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뜨거운 성원 속에
40년 지기(知己)
부산 고향 친구들과
1박 2일 일정으로
만나기로 한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인
KTX 신경주역
오전 11시
1시간 전
당당하게
가장 먼저 당도했다.
아주 먼 옛날
플랫폼(Platform)과
그 옆 긴 나무의자에 대한
추억이 선명하여
대합실(待合室)에서
홀로 즐기는
조용한 시간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는
휘날렸던
숯 검정 머리카락이
굽은 세월 만큼
다 빠진 지금에서야
동학(東學)의 발원지
경주에 재입성 하고 보니
두 눈은
커질대로 커져
새색시 마냥
설레임으로 가득 차고
말로만 듣고
T.V 로 비춰진
시속 300km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고속 열차
용광로 같은 엔진 소리와
부드럽게 굴러가는
쇳바퀴 소리가
하늘 높이
가로 세로 겹으로 쌓인
콘크리트 역사(驛舍)
기둥을 뒤흔들며
거침없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대합실 여기저기
아주 여유롭게
꼼꼼히
눈요기하는 동안
서울에서 부산에서
울산에서 사천에서
삼삼오오(三三五五)
짝을 지어
친구들이
정확히 다 모였다.
하나같이
가볍고 밝은 표정과
눈길 끄는
의상 차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만심 비슷한 자신감과
가슴에서
우러나는 말들이
힘이 잔뜩 실려
목소리 톤까지 높다.
야! 니는 이게 머고?
와? 그라면 안되나?
우하하...
으히히...
우리들의 경주 여행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단체 카톡
방장(房長)님의 결정이
얼마나
탁월 하셨는지
날씨는 화창
벚꽃은 만발
시기는 절정
기분은 최고
한마디로
얼반 두번 쥑인다.
전국 각지
자동차와 관광객들로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이지만
맑아도 좋고
흐려도 좋고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은
그런 벚꽃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능원(大陵苑) 과
첨성대(瞻星臺) 에서
한껏
분위기 올려
경주 명물 쌈밥과
소주 한잔으로
가뿐히
점심을 해결하고는
쉴틈없이
특공대 작전 처럼
보문(普門) 호수가
잘 내려다 보이는
그곳으로
기수를 돌려 가는 동안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몇번 따라 부르니
어느새 목적지인
'커피 명가(名家)' 에
도착한다.
친구들이 금새
의중(意中)을 맞춘 것처럼
동일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2층 통유리로
비춰지는
보문(普門) 호수와 벚꽃길이
기가 막힌 콤비를 이뤄
환상이 아닐 수 없어
감탄만 나올 뿐이다.
편안한
마음도 잠시
갈수록 자동차 정체가
심해지는 듯 하여
차후 일정은
아쉽지만 급조절한 후
바로 숙소에서
여장(旅裝)을 풀기로 하였고
준비한
자연산 생선회와
멍게, 해삼, 굴 등
테이블에 빼곡히 깔아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이야기의 보따리는
끝날 줄 모르고
이 밤도
깊어 가는 줄 모른다.
다음날,
속풀이는
라면과 백합국과
오렌지, 사과, 바나나로
적당히 떼우고
친구들 각자
이내 몸 단장하고는
불국사(佛國寺)로
첫 발을 디뎠다.
경내 목련꽃이
아름다워 장관을 이룬다.
우리도
그 앞에서 기념 사진
찰칵! 찰칵!
친구들은 금방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들을
카톡과 카스에
올리기에
신이 나고
너무 바쁘다.
혼잡한 관계로
서둘러 점심하기로 하여
3대째 손으로
만들어 지는
고풍스러운
순두부 집에 들어가
두부 요리와
동동주 한 잔씩
천천히
즐기고 나니
시간이
오후 1시를 가르키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차에
봄비까지 내린다.
몇 차례 주고받는
대화속 결론이
몇몇 친구는
결국 아쉬운 인사로
다음을
기약 하였고
남는 친구들은
다시
대능원(大陵苑)과
천마총(天馬塚)으로 향했다.
그 많던 사람들은
흔적없이 사라져
고즈넉한 고도(古都)는
더 할 수 없이
좋고도 남음이
있음을
어느 누가
얼마큼 알고 있으랴?
이름없는 대능(大陵)과
소나무와 대나무들을 끼고
돌고 돌아
나오는 길따라
빗방울에 떨어진
벚꽃과 목련꽃들이
땅바닥에
조용히 엎드렸다.
암운(暗雲)이 감도는
그 속에
별 말없이 걷는
우리들...
이별을 감지한듯
발걸음
소리가 능청스럽다.
이제는
각자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나 보다.
아쉬운 마음은
얼굴에 역력(歷歷) 한데
건강하게 또 만나자며
작별을 나누고
짝을 지은
친구들은 왔던 길로,
나도 맨 먼저 왔던
신경주역으로 향했다.
신경주역
대합실 가는중
빗방울이 더 굵어져
아쉬움은 두배였으며
헤어지는
마지막 친구와는
서로 고맙다고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장모님과
아내에게 드릴 선물
경주 명물
황남빵 두개를 샀다.
멋쟁이
우리 장모님께서는
김치와 금일봉을,
예쁜 아내는
싱싱한 꽃잎까지 띄운
수 많은 음식을
챙겨 넣어 주셨는데
빈 손으로
그냥 갈 수 없는거
알잖아! 충분히!
사는게
다 그런 거지 뭐...
정말
이제 나도
갈 길도 멀고
차량 정체도 두려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천 방향
건천 IC
경부고속도로에 올렸는데
건천(乾川) 부근
구미산(龜尾山)에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선생의
묘(墓) 와 생가(生家)가
있다는 걸
잠시 스치고
차분히
생각에 잠긴다.
음...
또,
그리고는
친구들의 안전 귀가도
빠뜨리지 않았다.
친구들!
건강히
다시 만나자...
丙申年
律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