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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느냐!
오르막 길에는 정상만 보이고 내리막 길에는 사람이 사는 풍경이 그려지니 오늘은 경남 의령 땅으로 가 보기로 한다.
이른 아침에 버스 시간이 맞지않아 모처럼 자가용을 끄실고 경남 의령 땅으로 가 보기로 하니
어찌 된 게 의자에 앉으면 잠이 찾아온다.
고속도로에서 80km로 달려 낙동강이 자리하는 합천과 창녕을 이어주는 합천군 청덕면 적포교에 주차를 하고
의령 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리니 연세 지긋한 분이 오셨다.
한우산으로 올라갈 건데 길은 아세요 하니 잘 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네비 아가씨에게 도움을 청하는 폼이 어째 수상하다 싶어 지켜보니 네비 양이 우측으로 방향을 가리키는데
직진이고 또 다시 우측 길로 가라는데 직진...
아!~ 속 터져
돌고 돌아 택시비 3만 원이면 갈길 5만 원이란 거금을 주고 겨우 한우산 쇠목재에 도착한다.
찰비 계곡으로 올라왔으면 정상까지 쉽게 올라오는데...
쇠목재에 내려다 주곤 5만 원이라니... 좋은 날 인상 쓰기 싫어 달라는 데로 드리고 보따리 챙겨 한우산 정상으로 오른다.
의령군 대의면에서 쇠목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꼬불 꼬불 길게 이어지고
한우산 정상으로 가기전에 올라온 쇠목재와 자굴산이 지척이고
멀리 남강 넘어 함안 땅의 방어산이나 여항산 방향이 보인다.
한우산 정상으로는 진달래가 80%가량 만개를 하였지만 산객이 한분도 안 보인다.
이럴때는 혼자 즐기는 게 최고라... 미친者 널뛰듯 왔다 갔다 하며 주위풍경 감상하며...
멀리 우뚝솟은 산은 합천군 적중면의 미타산이다
저 멀리 안동 장군 이미숭 장군의 전설이 깃든 미숭산이 희미하게 보기고 그 앞으로 합천군 초계면의 대암산과 국사봉-천황산
그 옆으로 송전탑이 보이는 걸 보니 미타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미타산이나 대암산 넘어 흐르는 물은 황강이 흐르는 곳이다.
한우산 정자
코로나 영향으로 쇠목재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올라와야 한다.
한우산 반대편은 차가 올라 오지만 택시 기사분이 쇠목재에 내려다 줬으니
그 덕에 뜻하지 않게 쇠목재 굽이 돌아가는 길을 구경하며 올라올 수 있었다.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 있는 한우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며
오뉴월 한더위에 내리는 비가 겨울비처럼 차갑다고 하여 한우산(寒雨山)이라 하였다
한우산 동쪽 계곡은 찰비계곡이라 하며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니 오늘 내려 갈길은 기대가 크며
산 정상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 산 전체가 붉게 물들인다.
한우산에서 본 남, 서쪽 방향으로 남해의 망운산과 금오산이 보이고
가운데 경남 산청의 집현산이 솟아있고 앞쪽으로 흐르는 물은 양천이며 원지에서 남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멀리 지리산 천왕과 그 앞으로 둔철산과 정수산 우측에 높은 산은 황매산
앞쪽으로 흐르는 물은 양천이며 사진에 보이는 물은 모두 남강 수계이다.
산객은 없고 조용한 산정에서
북쪽으로 몇 발짝 갔더니 비박하시는 두 팀이 아직도 누워 계시는지 조용하고
좌측 멀리 황매산 그 옆으로 월여산-감악산이 보인다.
앞쪽에 뾰족한 산은 합천댐 바로 옆에 자리하는 허굴산과 금성산- 악견산
합청 대병면의 멋진 산들 넘어로는 합천댐이 자리하고 그 뒤로 가운데 빗겨 우측으로 보면
거창 가조의 숙성산 오도산 두 문 산이 이어진다.
거창군 가조면으로 흐르는 맑은 물은 가천천이며 가천천은 황강(합천댐)에 흘러드는 하천이다
오도산과 가장 높은곳은 가야산 그 옆으로 미숭산-합천의 대암산이 보이고
바로 앞은 지맥 길의 산성산
가운데 합천 대암산-국사봉-그 옆에 미타산
미타산 뒤로 비슬산이 보였지만 사진에는 글쎄
멀리 방어산과 낙남정맥 길의 여항산이나 전투산 방향
사진 우측에 토끼 보이시죠
순간적으로 찍힌 토끼입니다.
토끼 구경도 하고 더 이상 있어봐야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무작정 내려가려니 진달래가 만개 한 곳으로는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할 정도로 빼곡하여
잠시 임도길로 내려 돌아간다
지나간 경로
정상 아래 임도길까지 우회해서 왔지만 뚫고 들어 갈 곳이 없다.
