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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에 주님을 찬송함
천 영 대
성경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4:26)」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히브리서 2:11, 12)」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주님을 믿고 거듭나 주님의 자녀들이 된 자는 누구 할 것 없이 주님의 몸된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구성원이 된 자들이 정상적인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몸된 지체들이 함께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울 수 있고, 주님과 우리의 관계 또한 정상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가운데서 개인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 생활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단체적인 생활이다. 한 몸 안에 여러 지체들이 있듯이 주님의 몸 또한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12, 13절에서는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몸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 많은 지체들이 있듯이 그 그리스도 안에 많은 지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단체적인 그리스도, 여러 지체들로 이뤄진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자 할 것 없이 모두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주님을 믿는 자들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다. 믿는 자들끼리만 하나가 된 것이 아니고(물론, 하나가 될 수도 없다), 주님과 믿는 자들 모두가 함께하여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22, 23절에서는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다. 먼저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했고, 다음에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그런데 머리와 몸은 서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서로 하나다. 편의상 머리와 몸을 분리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분리된 둘이 아니다. 만약, 분리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머리나, 몸이 될 수 없고 죽은 것이 된다. 서로 하나가 되어 있을 때에, 살아서 그 기능을 발휘할 때에 정상적인 머리와 몸이 되고, 또 실제 생활에서도 머리와 몸을 분리해서 둘로 말하지 않고 다 같이, 곧 머리와 몸을 함께하여 몸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해서 몸이라고 할 때는 머리가 없는 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와 몸을 함께하여 몸이라고 한다. 이처럼 주님의 몸을 말할 때도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없는 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도 함께 하는 몸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 믿는 자들만으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말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할 때는 머리이신 주님, 생명이신 주님이 함께하는 몸으로 말하는 것이다.
교회에 대하여 원어인 헬라어에서는 에클레시아, 곧 바깥으로 불러냄을 받은 무리,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아 주님 안에 있는 무리, 혹은 회중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세상과는 구별된 무리, 성도들로 불려지기도 한다(고전 1:2). 사도행전 7장 38절에서는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말하는 광야 ‘교회’는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했던 무리들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성경 해석자들은 모임, assembly, congregation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교회에 대해 모임, 집회, 회중 등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주님의 몸된 교회는 한 개인이 아니고, 또 믿지 않는 자들의 모임도 아니고 주님을 믿고 거듭나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들의 모임, 집회, 회중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 같이 한 무리를 지어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갔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흩어져 생활하지 않고 무리들 전체가 하나가 되어 함께 했다. 실제로 이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한 모형이다. 이들의 생활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모두가 함께하는 모임의 생활이었다. 오늘날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의 신앙생활, 교회 생활 또한 그러하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열심히 모일 것을 권하고 있다. 실제로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열심히 모이는 생활이다. 이렇게 열심히 모일 때에 주님과 우리의 대적자와 원수이며, 미혹자인 마귀를 대적해 이길 수 있고, 또 정상적인 교회 생활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 교회에서는 주님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열심히 모였다. 사도행전 2장 43∼47절에서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개인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다 함께 있어서 그들의 소유를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다. 또, 이집, 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다. 초대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이고, 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찬송시, 말씀, 계시 등이 있음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은 개인적인 생활이 아니고 단체적인 생활이며, 또한 단체적인 모임의 생활이다. 그런데 이 모임은 세상적인 것들을 나누고 공급하는 교제의 모임이 아니고 주님이 함께하는 주님께 속한 것들로 교통하고, 공급하고, 공급받는 모임이다.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서는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모일 때에 세상적인 것들로 모이거나 교제하지 말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는 가운데서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계시도 있고, 방언도 있고, 방언 통역함도 있는 모임을 가지라고 했다.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모임을 가질 때에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도 있고, 계시도 있고, 방언도 있고, 방언 통역함이 있는 것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된 교회가 산출되었다. 이 교회는 생명이 없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고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주님의 몸으로서 계속해서 세워지고 자라가야 한다. 이것은 머리이신 주님의 수준에까지 자라는 것이며, 주님과 같이 변화되는 것이며, 또한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주님을 믿는 자들 안에서 생명으로 계속적으로 역사하시고 있다. 에베소서 4장 11, 12절에서는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셨는데 그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케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건축) 위해서라고 했다. 또, 에베소서 4장 15, 16절에서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람으로, 주님의 몸을 자라게 함으로 사랑 안에서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운다고 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은 다른 어떤 수고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골 3:4)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나심으로, 주님의 몸이 자람으로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이 없는 육신적이고도, 세상적인 노력이나, 수고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의 자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다. 몸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그의 몸이 자라나게 하사 그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산출된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계속해서 생명으로 역사하여 자라게 하심으로 변화가 되게 하여 그의 몸을 세우신다. 주님께서 그의 몸된 교회에 여러 가지 은사 곧 기적적인 은사나, 생명의 은사를 주시는 것도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다. 고린도전서 14장 12절에서는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했다. 교회 안에서 예언을 하는 것도, 방언을 하는 것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라고 했다.
