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아침 ‘굿바이 싱글’을 보았다.
스캔들의 주인공인 고주연(김혜수)은 여러 남자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당하여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고주연의 옆에서 모든 것을 챙겨주는 죽마고우인 스타일리스트 평구(마동석)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고주연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40대가 되어 가면서 평구가 없더라도 자기를 뒷바라지 해 줄, 진짜 자기편이 되어 줄 사람을 찾게 되는데, 그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자식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입양이 아닌 진짜 내 배 아파 자식을 낳을 방법을 생각하다가 인공임신을 시도할 생각을 하였다.
병원을 찾은 그녀는 자신이 이미 폐경에 이르러 임신을 할 수 없음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그 병원에서 겨우 중3인 김단지(김현수)가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중절하지 않으면 아니 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주연은 아이를 임신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부모도 없이 언니와 단 둘이 셋방에 사는 김단지는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아이를 중절하여야 하는 현실이 개떡 같고,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대비 없이 눈앞의 쾌락만 추구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처지를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한다.
고주연은 김단지를 설득하여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한 집에 같이 살면서 아이를 출산하기만 하면 자기가 입양하여 키우겠다고 안심시키고 자기 집에서 같이 지낼 것을 약속한다.
인기 떨어지고 나이 많아 젊은 배우들에게 치여서 출연작품도 거의 없다시피 한 고주연은, 남자의 신분은 밝힐 수 없지만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거짓)사실을 널리 퍼뜨린다. 그 후, 이제야 고주연의 인간다운 모습이 나타났다는 연예계의 호평으로, 고주연에게는 작품출연요청과 광고촬영이 쇄도하여 돈도 많이 벌게 되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던 중, 고주연은 일정이 너무 분주해지고 단지에게 소홀하게 대하는 날이 많아진다. 고주연이 함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기로 약속한 날, 고주연은 흠모하는 방송 앵커와 낙시를 가고, 김단지 혼자서 쓸쓸히 병원에 다녀오다가, 임신으로 집을 나온 후 몇 달 만에 본 언니를 만나게 된다. 배가 불러 있는 동생을 본 언니는 자초지종을 묻고, 고주연의 집에 쳐들어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하고, 고주연의 거짓 임신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고, 청소년을 이용하여 제 욕망을 채우려한 파렴치한 연예인으로 몰린 고주연은 관련회사들에게 피소되어 손해배상 및 위약금으로 지금까지 벌어놓았던 재산뿐 아니라, 급기야 살던 집까지 팔아먹고 빈 털털이가 된다. 앞으로 연예계 활동을 하려면, 고주연이 지금까지 벌인 일련의 사건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고주연이 잘못을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날이 되었다. 그날은 미술에 재능이 있는 김단지가 학교 대표로 참가하는 전국 미술대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였다. 동생을 이용해 고주연에게 10억을 뜯은 김단지의 언니는, 임신해 있는 동생을 팽개쳐 놓고 애인과 함께 제주도로 날아가 버렸다. 고주연의 집에서 나와 언니의 셋방에서 지내던 김단지는 혼자서 미술대회에 참가하려고 대회장 앞에 까지 갔으나 용기가 없어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김단지의 친구로부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고주연은 기자회견장으로 가지 않고, 미술대회장으로 김단지를 도우러 간다. 대회 주최 측과 참가학생 부모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고주연은 지금까지 파므파탈하게 살아온 뱃심으로 김단지를 옹호하며 용기를 주어 대회장 안으로 들여보낸다. 그림을 그리던 단지는 산통을 느껴 병원으로 실려 가고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그 후, 고주연과 김단지 모녀 그리고 평구네 식구들이 한 집에 모여, 새로운 삶을 사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연예계의 파므파탈 김혜수가 이 작품에서 실제 자기의 삶과 비슷한 삶의 여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은, 김혜수의 자서전을 다큐로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혜수의 연기는 조금도 힘들지 않게 넘치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자기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알도 없는 고주연이 천연덕스럽게 평구더러 ‘내 불알친구’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 말이 가식이나 과장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들렸다. 김혜수는 연예계의 국보다.
마동석 또한 감독이 아주 잘 캐스팅하여 그에게 맞춤옷을 입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을 열거하지 않고, 단 한 가지, 그의 역할이 소박하고 소탈하지만 때로는 영어 이름을 대면서 자기의 위상을 조금이나마 높여보려고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은근슬쩍 보여주는 매우 인간적인 참 모습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단지 역의 김현수가 아역에서 갈수록 조금 더 성숙한, 신체적 성숙만이 아니라 인격적 성숙까지 동반하여 물오른 연기를 하고 있었다. 자기 언니가 고주연에게 많은 돈을 요구할 때, 인간적으로 자기를 진실로 걱정하고 도와준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하였고, 그런 고주연에게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뜯어 내려는 언니에 대한 분노로 오열하는 장면은 김수현의 진실함이 극명하게 표현되는 장면이었다. 앞으로 더욱 주목할 만한 연기자로 성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의 시간적 분량이나 대사분량 등을 산정해 볼 때, 마동석과 김현수가 조연(助演)이 아니라, 김혜수가 이끌고 마동석과 김현수가 뒤를 받쳐 달려가는 삼륜마차처럼, 세 사람이 동반 주연(主演)으로 잘 만들어진, 시원스럽게 여름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으로 극장을 나왔다. 김태곤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맛있는 과일주스를 한 사발 마시고 난 뒷맛 이었다.
첫댓글 아석은 역시 존경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