한우산 정상 인근으로는 나무가 없어 물 찾기가 쉽지않고
임도길 바로 위로 물이 흘러내린다.
지나온 한우산 정상으로
내려가야 하는 길에 본
대암산과 국사봉 그리고 그 옆에 미타산이 서 있고
공사 중인 임도길과 멀리 국사봉이 보이고
칡덩굴과 잡목이 너무 심해 계곡 접근은 불가능하여 계곡 바로 위 임도길로
내려온 곳
계곡으로는 물이 흐르고
한우산 정상 아래로 임도길 공사 중인듯하다
잠시 계곡 아래로 들어가
계곡 따라 내려와 두물이 만나는 곳에서
임도길 따라 내려가며
찰비계곡 상류의 작은 저수지
물이 너무 깨끗하다
내려가야 할 찰비계곡
신록이 가을 풍경을 연출해준다.
작은 폭포에 물이 정겹게 흐르고
예전에 금광이 있던 곳이라 했는데
시간 관계상 폐 금광 구경은 못하고
찰비계곡길에 만나는 풍경들
훗날 시간이 된다면 찰비 계곡 한번 찾아보시면 후회는 안 할 것 같다.
계곡으로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둥근 암석이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둥근 암석이 있는 곳부터 계곡은 협소하여 몇 가지 장비가 있어야 할 것 같아 포기하고 도로가로 이동하며
찰비계곡길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며
협곡 길은 훗날을 기약한다.
찰비 계곡에서 가장 멋진 농소 폭포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조금 조심해야 할 곳이다.
아씨 담(潭)
오래전 의령군 벽계리 어느 마을에 살던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신랑 얼굴도 모르고 혼자서 소(牛)등에 타고 찰비 계곡 지나 한우산 넘어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로
시집을 가는 길에 농소 폭포 인근에서 신세 한탄을 하는데
태어나 쌀 밥 한 그릇 못 먹고, 죽도록 일만 하다가 시집을 가는지라
신랑 집도 찢어지게 가난하면 어쩌나 하며 생각하다가 다시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하니 집에 가면 부모님께 맞아 죽을 것 같아 아씨 담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는 곳이다.
아씨 담은 깊이가 꽤 되는지 물이 시퍼런 게 금방이라도 뭔가 나타날 것 같다
궁류면 벽계리 마을에서 본 찰비계곡
벽계 저수지
만산홍엽은 아니고 만산 신록 풍경이다.
벽계 저수지의 물은 거의 1 급수에 달하며
바로 윗마을 벽계마을의 마을 주민분들이 아랫마을이 물을 깨끗하게 써서 이렇게 깨끗한 것 같다
청금 정 기와집이 보이고 멀리 산 중턱으로 벽계마을이 보인다.
평촌 마을에서 본 남강 지맥 길의 한티재 방향
한티재 넘어 흐르는 물은 양천이며 양천은 남강에 합수되는 하천이다.
찰비계곡의 물이 성현산에서 흘러온 대현천과 만나면서 유곡천이란 이름을 얻는다.
성현산 서쪽에서 흐르는 물은 합천군 쌍백면으로 흘러드는 양천이며 양천은 성현산에서 발원해 쌍백면-삼가면 외톨이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 앞을 지나 산청군 생비량면-신안면에서 남강에 합수하는 하천이다.
일붕사
당대에 이름 높았던 일붕 스님이 창건한 절
봉황산 아래 자리 잡은 봉황대
일붕사 창건 유래
일붕사 대웅전은 동굴 속에 있으며
오래전에 벽계 저수지 공사를 하였다는 어느 포클레인 사장님이 일붕 스님의 부탁으로 기존의 동굴을 더 크게 뚫는 공사를
하셨는데 공사 대금 대신에 일붕 스님이 글을 하나 써 주시고 퉁치신 모양이다.
이후에 포크레인 사장님이 공사 대금을 받으러 다시 갔는데 스님은 돌아가셨고 스님이 써주신 글을 가격 책정 불가할 정도로 비싸게 팔렸다나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잠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나온다.
일붕사
봉황대에 자리 잡은 봉황루
봉황대에서 내려오면 사람 한 사람 지나갈 정도로 아담한 석문이 서있다
봉황대 읽어 보시고
봉황대 모습
궁류면 압곡리 마을
어느 가정집인데 방 문살이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것으로 아주 오래된 것 같아 한 장 담아 본다.
궁류시장을 지나
마침 지나는 길이 장날인데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파장하시고
조용하기만 하다.
하천에는 물이 얼마 없고 바닥에 자갈돌만 보인다.
날씨는 더워지는데 가야 할 길에 나무 그늘이라고는...
