇠가 나를 먹구름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를 찾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번번이 고시에 낙방했다. 이뿐 아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불효의 짐을 안고 살아왔다. 형편이 나아지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외삼촌께 돌려드리려 했으나 걱정만 들었다. 결국,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족쇄에서 풀려났다.
책상 위에 행운의 열쇠가 비웃는 것 같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자신을 무시하느냐며 째려본다. 괘념치 않는다. 황금이 필요하나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귀중하고 소중한 건 차가운 가슴을 녹여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차가운 황금은 한낱 즉자적 존재, 돌덩이에 불과하다. 오늘은 내가 만든 대자 존재에 서 있다. 세상 속에 꿰맞추며 사는 게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