주님이 계심
주님의 몸된 교회도 주님이 함께 계셔야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고, 모임도 주님이 함께하는 정상적인 모임이 된다. 즉, 주님이 계셔서 역사하시고 주관하셔야 그것이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살아있는 몸이나, 교회가 된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고, 또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을 따라 모임을 진행하면 그것이 예배가 되고, 모임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의 실재와 진정한 주관자는 우리 주님 자신이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는 영과 실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영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서는 “주와 합하는 자는 (주와) 한 영이니라”고 했다. 주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과 합하는 자는 주님과 한 영이라고 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다.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했다. 실제적으로 모이는 것은 그냥 모이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주도하에 모이는 것이다. ‘모이다’라는 동사는 능동사가 아니고 피동사이다. 모이는 자들은 자신이 주관자나, 주도자가 되어 모이는 것이 아니고 모이게 하는 이로 말미암아, 모이게 하는 분에 의해 모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의 모임은 모이게 하시는 이인 주님에 의해 모이는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모임에 함께 하는 것이다. 만약,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모임은 주님의 모임이 아니고, 사람의 모임이며 주님의 역사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임은 주님의 이름 하에 주님이 함께 하는 모임, 곧 주님과 함께하며 그 주님이 주관하는 모임인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19∼21절에서는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오셨다. 주님께서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 속에 처해 있는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오셔서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친히 증거 했고, 또 이를 본 제자들은 기뻐했다. 제자들이 있고 그들 가운데 주님이 계심으로 평강이 있고, 기쁨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하고, 또 그 주님이 함께 하는, 주님이 주관하는 모임을 가져야 한다.
교회 중에 찬송함
우리는 모일 때에 세상적인 말을 하거나 세상적인 일을 하는 자들이 아니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계시도 있고, 가르침의 말씀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높이고, 존귀와 영광과 감사를 드림과 아울러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계시와 말씀도 받고, 또 그를 찬양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2장 11, 12절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거룩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고 했는데 이 내용은 주 예수님과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다 같이 한 아버지, 곧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났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에 대해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었으나,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맏아들이 되셨다(롬 8:29, 히 1:6). 우리는 주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요 1:12). 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맏아들이시고, 또 주 하나님을 교회 중에서 찬송할 것이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 형제들께 선포하고, 하나님을 교회 중에서 찬송한다고 하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교회 중에서 그 혼자 찬송하는 것이 아니고 그 형제들과 함께 주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서 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형제들, 곧 교회 안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주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님 혼자 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님께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그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진정한 찬송이다. 주 예수님이 없이 찬송가 곡을 따라 찬송할 수 있는 자들이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진정한 찬송이며, 또 그 집회가 교회인 것이다. 주 예수님만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아니고, 주 예수님 없이 그 형제들, 곧 믿는 자들만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 중에서 맏아들이신 주 예수님과 아들들인 주 예수님의 형제들이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나됨과 기쁨과 즐거움과 존귀와 영광이 함께 하는 것이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의 말이나, 일이나, 행동은 언제나 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그의 일을 할 때에도 주님 없이 우리 힘으로만 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이 된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주님과 함께 일함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서는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함으로, 주님께서 전파하는 자들과 함께 일하심으로 그의 일을 하게 하셨다. 주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우리도 함께 하여 찬양하듯이 주님의 다른 일에도 우리가 함께 하여 그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되고, 주님의 일이 되고, 주님의 찬송이 되는 것이다.
주님이 그의 교회를 세움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수고하고 애씀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우신다. 만약, 교회를 주님이 세우지 않고 어떤 사람이 세운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교회가 되고, 주님의 교회는 되지 않는다. 만약, 어떤 물건의 재료들을 내가 다 구비하여, 내가 만든다면 그것은 내 것이 된다. 이처럼 한 개인이 교회를 세운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지 않고 그의 교회가 된다. 그런데 주님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16장 16∼18절에서는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베드로가 받은 주님의 계시 위에 주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이신 주님 자신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했다. 로마서 16장 16절에서는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주는 영이 되사 많은 아들들이 생겨나게 하심으로 그의 교회가 산출되게 하셨고, 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안과 밖에서 역사하심으로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신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우리도 동참해야 한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따라 행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데도 그와 함께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성도들)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그 교회는 성도들의 교회도 되는 것이다(고전 14:34). 우리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또한 그러하다. 곧, 그리스도와 우리가 다 함께 그의 몸된 교회의 구성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함으로 그의 몸된 교회를 그와 함께 세워야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된 교회 가운데서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우리 또한 그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이것은 주님 몸된 교회 안에서는 주님과 함께 항상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데서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교회 가운데서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찬송은 진정한 찬송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송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교회가 산출됨으로 이뤄진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