지나온 하천과 산성산-한티재 성현산 방향으로
가야 할 하천길
지나온 하천길
지맥 길 성현산 방향으로
유곡면 마두리 마을이 보이고
무두리 마을 앞
하천 풍경
지나온 하천길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며 깊이는 꽤 깊어 보인다.
물놀이는 삼가야 할 곳이지만
바위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딱 좋을듯한 곳이다.
지나온 하천길에
그늘 없는 하천길이라 벌써 한여름이다.
유곡면 옥동 마을을 지나가며 우측의 마을은 엄한 마을
엄현교 옆떼기에서
유곡면 체험 캠핑장 하천길에
출렁다리와 인공 폭포
작은 절벽은 실제 바위고 큰 바위는 인공 폭포
인공폭포 옆 캠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셨고
조그만 편의점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소고기 컵 라면 하나 시키고
덕천리 마을 앞 강태공분
아직 잡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지나온 하천길에
곽재우 장군 생가지 가는 길에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 천연기념물
나이는 6백 년 정도 되었으며 북을 매단 나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이 나무에 큰북을 매달고 의병들을 모아
군사 훈련시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곽재우는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9일 뒤 이곳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본진은 이곳에 두고 낙동강과
남강을 오르내리며 왜군의 진격을 막고 보급로를 차단하여 왜군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웠다.
곽재우 장군 생가지를 지키는 6 백 년 된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학자수(學子樹) 이기에 곽재우 생가지 앞에서 있으며 마을 입구의 현고수 나무와 더불어 마을의 풍요와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곽재우 장군 생가지
본관은 현풍이며 호는 망우당이다. 1952년 4월 22일 이곳 세간마을에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처음에는 10명에서 기강 전투와 남강 정암진 전투에서 승리 후 훗날 2천 명에 달하는 의병을 모은다.
곽재우와 2차 진주성 싸움
1593년 7월 20일부터 27일까지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
진주성 1차 싸움에서 패한 일본은 2차 진주성만큼은 꼭 공격해서 이겨야 했으며
일본군 측에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진주성 1차전 패배의 보복전 심리로 조선 측에 승산이 전혀 없으니 잠시만 성을 비워
놓으면 일본군이 임시 점령했다가 남해로 물러갈 것이라 하며 진주성만큼은 꼭 함락시키지 않을 수 없으니
공격하기 전에 민간인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내라 권고한다.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진주성만 공격하고 물러난다는 일본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명군 와 일본군의 권고를 거부
2차 진주성 싸움은 일본군 10만 명과 선박 800척으로 진주성 한 곳만 집중 공격 진주성내에는 민관군 모두 6만
*진주 인근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명군(明君)은 진주성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판단했으며.
조선군 곽재우. 선거이 홍계남은 일본군과의 전투 경험이 많았으나 곽재우는 진주성까지 갔다가 절대적인 병력 차를 확인하고
진주 구원을 포기한다.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경험이 풍부한 나의 휘하 병력이 이런 데서 개죽음당하게 할 수 없소!"하고
선거이, 홍계남은 곽재우와 함께 가버리면서 충청 부사 황진 장군(황희 정승의 후손)을 만나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곽재우:진주는 고립된 성이기 때문에 지킬 수 없고 더구나 공(황진)은 충청도의 절도사이니 진주성을 지키다 죽는 곳은
공의 올바른 직분이 아닌듯하오
황진:비록 그렇다 하나 김천일에게 이미 약속을 했으니 죽는다 해도 약속을 깨트릴 수는 없오"하며 고립무원의 땅 진주성에 남는다.
결국 전투가 벌어지고 6천 명의 조선군이 왜군 10만 명을 상대로 8일을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조선군, 명나라. 의병 어느 부대도 진주성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기록에는 진주 성안에 있던 피난민과 6만 명이 전멸했으며 성안에 개 한 마리 남겨 두지 않고 도살해 버렸다고 한다.
일본군은 고니시가 말했던 대로 전라도를 공격하지 않고 남해로 내려가 버렸다
곽재우의 현실성과 황진 장군의 용감성 두 분 중 누가 더 뛰어난 분인가 하는 문제는 개개인마다 다 다르겠지만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진주성에 기다리는 6만의 백성을 살리고자 말을 달려 들어간 황진 장군을 택할 것 같다
생가지는 조선 중기 남부지방 일반 사대부의 전형적인 가옥형태로 2005년에 복원을 하였다.
백산 안희재 선생 생가 초가집
안희재 선생은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신 분이며
백산상회는 단순한 개인 사업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국내 거점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의 60% 이상을 지원하셨다.
민족 교육과 언론의 선구자 역할은 물론 독립투사로 헌신하며 1942년에 체포되어 혹독한 감금과 고문 후유증으로
독립되기 2년 전인 1943년에 순국하셨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의 생가지를 지나게 되어 영광으로 알며 하천길을 지난다.
