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매일 유홍준 / 가족사진

[유진]

■ 서울매일  2024년 3월 15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가족사진

유홍준

아버지 내게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운다  이놈의 새끼 화분을 내리면 죽을 줄 알아라  두 눈

을 부라린다  내 머리 위의 화분에 어머니 조루를 들고 물을 뿌린다  화분 속의 넝쿨이 식은

땀을 흘리며 자란다  푸른 이파리가 자란다  나는 챙이 커다란 화분모자 벗을 수 없는, 벗겨

지지 않는 화분모자를 쓴다  바람 앞에 턱끈을 매는 모자처럼  화분 속의 뿌리가  내 얼굴을

얽어맨다  나는 푸른 화분모자를 쓰고 결혼을 한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넝쿨을 뚝 뚝 분지

른다 넝쿨을 잘라 새 화분에다 심는다  새 화분을 아내의 머리 위에 씌운다  두 아이의 머리

위에도 덮어씌운다  우리는 화분을 쓰고 사진관에 간다  자 웃어요  화분들,  찰칵  사진사가

셔터를 누른다

♦ ㅡㅡㅡㅡㅡ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 성격은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환경에서 이루어진다.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우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독임 속에 자란 자식은, 위엄인지 폭력인지 모를 아버지의 엄중하고 강압적인 규율을 아내에게로 자식에게로 대물림하게 된다. 선천적 기질에 따라 차이는 다소 있겠지만, 가정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고 형성된 성향이나 성격이 평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족증명의 하나인 가족사진은 단란함의 표상이다.

어떤 사건사고를 겪으며 어떻게 지내 왔든, 카메라 앞에서는 정다운 웃음으로 결속되고, 서로가 가족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한 장의 가족사진에는 그들만의 가계와 그들만이 아는 가족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http://www.s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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