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임병식 rbs1144@hanmail.net
꽃샘추위가 갑자기 몰아 닥쳤다. 그 통에 한동안 10도 안팎의 상온의 기후를 유지하던 기온이 것이 5,6도나 곤두박질을 쳐버렸다. 변덕스러운 날씨 치고는 역대급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나는 온종일 방안에 갇혀서 지낼 수밖에 없다. 뜬금없고 느닷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미 계절은 3월로 접어들었고 매화꽃이 핀지도 오래인데 이 무슨 변덕일까. 게다가 개나리와 목련도 지금 한껏 꽃술을 부풀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때에 엇먹이 듯이 역주행을 하니 피어나는 꽃이나 막 개화를 앞둔 꽃들이 무척 당황할 것 같다.
하지만 추위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시동을 걸고 내닫는 계절은 돌이킬 수 없지 않는가. 이미 대세는 봄기운의 예열을 받고 약진하는 대오에 들어섰고 지금은 단지 잠시잠깐 그 길목에서 머뭇대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나는 조급해 하지 않는다. 대신에 뇌리를 스치는 어떤 고사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그것은 바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관한 것. 바로 봄이 왔으나 봄 같지가 않다는 이 말의 출처는 후한시대 중국의 천하의 미인 왕소군(王昭君)과 관계가 있다. 그녀가 먼 이국땅에 가서 있으면서 봄 같지 않는 시절을 보냈던 심사를 말한 것이다. 그녀는 후한의 궁녀였다. 빼어난 미모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러나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화상 모연수가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를 밉상인 추녀로 그려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그녀는 북쪽의 흉노에게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나 깨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북쪽 땅에 꽃과 풀이 귀하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옷과 띠가 저절로 느슨해지는데, 야윈 몸 때문만은 아니네”
이는 당나라 좌사였던 시인 동방규(東方虯)가 그녀의 입장을 떠올리며 품었던 회한의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대신 읊은 것이다. 여기에 춘래불사춘이 등장한다.
하나, 아무리 봄같지 않는 봄이라도 한번 발동하는 봄이고 보면 그 기운은 탄력을 받아서 꽃을 피워내고 머잖아 온 들녘을 방초로 뒤덮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 느닷없이 닥쳐온 꽃샘추위를 보면서 또 다른 이상변화를 깨닫는다. 계절이나 기후는 꼭 앞으로만 직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는 듯 머무르고 또 머무는듯 하면서 간다.
이런 느닷없는 추위를 느끼면서 나는 우리 민족에게 혹독하게 닥쳤던 시련기를 생각해 본다. 문헌에 보면 근세기 가혹한 시련은 1876년에 찾아왔다. 뼈아픈 일로써 일본에 의해 강제로 불평등한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거기다가 더하여 그해는 극심한 한해(旱害)까지 닥쳤다. 냇가는 마르고 방죽은 고갈되었다. 그런 가운데서 내리는 비는 찔끔거려서 그것은 마치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격이었다. 하나도 해갈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한해를 겪으면서 속담 하나를 만들어냈다. 소위 '병자년 방죽'이라는 것이다. 그 병자년에 든 가뭄으로 인해 건방죽이 된 것을 두고 ‘건방진’ 사람을 일러서 에둘러 사용한 말이다.
그때도 보면 가뭄 든 와중에 미량이나마 비가 왔듯이 생각해 보면, 꽃샘추위는 이제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잠깐의 추위는 서서히 잊혀가는 기억을 늘 상기하면서 대비하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한번씩 느닷없는 추위를 만나고 나면 새삼스레 앞서 보냈던 혹한의 기억을 다시 새겨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 어쨌든 지금은 봄이다. 하늘의 운행질서는 어김없이 돌아간다. 그 구분은 사시사철, 절기는 24등분으로 나뉘어서 변함없이 돌아간다. 절기는 입춘으로 부터 봄이 시작된다. 그러나 실상 양의 기운이 도는 때는 동지가 기점이 되어 이때부터 사실상 봄의 기운이 발동한다.
예로부터 동지를 아세(亞歲)라 하여 설날에 버금가는 날로 쳐왔다. 이때에는 팥죽을 쒀서 부엌과 집밖에 뿌리는데 그것은 그 붉은 양(陽)의 빛깔로 잡귀를 물리치고자 하는 뜻이 담겼다. 이런 동지는 대개 12월 21이나 22일에 들어 있다. 3월 중순에 이르러서 볼 때는 이미 3개월이나 지난 시점이다. 그러니 앞으로 추위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생각해 본다.
엊그제는 매화꽃이 만발한 모습이 보기 좋아 구경하다가 어릴 적 동네 분들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으로 화전(花煎)을 부쳐 먹던 일을 잠시 떠올렸다. 봄이 이미 주변에 깊숙이 왔다는 생각에 취해서였다.
그런데, 시계바늘을 다시 돌려 추위가 닥치니 여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불편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보리나 밀도 밭에서 한겨울을 지나야 건실해지고 꽃들도 더욱 아름답고 영롱하게 피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심술부리듯 찾아온 이런 현상을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나는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잊지 말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만큼 돌아오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보다 풍성하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의 뜻으로 말이다. 이미 나이가 늦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데 남은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나날을 알차게 보내면서 잘 갈무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해가 중천에 떠서 이제는 바깥을 좀 나가도 될까 하고 창문을 여니 여전히 싸늘한 기운이 확 목덜미를 파고든다. (2019)
첫댓글 건방지다는 말의 어원이 재미있습니다
꽃샘추위는 연례행사인 듯합니다 올해는 오는 봄이 워낙 따뜻해서 그냥 넘어가려나 했는데 에누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면역력이 떨어진 노년층에게 봄은 그다지 좋은 계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봄을 많이 타는 편이지요 요즘엔 밥맛도 떨어졌네요 환절기에 건강관리 잘 하십시오 선생님은 항상 건강하셔야죠
요즘 주변사람들을 보면 감기환자들이 많더군요. 기온차가 심한데다 꽃샘추위가지 덮치니 그러나 봅니다.
하나 시동을 건 봄은 어김없이 질주를 하게 되겠지요.
영농철을 맞아 인산선생은 바쁜 계절이 괴겠네요.
건강 챙겨가면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작년 꽃샘추위가 예년과는 사뭇 다르게 추웠던 기억이 나네요. 작년 봄은 사기를 당해서 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었지요.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며 잊었던 작년 봄의 정경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작년 봄은 유난히 소란스럽고 추위도 오락가락했던 것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