행여나 이 길을 지난다면 꼭 한번 들러 보시고 예를 갖추시면 좋겠습니다.
우측으로 진등산이나 주민분들은 거북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거북산에서 이어지는 거북 머리가 보이고
진등산(거북산) 거북 머리에 올라본 하천길
이곳 거북 머리에는 대문짝 만한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있으며 하천길을 굽어 보는 장소로 조망이 좋은 곳이다.
진등산 (거북산)과 거북 머리
의령군 부림면 난동마을
가야 할 하천길에 그늘이 없으니
부림면 오 소교에서
이곳부터 유곡천이 합천군 대양면 태백산 서쪽 계곡에서 흘러온 신반천 원 발원지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하는 곳이다.
길이는 한우산에서 흘러온 유곡천이 10km 정도 더 길며 유곡천이 신반천의 최장 발원지다.
유곡천과 신반천이 만나는 곳
멀리 지나온 한우산 방향
커다란 들녘으로는 의령 논공 단지가 들어오는 곳으로
수년 정도 지나면 이 모습은 아닐 것 같다.
하천가로는 숲이 우거져 더 이상 진행이 불가하여
작은 언덕을 올라오니 농막에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마침, 가지고 간 식수도 떨어지고 수돗물이라도 받아갈까 하여 주인장 계시냐 하니
식사 중 이라며 "식사 안 했으면 라면 끓여 줄 테니 먹고 가라"며 들어오라고 하신다.
조금 전에 컵라면 먹은 터에 정중하게 사양하고 우유 한 컵 얻어 마시고 나온다.
멀리 비슬산이 보이고
한 모퉁이만 더 돌면 낙동강이 보이겠다.
지나온 길이며 멀리 미타산이 보인다.
신록이 우거지는 하천길
신반천이 낙동강 품에 안기는 곳에서 마무리하며
낙동강 맞은편은 창녕군 이방면이며 열왕산에서 흘러 우포 습지를 지나온 토평천이 낙동강에 안기는 곳이다.
낙동강과 멀리 화왕산 영취산 방향이며 저곳에서 흘러온 물은 쓰레기 하나 없는 하천인 계성천
낙동강 멀리 경남 합천군 덕곡의 소학산이 보이니 그곳 옆으로 가야산 언저리에서 흘러온 회천과 무심사라는 절이 있겠고
오늘 의령 땅으로 흘러오는 깨끗한 하천 유곡천(신반천) 일정 마무리하며
아직 시간이 많아 아침에 주차해둔 적포교까지 천천히 걸어 나간다.
의령 땅으로 흐르는 신반천은 아주 깨끗하며 주위 풍경 담아가며 걷기에는 좋을듯한 하천이다
첫댓글 강과 하천이 아직 많이 남아 있나봅니다.
갈곳이 있다는건 참 행복한것.
나두 갈곳이 많은데 가질못하니 튼튼한? 다리가 아깝네요 ㅎㅎ
늘 편안하게 구경 잘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10개 정도 남아있구요
조만간에 마무리 될것 같습니다.
글 감사드리구요 어느 산정에서 다시 뵙고 싶네요
차가운 비가 내리는 한우산의 사방 멋진 조망과
찰비계곡의 봄빛은 아름답고, 아씨 담의 안타까운 사연~, 물빛과 초록빛, 하늘빛이 어울려
걸음하신 방장님 마음도 깨끗하셨을 듯!!!
찰비계곡은 생각보다 너무 좋더군요
물도 깨끗하고 여름에 장비 가지고 한번 가보려고 하는데
시간되시면 한번 따라 오시기 바랍니다.
글 감사드리고
이제 다친 다리는 괜찮으신거죠
한우산 자굴산 지난주에
갓엇는데 꽃이 안피엇던데
지금 이뿌게 피엇네요.
바래봉을 닮은듯도
하구요~~~
제가 갔을때는 진달래가 곱게 피었을때 이니
수미님보다 제가 더 일찍 찾아 간것 같습니다.
지금은 철쭉이 있어야 할때겠죠 글 감사드리구요
좋은날 되세요
한우산 정상석 필체 좋고
진달래 죽여주고요 .
풍력팔랭개비 힘차게 돌아가니 물또한 존내요 ,
잘보고 갑니다
충열의 고장 의령 한우산 차디찬 물줄기 따라 좋은곳 다녀가셨네요.
자굴산은 소의 머리 쇠목재는 소의 모가지로
특히 방장님이 올라오신 쪽은 색스폰도로로
사진작가들 사이에 제법 유명세가 자자한 숨은명소 입니다.
택시 기사님이 귀한 분으로 알아보시고 애써 드라이브 시켜주신듯 합니다.
옮겨온 쇠목재 색스폰도로 사진 하나 올려봅니다.